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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왜 때문에 우리는 _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그냥_ 2019. 12.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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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소녀가 달립니다. 화려하면서도 순박한 무늬가 그려진 품이 넓은 치마를 두르고, 맑고 어린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둔탁한 발을 낡은 샌들에 얹고 달립니다. 숨 막히게 만드는 깨끗한 산등성이를 넘어 소녀는 힘차게 내달립니다.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 Lorena, La de Pies Ligeros입니다.

 

 

 

 

 

# 1.

 

마라톤에 대한 영화입니다만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다양한 음향 효과를 위해 영화를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소리의 활용이 펼쳐집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현악 연주가 숨 막힐 듯 깊게 드리워진 산세 함께 관객의 이목을 끕니다. 힘차게 내달리는 소녀의 모습과 넓은 화각의 공중촬영 영상 뒤로 경건하고 극적인 현악 연주가 끝나면, 갑자기 무반주의 전통 음악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함께 한껏 고조된 관객의 마음이 갑자기 뚝 떨어지며 그 낙차만큼 디테일과 행동에 대한 집중력이 상승합니다. 정적인 마을의 전경이 가시기 무섭게 번잡한 대회장으로 카메라를 옮깁니다. 우승자 '로레나'의 모습을 담기 위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이 이전의 평온한 노랫소리와 또 다른 대조를 이루죠.

 

감독은 '로레나'를 말이 아닌 소리와 환경으로 간결하게 소개한 후 다시 고요한 마을로 카메라를 돌립니다. 세상 고요한 종소리와 장작 패는 소리가 집중력을 차분히 응축시킵니다. 그리고 비로소 인물의 대화를 내어 놓죠.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로레나가 마라톤 하는 장면들의 다양한 소리들을 교차적으로 편집하며 영화 전체에 드라마틱한 리듬감을 만들어 냅니다. 상황이 달라지는 순간마다의 횡적 변화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서부터 귓가를 속삭이듯 들려오는 미상의 소리까지의 종적 변화가 자유자재로 펼쳐집니다. 기가 막히는군요.

 

 

 

 

 

 

# 2.

 

다큐멘터리는 태생이 지루합니다. 어쩔 수 없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들도 물론 없진 않습니다만, 그 흥미진진함은 대부분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는 소재가 만들어 낸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쳇말로 "그 소재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스릴러나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더더욱 흥미진진했을 거"란 거죠. 특히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인내의 스포츠 마라톤, 그것도 심심하기 그지없는 산골짜기 시골 소녀의 마라톤입니다.

 

감독은 이 심심한 재료들로 맛있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데요. 소리의 활용이라는 레시피로 숨어있는 맛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영화는 소재의 평범함과는 별개로 제법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 3.

 

행위와, 행위의 이유와, 행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사도 투사도 전문가도 딸도 아닌 '사슴 같다'라는 딸 로레나에 대한 아빠의 말이 뇌리에 깊게 새겨집니다.

 

그녀는 걸어야 했기에 걸었고 달리는 게 좋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그녀가 행동하는 이유는 행위에 담긴 본질적인 가치와 그 가치를 실현하는 동안의 즐거움 때문이었죠. 샌들이 아니라 탄성이 좋은 운동화를 신으면 품 넓은 치마가 아니라 공기저항을 줄여줄 운동복을 입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더 좋은 성적이란 것이 그녀가 실현하는 달리기의 본질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 더 좋은 성적은 더 즐거운 달리기와는 무관한 일이니까요.

 

"진지하게 달리냐"라는 감독의 질문에 그녀는 쑥스러워합니다. 새삼스러우니까요. 우리는 흔히 '진지하다'라는 말을 '더 좋은 결과물을 내려한다'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고 있습니다만 정말 두 표현이 동의어인지는 의심해볼 만합니다. 그녀는 더 나은 결과물을 추구하지 않습니다만 동시에 충분히 진지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마라토너가 샌들을 신고 달린다 말하면 진지하지 임하지 않은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녀는 새삼스런 질문에 쑥스러워할 뿐입니다.

 

"대회로 인해 다른 곳에 살아야 한다면 어떨 거 같냐"는 질문에 "그럼 이곳을 그리워하겠죠" 라 답합니다. 어마어마한 솔직함이지 않나요? 자신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 그 기분을 간결한 표현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 가슴 벅차오르는 달리기마냥 순수하고 정제된 깊이가 있는 사람. 로레나는 참 사슴 같은 사람입니다.

 

 

 

 

 

 

# 4.

 

취미 삼아 블로그를 시작한 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어차피 영화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면 더 재미있게 즐겨보고 싶다. 어딘가 글을 써야 한다면 더 열렬히 영화를 보지 않을까?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곱씹어 보다 보면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영화를 즐기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에부턴가 그리 뷰가 많지도 않은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멋들어지게 쓰고 싶고 잘 쓰고 싶다는 스스로 만든 압력이 생기던 차였습니다. 그 스트레스 때문에 『헤이트 풀 8』 리뷰에서 그딴 식으로 마구잡이로 글을 휘갈기기도 했었구요.

 

비단 이 블로그를 넘어 모든 지점에 있어 내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무엇을 위해 생각을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해 봤습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 소녀에게서 인생을 되짚어 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이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인 거겠죠?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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