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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그냥_ 2020. 7.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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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한다 역설하던 간호사는 거짓으로 수면 마취를 주사합니다.

 

싸구려 발가락 반지는 누군가의 조급함 앞에 맞지 않는 12만 원짜리 커플링이 됩니다.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은 누군가의 의심 앞에 살인계획으로 둔갑합니다. '윤영'은 남자 친구 '성원'이 여자를 때린 것으로 의심하지만 정작 영화 내내 상대방을 때리고 칼로 겁박한 건 '윤영' 자신입니다. 의심에 잡아먹힌 '윤영'은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성원'은 자신이 전 여자 친구를 때렸노라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여자를 때렸다는 고백이 사실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바닷속을 헤엄쳐야 할 검은색 물고기가 다홍색이 되어 솟아오르는 동안

굳건해야 할 땅은 힘없이 꺼져 내립니다.

 

 

 

 

 

 

# 2.

 

하지만 모든 것이 망상인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의 십자가도 많지만 병원들 역시 많습니다. 파라솔을 꽂은 사람들이라고 그곳이 재개발지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X-ray를 보고 오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윤영 커플이 방사선실에서 섹스를 한 것만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마침 찾아간 동료 의사가 진짜 아팠다 하더라도, 그와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꾀병을 부리지 않았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진 않습니다. '성원'이 전 여자 친구를 때린 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윤영'의 헤어짐은 그 자체로 솔직한 선택이죠.

 

건조한 사실과 명확한 의도가 투영된 의심 간의 괴리.

도시인의 과도하게 팽창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연약한 신뢰의 대조.

이를 증명하는 무수히 많은 역설적인 아이템들을 소집한 후,

감독 고유의 감각적인 코미디로 엮어낸 작품입니다.

 

# 3.

 

각 상황마다 주요 인물들이 예측하고 걱정하고 때론 기대하는 불행들에 심정적으로 동화된 관객이 의심과 확신과 사실이 뒤엉킨 아이러니를 즐기는 유희와, 말초적이면서도 알싸한 뒷맛의 코미디를 두 개의 축으로 삼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믿으며 삽시다!'는 식의 권선징악과는 다릅니다. '김진성' 의사가 아팠으면 좋겠다 말하는 '윤영'. 사람이 있는 집을 들여다보는 건 실례라 말하면서도 함께 들여다보는 '경진'. 메기의 움직임에 대피를 주장한 후 지진이 안 나면 어쩌나 걱정하는 메기 아빠. 불행보다 불행을 예측한 의심이 맞지 않는 것을 더더욱 걱정하는 사람들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더 깊은 구덩이를 파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를 다룹니다. 영화 초반 '경진'의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라는 한마디는 이 작품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대사일런지도 모르겠군요.

 

 

 

 

 

 

# 4.

 

화면을 안정적으로 분절하는 기하학적 배치. 과감하면서도 능숙하게 계획된 인상의 파스텔 톤 색감. 위태로움과 불안함 따위를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파격적인 구도. 심리상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창의적인 프레임과 음향. 정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편집의 시너지가 만드는 심미성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로. 전진. 전진!"

"99%의 믿음. 1%의 의심."

 

과 같은 맛깔스러운 대사들도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만, "사실이 온전하게 존재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대요.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만들어진다고 아빠가 그랬어요"라는 대사만큼은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라 없느니만 못하지 않았나 싶긴 하군요.

 

 

 

 

 

 

# 5.

 

아쉬운 점들을 조금 얘기해볼까요. 표현의 능숙함과는 별개로 2019년의 기준에서 특별한 스타일인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때깔의 영화라는 것들이 인디에서 유행을 탄지 꽤 되었던 데다 그렇다고 퀄리티로 다른 유사한 영화들을 찍어 눌러 버릴 정도까지의 성취에 다다랐다 생각지는 않습니다. 막말로 때깔만 보고 즐기기엔 이 정도 때깔은 대체제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달까요.

 

오프닝 방사선실 씬은 X-ray라는 아이템 하나 건지는 것이 전부일뿐 그 외 우주비행사나 하트 손 모양, 방사선사 커플의 복식과 같은 아이템들은 죄다 휘발됩니다. 마치 주요 공간인 것만 같았던 '마리아 사랑 병원' 역시 결과적으로 관객을 낚은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데스크 위에 놓인 뼈, 고추를 말리는 구내식당, 수녀원이었던 배경, 높이 뛰기에 매달린 출근 일지, 괴상한 외계어가 적힌 로비와 다트판 등도 모조리 휘발됩니다. 결말에서 다시 회수하는 대사 한마디를 치기 위해 동원된 세탁소와 요구르트와 깨진 스마트폰의 구멍 따위 모두 여지없이 휘발됩니다.

 

 

 

 

 

 

# 6.

 

영화를 끝까지 보고서 다시 생각해보면 위의 휘발된 아이템들은 (1:1로 대응되는 관념들은 있지만) 어쨌든 코미디 요소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반부까지 이게 웃고 넘기는 코미디 아이템인지 전개 상 기억하고 가져가야 할 미스터리 아이템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죠. 영화의 중반 들어 작품의 테마가 '자의적 해석을 동반한 의심'이라는 걸 파악하기 전까지. 관객이 어쩔 줄 모른 채 차곡차곡 모은 코드들이 다시 활용되지 않으면 자칫 기만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관객에 따라선 "지금 뭐 하자는 거야?"라면서 짜증을 내도 이상하지 않죠.

 

실제로, '천우희' 목소리를 한 '메기'가 직접 등장해 주제의식을 줄줄이 읊어준 이후로 영화가 급격히 안정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관객이 스스로 개그 코드와 주제 코드를 분리해서 인식하기 시작하니까요. 물론, 이 지점까지 관객이 인내심을 가지고 영화를 기다려줬다는 전재 하에서 말이지만요. 만약, 난립하는 코드들의 혼란스러움 그 자체를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후반부 파편적인 요소들이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강한 구심력으로 소집되어 재조립되었어야 합니다. 그 정도의 보상을 했다면 난해함이 수긍되었을 수도 있겠죠.

 

# 7.

 

글의 제목에서처럼 자기 색채가 강한 스타일리스트 감독 영화들의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이는 전형이라는 생각입니다. 강렬한 스타일과 창의적인 아이템, 흥미로운 주제의식의 매력은 분명 통통 튀지만 그 스타일을 위해 희생된 합리성과 설득력을 관객에 따라선 합의 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할 말은 없을 듯합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갔더라면 싶은데... 그게 말로만 쉽지 참 어려운 거겠죠. '이옥섭' 감독, 『메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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