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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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120

나를 찾...았네? _ 올웨이즈 샤인, 소피아 타칼 감독

# 0. 서론만 덩그러니 소피아 타칼 감독, 『올웨이즈 샤인 :: Always Shine』입니다. # 1. 배우를 꿈꾸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요. 한 명은 잘 나가고 한 명은 못 나가게 되면서 사이가 멀어집니다. 잘 나가는 애는 매 작품마다 벗는 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소개되는데요. 어차피 휘발되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두 친구는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로 하는데요. 그래 놓고 여행 내내 서로 염장을 지르는 띠꺼운 짓만 골라합니다. 잘 나가는 애는 그래도 잘 나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 없는 소리 툭툭 내뱉어 친구의 열등감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훨씬 포용적이고 사교적입니다. 못 나가는 애 역시 못 나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고깝게 보는 사람의..

Film/Thriller 2022.09.04

교환살인은 거들 뿐 _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누구나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설마 없애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셨어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s On A Train』입니다. # 1. 교환 살인 [交換殺人] 알리바이를 만들고 동기를 숨기기 위해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상대를 교환해 대신 죽이는 행위. 고전 명화 하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은 역시나 '교환 살인'일 텐데요. 그렇다고 메인 테마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모티브 정도에 불과하죠. 교환 살인이 메인 테마가 되려면 알리바이가 완벽한 듯한 몇몇의 별건들 사이 인과를 파훼하는 '추리극'이라는 식으로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만, 이 작품은 애초에 교환 살인이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전개의 방..

Film/Thriller 2022.08.30

미녀는 괴로워 _ 드래그 미 투 헬, 샘 레이미 감독

# 0. 어쩌면 샘 레이미는 그냥 알리슨 로만을 괴롭히고 싶었던 걸지도?! 샘 레이미 감독, 『드래그 미 투 헬 :: Drag Me to Hell』입니다. # 1. 어떤 사람들은 연기의 목적을 '재연'이라 생각합니다. 특정한 상황에 노출된 인간의 반응을 보다 완벽하게 재연하는 것을 뛰어난 연기라 평가하는 식이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계적 훈련과 논리적 연구에 기반한 기술적 연기법 보다,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배역에 동화되는 메서드 연기법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는 데에는 연기의 본질이 재연에 있다는 생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메서드는 연기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연기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메릴 스트립이나 케이트 블란챗과 같은 배우들이 선보이는 테크니컬 한 연기들은 훌륭한 반례라 ..

Film/Horror 2022.06.26

처녀보살의 살풀이 _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장르로 장난치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 가지고 놀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이 영화는 '촬영 연출하려고 만든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 :: Last Night in Soho』입니다. # 1. 타란티노 감독이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우디 앨런의 가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목뿐 아니라 재미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매력적이지만 허구적이기도 한 과거 황금기의 도시를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디 앨런이 그린 1920년대 파리도 아름답습니다만,..

Film/Horror 2022.06.16

돈키호테의 선택 _ 더 플랫폼,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

# 0. 상승과 하강으로 과격하게 축조해낸 원론적이면서 허무한 계급 우화?!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 『더 플랫폼 :: El Hoyo』입니다. # 1. 선입견이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럽 영화하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영화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각나곤 합니다. 가끔은 미술적이고 미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는 한국의 영화들과 달리 얘네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뒤 없이 내지르는 맛이 있곤 하죠. 이를테면 봉준호가 음흉한 지하실을 숨기고 있는 고급스러운 저택과 똥물이 역류하는 반지하를 섬세하게 계획하는 동안, 갈데르라는 이름의 스페인 감독은 냅다 333층짜리 탑을 쌓아 버리는 식입니다. 미친놈인가 싶죠. # 2. 황당할..

Film/SF & Fantasy 2022.06.06

트롤리 딜레마 _ 아이 인 더 스카이, 개빈 후드 감독

# 0. Q. 광차가 운행 중 이상이 생겨 제어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선로에 서 있는 5명이 치여 죽고 맙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반이 전철기의 옆에 있고, 전철기를 돌리면 전차를 다른 선로로 보냄으로써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른 선로에 1명이 있어서 그 사람이 치여 죽고 맙니다. 어느 쪽도 대피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때 도덕적 관점에서 이반이 전철기를 돌리는 것이 허용됩니까? 요약하자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1명을 희생해서라도 5명을 구해야 하지만, 의무론을 따르면 누군가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위키 백과 광차 문제 (鑛車問題, trolley problem) 중에서..

Film/Thriller 2022.05.16

what's wrong with you? _ 버닝, 마이크 갠 감독

# 0. 어지간하면 주인공은 호감이기 마련입니다. 마이크 갠 감독, 『버닝 :: Burn』입니다. # 1. 주유소 딸린 편의점에서 벌어진 하룻밤 사이 참극입니다. 장난기 많은 이쁘장한 직원 '쉴라'는 알바하다 총 맞아 변사체가 됩니다. 쉴라의 남자친구 '페리' 역시 여자친구 데리러 왔다 처음 보는 놈팽이에게 살해당합니다. 합리적인 제안을 좋아하는 편의점 털이범 '빌리'는 아포가토 되었다가 결박 플레이당한 후 통구이 앤딩을 맞았구요, 처음으로 관할 구역이 생긴 초보 경관 '리우'의 커리어는 시작부터 작살나고 말았습니다. 가게 주인은 알바생 잘못 쓴 대가로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죠.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빌런은 '멜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쉴라의 동료 직원인데요. 문제는 얘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

Film/Thriller 2022.05.12

Yah~? _ 파고, 코엔 형제 감독

# 0. Yah~! 코엔 형제 감독, 『파고 :: Fargo』입니다. # 1. , , 등으로 익숙하실 코엔 형제의 1996년작 범죄 영화입니다. 와 에 이어 세 번째로 코엔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새삼 하나같이 마이너 한 작품들만 고르는 걸 보니 별난 인간이긴 한가 봅니다.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입니다. 빚 청산하겠답시고 자기 마누라 납치를 사주한 인물이죠. 덜떨어진 사위를 못 미더워하는 부자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려고 이 모든 사단을 벌인 등신입니다. 딴 돈의 반을 약속받은 납치범 '칼'과 '게어'가 등장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웃기게 생긴 스티브 부세미가 영화 내내 능숙하게 수다를 떨죠. 계획대로 납치를 하나 싶었건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살인을 벌이게 되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

Film/Thriller 2022.05.08

소피의 반례 _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 0. 제목에 교수 나오고 강의 나오면 대부분 철학과 교수의 인생 강의입니다. 다른 학과 교수님들은 반성하세요. 당신들이 강의를 안 해서 이렇게 관객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 Anesthesia』입니다. # 1. 현실에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슈퍼 엘리트지만 영화에서만큼은 흔해 빠진 콜림비아 대학 교수, 월터입니다. 나오는 족족 인자한 표정으로 쓸데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다행스럽게도 짙은 눈썹이 개성적인 샘 워터스톤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개별적 사건들의 옴니버스로 시작해 이들이 점차 연결되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암에 걸린 까칠한 엄마를 둔 가족이 등장합니다. 대마와 섹스를 좋아하는 헛똑똑이 잼민이가 ..

Film/Drama 2022.04.30

샤말란의 올드 _ 올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히치콕 감독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실까요. 아무래도 현기증이려나요. 욕실 씬의 사이코일 수도 있겠네요. 북북서로도 기가 막히죠. 레베카도 좋았구요. 39계단도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엔 사보타주를 봤는데요. 역시나 흥미진진하더군요. 눈매가 매력적인 리즈 시절의 실비아 시드니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거장의 필모그래피답게 하나 같이 좋은 작품들입니다만 그 가운데 저는 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히치콕이고 나발이고 여신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기 때문인 게 맞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올드 :: Old』입니다. # 1. 미스터리 스릴러 반전 영화입니다.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죠. 샤말란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장르를 기대하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요. 보나 마나 ⑴ 소수의 주인공 무리가 판타지..

Film/Thriller 2022.04.22

거기서 거기 _ 내가 잠들기 전에, 로완 조페 감독

# 0.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로완 조페' 감독, 『내가 잠들기 전에 :: Before I Go to Sleep』입니다. # 1. 슈퍼스타 캐스팅에 마케팅을 올인합니다. 관객을 혹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지만 너무 난해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설정이 작품의 동력이 됩니다. 인물 구도와 상황 전개는 지극히 단조롭지만 불륜과 치정 따위의 통속적 아이템들이 맛있고 몸에 해로운 인공적 매운맛을 더합니다. 마냥 클리셰라 욕하기에는 찝찝하고 클래식이라 합리화하기도 애매한 그 중간 어딘가의 익숙한 플롯입니다. 지나고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개연성 붕괴가 속출하지만 관람하는 동안엔 적당히 자극적인 묘사와 배우진의 열연에 가려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몸값과 인지도 순에 따라 주연과 조연의 ..

Film/Thriller 2022.04.02

닫힌 방, 열린 서사 _ 더 룸,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 0.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더 룸 :: The Room』입니다. # 1. 전능한 신과 도전하는 인간의 판타지 통제하는 부모와 일탈하는 아이의 드라마 스토커 살인마와 사냥감의 스릴러 # 2. 하나의 공간에 중첩된 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일방향적 서사 속에서 세 캐릭터 모두 각자의 주제에서는 주연으로, 서로의 주제에서는 조연으로 기능합니다. 신과 인간의 서사 구조에서 관객은 셰인의 입장이 됩니다. 가족주의 서사에서는 케이트에 교감합니다. 스릴러의 기준에서는 멧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식이죠. 나 혼자만 레벨업식 유치찬란 양판소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는 방에서 태어난 아이 셰인과 정신병원에 수감된 존 도의 등장에 힘입어 ..

Film/Thriller 2022.03.22

아비뇽의 남녀들 _ X&Y, 안나 오델 감독

# 0. " 저는 정체성이 뭔지, 인간다움이란 뭔지 알아보려 합니다. 저는 예술가로서 배우 미카엘 페르스브란트와 세트에서 일정 기간 함께 살 겁니다. 실험에만 집중하고 외부 요인을 통제하기 위해서죠. 우리는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를 알아볼 겁니다.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의 이면으로 다가가 진정한 나를 찾는 게 이 실험의 목적입니다. 세트장에는 취조실이 하나 있는데 절대적 진실을 밝히는 장소로 사용됩니다. 미카엘과 저의 또 다른 자아들을 다른 배우들이 각각 맡아서 저희의 다양한 면을 연기할 겁니다. 또 다른 자아를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걸어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모습과 원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세트장에는 상담실이 두 개입니다. 이곳에서 미카엘과 저는 각자의 심리학자를 만나서 세트장..

Film/Thriller 2022.03.18

상하 좌우 반전 _ 하이 라이프, 클레어 드니 감독

# 0. 우주 SF입니다. 디테일한 미술과 세심한 설정과 쫀쫀한 서사로 빚어낸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는 아이 씐나! 어드벤처 물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제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코드들로 이리저리 엮어낸 교수님스러운 스릴러 드라마인 경우가 일반적이죠. 물론 세부적으로 나누자면야 더 많은 분류가 가능할뿐더러 위의 두 분류 역시 칼같이 나눠지지 않고 겹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알잘딱 넘어가도록 합시다. '클레어 드니' 감독, 『하이 라이프 :: High Life』입니다. # 1. 후자의 교수님스러운 영화 그중에서도 매운맛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와 분위기에 주력하고 있을 뿐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기도 하구요, 펜로즈 과정 따위를 잠시 찍먹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몰입을 위한 과학적 디테일이라기..

Film/SF & Fantasy 2022.03.14

불꽃놀이 _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 0. 검은 하늘. 폭력으로 쏘아 올린 화약. 형형색색의 폭발. 불의 에너지, 빛의 파괴. 찰나 같은 속도감. 사그라들고 난 후의 허무함.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티탄 :: Titane』입니다. # 1. '내가 지금 뭘 본건가'라는 관람평은 썩 훌륭합니다. '네가 지금 뭘 본거 같냐'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알렉시아는 알렉시아가 아닙니다. 아드리앵은 아드리앵이 아닙니다. 여자이지만 여자라 할 수 없고 남자이지만 남자인 것도 아닙니다. 제3의 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어떻게도 정의할 수가 없죠.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이성애자도 아니죠. 메카노필리아지만 온전히 메카노필리아인 것은 아닙니다. 범성애자도 아니구요. 아들도 아니고 딸도 아닙니다. 평범하던 사람은 이상..

Film/Thriller 2022.02.01

개표인 실종 _ 반장선거, 박정민 감독

# 0. 분명 익숙한 냄새인데 말이죠. 이걸 어디서 맡았더라... '박정민' 감독, 『반장선거』입니다. # 1. 생각났습니다! 조일형 감독 작, #살아있다 의 냄새군요!! 감독 개인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스타일과, 장르와 배경의 이종교배 아이디어에 작품의 성패를 올인하고 그 외 모든 것들은 대충 클리셰로 때워내는 바로 그 냄새입니다. 드론과 인방으로 대표되는 힙한 아이템은, 흑인 음악과 캣우먼식 장면 전환에 대응됩니다. 좀비물을 고스란히 가져와 아파트 단지에 풀어보자는 아이디어는, 범죄 누아르를 고스란히 가져와 초등학교 교실에 풀어보자는 아이디어로 대응되죠. 거실 한복판에 차린 무근본 베이스캠프와 클라이밍 하는 소방관 좀비 등의 작위적 설정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유도하는 머리 때리기를 비롯한 과장된 갈..

Film/Thriller 2022.01.04

But I couldn't help it _ 크라잉 게임, 닐 조던 감독

# 0. 인간은 두 가지야, 퍼거스. 전갈과 개구리처럼. 그 얘기 알아?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수영을 못해서 개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어.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모른다며 거절을 했지. 그러자 전갈이 말하길 '그럼 둘 다 빠져 죽어.' 그랬지. 그래서 안 찌른다고 했어. 생각하던 개구리는 전갈을 건네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태웠어.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 물결이 거칠어지자 겁난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버렸어.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만 거야. 그래서 개구리가 화가 나서 물었는데,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왜 찔렀냐고. 개구리랑 같이 죽어가면서 전갈은 대답했지.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인걸." '닐 조던' 감독, 『크라잉 게임 :: The Crying Game』입니다. # 1. '퍼거스'는 IRA..

Film/Thriller 2021.12.20

카지노의 법칙 _ 리노의 도박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딜러는 돈을 잃지 않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리노의 도박사 :: Sydney』입니다. # 1. 캐릭터를 역할 관계 하에 강하게 통제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대게 이야기 구조 역시 역할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의 배치에 종속되어 있곤 하죠. 마치 롤플레잉 게임처럼요. 각각을 보안관, 전직 군인, 교수형 집행인, 현상 수배범 등과 같은 서부극 속 역할 관계로 규정한 후 이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했던 이나, 노예상, 자유인이 된 노예, 노예를 관리하는 흑인, 현상금 사냥꾼으로 캐릭터를 규정해 힘과 당위의 논리로 시대극을 풀었던 와 같은 영화들은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도박이 되겠죠. # 2. 카지노에는 여러 종류의 게임들이 있습니다. 환각적 이미지를 표현..

Film/Thriller 2021.10.16

인생의 트램펄린 _ 럭키 몬스터, 봉준영 감독

# 0. 불행한 토끼는 사자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봉준영' 감독, 『럭키 몬스터 :: Lucky Monster』입니다. # 1. 가냘픈 토끼로 태어난 남자, 도맹수의 이야기입니다. 태생이 나약하고 겁 많고 소심하고 비굴한 인간입니다. 직업은 그의 성격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피라미드 회사 녹즙기 판매원이죠. 고달픈 와중에 거액의 빚까지 지고 있는데요. 사채꾼 노만수의 독촉에 허덕이던 그는 결국 아내 성리아에게 위장이혼을 제안하게 되고 이를 받아들인 아내와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한편 언젠가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환청은 스스로를 도맹수만을 위한 라디오 DJ 럭키 몬스터라 소개합니다. 도맹수는 환청이 들릴 때면 용각산을 먹어 뿌리치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럭키 몬스터의 멘..

Film/Thriller 2021.10.05

아이러니 _ 클로버필드 10번지, 댄 트라첸버그 감독

# 0. "야. 이거 재밌냐?" "... 클로버필드 봤어?" "아니. 안 봤는데." "...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응. 몰라." "그럼 봐. 재밌어." '댄 트라첸버그' 감독, 『클로버필드 10번지 :: 10 Cloverfield Lane』입니다. # 1. 아이러니한 영화입니다. 스핀오프 격의 작품인데 오히려 원작에 대해 전혀 모르고 봐야 재미있는 영화거든요. 대부분 재난 영화들은 재난의 성격이 명확한 가운데 그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액션과 퍼즐을 즐기는 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재난의 성격뿐 아니라 발생 여부조차 한참 동안 모호합니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온전히 즐기는데 원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심각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 2. 정통 미스터리 스릴러라면 벙커 안에서의 이야기를..

Film/Thriller 2021.08.12

술래잡기 _ 해리의 소동,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맥거핀 [macguffin] 속임수, 미끼라는 뜻. 영화에서는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한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이다. (후략) [네이버 지식백과] 맥거핀 [macguffin] (영화 사전, 2004. 9. 30., propaganda)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해리의 소동 :: The Trouble With Harry』입니다. # 1. 18분 50초. '윅스' 부인의 가게에 찾아온 '말로우'와 '아이비'입니다. 말로우가 식료품과 담배를 사며 돈이 없다 말합니다. 윅스 부인은 익숙하다..

Film/Comedy 2021.08.08

번뇌와 번민에 빠진 건 누구? _ 제8일의 밤, 김태형 감독

# 0. 애매하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보단 각 잡고 하나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나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영화는 크게 불교, 오컬트, 범죄 스릴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작동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각각의 코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인 듯 보입니다. '김태형' 감독, 『제8일의 밤 :: The 8th Night』입니다. # 1. 시작과 동시에 부처님은 눈깔 뽑기 장인이 됩니다. 흔히 불교 하면 떠올릴법한 자비나 참선 등의 이미지와 배치된 다소 폭력적인 설정이지만, 뭐 그럴 수 있죠. 감독은 이 부분의 문제를 후반부 관념화를 통해 극복합니다. 빨간 눈깔은 번뇌하는 눈, 검은 눈깔은 번민하는 눈이라는 건데요. 확실히 이 토대에서라면..

Film/Horror 2021.07.07

사장님, 스릴러 1인분 추가요 _ 침입자, 손원평 감독

# 0. 주인공은 보통 두 명입니다. 멜로라면 20대를 캐스팅하겠지만 중량감도 조금 필요한 스릴러에선 30~40대 배우를 섭외하는 게 정석이죠. 한 명은 영화 내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잡으러 다닐 테구요. 나머지 한 명은 영화 내내 도망 다닐 겁니다. 둘 중 한 명은 놀래키는 역할, 다른 한 명은 놀라는 역할일 텐데요. 도망가는 쪽이 놀랄 수도 있고 쫓기는 쪽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요 정도는 감독의 재량이죠. '손원평' 감독, 『침입자 :: intruder』입니다. # 1. 도망가는 애는 싸움을 겁나 잘하든 돈이 겁나 많든 머리가 겁나 좋든 쪽수가 겁나 많든 아니면 아싸리 만능약이 있든. 뭐가 되었든 특별한 능력이 있어 저게 말이 돼? 싶은 난관들을 아주 손쉽게 돌파합니다. 쫓아가는 ..

Film/Thriller 2021.06.25

뉴비 판독기 _ 더 로드,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 0. 우연한 기회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어디 볼만한 영화가 없을까 하던 차에 적당한 런타임의 공포영화를 하나 골랐습니다. 미리 준비한 편의점 팝콘과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82분간 펼쳐지는 죽음의 드라이브가 끝나고. '노력은 인정하지만 좀 심심하다' 생각하던 차에, 응? 옆에 앉은 친구가 극찬을 쏟아냅니다. "와~ 진짜 재밌다!!"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더 로드 :: Dead End』입니다. # 1. 저는 얼추 일주일에 여덟에서 열 편 정도의 영화를 소비합니다.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영화 보는 게 취미입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셈이죠. 반면 친구는 영화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

Film/Horror 2021.05.30

고립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 _ O₂,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 0. 아무래도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가 생각나지 않을 수는 없겠죠. 간신히 사람 몸하나 뉘일 공간에 갇혀 있는 인물의 공포를 다룬 다른 모든 영화들처럼요. 해당 영화를 리뷰하며, 극단적으로 제한된 공간이 역설적으로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 압도적인 자유도를 부여한다 말씀드렸었는데요. 이 영화는 그 압도적인 자유도라는 게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가를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O₂ :: Oxygène』입니다. # 1. 영화는 두 번의 국면 전환으로 나눠진 세 파트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제한적인 시간,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의 폐소 공포와, 탈출을 위한 실마리를 수집해 나가는 스릴러로 전개되게 되구요. 두 번째는 이전까지의 목적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Film/SF & Fantasy 2021.05.16

SF는 거들 뿐 _ 스토어웨이, 조 페나 감독

# 0. SF 물로서의 배경 묘사가 얼마나 디테일하고 논리적인가는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되려 여러분께서 그런 디테일을 주의 깊게 보시게끔 만들었다는 것, 그게 문제죠. ‘조 페나’ 감독, 『스토어웨이 :: Stowaway』입니다. # 1. 자식이 아픈 부모를 위해 약을 구해오는 영화가 있다면 우린 그 영화를 '효'에 대한 영화라 말할 겁니다. 올챙이가 개구리를 돕는 영화라거나, 아기 다람쥐가 엄마 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구해오는 영화, 로봇이 자신을 만든 박사를 구출하는 영화 모두 소재만 다를 뿐 '효'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유사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올챙이나 다람쥐가 나온다고 해서 '동물 영화'라 정의한다거나 로봇이 나온다고 해서 'SF 영화'로 이해한다면 이는 작품의 맥락을 전혀 짚지..

Film/SF & Fantasy 2021.05.14

설명충이 반전물을 만들면 _ 대최면술사, 진정도 감독

# 0. 엄청 극단적인 영화입니다. 진짜 괜찮은 시나리오인데 진짜 못 만들었거든요.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기엔 감독이 너~~무 소심하고 너~~무 순박하고 너~~무 착합니다. 진정도 감독, 『대최면술사 :: 催眠大師』입니다. # 1. 캐릭터 괴랄합니다. 디렉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랑 환자가 상담하는 영환데 톤은 무협물에 맞춰져 있습니다. 논리와 호소로 대화하고 소통해도 모자랄 판에 주인공 둘이서 몸만 안 썼다 뿐 영화 내내 싸우고 있죠. 연기, 과장되고 어색합니다. 볼살 빵빵한 동안의 계란 머리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센 척을 하는데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그냥 웃기기만 합니다. 책상에 다리 올리고 신문 펴 보는 등장 씬은 감독의 부실한 연출 역량을 가늠케 하기 충분하죠. 그나마..

Film/Thriller 2021.05.04

악마인 듯 악마아닌 악마같은 너어어 _ 나인 마일즈 다운, 앤소니 월러 감독

# 0. 악마인 듯 악마 아닌 악마 같은 너어어 바람인 듯 바람 아닌 바람 같은 나아아 '앤소니 월러' 감독, 『나인 마일즈 다운 :: Nine Miles Down』입니다. # 1.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입니다.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반전 한방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 호들갑으로 채워집니다. 작품의 성패는 당연히 반전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반전만 확실하다면..

Film/Thriller 2021.03.31

세 가지 질문 _ 녹터널 애니멀스, 톰 포드 감독

# 0.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배우들이 있습니다. 봐야겠다 싶어 리스트에 올려놓더라도 당장 보기엔 지칠까 두려워 한참 동안 묵혀 두게 되는 영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껏 충전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각오를 담은 긴 심호흡과 함께 조심스레 꺼내 드는 영화. 고런 영화들을 주로 만드는 배우들 말이죠. '톰 포드' 감독, 『녹터널 애니멀스 :: Nocturnal Animals』입니다. # 1. 이 분야 끝판왕은 단연 '호아킨 피닉스'입니다만 굳이 한 명 더 꼽아야 한다면 전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을 꼽겠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작품들이 대체로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둘러싼 극단적인 감정 소모를 불러일으킨다면,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대단히 디테일한 현실적..

Film/Thriller 2021.03.24

차라리 게임을 하자 _ 12피트, 맷 에스칸다리 감독

# 0. 자매가 수영장에 갇혔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스릴러군요. '맷 에스칸다리' 감독, 『12피트 :: 12 Feet Deep』입니다. # 1. 이 같은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극단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강하게 추적하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나 대니 보일 감독의 같은 심리극 스타일을 들 수 있을 테구요. 또 다른 타입은 관객과 함께 생존 방법을 논리적으로 모색하는 재난 영화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알폰소 쿠아론의 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을 떠올리셨다면 적절하겠네요.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장르가 작동하기 위한 1차적인 기반은 감정이입입니다. 내가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참... ㅈ같겠다. 라는 감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Film/Thriller 202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