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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처녀보살의 살풀이 _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감독

그냥_ 2022. 6.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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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장르로 장난치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 가지고 놀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이 영화는 '촬영 연출하려고 만든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 :: Last Night in Soho입니다.

 

 

 

 

 

# 1.

 

타란티노 감독이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가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목뿐 아니라 재미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매력적이지만 허구적이기도 한 과거 황금기의 도시를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디 앨런이 그린 1920년대 파리도 아름답습니다만, 에드가 라이트가 그린 1960년대의 런던 역시 그 못지않게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호러나 스릴러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대표 장르는 아무래도 미스터리라 하는 것이 적당할 겁니다. 홈즈로 인한 선입견인 걸까요. 런던 거리의 풍경과 거리에 면한 좁고 긴 형태의 건물들, 흐린 날씨와 대조되는 화려한 지하 술집 따위는 범죄 추리물을 위한 최적의 환경처럼 보이는 맛도 있군요.

 

 

 

 

 

 

# 2.

 

초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특급 오락이라 할법합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게 된달까요.

 

현재와 과거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사실과 인식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한 인격 안에서 동시간에 혼재되어 뒤엉키는 양상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은 심미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겸비하는 데 성공합니다. 엘리의 방과 1960년대 런던 등 공간의 미술적 성취뿐 아니라 거울에 비친 상을 활용하는 방식은 특히 인상적이죠.

 

분리된 영역에서 전개되는 두 주인공의 내면이 때론 대칭되기도 하고 나열하기도 하다, 특정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 공격적인 카메라 워크와 어우러져 교감하고 간섭하는 방식의 박력은 위력적입니다.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샐리와 그 뒤 수많은 거울에 산란된 엘리의 모습이라거나, 잭과 춤을 추는 장면 등에서 두 인물이 교차되는 연출, 샐리의 좌절을 보며 울분에 찬 엘리가 거울을 깨부수는 장면 등은 대표적이죠.

 

 

 

 

 

 

# 3.

 

다양한 공간과 시간이 변주되는 가운데 적재적소에 배치된 미스터리한 인물들로 집중을 관리하는 플롯도 성취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양가적인 불안을 상징하는 '폭력의 붉은색'과 '공포의 푸른색', 이와 대비되어 심정적으로 의지하고 매료되게 만드는 노란빛의 60' 런던 공간 미술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엘리와 샌디라는 두 주인공을 선명하게 캐릭터마이징한 후 점점 접점을 늘려가는 방식도 친절하고 유려합니다. 일련의 연출 위로 언제나처럼 음악과 편집을 연동시킨 리드미컬한 진행까지 곁들여지면 장르적 재미에 있어서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에드가 라이트'죠.

 

감독이 깔아놓은 넓은 무대 위로 토마신 멕켄지의 연약한 불안과, 안야 테일러-조이의 우아한 광기가 마음껏 전개됩니다. 적어도 런타임 2/3 지점까지는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오락영화임에 분명하죠. 이어 결말부에서의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여기까지의 성취만으로도 이 영화는 호평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 4.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화려한 연출로 풀어가던 심리스릴러의 잠재력은 결말의 반전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맙니다. 인격 경계를 가지고 노는 스토리라 한다면 샌디와 엘리가 직접 만나는 순간의 파괴력이 곧 승부처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부분에서 두 인격을 칼로 자르듯 분리한 후 범죄 스릴러물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아이템의 잠재력을 크게 훼손시키고 맙니다. 마지막 건물에 매장된 원혼들이 나타나 엘리를 부둥켜안는 장면까지 가고 나면 어려서 엄마를 여읜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정신병리학적 해석 따위는 싸그리 휘발되고, 그저 지루한 영국산 처녀보살의 살풀이로 전락하고 말죠.

 

1960년대 런던을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2020년의 런던이 너무 희생되었다는 것은 한계라 해야 할 겁니다. 특히 현재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단편적이죠. 할머니는 스테레오 타입의 할머니라 이야기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구요. 조카스타 역시 하이틴 영화에서나 볼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일진 악당으로 주인공 괴롭히다 마지막에 역관광 당하는 소소한 전리품에 불과합니다.

 

존은 특히 기능적입니다. 인물 설정은 과거의 잭과 대조되기 위해 자상한 흑인으로 잡힌 것일 테구요. 앨리의 집에서 트라우마가 폭발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여지는 식이죠. 조카스타가 살해되는 것을 막는 것에도 적당히 동원되구요, 주인공이 가진 불안의 진폭을 강조하기 위해 달달한 행동을 강요받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이 2층 방으로 도망가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칼 맞는 데까지 가면 불쌍해 눈물이 앞을 가리죠. 이 모든 것을 캐릭터 하나가 몽땅 짊어지다 보니 이야기는 더욱 단조로워지고 말았습니다.

 

 

 

 

 

 

# 5.

 

현재의 캐릭터뿐 아니라 현실의 설정이나 떡밥들도 희생됩니다. 패션과 관련된 코드 깔끔하게 휘발되구요. 주인공의 1960년대에 대한 취향 역시 빙의물로 귀결되는 순간 휘발됩니다. 죽은 엄마에 대한 설정도 있으나 마나 하긴 매한가지구요. 할머니의 런던을 조심해라느니 하는 말도 결과론이 되고 말았죠. 다소 억지를 부려서라도 과격한 호러로 변주한 것치곤 마지막을 지루한 교훈극으로 마무리한 것도 전개에 편의적이라는 느낌을 심화시킵니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잠재력이 감독의 천부적인 재능과 만나 끝도 없이 확장됩니다만, 그 끝에 주인공은 과거의 실제 사건과 교감하는 무당이었다 라는 단 하나의 경우의 수를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며 진부하게 끝나버린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화려한 미술적 성취에 유독 잘 감화가 되는 취향 상 미스터리의 노인 핸지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만 하더라도 인생 영화 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하는구나라며 좋아했었는데요. 결말이 아쉽네요. 이야기의 중의성을 최대한 살려냈던 <퍼스널 쇼퍼>와 같은 영화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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