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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불꽃놀이 _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그냥_ 2022. 2.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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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검은 하늘.

폭력으로 쏘아 올린 화약.

형형색색의 폭발.

불의 에너지, 빛의 파괴.

찰나 같은 속도감.

 

사그라들고 난 후의 허무함.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티탄 :: Titane』입니다.

 

 

 

 

 

# 1.

 

'내가 지금 뭘 본건가'라는 관람평은 썩 훌륭합니다.

'네가 지금 뭘 본거 같냐'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알렉시아는 알렉시아가 아닙니다. 아드리앵은 아드리앵이 아닙니다. 여자이지만 여자라 할 수 없고 남자이지만 남자인 것도 아닙니다. 제3의 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어떻게도 정의할 수가 없죠.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이성애자도 아니죠. 메카노필리아지만 온전히 메카노필리아인 것은 아닙니다. 범성애자도 아니구요. 아들도 아니고 딸도 아닙니다. 평범하던 사람은 이상한 사람과 미친 사람을 지나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존재로 나아갑니다.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이지만 감정이 작동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불을 지르는 사람이지만 불을 끄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입 맞추는 사람이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입 맞추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폭발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영화 내내 가장 강한 압박에 노출된 존재이기도 합니다. 심리 변화에 방향성을 읽을 수 없고 그 이전에 이것을 '변화'라 할 수 있는 것인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의 집합, 중간 어딘가의 존재. 그 혹은 그녀 아니 이 '물질'은 무엇인가 묻습니다. 폭력과 고통과 파괴의 서사 끝에 태어난 금속의 척추를 가진 아이는 누구인가 묻습니다.

 

 

 

 

 

 

# 2.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다.

괴물들을 받아들여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

 

감독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괴물이라 칭합니다. 그중 괴물성에 대한 정의는 특히 흥미롭죠. 감독에게 괴물성은 규범의 지평을 여는 힘이라는 가치중립적 언어입니다. 흔히 괴물이라 하면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만, 사실은 생물학이라는 기성 이론 밖의 존재를 뜻할 뿐입니다. 머리 5개 달린 무시무시한 뱀도 괴물이지만 사랑스러운 날개 달린 고양이도 마찬가지의 괴물이죠. 주인공의 과격함은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동력 중 하나일 뿐 그 자체로 본질적이지는 않습니다.

 

알렉시아 혹은 아드리앵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존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게 합니다. 괴물을 규범 안으로 편입하기 위해 새로운 범주화를 시도하라는 108분 동안의 집요한 요구죠. 괴물을 해석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이전의 범주를 점검하고 맹점을 수정하고 개념을 확장해야 합니다. 주인공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지 않는 주인공의 파격을 통해 주인공에 중첩되어 있는 관념들을 되짚어보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신인류는, 금속 척추를 가진 아이는, 기존의 관성적 규범을 힘으로 부숴낸 인간. 영화를 통해 무수히 많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의심하고 의식을 확장하게 된 인간입니다.

 

 

 

 

 

 

# 3.

 

덕분에 (혹은 때문에) 매우 난해합니다.

 

암시적이고 문학적인 언어를 쓰는 철학적 작품들의 난해함과 달리, 직접적이고 말초적이고 노골적이지만 각각 구축된다는 인상이 희미해서 생기는 난해함이죠. 작품에 대해 해석하려 하면 할수록 손에 잡히는 바가 없으실 겁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손에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되려 영화와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해석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 가고 있다 보셔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존의 규범에 도전하고 해체하는 영화가 기존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건 모순적이니까요.

 

젠더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젠더에 대한 영화라 규정하는 것은 다소 편협합니다. 가족, 죽음, 충돌, 폭력, 과거, 사고, 부성, 가족애, 성적 욕망, 관계적 욕망, 공포, 언어, 인과, 집착, 자기모순, 불, 빛, 금속 따위의 코드들을 모조리 휘발시키는 견해이기 때문이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메카노필리아는 감독이 다루고자 하는 목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통념의 한계, 지평의 끝을 힘으로 넘어가겠다는 선언적 수사에 가깝죠. 공간에 놓인 무언가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힘에 의해 확장된 영역 그 자체에 대한 영화라 보는 편이 보다 합리적입니다. 파격 그 자체가 주제랄까요.

 

메카노필리아에 얽힌 젠더와 퀴어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차라리 <점보> 같은 영화를 보는 편이 훨씬 적절합니다.

 

 

누군가의 평범 _ 점보, 조이 위톡 감독

# 0. 사물을 사랑하는 오브젝토필리아 Objectophilia, 그중에서도 특히 기계를 사랑하는 메카노필리아 Mechanophilia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용성이나 수집욕 혹은 지적 욕구 등으로 기기를 즐기는 IT 덕

morgosound.tistory.com

 

 

 

 

 

# 4.

 

감독의 의도였겠습니다만 어쨌든 구축되지 못한다는 것은 관객 경험의 입장에선 단점임에 분명합니다. 강렬한 에너지와 도전 정신은 알겠으나 거기까지입니다. 파격에 뒤따르는 새로움에 대한 작품의 견해가 비어있는 영화라, 보고 나면 털썩 주저앉는 듯 관객을 허무하게 합니다.

 

아마도 상당수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느끼셨을 듯한데요. 짐짓 칭찬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전개가 의외성을 더하는 식이 아니라, 인과 없이 사건이 나열된, 전개라는 것이 작동하지 않는 작품이어서 생기는 의외성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노라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를 상상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대체 어떻게 마무리하겠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먼저 들게 되는데요. 결말에서의 실망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5.

 

이질감을 인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질감 그 자체를 즐길 것을 강요합니다. 위화감과 불쾌감을 던져놓고 그 이유를 발견하는 작품입니다.  특유의 냉소적인 요르고스 란티모스에서 열감을 반전시킨 것만 같은 작품이랄까요. 강렬함의 끝이 무기력하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죠.

 

영화는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 머리에 깊게 새겨진 흉터와 같습니다. 긴 머리카락의 관객 역시 거친 가위질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이내 빡빡 밀어낸 후, 끝내 자신의 머리를 절개하며 비쳐 나오는 티타늄을 목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인간인가를 기존의 개념에 구겨 넣는 식의 해석을 궁리하는 건 허무합니다. 빛나는 티타늄을 보지 못하고 남겨진 머리카락의 개수를 세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티탄>이었습니다.

 

# +6.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러저러한 평을 찾아보게 되는데요. 사상 두 번째로 칸을 먹은 여성 감독이라는 둥의 감독 성별에 집중해 고양감을 충전하는 평들은 썩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 기성의 범주를 파괴하는 메시지의 작품일 텐데 말이죠.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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