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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사장님, 스릴러 1인분 추가요 _ 침입자, 손원평 감독

그냥_ 2021. 6.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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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주인공은 보통 두 명입니다. 멜로라면 20대를 캐스팅하겠지만 중량감도 조금 필요한 스릴러에선 30~40대 배우를 섭외하는 게 정석이죠. 한 명은 영화 내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잡으러 다닐 테구요. 나머지 한 명은 영화 내내 도망 다닐 겁니다. 둘 중 한 명은 놀래키는 역할, 다른 한 명은 놀라는 역할일 텐데요. 도망가는 쪽이 놀랄 수도 있고 쫓기는 쪽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요 정도는 감독의 재량이죠.

 

 

 

 

 

 

 

 

'손원평' 감독,

『침입자 :: intruder』입니다.

 

 

 

 

 

# 1.

 

도망가는 애는 싸움을 겁나 잘하든 돈이 겁나 많든 머리가 겁나 좋든 쪽수가 겁나 많든 아니면 아싸리 만능약이 있든. 뭐가 되었든 특별한 능력이 있어 저게 말이 돼? 싶은 난관들을 아주 손쉽게 돌파합니다. 쫓아가는 애 역시 그전까지 어떤 직업이었든지와 무관하게 배테랑 형사와 셜록 홈스 중간 어딘가 즈음에 빙의한 추적 머신이 될 테죠. 주인공의 주변엔 개연성 구멍을 때우기 위한 치트키로서 보조캐가 하나 매달려 있는 게 보통입니다만, 그것마저 귀찮다 싶으면 냅다 성공률 100%짜리 최면술 따위로 손쉽게 문제를 극복하기도 합니다.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으로 후배 감독들 버릇을 잘못들인 탓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나라가 부동산 공화국이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집을 중심에 놓고 굴러가는 영화들이 유독 많은 것 역시 특징입니다. 중반 즈음해서 눈뽕 조명 미친 듯이 때려 박은 회상씬은 무조건 등장할 테구요. 회상 속에서 귀신이 된 누군가가 예토 전생해 힘내라고 버프를 넣어줄 겁니다.

 

 

 

 

 

 

# 2.

 

뜨뜻미지근한 분위기 안 넣으면 죽는 병에 걸린 충무로 영화 아니랄까 봐 세상 귀여운 아역이나 갓 결혼한 신혼부부, 죽고 못 사는 하나뿐인 형제, 오늘내일하는 환자 중 하나쯤은 반드시 등장할 텐데요. 애를 건드렸다간 욕만 바가지로 먹고 손익분기점 구경도 못할 가능성이 높기에 애는 무조건 무사한 가운데, 배우자나 하나뿐인 동생 따위의 '죽여도 별 문제없을 배역'은 가볍게 갈아 넣어 앞서 말씀드린 예토 전생의 소재로 재활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환자는 십중팔구 구속된 회장님처럼 휠체어를 타고 다니죠.

 

제 아무리 장르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변화구를 던진다 하더라도 그래 봤자 마무리는 늘 몸싸움으로 귀결됩니다. 겁나 연약해 보이는 캐릭터라 하더라도 결말의 액션씬에서 만큼은 정두홍 감독에 빙의해 물리적 조건을 아득히 초월한 활약을 선보이며 억지 긴장감을 쥐어짜내게 되겠죠.

 

 

 

 

 

 

# 3.

 

경찰은 언제나처럼 내내 헛다리만 짚는 등신이지만 결말엔 귀신같이 쏟아져 나와 뒤치다꺼리를 할 테구요. 그 내용은 때마침 어느 공용 건물 로비에 거치된 벽걸이 TV 속 뉴스 보도를 통해 소개될 테죠. 영화가 끝나고 되짚어보면 말도 안 되는 전개 투성이이지만, 뭐... 다 끝난 마당에 환불해 줄 것도 아니니 배 째라 하면 됩니다. 대신 열린 결말이나 쿠키 영상 같은 걸로다가 창작자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 같은 걸 적당히 채워 넣어 줄 순 있겠죠.

 

홍보 포스터에는 두 주인공이 대문짝만 하게 등장해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거나, 한 명은 노려보고 한 명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겁니다. 대체로 악역들이 주목받기 좋은 스릴러물의 특성상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빌런의 등장!!! 배우 XXX의 충격적 연기 변신!!!" 따위의 지루한 수사로 치장된 광고 카피가 포스터의 여백을 자간 겁나 벌린 타자기 폰트로 채우고 있겠죠.

 

 

 

 

 

 

# 4.

 

여기까지가 위대한 K-스릴러 영화 시나리오 제작 공식입니다. 망작들에 범벅되어 있는 클리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수작 범작 망작 가릴 것 없이 일정 규모 안에서 제작되는 스릴러물 대부분이 공유하는 생산 공식이라는 뜻이죠.

 

당장 많은 분들께 사랑받는 영화 <끝까지 간다>만 하더라도 위의 공식이 적용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선균, 조진웅 두 명의 3040 주인공. 이선균은 도망, 조진웅은 추적. 이선균은 놀래는 역할, 조진웅은 놀래키는 역할. 둘 다 어쨌든 먼치킨이고, 어린아이도 나오고, 집이랑 비슷한 용도의 가게 코드 등장하고, 신파 충전용으로 동료 하나 죽이고, 동료의 죽음이 버프가 되고, 영화 내내 짱구 열심히 굴려봤자 마지막은 치고받는 쌈박질이고, 그 와중에 경찰은 일관되게 등신이고... 대충 맞아떨어지죠. 그 외에도 유아인이 맷돌 찾는 <베테랑>이나 4885의 <추격자> 같은 수작들 역시 큰 틀에서는 위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위 구도를 벗어나려면 다수의 주인공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라거나, 래퍼런스가 있는 원작 기반 혹은 실화 바탕 영화라거나, 도전적 성향의 감독이 필모 조질 각오하고 총대를 매야 합니다. 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대형 프로젝트도 래퍼런스가 있지도 감독이 도전적이지도 못합니다. 말인즉 그렇고 그런 양산형 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럼 앉아 죽으라는 거냐? 그건 아니죠.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감독들은 제한된 제작 방식 안에서 식상함을 탈피해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을 생각합니다.

 

 

 

 

 

 

# 5.

 

손원평 감독의 선택은 <오컬트>입니다.

 

미스터리한 '유진'의 존재가 사실은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였다!! 우와!!!!

 

... 뭐, 그런 건데요. 영화의 자잘한 단점들 이전에 가장 큰 문제는 오컬트의 활용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점을 들어야 할 겁니다. 오컬트로 승부를 볼 요량이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컬트를 장르로서 해석한 후 시나리오의 플롯 속에 녹였어야 했을텐데요. 안타깝게도 감독은 그저 아이템 1로 소비하는 데 그치고 마는군요. 참아이니 뭐니 하는 사이비 종교의 코드 대신, 적당히 부잣집 털어먹고 아이는 부모와 분리해 고아원에 넘겨버리려는 개막장 범죄조직의 보스였다! 라 하더라도 영화의 전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점은 명백한 장르 결합의 실패라 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오컬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다 보니 이식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들만 부각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밑밥도 없이 갑작스레 선회하는 뇌절은 특히 치명적이죠. 무한 의심 메타로 일관하는 밋밋한 이야기에 볼륨을 더하기 위한 방법들 모두 '사실은 이 사람도 광신도였다!!'라는 치트키로 일관한다는 점도 나태해 보이게끔 합니다. 영화 내내 모든 등장인물들이 미친놈처럼 화를 내고 있다는 점도 완급조절 실패라 해야 할 테구요.

 

특히나 얼굴에 왜 때문인지 모를 이상한 흉터가 있는 뺑소니범이 사이코 모노드라마 속 찐따처럼 겁나 센 척만 하다가, 평생 캐드질만 해온, 그것도 의자에 묶여 있는 건축가 하나 어쩌지 못해 개털린다는 식의 막장 전개는 할 말을 잃게 합니다. 심지어 이 대탈출 역시 경찰차에서 재탕 히치하이킹에서 삼탕까지 우려내죠. 곰국인가요.

 

 

 

 

 

 

# 6.

 

뺑소니의 기억과 동생을 잃을 때의 기억이 최면 속에서 연결된다는 것도 끝내 설명되지 않구요. 서진이 유진을 의심하는 계기라는 것이 그냥 느낌뿐이라는 것도 호소력이 떨어지는 대목이죠. 후반부 갑자기 입술 시꺼멓게 칠하는 송지효의 코디 역시 연출의 조력을 받지 못하다 보니 저예산 코스프레처럼 보이고 말구요. 주인공 둘이 냅다 만덕산에 올라 둘 중 하나가 줄 없이 번지점프한다는 결말 역시 매끄럽지 못합니다. 특히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결국 <경찰 들이받고 도주한 가정폭력 용의자가 결국 산으로 올라가 동생을 살해했다> 밖엔 안 될 텐데요. 그래 놓고 대충 적당히 사이비 종교가 소탕되었습니다~ 하고 넘어가는 건 너무한거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환불 안되니까 꺼지라는 식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뻔한 기획 뻔한 구성 뻔한 배치 뻔한 전개에 실패한 변주가 더해진 뻔한 결말이니 감상 역시 뻔하다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저 충무로가 지루한 국산 스릴러들 사이에 똑같은 애를 하나 더 만들었다. 라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속상한 결론이군요. '손원평' 감독, <침입자>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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