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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차라리 게임을 하자 _ 12피트, 맷 에스칸다리 감독

그냥_ 2021. 3.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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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자매가 수영장에 갇혔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스릴러군요.

 

 

 

 

 

 

 

 

'맷 에스칸다리' 감독,

『12피트 :: 12 Feet Deep』입니다.

 

 

 

 

 

# 1.

 

이 같은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극단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강하게 추적하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나 대니 보일 감독의 <127시간> 같은 심리극 스타일을 들 수 있을 테구요. 또 다른 타입은 관객과 함께 생존 방법을 논리적으로 모색하는 재난 영화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을 떠올리셨다면 적절하겠네요.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장르가 작동하기 위한 1차적인 기반은 감정이입입니다. 내가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참... ㅈ같겠다. 라는 감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걸려있다는 뜻이죠.

 

# 2.

 

효과적인 감정이입을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행위의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죠. 최대한 일반의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상식과 수단과 여력의 범주 안에서 서사가 놀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땅 속에 갇혀 아등바등하는 주인공과 함께 1시간여 동안 같이 머리 짜내고 발 동동 굴렀더니만 결말에서 사실 이 주인공이 헐크라 힘으로 다 때려 부수고 탈출했답니다! 짜잔! 하면 관객이 빡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3.

 

두 번째는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소재 특성상 감독이 원튼 원치 않든 단서를 수집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관객의 입장에서 '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라 생각되는 순간 주인공이 그 수단을 선보이고 그 방법이 적용되는 과정을 관객에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길 반복해야 합니다. 손쉽게 떠올릴 법한 모든 수단을 제거한 후 나름의 참신한 방식으로 탈출을 보여주거나 탈출에 실패한 사람의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는게 일련의 장르가 작동하는 정석적인 방법이죠.

 

세 번째는 솔직해야 합니다. '알고 보니 이런 거였다'는 식의 반전을 활용하는 데 신중해야 합니다. 떡밥이 등장한다면 반드시 모두 회수해야 합니다.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관객들이 그 떡밥을 근거로 논리를 펼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영화에 필요한 설정들은 '인물이나 상황에 관한 합의된 설정'이어야지 '전개를 위한 편의적 설정'이 되어선 안됩니다. 일련의 설정들 역시 가급적 영화의 전반부에 풀어놓아야 하구요. 관객과 합의된 전재를 발판으로 삼아 그 위에서 재난을 해쳐나가야 하기 때문이요. 서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뜬금없는 설정이 덧대어지거나 인물에 대한 설정을 중반부 어설픈 반전으로 활용하게 되면 재난 상황을 마치 내 일인 양 따라오던 관객들로하여금 자칫 기만당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 4.

 

마지막으로 진지해야 합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위기의 주인공은 생존과 무관한 다른 모든 이야기를 과감히 잊어야 합니다. 최대한 살아남는 것만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합니다. 당사자가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재난을 관객이 위험으로 느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진지함을 위해 영화의 카메라 역시 최대한 위험에 놓인 주인공들의 시선, 주인공의 시야 안으로 통제되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 가지 조건은 첫 번째 단락에서 예로 들었던 영화 모두에 적용됩니다. <베리드>, <127시간>, <그래비티>, <마션> 네 작품 모두 전혀 다른 테마, 배경, 인물, 주제 의식을 다루지만 적어도 모두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며 솔직하고 진지한 작품들이었죠.

 

그리고 이 영화는 장르가 작동하기 위한 네 가지 상식을 모조리 위반합니다. 감독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역주행합니다.

 

 

 

 

 

 

# 5.

 

사건의 시작은 언니 '조나'의 약혼반지가 수영장에 떨어져 있었다는 데서 출발하는데요. 이후 전개되는 동안 반지를 수영장에 버린 게 동생 '브리'라는 게 밝혀지죠. 그러니까 '브리'는 자기가 반지를 훔치고 자기 손으로 수영장에 던져 놓고선 스스로 반지를 발견하고 스스로 수영장에 뛰어들었다가 스스로 갇혔다는 뜻이 됩니다.

 

놀라기는 이릅니다. 이 여자의 멍청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신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청소부 '클라라'가 기분 나쁘게 한다는 이유로 거짓으로 속여 공격합니다. 그러고는 버럭 화를 내며 말하죠. 살려달라구요(...) 절벽에 매달려 있는 데 누군가가 구할까 말까 장난을 치니까 손을 뻗어 발을 때리더니 '날 끌어올려주지 않으면 발을 더 때리겠다'라고 협박하는 식이죠. 돌아인가?

 

언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조나'는 카드번호를 알려달라는 '클라라'의 협박에 한껏 고뇌하다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번호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카드에는 80불 그러니까 얼추 9만 원 들어 있었다네요. 그걸로 갈등한 거야?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 6.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영화는 연휴 동안 수영장이 문 닫은 거라는 설정 위에 펼쳐집니다. 연휴가 끝나기 전 며칠 동안 수영장에 갇혀 있어야 한다, 즉 '공간'에 대한 공포를 테마로 삼겠다는 뜻이죠. 그런데 갑자기 언니 '조나'에게 당뇨가 있다는 설정이 중반에 공개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시간'에 대한 공포로 전환되는 거죠. '밤새 저체온증으로 죽기 전에 탈출해야 해!'라는 전제 위에서 공감하던 관객들의 몰입은 여기서 한번 강하게 깨집니다.

 

그래요.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9개월 전 출소한 전과자 출신 사이코 청소부 '클라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빌런의 등장과 함께 극의 성격은 재난적 환경이 아닌 '특정한 인물'에 대한 공포로 전환됩니다. 그 순간 '나도 언제든 저렇게 수영장에 갇힐 수 있다'라는 보편성은 날아가고 가상의 사이코패스를 상대로 한 평범한 범죄 스릴러로 추락합니다.

 

더 최악인 건 어쨌든 형식적으로나마 '12피트의 수영장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로 전개되던 영화의 마무리가 수영장을 무사히 탈출했다가 아니라 '클라라'가 들이댄 총으로 정리된다는 점입니다. 더욱 최악인 건 이 사이코패스 빌런에게 '서로를 귀하게 여기라느니, 이 일을 교훈으로 삼으라느니,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라느니' 하는 선생님 놀이까지 시킨다는 점입니다. 더더욱 최악인 건 이 미친X이 애써 협박해 훔쳐갔던 약혼반지까지 곱게 돌려줍니다.

 

 

 

 

 

 

# 7.

 

회수되지 않는 떡밥도 너무 많습니다. 수영장 할아버지의 이유 모를 까칠함은 끝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조나'와 '클라라'의 당뇨 코드도 휘발됩니다. 자매의 과거 역시 런타임을 때워내기 위한 부가적인 아이템일 뿐 재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 타령 역시 휘발됩니다. '클라라'가 왜 수영장 덮개를 여는 비밀번호를 모르는 건지 역시 전혀 설명되지 않죠.

 

탈출을 위한 방법이랍시고 준비한 것 역시 너무 한심합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결론이 사랑의 힘으로 배수구 마개 힘껏 뜯기라는 걸 목격하는 순간. 몇 시간을 어쩔 줄 몰라하던 수영장 덮개가 쇠 덩어리로 적당히 톡톡 때리니까 깨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순간. 막을 깼으면 나머지도 계속 배수구 마개로 깨면 되지 굳이 손을 집어넣어가며 다치는 걸 보는 순간. 나는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라는 현타에 빠지게 됩니다.

 

 

 

 

 

 

# 8.

 

사이코 빌런 '클라라'가 영화 중반 홧김에 온수를 끄는데요. 그럼 밤새 아무도 안 쓰는 수영장에 온수를 틀어두고 있었던 거야? 라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샘솟습니다만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짚으면 1박 2일은 걸릴 것 같기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탓에 죽게 생긴 당뇨로 오락가락 하는 언니 앞에서 굳이 안 그래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수영장 안에서 친절하게도 푸른 수영장 물을 시뻘겋게 만들기 위해 동생 '브리'가 자살하겠노라 쇼를 하는 걸 보며 어처구니가 화끈하게 승천합니다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짚으면 3박 4일은 걸릴 것 같기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 9.

 

...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제목 역시 세상 허술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소재의 스트레스는 수영장의 깊이 12피트가 아니라 수영장 덮개와 수영장 물 사이의 공간, 약 1 피트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제목은 그 틈의 크기라 할 수 있는 <1 피트> 정도 여야 하고 카메라 역시 수중을 잡는 걸 최소화했어야 합니다.

 

만, 시나리오의 밀도를 생각할 때 이런 합리성을 기대한 관객이 나쁜 거겠죠. 영화에 실망하신 어떤 분들은 독특한 전직을 가진 수영장 관리인 할아버지랑 Do you wanna play a game? 이나 즐기는 편이 훨씬 나았을거라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맷 에스칸다리' 감독, <12피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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