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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트롤리 딜레마 _ 아이 인 더 스카이, 개빈 후드 감독

그냥_ 2022. 5.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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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Q. 광차가 운행 중 이상이 생겨 제어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선로에 서 있는 5명이 치여 죽고 맙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반이 전철기의 옆에 있고, 전철기를 돌리면 전차를 다른 선로로 보냄으로써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른 선로에 1명이 있어서 그 사람이 치여 죽고 맙니다. 어느 쪽도 대피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때 도덕적 관점에서 이반이 전철기를 돌리는 것이 허용됩니까?

 

요약하자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1명을 희생해서라도 5명을 구해야 하지만, 의무론을 따르면 누군가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위키 백과 광차 문제 (鑛車問題, trolley problem) 중에서-

 

 

 

 

 

 

 

 

개빈 후드 감독,

『아이 인 더 스카이 :: Eye in the Sky』입니다.

 

 

 

 

 

# 1.

 

전쟁 스릴러의 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보다는 사고 실험을 유도하는 드라마와 블랙 코미디 중간 어딘가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를 논하던 트롤리 딜레마를 전쟁 상황으로 재해석해 이야기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말이죠. 혹자는 반전주의反戰主義 영화라는 식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듯합니다만, 글쎄요. 개인적으로 반전주의는 영화를 마무리 짓기 위한 탈출 전략을 겸한 부차적인 메시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⑴ 정치외교의 연장일 수밖에 없는 전쟁의 본질, ⑵ 법적 - 윤리적 - 제도적 가치의 충돌, ⑶ 책임을 분산하는 시스템의 부작용과 한계, ⑷ 군사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해소되지 않는 불확실성, ⑸ 일련의 다층적 충돌에 노출된 인명의 무게와, ⑹ 결정해야 하는 상황 앞에 놓인 인간의 무기력함 등을 아우르는 딜레마입니다. 다양한 위계의 인물들을 거리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치하고 이들 사이를 오가는 동안 관객의 판단을 뒤흔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위의 내용들을 글로 옮기는 것은 새삼스럽습니다. 친절하게 대사로 소화하고 있어 영화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니까요. 따라서 각 아이템에 대한 갈등은 직접 영화를 통해 즐기시구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2.

 

관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영화는 거리감을 적극 활용합니다. 케냐에 테러리스트를 두고 작전 지휘실은 영국, 드론 조종실은 미국에 둔 것은 의도적이라 해야겠죠. 물리적 거리와 절차적 거리는 자연스레 정서적 거리로 연결됩니다. 인물들은 현장과 가까울수록 감정적이고 개인적이며 미시적이고 도덕적입니다. 현장과 멀어질수록 논리적이고 사회적이며 거시적이고 정치적이죠.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강경파인 파월 대령과 중국에서 탁구 치고 있던 미국 국무장관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을 답답하거나 어리석은 인물인양 여기게 되는데요. 관객이 느끼는 인물에 대한 비난은 감정적 비난이나 도덕적 비난보다는 합리적 비난이자 정치적 비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음 아픈 건 알겠지만 눈 딱 감고 작전 수행해야지 왜 망설이는 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죠.

 

영화가 적극적으로 인물들을 한심하게 여기게끔 유도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 화장실을 찾는 외교장관의 뒷모습이나, 찌질하고 우유부단한 것으로 묘사되는 배석 장관의 연출, 중국과 탁구 치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미 국무장관의 표정 따위는 노골적이죠. 즉, 거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관객은 현장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심지어 영국의 작진 지휘실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일 겁니다.

 

# 3.

 

영화의 제목은 기본적으로 무인 정찰기 MQ-9를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요. 돌이켜보면 이 무인기는 서사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죠. 굳이 무인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타깃을 추적하는 요원이 따로 있었다거나 폭격기가 따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영화 내내 집 안을 들여다본 것은 무인기가 아니라 배터리 조루인 딱정벌레 드론이었죠.

 

그럼에도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이 인 더 스카이>라 명명합니다. 영화는 하늘에 숨은 눈의 이야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름 뒤에 숨어 편리하게 내려다보는 '관객의 눈'입니다.

 

 

 

 

 

 

# 4.

 

헬파이어는 두 번 떨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작전은 실행됩니다. 무인기에 탑재된 헬파이어 미사일이 투하되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구태여 두 발의 미사일을 투하한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미사일이 떨어집니다. 작전 지휘실의 결과물이죠. 미사일이 떨어지며 테러리스트의 은신처가 초토화되는 과정에서 치명도 45%라는 예측이 무색하게도 소녀 '알리아' 역시 폭발에 휘말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맙니다. 생사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소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은 서늘하죠.

 

감독은 첫 번째 미사일이 투하된 직 후, 하늘을 날아 세계를 여행하던 관객을 현장으로 밀어 넣습니다. 상공에 있던 무인기에서 미사일이 폭력적으로 추락하듯, 도도하게 이들을 내려다보던 관객의 눈 역시 폭력적으로 추락합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서 작전을 수행하던 요원 '자마'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죠.

 

관객이 현장에 방치된 상황에서 감독은 두 번째 미사일을 떨어트립니다. 관객의 시점에서 본다면 첫 번째 미사일을 하늘에서 떨어트린 미사일이라 한다면, 두 번째 미사일은 땅에 떨어진 미사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같은 판단을 '그렇게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묻기 위함이죠.

 

두 발의 미사일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폭력'이라는 모순을 폭로합니다. 연이어 테러리스트 민병대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무기를 버리는 장면과, 주변의 민병대를 광신도라 말하던 아빠의 넋 나간 표정과, 아이의 주검을 끌어안은 아빠와 손주의 선물을 든 벤슨 중장의 대비와, 멘탈이 털릴 대로 털린 드론 조종사 와츠 중위의 눈을 보여주는 것은 관객의 자신감을 연속적으로 압박합니다.

 

 

 

 

 

 

# 5.

 

작전이 종료된 후 회의실에 남은 엔젤라가 눈물을 흘리며 중장에게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이런 일을 그저 안전하게 의자 위에서 해냈다." 벤슨 중장은 이렇게 답하죠.

 

"방금 5명이 저지른 자살 폭탄 테러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땅바닥에 나뒹굴던 시신들과 같이요. 오늘 커피에 비스킷 드시며 보신 그 장면은 참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를 짓은 더 참혹했을 겁니다. 절대로 군인에게 전쟁의 대가를 모른단 말 마십시오."

 

'커피와 비스킷'은 엔젤라의 위선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며 관객이 먹었을 '팝콘과 콜라'의 은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미사일을 떨어트리라 말하는 사람도 전쟁의 대가를 모르는 사람이 아녔으며 미사일을 떨어트리지 말라 말하는 사람도 눈물이 없는 냉혈한은 아니라는 것이죠. 끝내 범인을 지목하지 않았다는 점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겁하지만 하나같이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부도덕하지만 하나같이 윤리적이기도 합니다.

 

 

 

 

 

 

# 6.

 

트롤리 딜레마와 같은 윤리 실험을 다루는 작품의 배경으로 '전쟁'을 설정한 것이 효과적인가는 재고해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전쟁은 원래부터가 비윤리적이니까요. 비윤리적인 것으로 윤리倫理를 진단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저 합리合理뿐이죠. 시민 5명을 살리기 위해 시민 1명의 목숨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는 딜레마지만, 병사 5명을 보전하기 위해 병사 1명을 소비할 것인가는 딜레마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했기에 목숨이 달린 상황을 편리하게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만 전쟁이기에 딜레마에 들어가지 못한 관객도 있었을 겁니다. 전시 상황에 몰입해 '안타깝지만 당연히' 1명을 희생해서라도 테러를 막아야 한다 결론을 내린 일부의 관객은 영화 내내 딜레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캐릭터들을 답답해하다 끝나는 작품을 봐야 했을 텐데요. 이건 관객의 탓이 아니라 전쟁과 딜레마를 엮은 감독의 책임이자 시나리오의 한계라 하는 것이 정당할 겁니다.

 

# 7.

 

여담으로 다이하드의 한스 그루버와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네이프로 익숙하실 '알란 릭맨'의 유작 중 한편이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의 "Never tell a soldier that he does not know the cost of war" 라는 대사를 소화할 때의 표정과 눈빛과 카리스마와 발성과 톤은 과연 대단합니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반갑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군요. 개빈 후드 감독, <아이 인 더 스카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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