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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상하 좌우 반전 _ 하이 라이프, 클레어 드니 감독

그냥_ 2022. 3.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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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주 SF입니다. 디테일한 미술과 세심한 설정과 쫀쫀한 서사로 빚어낸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는 아이 씐나! 어드벤처 물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제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코드들로 이리저리 엮어낸 교수님스러운 스릴러 드라마인 경우가 일반적이죠. 물론 세부적으로 나누자면야 더 많은 분류가 가능할뿐더러 위의 두 분류 역시 칼같이 나눠지지 않고 겹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알잘딱 넘어가도록 합시다.

 

 

 

 

 

 

 

 

'클레어 드니' 감독,

『하이 라이프 :: High Life』입니다.

 

 

 

 

 

# 1.

 

후자의 교수님스러운 영화 그중에서도 매운맛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와 분위기에 주력하고 있을 뿐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기도 하구요, 펜로즈 과정 따위를 잠시 찍먹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몰입을 위한 과학적 디테일이라기보다는 관념적 수사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죠. 요런 느낌적인 느낌의 작품들은 구체적인 캐릭터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을 포함한 소집단 전체가 [인류]를 축약한 것일 수 있다. 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따라가면 적중률이 썩 좋습니다.

 

주인공은 죄수입니다. 아니, 우주선에 탑승한 전원이 죄수 그것도 사형수 내지 무기징역에 처해진 중범죄자들이죠. 다만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면 이들 무리가 어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무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소개되어 죄인인 모습으로 퇴장할 뿐입니다. 지배적인 정체성이 곧 죄인이라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일련의 소집단을 인류라 바라보는 견해와 죄인이라는 개념이 더해지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라는 적당한 결론이 적당히 도출됩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당신에게 대뜸 다가와 넌 죄인이니까 회개하라 말하는 세계관 중 가장 유명한 게 뭘까요?

 

네. 기독교죠. 영화 평들에서 죄다 에덴이니 창세기니 찾아대는 덴 다 이유가 있습니다.

 

 

 

 

 

 

# 2.

 

작품 얘기에 앞서 호불호와 별개로 상당히 난해하고 과격하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언제나의 '클레어 드니'죠. 영화가 시작한 후 수분여를 뻘소리하는 불량 아빠와 아기 우는 소리에 때려 박는 무식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를 수 있는 감독이 흔치는 않습니다.

 

특히 난해한 것은 염세적 시선에서 현실의 상식과 규범과 예측을 모조리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표현되는 것들은 부성애 정도를 제외하면 인과로 구축되지 못한 채 바스러지고 있죠. 우주선 타고 가면서 이것저것 하더니 어찌어찌 다 죽고 끝에 주인공까지 블랙홀에 꼬라박고 죽었다. 외에 서사라 할만한 것도 없습니다.

 

생식을 제외한 그 어떤 종류의 관계도 교류도 본능도 통제됩니다. 담아내는 플롯 역시 과격하기 이를 데 없죠. 그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 생식의 반복으로 연명하며 빅 크런치라는 허무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을 담은 염세적 구성입니다.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통할하는 우주의 역사를 매우 폭력적으로 단순화하는 일련의 방식은 싫어하는 사람들은 과연 싫어하실만합니다. 나쁘지 않게 본 저 같은 사람 역시 대부분의 런타임 동안 이런 괴기한 공간을 만들어 뭘 어쩌자는 건가 싶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테죠.

 

 

 

 

 

 

# 3.

 

시종일관 건조하고 폭력적이던 작품의 마무리는 상당히 문학적입니다. 블랙홀을 향하는 부녀의 마지막 모습은 부녀라기보다는 연인, 마치 결혼처럼 묘사되죠. 손을 꼭 맞잡은 딸 '윌로우'에게 건네는 '몬테'의 마지막 한마디 "Shall we?"는 노골적입니다.

 

블랙홀로 들어가는 결말이 빛으로 연출된다는 점도 역설적이거니와 검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노란빛의 선이 넓게 확장되는 연출 역시 무언가가 끝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아, 이거 거꾸로 뒤집어 놓은 이야기구나.

 

# 4.

 

사실 제목에서부터 진하게 힌트를 주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High'라는 개념부터가 무의미하니까요. 작품의 배경인 우주는 본질적으로 방향성이 없는 공간이죠. 떨어진다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보는 사람이 올라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모두가 떨어지지만 더 빨리 떨어지는 대상을 보는 것일 수도, 모두가 올라가고 있지만 천천히 올라가는 대상을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블랙홀로 나아가는 우주선의 이야기이지만 우주선과 멀어지는 지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무無에서 출발한 존재들의 기원을 되짚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 5.

 

블랙홀로 들어가는 순간을 종말이 아닌 시작이라 생각하며 되짚어 봅시다. 두 사람은 드넓은 우주를 외롭게 부유하는 감옥에 갇힌 최초의 죄수 아담, 그리고 그의 갈빗대에서 태어난 이브입니다. 엄마의 얼굴이 없는 특별한 아이인 이유죠. 과학적 방법으로 몬테의 아이를 잉태한 채 블랙홀로 뛰어내린 보이스는 신앙적 방법으로 몬테의 아이를 품고 태어난 마리아. 터부를 부정하는 서사는 하나씩 터부를 확립해가는 인류의 역사라 할 수 있을까요.

 

죽은 죄인들을 장례 지내듯 우주에 내다 버린 몬테는, 불쌍한 죄인들을 우주 밖에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거둬들인 인도자입니다. 몬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라는 대사나, 수도승이라는 키워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죠. 아래로 천천히 쏟아져 내리던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등장하던 역설적인 제목 역시, 뒤집어보면 하나 둘 떠오르는 모습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날 때부터 죄인이었던 존재들이 개와 친구와 함께 숲길을 내달리던 현생의 지구에까지 도달하는 거룩한 서사가 완성됩니다.

 

 

 

 

 

 

# 6.

 

절망적이고 과격한 표현들은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압도적인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됩니다. 밝고 건강한 그림일수록 색상 반전을 하면 어두침침하고 과격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화면을 가득 메운 우주적 차원의 어둠이 눈을 멀게 만들듯한 빛으로 승화되는 상상을 하면 무언가 압도적인 위안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다만 일련의 뒤집힌 구조가 가지는 장르적 매력이 관객을 설득하는 데 게으르다는 점까지 부정하기는 힘들 겁니다. 혹자는 그게 클레어 드니의 매력이야! 라고 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칭찬인지는 언제나처럼 의문이군요. 창세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선과 파격적인 상상의 폭발력은 알겠으나 정작 본질적인 감동은 희미해 상쾌함은 부족한 작품이랄까요. '클레어 드니', <하이 라이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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