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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아이러니 _ 클로버필드 10번지, 댄 트라첸버그 감독

그냥_ 2021. 8.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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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야. 이거 재밌냐?"

"... 클로버필드 봤어?"

"아니. 안 봤는데."

"...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응. 몰라."

 

"그럼 봐. 재밌어."

 

 

 

 

 

 

 

 

'댄 트라첸버그' 감독,

『클로버필드 10번지 :: 10 Cloverfield Lane』입니다.

 

 

 

 

 

# 1.

 

아이러니한 영화입니다. 스핀오프 격의 작품인데 오히려 원작에 대해 전혀 모르고 봐야 재미있는 영화거든요. 대부분 재난 영화들은 재난의 성격이 명확한 가운데 그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액션과 퍼즐을 즐기는 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재난의 성격뿐 아니라 발생 여부조차 한참 동안 모호합니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온전히 즐기는데 원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심각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 2.

 

정통 미스터리 스릴러라면 벙커 안에서의 이야기를 알뜰히 만든 후, 고군분투 끝에 탈출에 성공한 미셸 앞에 가슴이 웅장 해지는 클로버의 자태을 보여주며 낮게 내뱉는 "Come on..."을 끝으로 막을 내려야 정석적일 텐데요. 이후로 수십 분간 또 착실히 재난물을 찍습니다.

 

나름 쫓고 쫓기는 동안의 박력과, 창고에 숨어 있는 동안의 긴장, 코 앞에서 마스크를 낚아채는 순간의 아찔함과, 괴물 조지던 박해일이 생각날 법한 화염병의 호쾌함 등이 적잖은 장르적 재미를 충족합니다. 바쁜 와중에 벙커 안에서부터의 떡밥들을 줍줍 해다 나름의 주제의식까지 완성합니다. 덤이 왜 이렇게 많아.

 

 

 

 

 

 

# 3.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보통은 악당이 가짜 재난으로 기만하는 식이거나, 진짜 재난으로부터 주인공을 지킨 선인을 오해함으로 인해 생긴 비극 쪽으로 푸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옳은 선택과 그릇된 선택이 나뉘어 있어야 그 선택 앞에서의 고뇌가 가치를 얻기 때문이죠. 곡성에서 아쿠마와 무명 사이에서 고뇌하던 종구처럼요.

 

반면 이 영화는 재난도 진짜고 하워드도 진짜 악당인 것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벙커 안에서 평생 가상의 딸로서 '사육'되는 지옥을 선택하느냐, 클로버로부터 생존을 위협받는 지상의 지옥을 선택하느냐의 이지선다에 놓여 있는, 꿈도 희망도 없는 디스토피아물이었던 셈이죠.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플롯에 대한 예단이 작품의 가치를 지켜주는 아이러니랄까요.

 

 

 

 

 

 

# 4.

 

'하워드'의 납치극이 딱히 불행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이 장르적 색채가 강한 작품에 철학적 주제의식을 더합니다. 실제 하워드가 만든 지옥은 지옥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안락하죠. 나름 깨끗하구요. 개인 공간도 있습니다.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이런저런 놀거리들도 마련되어 있죠.

 

오랫동안 준비한 티가 나는 착실한 시스템도 있구요. 어지간한 문제들은 적당히 칭찬만 해주면 하워드가 발 벗고 나서 해결할 겁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다 보니 와중에 나름의 팀워크와 친분관계까지 쌓을 수 있었죠. 하워드가 몇 규칙을 강요하긴 합니다만, 물주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막 폭압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되려 웬걸. 영화 내내 뚝배기 깨지는 건 하워드 쪽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벙커가 지옥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 5.

 

표면적으로 미셸과 하워드 중심으로 돌아가는 탓에 다소 소외된 감은 있지만 에밋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인데요. 어쨌든 같은 지옥에 있으면서도 에밋은 죽었고, 미셸은 살아남았기 때문이죠. 두 사람을 가른 것은 하워드의 지옥을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은 억지로 끌려들어 온 지옥을 벗어나려는 사람, 다른 한 명은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지옥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죠. 미셸과 에밋 뿐 아니라 벙커를 만든 사람과 벙커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벙커가 아닌 지상에서 클로버를 마주할 용기가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생존합니다. 두 지옥 사이에서 도와달라는 뜻의 Help가 피로 새겨진 곳은 끔찍한 클로버가 날뛰는 지상이 아니라 하워드가 있는 벙커 안이였죠.

 

 

 

 

 

 

# 6.

 

감독은 물리적 위협보다 정체성의 상실을 더 끔찍한 지옥으로 정의합니다. 미셸로서 죽는 것보다 메건으로 사는 게 더 끔찍한 지옥이라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는 늘 두려움 앞에서 안전한 쪽으로 도망 다니기만 하던 미셸의 마지막 선택으로 연결되며 작품에 일관된 주제의식을 구축하게 됩니다.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후반부 클로버와의 액션 씬들은, 물리적 위협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하워드의 벙커 속 지옥이 역으로 강조되기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겠네요.

 

# 7.

 

재난물의 박력과 스릴러의 긴장감이 가득합니다만 정작 공간 연출의 디테일과 이야기의 구조가 더 재미있는, 신기하고 아이러니한 작품입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장르물이면서도 동시에 어떤 면에선 상당히 철학적이기도 한 재난영화랄까요. '댄 트라첸버그' 감독, <클로버필드 10번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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