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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카지노의 법칙 _ 리노의 도박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그냥_ 2021. 10.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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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딜러는 돈을 잃지 않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리노의 도박사 :: Sydney』입니다.

 

 

 

 

 

# 1.

 

캐릭터를 역할 관계 하에 강하게 통제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대게 이야기 구조 역시 역할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의 배치에 종속되어 있곤 하죠. 마치 롤플레잉 게임처럼요. 각각을 보안관, 전직 군인, 교수형 집행인, 현상 수배범 등과 같은 서부극 속 역할 관계로 규정한 후 이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했던 <헤이트풀 8>이나, 노예상, 자유인이 된 노예, 노예를 관리하는 흑인, 현상금 사냥꾼으로 캐릭터를 규정해 힘과 당위의 논리로 시대극을 풀었던 <장고 : 분노의 추적자>와 같은 영화들은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도박이 되겠죠.

 

# 2.

 

카지노에는 여러 종류의 게임들이 있습니다. 환각적 이미지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이곤 하는 룰렛 Rouleete, 중독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슬롯머신 Slot Machine, 가장 대중적인 카드게임 중 하나인 포커 Poker와, 초고속 패가망신을 보장하는 카지노의 왕 바카라 Baccarat. 그 외에도 블랙잭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박을 주요하게 다루는 작품들은 그중에서도 메인 게임을 하나 특정하게 되는데요. '폴 토마스 앤더슨'이 고른 게임은 크랩스 Craps 군요.

 

 

 

 

 

 

# 3.

 

아무래도 생소하시죠. 네모난 테이블의 상석에 웬 관종이 한껏 호들갑을 떤 후 주사위 두 개 던지면 도도한 딜러 누나가 빗자루 같은 막대기로 주사위랑 돈을 이리저리 미는 게임입니다. 혹시 <러시아워> 시리즈를 보신 분들이라면 크리스 터커가 만델라를 부르며 주사위 던지는 모습을 기억하실는지도 모르겠군요. 강원랜드 고객이 아닌 영화 관객으로서의 우리에게 도박의 디테일한 룰은 알면 좋지만 몰라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다음의 세 가지 원칙 정도만 기억할 수 있어도 훌륭합니다.

 

⑴ 크랩스는 플레이어들이 딜러들과 겨루는 게임이다.

⑵ 게임의 룰은 카지노가 정하고 진행은 딜러가 하며, 이때의 룰은 카지노 밖 사회의 규범을 압도한다.

⑶ 결국 돈을 버는 건 언제나 카지노의 딜러다.

 

 

 

 

 

 

# 4.

 

사족이 길었네요. 영화로 돌아올까요. 주인공 '시드니'입니다. 당시 한국의 배급사는 영화의 제목을 <리노의 도박사>로 정하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론 아쉬운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드니는 '리노의 도박사'가 아니기 때문이죠.

 

영화의 시작은 도박장에서 큰돈을 잃은 '존'을 '시드니'가 리노로 데려가며 시작됩니다. 시드니는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공간을 분배하고 사람들을 지시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합당한 선택을 제안하고 규칙을 정하며 행동을 통제합니다. 분란이 발생하면 모든 이들은 시드니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의 해결 방식은 사회의 규칙이 아니라 지극히 카지노의 관점에 따른 카지노의 규칙을 따라가죠. 시드니는 도박장으로 사람을 데려가는 사람이자 도박장에 있는 사람을 옮길 수도 살릴 수도 무엇보다 죽일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짐짓 플레이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지노 그 자체, 딜러죠.

 

중반 즈음 서사에서 유독 동떨어진 씬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은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격정적으로 크랩스를 즐기는 장면입니다. 돈을 벌고 싶어 환장한 전형적인 카지노 도박꾼이 온갖 무례와 조롱을 범하지만 시드니는 무미건조하게 그의 리드를 받아내기만 합니다. 플레이어가 아니니까요. 감독이 캐릭터의 롤을 짚어 전달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네요.

 

 

 

 

 

 

# 5.

 

시드니가 딜러라는 것을 캐치할 수 있다면 나머지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건 훨씬 수월해집니다. '존'은 딜러의 지시와 통제에 순응하는 도박쟁이라 할 수 있겠죠. 존의 아버지가 시드니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설정은 개인사적 관계 외에 처음엔 카지노의 딜러에 순응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이를 어긴 또 따른 존들의 죽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경비요원 '지미'입니다. 주차장 경비냐는 시드니의 질문에 큰 불쾌감을 표하며 자신은 '카지노'의 보안 요원이라 말합니다. 그는 카지노에서 밀려나 주차장이나 지키는 패배자가 아니라 카지노를 지키는 승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군요. 존은 시드니가 시키는 대로 정해진 돈으로만 슬롯을 당기지만 지미는 큰돈이 생기자 지체 없이 크랩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존은 영화 내내 총과 거리를 둔 인물인데 반해 지미는 수많은 총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에서 가장 먼저 총을 당긴 인물이기도 하죠. 둘은 똑같은 도박쟁이처럼 보이지만 존은 카지노의 규칙을 인정하고 순응하는데 반해 지미는 카지노를 자신 아래 무릎 꿇리고 싶어 한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클라멘타인은 화려한 카지노의 이면에 숨겨진 폭력적이고 비 인륜적인 속성의 의인화이자 도박장의 전리품입니다. 피동적인 캐릭터인 만큼 사건의 계기 이상의 뚜렷한 의미는 가지지 못합니다.

 

 

 

 

 

 

# 6.

 

세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되는 중반부로 넘어가 봅시다. 시드니는 존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습니다. 찾아간 곳엔 웬 남자가 실신해 쓰러져 있고 클라멘타인은 패닉에 빠져 있습니다. 존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급급한 가운데 아버지처럼 따르는 시드니에게 마치 어린아이처럼 도움을 청합니다.

 

침대에 묶인 남자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습니다. 남자가 수갑에 묶여 있는 이유는 남의 아내와 잣기 때문이 아닙니다. 화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거래입니다. 클라멘타인과 잘 수는 있지만 잤다면 화대를 지불해야 합니다. 지불하지 않았다면 폭력은 스스로 감수해야 합니다. 시드니는 폭력적 소란에 썩 불만을 표하지만 결국 무사히 사건을 수습합니다. 시드니가 사건을 수습하자 말 그대로 사건은 수습됩니다. 경찰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카지노는 이런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카지노가 정한 거래의 법칙이 곧 공권력이죠. 카지노는 사회 법규를 가볍게 압도합니다. 

 

 

 

 

 

 

# 7.

 

지미가 등장합니다. 영화 내내 담배와 커피를 먼저 권하는 쪽은 시드니였습니다만 지미는 자신의 차에서 담배를 끌 것을 요구합니다. 시드니의 말하는 방식까지 거부합니다. 그는 룰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카지노에 도전합니다. 이후 총을 들고 나타나는 건 그저 그의 도전을 구체화한 필연적 수순에 불과합니다. 총을 들고 협박해 돈을 뺏는 건 카지노의 규칙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 총이 돈을 지불하지 않은 다른 플레이어를 때리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딜러를 향한다면 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죠. 지미는 결국 무자비하게 살해당합니다. 딜러 시드니는 원금과 크랩스를 통해 지미가 번 돈을 팁으로 챙깁니다.

 

중요한 점은 시드니도 거래를 어겼다는 점입니다. 바로 직전 단락에서 거래가 중요하다 말씀드렸는데 말이죠. 물론 거래는 중요합니다. 플레이어 간의 거래라면 말입니다. 거래는 언제나 절대적이지만 카지노의 이익은 그보다 절대적입니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시드니는 오프닝의 식당을 다시 찾습니다. 소매엔 혈흔이 묻어있죠. 혈흔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겉옷을 당겨 가립니다. 이후 시드니가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하든 목적은 카지노로 데려가는 것일 테고 그의 손목엔 핏자국이 묻어 있을 겁니다.

 

 

 

 

 

 

# 8.

 

매력적인 장면이 넘쳐흐르는 작품입니다만 그 가운데 한 장면을 고르라 한다면 시드니의 과거를 알게 된 지미가 총을 들고 협박하는 장면을 고를 듯합니다.

 

지미는 한 손엔 비밀, 한 손엔 총을 들고 있습니다. 아주 강한 '패'죠. 방어해야 하는 딜러의 턴입니다. 시드니는 진심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실토하고 스스로를 위한 가증스러운 변호 대신 죄책감을 덜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음을 가감 없이 고백합니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며 지미가 돈을 가져가는 것으로 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다면 만족한다 설득하죠. 등 뒤에 칼을 숨긴 채 말입니다. 시드니라는 개인의 캐릭터성이 폭발하는 장면이자 동시에 영화에서 느껴지는 스릴러로서의 서늘함이 카지노의 정체성이 가진 본질에 닿아있다는 점을 동시에 표현한 장면이라는 생각입니다. 서서히 미끄러지듯 빠져드는 클로즈업이 아주 맛있는 장면이죠.

 

 

 

 

 

 

# 9.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워낙 좋은 배우진이라 연기는 더없이 탁월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기본적인 영화 구성의 절대량이 시드니의 액션과 리액션에 할당되어 있는 작품인 탓에 시드니가 가장 도드라지기는 합니다. 말인즉 '필립 베이커 홀' 옹의 원맨쇼라는 거죠. 작품의 중량감을 홀로 끌고 가야 하는 원탑이 맡겨진 짐을 온전히 책임지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물론 피동적이고 기능적일 수밖에 없는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자기 존재감을 단단하게 확보하는 '존 C. 라일리'나 '기네스 팰트로', '사무엘 L. 잭슨'의 연기 역시 탁월하지만요.

 

# 10.

 

도박을 마치 서사를 가진 롤플레잉처럼 해석해 이를 스릴러 드라마로 재구축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대사를 주고받는 방식은 특히 인상적이죠. 마치 한 장 한 장 서로 패를 꺼내놓는 듯 표현하고 있거든요. 카지노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개인 간의 갈등 드라마와 크랩스 게임의 룰이라는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시퀀스를 연결해 동시에 전개하는 스타일은, 이후 감독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을 <부기 나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리노의 도박사>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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