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Thriller

인생의 트램펄린 _ 럭키 몬스터, 봉준영 감독

그냥_ 2021. 10. 5. 06:30
728x90

 

 

# 0.

 

불행한 토끼는 사자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봉준영' 감독,

『럭키 몬스터 :: Lucky Monster』입니다.

 

 

 

 

 

# 1.

 

가냘픈 토끼로 태어난 남자, 도맹수의 이야기입니다. 태생이 나약하고 겁 많고 소심하고 비굴한 인간입니다. 직업은 그의 성격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피라미드 회사 녹즙기 판매원이죠. 고달픈 와중에 거액의 빚까지 지고 있는데요. 사채꾼 노만수의 독촉에 허덕이던 그는 결국 아내 성리아에게 위장이혼을 제안하게 되고 이를 받아들인 아내와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한편 언젠가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환청은 스스로를 도맹수만을 위한 라디오 DJ 럭키 몬스터라 소개합니다. 도맹수는 환청이 들릴 때면 용각산을 먹어 뿌리치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럭키 몬스터의 멘트에 따라 로또를 한 장 사게 되는데요. 그게 무려 1등, 거금 50억에 당첨되게 됩니다.

 

빚쟁이 생활 싹 청산하고 별거 중인 아내와 행복하게 살 기대에 부푼 도맹수 씨. 5만 원권 뭉치와 두터운 지갑, HB 컨설팅이라는 사자의 발톱을 손에 넣은 토끼는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2.

 

영화는 제목에서처럼 DJ 럭키 몬스터라는 이름의 환청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환청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도맹수 본인 안에 내재된 욕망, 혹은 무의식의 구체화 쪽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겠죠. 표면적으로 내재된 욕망이 해방된 도맹수의 폭주가 전개되는 동안 정서적으로는 김도윤이 연기한 도맹수가 박성준이 연기한 도맹수와 합치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시작 주인공은 긴 시간 트램펄린을 타며 등장합니다. 트램펄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겠죠. 의미를 잠시 살펴봅시다. 우선 어린 아이들 놀이니만큼 미숙한 인격의 불안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힘껏 오른 만큼 깊이 추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나, 땀은 삐질삐질 흘리지만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게 되는 무기력함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죠. 어느 쪽의 의미로 활용되었든 부정적인 이미지라는 것만큼은 분명할 겁니다. 주인공은 로또로 큰돈을 만지게 된 이후에도 트램펄린을 탑니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까지 클라이맥스에서의 호쾌한 살육 후에도 해방된 혹은 파괴된 인격의 얼굴 대신 트램펄린을 타는 뒷모습으로 정리됩니다. 아주 의미심장하죠.

 

도맹수는 초식동물일 때에도 트램펄린을 탑니다. 육식동물로 진화하기 시작한 도맹수 역시 트램펄린을 탑니다. 모두의 뚝배기를 도끼로 쪼개며 최상위 포식자가 된 도맹수 역시 결국엔 트램펄린을 탑니다. 그는 먹이사슬 어느 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트램펄린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 3.

 

저는 이 작품을 초식동물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여정과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불행으로 이해합니다. 녹즙기를 파는 동안의 도맹수의 찌질함도, 로또에 당첨되며 극적인 신분상승을 이룬 동안의 쾌감도, 잃은 것뿐 아니라 잃을 것까지 생겨버린 사람의 불안과, 모두를 무찌른 후 정점에 홀로 서는 순간의 해방감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맹수는 트램펄린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되어버린 야생에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 먹이사슬 속 어떤 위계에 있는지와 무관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은 이와 같은 해석에 확신을 더하죠. 섹시한 액션 히어로의 암컷이 되고 싶었던 리아도, 토끼를 야성적으로 제압하던 사자 만수도, 지능적으로 또 표독스럽게 착취하던 하이에나 필연도, 그 외에 그들을 돕고 협력하던 사람들 모두 죽게 됩니다. 비로소 알파-메일 Alpha male에 등극한 수컷 도맹수의 정체성 역시 마지막 보라색 후드를 쓴 몬스터에 잠식되머 죽고 말죠.

 

장르적 색채가 강한 소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도발적인 사회 비판성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아이템들이 결국 사람을 야생의 짐승들로 내모는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질타하는 데 예리하게 소집되고 있기 때문이죠.

 

 

 

 

 

 

# 4.

 

피식과 포식의 관계 속에서 스타일리시한 폭력이 단순히 컬트적 표현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완성도 측면에서 큰 장점이라 해야 할 듯합니다. 토끼 인형을 활용하는 친절한 표현 방식이나 선글라스를 비롯한 복식 속에 담긴 메타포뿐 아니라, 농협 직원이나 노숙자, 불량학생 등의 소소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인물들 모두 먹이 사슬 속에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죠. 일련의 밀도 높은 시나리오는 독특한 구도와 심미적인 화면과 맞물려 강렬한 에너지와 위화감을 생산합니다.

 

 

 

 

 

 

# 5.

 

수많은 오마주와 패러디들 역시 풍부한 즐길거리를 제공합니다만, 일련의 레퍼런스들을 비롯한 대사 대부분은 극을 보조하는 미장센이라기보다는 '토끼와 도끼', 혹은 '눈 뜨고 코 베며' 등장하는 필연처럼 메시지를 보조하는 힙합신에서의 펀치라인 Punch-Line스럽게 활용됩니다. 쿨하고 재치있고 재미있지만 그만큼 가볍기도 하다는 뜻이 되겠죠.

 

마치 놀란 감독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등장인물 모두 구조에 강하게 종속되다 보니 매우 기능적인데요. 거기다 감정 표현 역시 단편적이다 보니 캐릭터를 즐기는 맛은 영 심심합니다. 맹수는 93분 내내 불안해하고 몬스터는 93분 내내 잔망 떨고 만수는 93분 내내 승질내고 필연은 93분 내내 무표정하고 리아는 92분 무표정하다가 1분 웃는 게 전부라, 관객이 영화 끝까지 집중을 유지하는 걸 방해합니다.

 

중반부 들어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점 역시 아쉽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도맹수가 HB 컨설팅을 만나는 시점부터 마지막 삼자대면 전까지 급격히 지루해지거든요. 영화의 작동 원리와 인물 구도에 대한 감이 잡히는 중반 즈음부터 영화는 불안해하는 주인공을 반복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수십 분간 전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좀 과하게 집작적이다 싶을 정도로 관념적인 언어유희와 특유의 스타일, 짤막한 코미디로 밀어붙이는데요. 개인적으론 욕심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군요.

 

 

 

 

 

 

# 6.

 

말미에 아쉬운 점을 몇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종합적으론 꽤나 잘 만들어진 재미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입니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과 제한적인 제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풀어낸 과감한 상상력, 한국 영화 중에서는 충분히 희소한 스타일,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수준급 배우진의 호연까지 더하면 평은 조금 더 넉넉해도 좋은 거겠죠.

 

끝으로 살짝 선을 넘어보자면 도맹수가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라는 점과 '용각산'이 흔히 마약과 비슷한 비주얼을 활용한 농담에 쓰인다는 점에 착안해 작품 전체를 약쟁이 환자 도맹수에 의해 재구성된 시점이라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관객은 도맹수의 시선에서 세상을 본 것일 뿐 실제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다고 말이죠.

 

가령 HB 컨설팅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라거나 아내 성리아가 노만수와 함께 있었다는 건 도맹수가 만들어낸 가상의 서사일 뿐이다. 라구요. 어쩌면 결말에서 진행자로 등장한 럭키 몬스터 앞에 능청을 떨고 있었던 것과 달리 현실 속 리아와 만수는 살려달라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봉준영' 감독, <럭키 몬스터>였습니다.

 

# +7. 161803398 이라는 숫자에서도 분명 뭔 뜻이 있을 겁니다. 솔직히 떡밥 냄새가 너무 나잖아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