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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But I couldn't help it _ 크라잉 게임, 닐 조던 감독

그냥_ 2021. 12.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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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간은 두 가지야, 퍼거스. 전갈과 개구리처럼. 그 얘기 알아?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수영을 못해서 개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어.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모른다며 거절을 했지. 그러자 전갈이 말하길 '그럼 둘 다 빠져 죽어.' 그랬지. 그래서 안 찌른다고 했어. 생각하던 개구리는 전갈을 건네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태웠어.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 물결이 거칠어지자 겁난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버렸어.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만 거야. 그래서 개구리가 화가 나서 물었는데,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왜 찔렀냐고. 개구리랑 같이 죽어가면서 전갈은 대답했지.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인걸."

 

 

 

 

 

 

 

 

'닐 조던' 감독,

크라잉 게임 :: The Crying Game입니다.

 

 

 

 

 

# 1.

 

'퍼거스'는 IRA 요원 생활에 질려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디에게 느끼는 연민과 죄책감을 뿌리치지도,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외면하지도 못합니다. 인질을 살리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운명을 돌릴진 못합니다. 애인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쳐 보지만 아무것도 막지 못합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딜의 벗은 모습을 본 후 손지검을 참지 못합니다. 헛구역질을 막지 못합니다.

 

'조디'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되었다 말합니다. 그는 담배 한 모금 피우지 않을 만큼 선량하게 살고자 했지만 뜻대로 될 수 없었죠. 딜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여성의 몸에 이끌리는 자신의 본성은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그를 기다린 건 예정된 죽음뿐이었습니다.

 

'딜'은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녀는 육체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어긋나 버린 운명에 고통받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본 후 헛구역질하는 퍼거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릴 만큼 상처 받지만, 그럼에도 그의 뒤를 껴안고 싶은 마음만은 막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2.

 

주인공 외에 서사와 동떨어진 캐릭터가 하나 있습니다. 딜의 스토커죠. 이 캐릭터는 퍼거스와 딜이 만나는 계기 정도를 제외하면 서사와 전혀 조응하지 않음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분량을 할당받습니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캐릭터가 서사와 무관하다면 메시지와의 연관성을 검토해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스토커는 자신을 단숨에 제압하는 퍼거스가 무섭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과격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방식이 딜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라다니죠. 왜? 어쩔 수 없으니까요.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천성'이 퍼거스의 '선량함'과 혼동되지 않길 바란다는 것을 해당 캐릭터를 통해 짚습니다. '천성'이란 옳고 그름과는 무관한 가치중립적인 개념입니다. 이 '천성'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이어하도록 하죠.

 

# 3.

 

영화는 크게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볼 수 있을 겁니다. IRA에게 납치된 조디가 죽는 장면까지가 첫 번째구요. 신분을 감춘 퍼거스와 딜이 사랑 느끼다 딜의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까지가 두 번째죠. 마지막 혈투 이후 감옥에 대신 들어간 퍼거스의 모습까지가 세 번째입니다.

 

세 파트를 구분 짓는 근거는 '폭력 앞에 놓인 퍼거스의 선택'입니다. 첫 번째 경계에서 퍼거스는 '느슨한 도피'를 택합니다. 조디를 적극적으로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은 채 적당히 운에 맡기는 비겁한 선택이죠.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두 번째 경계에서는 '적극적 저항'을 택합니다. 딜의 머리를 자르고 호텔에 재우고 조직의 미션을 수행해 그녀를 보호하려 합니다. 일반적인 영웅 서사였다면 조디에 대한 죄책감과 딜에 대한 사랑이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만 영화에서는 저항 역시 실패로 돌아갑니다.

 

머리카락을 잘라도 딜은 여전히 여자입니다. 호텔에 데려다줘도 스스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딜에 의해 침대에 묶인 퍼거스는 단순히 섹슈얼한 묘사나 구체적 서사뿐 아니라 손발이 꽁꽁 묶인 퍼거스의 무기력함을 은유합니다. 천성은 '도피'의 대상도 '저항'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이죠.

 

 

 

 

 

 

# 4.

 

'이데올로기 영화'라거나 '반전 영화'라거나 '퀴어 영화'라거나 '도발적인 실험작'이라거나 '로맨스 영화' 등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물론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정확한 진단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IRA에 엮인 역사적 - 이념적 맥락을 다룬 작품이라기엔 고찰이 너무 빈약합니다. 반전 영화라기엔 반전의 공개가 너무 이릅니다. 퀴어 영화라기엔 트랜스젠더라는 고유의 속성이 메시지에 기여하는 바가 희미합니다. 도발적인 실험작이라기엔 너무 논리적이고 사려 깊죠. 로맨스라기엔 두 사람의 사랑은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끝내 완성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전갈과 개구리의 우화는 천성(It's in my Nature.)이라는 어휘로 기억되겠지만, 사실 그보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I am sorry, but I couldn't help it.)는 말입니다. 영화의 서사와 메시지는 그 '어쩔 수 없음'으로 점철됩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는 천성의 산물입니다. 서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들은 천성에 수렴하는 매우 단편적이고 폐쇄적인 것들인데 반해, 상황 전개는 극단적으로 파격적입니다. 이 격차. 테러리스트와 트랜스젠더와 스토킹과 동성애가 난무하는 파격이지만 그 파격의 선택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본성에 종속적이다 말하는 지점이 바로 작품의 의의라 할 수 있겠죠.

 

# 5.

 

퍼거스가 소변이 급한 조디의 성기를 대신 꺼냈다 넣는 장면이 있습니다. 딜의 스토커만큼이나 서사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장면임에도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은, '퍼거스로 하여금 조디의 성기를 만지게 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게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작품에서 남성기는 선택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천성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구태여 딜이라는 캐릭터에 트랜스젠더라는 속성을 부여한 근본적인 이유죠.

 

퍼거스는 조디의 성기를 필요에 의해 터치합니다. 딜은 퍼거스의 성기를 사랑으로 빱니다. 퍼거스는 딜의 성기에 거스를 수 없는 구역질을 냅니다. 조디는 딜의 성기를 정신적으로 극복하죠. 각각의 태도는 캐릭터가 타인의 천성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를 은유합니다.

 

 

 

 

 

 

# 6.

 

퍼거스와 조디의 대화는 마주 앉은 것이 아니라 벽을 사이에 끼고 나란히 앉은 채 전개됩니다. 퍼거스와 딜의 대화는 바텐더 '콜'을 매개로 이루어지죠. 인물을 관객 앞에 나열하는 방식이자, 말의 주인을 지우는 방식입니다. 경계의 붕괴. 퍼거스와 조디와 딜은 각자 제법 다른 인물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인물 경계를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건 그것대로 무의미합니다. 

 

퍼거스와 조디와 딜은 '인간이라는 입체적 개념'의 각기 다른 단상입니다. 세 사람은 상황에 따라 전갈이 되었다가 개구리가 됩니다.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를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순환적으로 그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죠. 시퀀스 별로 누가 전갈, 누가 개구리냐를 따지고 드는 건 허무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전갈과 개구리 모두 잘해보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강을 건너기를 바랐다는 점입니다. 모두 죽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 7.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거나 천성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2335일이 지난 후 출소한 퍼거스와 지고지순 기다린 딜이 만나는 것으로 막을 내렸어야 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구태여 두 사람을 분리한 채 영화를 마무리하죠. 일련의 결말은 세 인격 사이의 정서를 우정이나 사랑 따위의 구체적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색하게 합니다. 오히려 천성의 실현이라는 같은 운명을 지고 태어난 존재들의 동질감으로 보는 것이 보다 편안합니다. 결말에서 퍼거스와 딜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는 자신의 감옥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천성이라는 이름의 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질을 극복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비극이나 체념, 허무와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두 사람은 분명 끝내 다정하고 행복해졌기 때문이죠. 설령 동의하고 이해하진 못 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조정하고 소유하고 관철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크라잉 게임. 관심을 끌기 위해 습관적으로 내는 거짓 울음입니다. 퍼거스도 조디도 딜도 그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크라잉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감독의 선언적 진단입니다. 이 모든 폭력과 피와 상처와 죽음이 고작 크라잉 게임일 뿐이라는 냉소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닐 조던' 감독, <크라잉 게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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