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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뉴비 판독기 _ 더 로드,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그냥_ 2021. 5.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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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연한 기회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어디 볼만한 영화가 없을까 하던 차에 적당한 런타임의 공포영화를 하나 골랐습니다. 미리 준비한 편의점 팝콘과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82분간 펼쳐지는 죽음의 드라이브가 끝나고. '노력은 인정하지만 좀 심심하다' 생각하던 차에, 응? 옆에 앉은 친구가 극찬을 쏟아냅니다.

 

"와~ 진짜 재밌다!!"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더 로드 :: Dead End』입니다.

 

 

 

 

 

# 1.

 

저는 얼추 일주일에 여덟에서 열 편 정도의 영화를 소비합니다.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영화 보는 게 취미입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셈이죠. 반면 친구는 영화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 보는 걸 취미라 말하지는 않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공포 영화 어떻냐 물어보면 너무 징그러운 건 좀 거부감이 들지만 그래도 매년 여름 시즌에 유명한 공포물 한편 쯤은 영화관에서 보기도 한다 답하는, 그 정도의 무난한 취향이죠.

 

그리고 정확히 이런 분들께 '기가 막히게 재밌을 작품'입니다. 공포영화를 끔찍이 싫어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고롭게 찾아볼 정도는 또 아니라 공포영화의 법칙이나 클리셰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는 않은 분들. 수많은 공포 영화에 찌들어 사느라 어지간한 표현엔 꿈쩍도 하지 않는 마니아들과는 달리 아직 공포물의 표현에 대한 역치가 낮으신 분들이 '크~ 이게 공포영화지!' 라며 좋아하실 법한 영화랄까요.

 

 

 

 

 

 

# 2.

 

작품의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로부터 찾을 수 있을 텐데요. 우선은 뛰어난 가성비부터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어차피 제자리 뱅뱅 도는 영화인 탓에 100미터 남짓의 산길만 섭외할 수 있다면 넉넉합니다. 인근의 낡은 창고가 하나 보이니 나중에 적당히 써먹으면 좋겠죠. 배우 여섯을 부르고 차 두대를 구해 적당히 나눠 타게 합니다. 전화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소품 귀를 하나 준비하구요, 너덜거리는 찢어진 입술 모형도 하나 준비합니다. 엄마 '로라'의 뒤통수에 붙일 징그러운 뇌랑, 불에 탄 손까지 더해지면 1시간 20분이 넘는 공포 영화를 위한 호러 소품은 충분하죠. 말미에 피 대신 쓸 빨간 물감과 죽은 가족들이 들어갈 검은 비닐 몇 개, 총 한 자루와, 호두 케이크와, 야한 잡지 하나와, 메모지 한 장.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합한 것보다 더 값이 나갈 것만 같은 그럴싸한 유모차가 더해지면 영화를 위한 준비는 끝납니다.

 

실제 영화는 위의 제한적인 소품들과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모조리 해결됩니다. 개성적인 캐릭터, 파격적인 배경을 가진 가족들이 수다스러운 대사를 쏟아내는 동안의 블랙 코미디를 선사합니다. 가족 하나하나 나름 창의적인 방식으로 리타이어 하는 과정 속에서 오싹한 공포 분위기를 연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말씀드릴 두 번의 반전을 통해 나름 인상적인 여운까지 안겨줍니다. 고작 차 두대와 소품 쪼가리 몇 개라는 열악한 조건으로 이 정도 퀄리티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인정할 법한 성취라 해야겠죠.

 

# 3.

 

폭력 묘사를 최대한 절제한 채 연출만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 역시 특기할만합니다. 의식적으로 노골적인 시체뿐 아니라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의 모습까지 가능한 보여주지 않는다는 건, 감독이 공포를 연출함에 있어 최대한 관객의 상상력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직접적인 묘사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을 명확히 캐치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직접적인 공포 연출보다는 상황과 맥락을 이해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행동의 위화감을 활용한다는 점 역시 섬세하고 영리합니다. 피폐해진 상태에서 다시 부르는 징글벨이나, 정신이 나간 '메리온'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 엄마 '로라'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케이크 등은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공포스러운 연출이라 할 수 있겠죠. 당장 이 영화만큼 무턱대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스 스케어 Jump Scare>를 소극적으로 활용하는 공포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 4.

 

복선과 두 번의 반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겠죠.

 

첫 번째 반전은, 일련의 상황이 아빠 '프랭크'의 졸음운전 교통사고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사고로 인해 가족들과 상대 차량의 탑승자인 '흰옷의 여자'와 아기가 모두 사망하게 되고, 유일하게 창밖으로 튀어나온 탓에 살아남은 '메리온'의 무의식이 구체화된 것이었다는 말이죠.

 

왜 같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7시 30분이라는 시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는가. 왜 가족들이 죽게 되었으며, 가족들의 죽음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게 되었는가를 감독은 성공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콧' 역시, 생존자를 의사에게 데려가려는 구조원들의 목소리를 무의식이 '목적지'로 재구성했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죠. 일련의 반전은 단순한 호러뿐 아니라, 가족과의 유대감에 얽힌 서정성비극적 사건의 비장미를 더해 작품을 한층 깊이 있게 합니다.

 

# 5.

 

쿠키영상을 통해 공개된 두 번째 반전은, 그렇게 '메리온'의 무의식인 것만 같았던 일이 사실은 실제 벌어진 일이었다! 는 것이었죠. 무의식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예를 들어 '메리온'은 알 수 없는 가족들의 숨겨둔 치부 등이 설명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콧' 박사가 근무하는 <성 루가 병원>이라는 이름이나, 마치 저승사자마냥 유달리 검은 옷을 빼입은 목격자의 복식, 목격자가 생존자가 아닌 죽은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는 점, 마지막 검은 올드카에 의사 '마콧'이 함께 탄다는 점 등에서, 목격자와 의사 모두 대단히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이 두 번째 반전은 장르적 재미뿐 아니라, 오컬트의 뉘앙스에 얹은 <졸음운전하지 맙시다> 라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로 다시 한번 영화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 6.

 

아쉬움을 살짝 이야기해 볼까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공포물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쉽게 전개를 눈치챌 법한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2003년작이라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망 플레그가 너무 많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너무 단순한 공간 속 단순한 구성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죠.

 

처음 '흰옷의 여자'가 등장하는 순간, 이 사람이 귀신이 되었든 괴물이 되었든 살인마가 되었든 뭐가 돼도 될 거라는 걸 눈치채는 건 너무 쉽구요. 여자를 태워주는 대신 '메리온'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 사람만 살게 될 거라는 건 짬이 좀 되는 관객이라면 어렵잖게 감을 잡을 법한 노골적인 복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초반 '메리온'의 남자 친구 '브래드'가 퇴장하고 난 직후, 딱 죽기 좋게끔 까불대는 동생 '리처드', 운전을 하지 않는 엄마 '로라', 하나 남은 아빠 '프랭크' 순으로 번호표 뽑은 양 죽어나갈 것이라는 것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죠.

 

# 7.

 

유모차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이 유모차는 음습한 분위기만 던질 뿐 낚시일 거라는 것 역시 너무 뻔하구요. 얼굴에 큰 상처가 있는 '흰옷의 여자'가 죽은 아기를 들고 있었다는 점과, 중반부 검은 유모차까지 보고 나면 이 인물이 모성을 근거로 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누구나 알게 될 겁니다. 또한 '복수'라고 할만한 일이 운전밖에 없다는 점에서 졸음운전 사고가 터졌으며 그래서 죽은 사람이구나! 라는 것까지 너무 쉽게 눈치챌 수 있죠.

 

차에서 내려 숲으로 들어가 봐야 닫힌 공간을 벗어나지 못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것과, 차를 멈추면 누군가 죽는다는 점까지 대사로 친절하게 설명해둔 탓에 이 지점에서 아빠가 마지막으로 죽으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리라는 것까지 몽땅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소소한 컷 전환이나 전개 등, 좋게 말하면 교과서적이고 박하게 말하면 관습적인 대목들이 다수 발견됩니다.

 

 

 

 

 

 

# 8.

 

첫번째 반전의 가치중립적 상황과 두번째 반전의 메시지가 충돌한다는 것도 단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목격자와 의사가 모두 스스로 의지를 가진 초현실적 존재이자 당위의 존재이기에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작동하는 걸텐데요.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하필 딸 '메리온' 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나, 졸음운전자인 아빠 외에 다른 가족들이 왜 벌 받듯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가를 설명할 것이 강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 10.

 

물론 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와 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훌륭한 공포 영화 입문작> 라는 정도의 평을 듣기엔 부족함이 없다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공포영화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랄까요. 으스스한 영화는 좋아하지만 폭력 묘사나 깜놀을 힘들어 하신다거나, 반전이 곁들여진 스릴러 풍의 분위기를 좋아하신다면 만족스럽게 보실 수 있을 듯 하네요. :)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더 로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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