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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닫힌 방, 열린 서사 _ 더 룸,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그냥_ 2022. 3.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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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더 룸 :: The Room』입니다.

 

 

 

 

 

# 1.

 

전능한 신과 도전하는 인간의 판타지

통제하는 부모와 일탈하는 아이의 드라마

스토커 살인마와 사냥감의 스릴러

 

# 2.

 

하나의 공간에 중첩된 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일방향적 서사 속에서 세 캐릭터 모두 각자의 주제에서는 주연으로, 서로의 주제에서는 조연으로 기능합니다. 신과 인간의 서사 구조에서 관객은 셰인의 입장이 됩니다. 가족주의 서사에서는 케이트에 교감합니다. 스릴러의 기준에서는 멧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식이죠.

 

나 혼자만 레벨업식 유치찬란 양판소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는 방에서 태어난 아이 셰인과 정신병원에 수감된 존 도의 등장에 힘입어 과감하게 확장됩니다. 다소 철학적일 수도 있는 메시지를 전개하면서도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매력을 등한시하지 않습니다. 본론에 앞서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제법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 3.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케이트와 멧 부부는 신의 권능을 가지게 된 '인간'이라기보다는 권능을 가진 '신' 그 자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입니다. 방 안에서 창조된 물건들이 집을 나가면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는 점 때문이죠. 집 밖에서의 시간이 빠르다는 것은 집 안에 있는 존재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속도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수천 년, 수만 년 아니 그 이상 억겁의 시간 동안 존재할 신의 입장에서 인간과 물질의 수명이란 내 품을 벗어나는 순간 찰나에 사리지는 것만 같습니다. 셰인을 창조한 것이 난임에 고생 중인 부부 두 사람 모두의 염원이 아닌 엄마 혼자만의 염원이라는 설정 역시 종교적인 해석에 힘을 싣습니다.

 

 

 

 

 

 

# 4.

 

부부를 신이라 이해한다면 되려 셰인은 인간이 됩니다.

 

실제 부부가 방(권능)을 이용하는 것은 파격적이지만 파괴적이지는 않죠. 집은 물질적 풍요(와인과 돈다발)와 정신적 풍요(예술 작품)와 정서적 풍요(사랑)가 충만한 천국일 뿐이니까요. 셰인이 방을 통제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파괴적 상상이 실현됩니다. 정신병원을 찾아간 멧에게 존 도는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못 갖는 인간보다 더 위험한 게 원하는 대로 갖는 인간이야." 원하는 대로 갖게 되어 원하는 것을 못 갖는 것보다 더 위험해진 인간은 누가 보더라도 셰인 쪽에 훨씬 가깝죠. 이 견해 하에서 본다면 멧이 셰인에게 말한 '허구'라는 대사는 썩 역설적이군요.

 

영화 내내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그래서 어떤 면에선 더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 인물, 셰인입니다. 셰인이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라면 존 도 역시 마찬가지의 인간일 텐데요. 불명이란 의미의 John Doe는 누군지 모르는 존재에게 붙여지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누구나가 될 수 있는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신을 살해하고 정신병원 안에 갇힌 존재라는 식의 대단히 염세적인 해석도 가능케 하는군요.

 

인간(셰인)이 신(케이트)을 겁탈하는 장면은 상징적인 맛이 있습니다. 전선으로 칭칭 둘러놓은 방의 디자인은 인터스텔라 짝퉁스러운 느낌의 시간선과 인과율에 대한 시각적 묘사뿐 아니라, 공학적 이미지를 함께 부여하고 있기도 한데요. 니체로 대변되는 철학하는 인간을 '신을 살해하는 인간'이라 한다면, 방으로 대변되는 과학 하는 인간이란 '신을 겁탈하는 인간'일지도 모르겠군요. 

 

 

 

 

 

 

# 5.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라는 말처럼 (이 말에 대한 논평은 논외로 하고) 신성과 모성에는 헌신과 사랑이라는 지점에서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바가 있습니다. 자녀를 보호하고 통제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 집 밖으로 잠시 내놓을 때면 마치 나는 그대로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 훌쩍 커버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회한 따위로 연결할 수 있겠죠. 각기 다른 연령대의 셰인을 대하는 케이트의 태도를 통해 올바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본다 하더라도 작품 전체를 안정적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 6.

 

멧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는 작품의 서사를 끌고 가는 동력입니다. 다소 기능적이지만 그래서 편안하고 직관적이죠. 장르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멧이 얼마나 합리성을 유지하느냐일 텐데요. 제법 다양한 국면에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멧이 합리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스릴러로서 극의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착실히 쌓은 긴장을 해갈하는 결말까지의 전개와 연출은 인상적입니다. 공간을 이리저리 뒤섞는 것으로 나름 풍성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 후 관객을 안전하게 결말로 유도합니다.

 

 

 

 

 

 

# 7.

 

영화는 열린 결말로 귀결되는데요. 이야기의 방식을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돌아가는 작품이니만큼 각각의 이야기에 걸맞은 결말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결말은 세 가지 케이스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요. 하나는 셰인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결말입니다. 가장 직관적인 그래서 가장 공포스러운 [스릴러]의 결말이죠. 둘은 멧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결말, 실패를 딛고 새롭게 시작하는 [가족주의]적 결말입니다. 마지막은 전구가 깜빡였듯 모텔을 포함한 공간 전체가 여전히 방 안이라는 [판타지]의 결말입니다.

 

특히 이 결말에서 임신한 아이는 어딘가에 숨은 혹은 멧으로 연기한 셰인의 소원으로 '만들어진' 아이라는 것일 텐데요. 인간이 신의 배를 갈라 아이를 창조하고 관찰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입니다. 관계의 역전이죠. 앞서의 공학적 이미지와 결부시켜 DNA 조작 따위의 유전공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느슨한 환기 정도로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소 과격한 해석이니만큼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리시면 되겠습니다.

 

 

 

 

 

 

# 8.

 

미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특별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으나 제한적 여건에서 애썼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겁니다. 남편의 직업이 화가라는 설정을 활용해 욕망을 '경제적'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영리하구요. 뒤엉킨 전선의 은유나 해리포터가 생각날 법한 계단실도 인상적입니다. 다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숲 한가운데 내리는 눈과, 피에타가 생각날 법한 셰인의 재 위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케이트의 모습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결말을 [열린 결말]이라 한다면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이 작품의 서사는 [열린 이야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굳게 닫힌 방을 주제로 한 작품의 서사가 열린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롭네요.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일수록 소재의 동력에 취해 중반부부터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그렇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더 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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