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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고립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 _ O₂,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그냥_ 2021. 5.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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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아무래도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가 생각나지 않을 수는 없겠죠. 간신히 사람 몸하나 뉘일 공간에 갇혀 있는 인물의 공포를 다룬 다른 모든 영화들처럼요. 해당 영화를 리뷰하며, 극단적으로 제한된 공간이 역설적으로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 압도적인 자유도를 부여한다 말씀드렸었는데요. 이 영화는 그 압도적인 자유도라는 게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가를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O :: Oxygène』입니다.

 

 

 

 


# 1.

 

영화는 두 번의 국면 전환으로 나눠진 세 파트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제한적인 시간,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의 폐소 공포와, 탈출을 위한 실마리를 수집해 나가는 스릴러로 전개되게 되구요. 두 번째는 이전까지의 목적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반전과, 돌아갈 곳이 없는 우주 한복판에 놓인 인물의 불가역적 상황 속 절망감을 그린 SF라 할 수 있겠죠. 세 번째는 주인공 ‘오미크론 267’의 숨겨진 정체와 그녀가 우주로 날아가게 된 이유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라 할 수 있을 테구요. 끄트머리에 탈출이 아닌 다른 수단을 찾는 간단한 타임어택 스릴러로 정리된다는 말씀까지 드리면, 영화의 큰 그림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2.

 

각기 다른 세 파트를 통할하는 테마는 결국 고립입니다. 인간 이전에 동물 레벨에서 느낄 법한 높은 직관성의 물리적 고립감으로 시작됩니다. 이어 종을 포함한 지구적 개념에서의 고립으로 확장되죠. 그리고 끝내 홀로 남은 자신의 과거와 기억 일체까지 부정하는 정체성의 상실로 인한 내면의 고립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한 꺼풀 한 꺼풀 '관계'를 벗겨나가는 셈이죠.

 

주인공은 영화 내내 불안해하고 조급해 보이지만, 각 단계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배우가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유심히 지켜보며 차이를 발견해 보시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 3.

 

주제의식은 고립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정리됩니다. 여기서의 '죽이다' 라는 개념은 생물학적 사망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 존엄성 등이 파괴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메시지의 측면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스스로 '리즈'가 되어 14광년을 건너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가치란 고립으로 훼손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는, '고립은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지 못한다.' 라는 감독 나름의 결론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Oxygen>. '숨 쉬는 행위에 담긴 살고자 하는 의지' 입니다.

 

지구가 멸망해버린 극단적 디스토피아 위에 펼쳐지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도 살아갈 길을 찾아나가는 인류의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그린 희망적인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 4.

 

감독이 이 작품을 철학적 메시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라면, 역시 주인공은 불안하지만 관객은 불안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영화 <베리드>의 경우, 주인공도 불안하고 그 주인공을 보는 관객도 상당히 불안했던 것과 대조적이죠.

 

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회상 장면들과, 좁은 모듈 안에서도 이리저리 최대한 돌려감은 다양한 카메라 구성. 밝고 건강한 느낌의 캡슐 디자인과, AI '밀로'가 쏟아내는 그래픽 애교 등은 주인공을 위한 것들이라기보다는 관객을 위한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장르는 장르대로 즐기되,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차분하게 주제의식을 탐미하라는 거죠.

 

 

 

 

 

 

# 6.

 

영화의 아쉬운 점은 크게 두 가지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은 관객을 너무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파트 전환 과정에서의 단서가 너무 피상적이거나 과격하거든요.

 

충분한 준비가 부재한 탓에, 감독이 냅다 '얘 지금 우주에 있는 거임!' 하면, '아~ 우주에 있는 거구나'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여자 사실 클론임!' 하면, '아~ 클론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결말에서 '어쨌든 14광년 날아가 클론끼리 포옹함!' 이라고 하면 역시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구요. 영화 내내 나름의 흥미진진함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건. 전개에 관객 스스로 개입할 여지가 너무 제한적이라 영화적 경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강요받았기 때문입니다.

 

# 7.

 

디자인이나 연출, 편집 등이 전반적으로 너무 산만하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오미크론 267’의 정체와 관련된 중의적인 대사라거나, 본인에게 너무도 비협조적이고 고압적인 모듈 ‘밀로’의 태도까지야 결말에서 나름 설득된다 하더라도. 쥐떼 돌아다니고, 조잡한 회상씬 자꾸 끼어들고, 손 찔러대고, 홀로그램 구경하고, 이미 몸에 주사 주렁주렁 꽂고 있으면서 주사기 달린 기계손 나타나 작위적으로 난리를 피우는 것 등은, 빈말로라도 완성도 높다 말씀드리긴 힘들 표현들이죠. 인공 중력 시스템이 모듈 단위로 온오프가 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백번 양보해 그건 영화적 허용이라 친다 하더라도. 모듈 밖을 공개하는 순간 <그래비티>에서도 본 듯한 머리에 구멍 난 아저씨가 등장하는 대목은 뇌절이구요.

 

물론 쥐를 비롯한 위의 것들 모두 어찌저찌 설명이 되는 떡밥들이라는 건 결말까지 보고나면 알 수 있긴 합니다. 만, 그건 나중 문제구요.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정신 사나웠던 게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 8.

 

우연찮게도 <스토어웨이>에 이어 연달아 우주 영화 두 편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마치 두 작품의 장단점이 거울처럼 뒤 바뀌어있다는 게 썩 흥미롭습니다. 연기와 묘사가 풍부하고 섬세하지만 개연성이나 서사가 빈곤했던 <스토어웨이>에 반해, 이 영화는 나름 떡밥과 서사가 풍부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묘사와 연출에 약점이 있거든요.

 

아참, 까먹을 뻔했는데, 다른 것보다 왜 굳이 제목을 <Oxygen>에서 <O₂>로 바꿨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호흡하려면 산소 원자인 O(oxygen)이 아니라, 산소 분자 O₂가 필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배급사 담당자가 이과인가?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O₂>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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