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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샤말란의 올드 _ 올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그냥_ 2022. 4.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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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히치콕 감독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실까요. 아무래도 현기증이려나요. 욕실 씬의 사이코일 수도 있겠네요. 북북서로도 기가 막히죠. 레베카도 좋았구요. 39계단도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엔 사보타주를 봤는데요. 역시나 흥미진진하더군요. 눈매가 매력적인 리즈 시절의 실비아 시드니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거장의 필모그래피답게 하나 같이 좋은 작품들입니다만 그 가운데 저는 <이창>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히치콕이고 나발이고 여신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기 때문인 게 맞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올드 :: Old』입니다.

 

 

 

 

 

# 1.

 

미스터리 스릴러 반전 영화입니다.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죠. 샤말란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장르를 기대하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요. 보나 마나 ⑴ 소수의 주인공 무리가 판타지 설정 안에 갇히게 되고, ⑵ 찝찝하기 그지없는 떡밥들을 미친 듯이 뿌리는 가운데, ⑶ 적당한 드라마와 적당한 스릴을 구현하다, ⑷ 작품 전체를 뒤엎는 반전을 공개하고 복선을 수습하며 끝나는 작품일 겁니다. 식스센스를 비롯한 성공작부터 애프터 어스를 비롯한 망작까지 이 구조를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죠.

 

못된 제약회사의 음모였다! 라는 반전입니다. 언제부턴가 할리우드 단골 악당이 되어버린 불쌍한 제약회사가 빌런으로 등장한다면 대체로 동물실험이나 유전자 조작 등과 관련된 생명 윤리라거나 인류의 미래로 치장된 극단적 기업 논리 등을 비판하는 작품일 거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 영화 역시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해야겠죠.

 

그 아래로 나이에 대한 메시지가 두텁게 깔립니다. 도입에서부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시간성에 대해 논평하는 좋게 말하면 친절하고 박하게 말하면 유치한 대사들을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해변에서의 하루를 불순물을 정제해 축약한 인생처럼 묘사해 삶의 본질적 의미를 고찰케 한다거나, 유한함을 잊고 손쉽게 다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에 충실할 것을 경고하는 식의 교훈극입니다.

 

 

 

 

 

 

# 2.

 

적당히 영화를 따라가고 있었는데요. 뭔가 찝찝합니다. 아무리 샤말란의 폼이 들쭉날쭉이라지만 나름 반전 깎는 장인 소리 듣던 양반인데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편의적이었기 때문이죠. 서사는 고작 미스터리한 해변에 갇혀 다 죽고 남매만 수영해서 탈출했다가 전부입니다. 산호와 탈출의 관계는 나태하구요. 이를 추론하기 위한 암호 역시 조악하죠. 리조트에 돌아온 이후의 결말은 그보다 더 태만합니다.

 

설정을 과격하게 펼쳐 놓은 것에 비해 반전 역시 심심합니다. 생각해보면 말이 좋아 반전이지 내막에 훨씬 가깝죠. '늙었다는 것은 사실 환각이었다!' 라거나 '섬을 탈출한 주인공은 사실 제약회사에서 제작한 클론이었다!' 라거나 하다못해 '이들은 자신이 사람인 줄 착각하게끔 조작된 생쥐였다!'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샤말란답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이거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 3.

 

샤말란은 자기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길 즐깁니다. 관종이죠. 이번 영화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요. 여타 작품들에 비해 제법 중요한 롤을 맡았습니다. 해변에 갇히게 될 사람들을 안내하고 감시하는 롤이죠.

 

영화를 보는 동안 강한 위화감을 느꼈던 순간은 남매가 바다에 들어간 후 이를 지켜보던 감시자(샤말란)가 물에 들어간 지 1분 30초가 지났다 말할 때였습니다. 사람이 확실히 죽었을 거라 확신하기에는 애매하게 짧은 시간이면서 또 쓸데없이 구체적인 시간이거든요. 어딘가 낯이 익은 1:30이라는 숫자에 이어 대포만 한 망원경으로 인물을 지켜보는 씬이 연출됩니다. 그 순간 창 밖으로 건너편 빌라 사람들을 훔쳐보던 다리 부러진 제임스 스튜어트가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고 말았죠.

 

 

 

 

 

 

# 4.

 

영화에 대한 영화, 그중에서도

샤말란의 영화 인생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해변을 그 자체로 거대한 스크린이라 상상해 봅시다. 인물들은 영화 속에 존재하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시나리오 속에서 창조된 인형들이라고 말이죠. 뒤로는 화려하지만 단단한 벽에 막혀있고 탁 트인 바다에 전 세계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 상상하면 적당하겠네요.

 

하룻밤 사이 평생이 지나는 건 신기한 일이지만 새삼스러울 것 없는 평범한 일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룻밤 사이 늙어 죽은 것이기도 하지만 고작 108분 만에 죽은 것이기도 하죠. 당신이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 영화의 런타임 108분 사이에 늙고 죽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비단 이 영화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런타임으로 축약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해변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절벽의 작용 때문에 기절한 것이라면 그 자리에 쓰러져야 하는 데 마치 플래시백이라도 되는 듯 해변으로 돌아옵니다. 비논리적이죠. 반면 절벽을 직접 오르던 카라는 해변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절벽 위 그 자리에서 기절해 추락합니다. 절벽 뒤를 걸어 나가는 것과 절벽을 오르는 것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뜻일 텐데요. 전자는 관객이 볼 수 없도록 무대 그 자체를 이탈하는 것, 후자는 어쨌든 관객이 보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역은 무대에서 죽을 수는 있지만 허락 없이 무대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절벽 뒤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해변으로 돌아온 건 감독이 일련의 사전을 '편집'해버렸기 때문이죠.

 

 

 

 

 

 

# 5.

 

이제 이 관종이 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았을지 눈치채셨을까요. 감시자는 캐릭터를 무대 뒤에서 데려와 스크린 안으로 밀어 넣는 사람이자, 그들의 움직임을 렌즈를 통해 관찰하고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을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영화 감독이죠.

 

등장인물들은 신약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음모에 희생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 낸 연구 데이터는 같은 병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혜가 되어 돌아간다 하죠.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108분짜리 인생은 분석되고 해석되어 관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되짚는 계기가 될 겁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얻어간 '인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교훈은 샤말란 제약회사에서 캐릭터를 희생시켜 개발에 성공한 알약인 셈이죠.

 

이 같은 견해로 영화의 오프닝을 다시 보면 느낌이 묘합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꼭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출연진 같아 보이거든요. 이동 중에도 배우들은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논의하며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연구합니다.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대체로 리조트 등의 안락하고 호화로운 시설을 보장받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감독의 손에 이끌려 촬영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캐릭터는 언제 있었냐는 듯 재가 되어 사라지고 그들의 이름만이 낡은 노트에 남게 되는 데요. 시나리오를 끄적이던 샤말란의 수첩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허무하게 흘러가는 앤딩 크레디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6.

 

캐릭터들은 제약회사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병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고 관객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샤말란의 필요에 의해 수집된 장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의식적으로 수많은 장르들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탈의 뼈와 살이 무너지는 순간은 호러입니다. 늙어버린 가이와 프리스카의 마지막은 드라마죠. 코피 흘리는 래퍼와 나체로 바다에 뛰어드는 여인은 미스터리, 미성숙한 트렌트와 카라는 로맨스이자 성장 드라마입니다. 중년의 가이와 프레스카는 멜로, 조현병의 찰스가 흉기를 휘두르는 장면은 스릴러, 카라가 절벽을 오르는 장면은 액션, 살을 찢고 벌리는 수술 장면은 고어, 마지막 산호 쪽으로 수영하는 순간은 어드밴처죠. 특별한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이 내비치는 특별한 선택들을 포착하는 것이 장르입니다. 장르적 상황에 노출된 등장인물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관객들이 더 나은 인생의 단초를 얻어가도록 돕는 작업이 바로 영화입니다. 감독의 영화 철학인 것이죠.

 

앞서 제약회사의 정체와 관련된 반전은 반전이 아닌 내막에 불과하다 말씀드렸는데요. 만약 샤말란 감독의 의도가 제 해석과 같다면 이 영화에 숨겨진 진짜 반전은 '미스터리 스릴러 안에 자신의 영화 세계를 숨겨두었다.' 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 7.

 

그럴싸한가요? 좋습니다. 제멋대로 선을 넘은 김에 조금 더 가봅시다. 

영화에는 과연 샤말란이 한 명인 걸까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선 6살 아이가 눈 깜짝할 사이 50대 중년 남성이 되어버린 이야기입니다. 때마침 샤말란 감독은 1970년생으로 영화가 개봉된 작년 정확히 50이 되었죠. 부모와 인종적으로 썩 어울리지 않는 인도계 느낌의 알렉스 울프를 주연으로 쓴 것이 그가 감독과 똑 닮은 흑발의 곱슬머리인 것이 과연 우연인 걸까요. 트렌트는 해변을 탈출하기 직전 누이와 모래성을 쌓는데요. 돌이켜보면 이 장면은 영화에서 별다른 기여가 없죠. 파도가 치면 사라질 모래성을 공들여 쌓는 50대 남자. 이 영화에서 가장 열심히 모래로 된 성을 쌓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저는 트렌트를 사람들의 직업을 궁금해하던 6살 소년의 마음으로 50이 넘는 중년이 되어버린 감독 자신을 투사한 캐릭터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샤말란의 올드. 샤말란이 감독한 영화 올드이자, 눈을 떠 보니 나이가 들어버린 샤말란의 만시지탄晩時之歎입니다.

 

또 있습니다. 리조트에 남은 아이, 친구가 없던 아이, 암호를 만들기를 좋아했던 아이인 리조트 매니저의 조카 '이들립' 역시 감독의 어릴 적 자아라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사람이자 주인공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훌쩍 시간이 흘러 50이 되어버린 주인공이 암호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며 나는 여전히 6살 트렌트라 말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죠.

 

영화는 샤말란이 자신을 6살 어린아이의 정체성(이들립)6살에서 50살이 되어버린 자신의 회한을 투사한 정체성(트렌트)능숙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샤말란)으로 해체해 다각적으로 뿌려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8.

 

... 개소리는 여기까지 할까요? :) 당연하게도 위의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제멋대로의 해석에 불과합니다. 감독의 의도가 그러하지 않을 수 있고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이렇게 이상하게 영화를 보는 인간도 한 명쯤 있구나 하고 지나치셔도 좋습니다.

 

연출은 좋게 말하면 친근하고 박하게 말하자면 조금, 아니 많이 촌스럽습니다. 능숙함과 별개로 여전히 식스센스가 개봉되던 1990년대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달까요. 기본적으로는 첫 문단에서 말씀드린 나이에 대한 착한 메시지를 주제로 하는 PG-13 등급의 순한 맛 반전 영화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텐데요. 이 기준에서라면 플롯과 반전에 집중하느라 내용은 엉성해져 버린 영화라 평하는 것이 정당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제법 흥미롭게 본 것과 별개로 말이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올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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