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코미디 132

46년간의 겨울 ⅱ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 morgosound.tistory.com # 10. 아빠곰은 사탕을 팝니다. 엄마곰은 이빨을 팔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식에겐 절대 권하지 않을 쾌락을 판매하고 그 비용을 다시 판매하는 비윤리적 짓거리를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창고에 숨어든 '어네스트'가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 아빠곰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아이에겐 절대 먹지 못하게 할 사탕을 다른 어린아이들을 홀려 팔았던 자신 스스로를 정직한 시민이라 칭합니다. 자본가들의 엘리트 의식과 이중성은 저녁 식..

Film/Animation 2020.06.17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를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그림쟁이 쥐와 음악가 곰의 사랑스러운 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글로 풀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정적이기에 생략하구요. 이 글에선 제 나름대로 이해한 코드들에 대한 생각들을 조악하게나마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영화를 공산주의 진영(쥐)과 자본주의 진영(곰) 간의 냉전 시대 갈등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우화로 읽었습니다. '뱅상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감독,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Ernest et Céles..

Film/Animation 2020.06.17

낙선 ⅱ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낙선 ⅰ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 0. 정치인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풍자극이라는 거죠. 자고로 풍자극이라 함은 1.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2. 비꼼에 위트와 내 morgosound.tistory.com # 8. 앞선 글에서 거짓말이라는 아이템을 규정하고 변주해 만들어냈어야 할 내러티브가 통채로 붕괴되어 있다 말씀드렸는데요. 일관성의 근거가 될 플롯이 붕괴했다면 이야기로서의 짜임새와 연출의 완성도는 보나 마나겠죠. 얼마나 개떡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을지 짚어볼까요? # 9. 저주에 걸린 첫날 라미란은 남편과의 아침 식사에서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차량을 통해 이동하며 다시금 확인까지 했죠. 당연히 스케줄을 ..

Film/Comedy 2020.06.09

낙선 ⅰ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 0. 정치인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풍자극이라는 거죠. 자고로 풍자극이라 함은 1.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2. 비꼼에 위트와 내용이 있어야 하며 3. 매 순간마다 능청스러운 탈룰라각을 잡아놔야 합니다. 4.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디테일의 참신함과 5. 희극적 결말에 도달하는 동안의 페이소스까지 지켜진다면 더욱 훌륭하겠죠. 놀림감이 된 정치인들이 성질이 뻗혀 톰처럼 쫓아오는 동안 제리처럼 유유히 도망 다니는 감독의 재치로부터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치 풍자해 보겠답시고 관객 호응 유도나 하다 사라진 개콘 꼴이 되고 말겠죠. '장유정' 감독, 『정직한 후보 :: HONEST CAND..

Film/Comedy 2020.06.08

절반은 성공 _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

# 0. 정말이지 맛있는 영화입니다. 배우 '문소리'만큼이나, 감독 '문소리'와 그의 작품 역시 참 매력적입니다. '문소리' 감독, 『여배우는 오늘도 :: The Running Actress』입니다. # 1. 영화는 3개의 막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파트는 짐짓 화려해 보이는 배우라는 직업의 이면에 숨겨긴 여배우 문소리의 현실적 비루함을, 두 번째 파트는 그런 여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연인 문소리의 현실적 곤궁함을 다룹니다. 세 번째 파트는 여배우라는 직업의 철학적 가치들을 돌아보며 일련의 비루함과 곤궁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왜 이 직업을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소회를 다룬다 할 수 있습니다. 파트를 구분케 하는 '막'은 기본적으론 연극의 단락을 세는 단위로서의 막幕으로 기능합니다만 동시에 ..

Film/Comedy 2020.05.27

과적 금지 _ 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

# 0. 병구가 돌린 전단지를 본 민지는 체육관을 찾아와 복싱의 다이어트 효과에 대해 문의합니다. 글쎄요. 다이어트는 날아갈 듯 날씬한 혜리보다 이 영화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요? '정혁기' 감독, 『판소리 복서 :: My punch-drunk boxer』입니다. # 1. 번개 같은 주먹! 병구 주먹! 천둥 같은 장단! 민지 장단! 예고편을 본 관객들은 판소리 복서 엄태구가 혜리의 장구 가락에 맞춰 흐느적흐느적 주먹을 휘두르는 걸 본 순간 끝났다 생각했을 겁니다. 아이템의 파괴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이 병신 같지만 멋있는 매력을 찰지게 풀어내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이다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의 주인공 병구가 의 김수현 같은 빙구미를 뽐낼 수만 있다면. 병구와 민지의 투샷이 미묘하게 사랑..

Film/Comedy 2020.05.24

꽉찬 육각형 _ 해피 피트, 조지 밀러 감독

# 0.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좋은 대중 영화라 평할까요? 아무래도 이야기가 직관적이고 쉬우면 좋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뻔하기만 해서는 곤란할 겁니다. 등장인물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되 그들의 구분과 관계는 선명하면 좋을 테고요. 남녀노소 모두가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 들을 거리가 풍성하면 좋겠죠. 코미디든 스릴러든 뭐가 되었든 지향하고자 하는 장르적 재미가 확실하면 더욱 훌륭할 겁니다. 새로운 영상 기술이나 기법을 경험할 수 있다면 땡큐, 그게 단순한 기술 자랑을 넘어 고유한 정서를 건드려 주기까지 한다면 때댕큐겠죠. 사회적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테구요. 혹 그 이상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까지 한다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일 겁니다. '조지 밀러' 감독, 『해피 피트..

Film/Animation 2020.05.22

배드에스 안티테제 _ 해브 어 굿 트립, 도닉 케리 감독

# 0. 마약은 하면 안 됩니다. 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나쁘고 위험하고 건강에도 안 좋고 뭐 그렇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 나쁘고 위험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역으로 그것을 감수하는 순간의 자신이 멋있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과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도닉 케리' 감독, 『해브 어 굿 트립 :: Have a good trip』입니다. # 1.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 '아론 에크하트' 주연의 『흡연, 감사합니다』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달변가 사기꾼이 담배 팔다가 아들 숙제 몇 번 도와주고 금연 패치로 암살당할 뻔한 후 컨설턴트로 전업한다는 영화인데요. 그 작품을 보다 보면 주인공 '투페이스'가 대중들에게 담배를 팔아먹기 위해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Documentary/Social 2020.05.20

내 실수였어 _ 넌 실수였어, 타일러 스핀델 감독

# 0. 개인적으로 근래 본 모든 영화 중 가장 적절한 제목의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주 사소하고 귀여운 '실수'들이 몇몇 있기 때문이죠. '타일러 스핀델' 감독, 『넌 실수였어 :: The Wrong Missy』입니다. # 1. 첫 번째 실수.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캐릭터가 비호감입니다. 조금 독특한 성격 탓에 평소엔 그닥 주목받지 못하지만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그런 풀꽃 같은 여자... 가 아니라 '미시' 얜 그냥 비호감입니다. 아니, 비호감이라는 말도 순화된 표현이구요. 역겹다는 게 더 정확할 지경입니다. # 2. 두 번째 실수. 로맨틱 코미디의 남주인공 캐릭터가 비호감입니다. 주인공이 둘인데 둘 다 비호감이라는 거죠. 내일모레 환갑인 64년생 할아재를 데려다 섹..

Film/Romance 2020.05.17

엄복동을 이겼다 -2- [미스터 주, 김태윤 감독]

이전글 : 엄복동을 이겼다 -1- [미스터 주, 김태윤 감독] 영화가 자살했다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를 애피타이저 삼아 씹는 걸로 글을 이어갈까요. 어딘지 모를 풀 숲 한가운데 있던 범죄자의 냄새를 쫓는 장면. "잘했어."(주태주), "잘했지."(알리), "제법인데?"(주태주), "제법이지."(알리)로 이어지는 대사는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서수남', '하청일' 콤비의 만담을 반세기의 시간을 건나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그 외에 온갖 단역들이 『서프라이즈』에서도 컷 당할 수준의 오버 연기를 남발하고, 셰퍼드와 대화하기 위해서 흑염소 역시 종에 맞지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다행히도 이 모든 것들은 판다 옷을 입고 돌려차기 하는 '배정남'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앞선 글에..

Film/Comedy 2020.04.10

엄복동을 이겼다 -1- [미스터 주, 김태윤 감독]

한국 영화에 새로운 역사가 쓰였습니다. UBD라는 천년의 유산을 남긴 『자전차왕 엄복동』(이하 엄복동)이 『라스트 갓파더』의 시대착오적 코미디와 퓨전해 한층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이 영화는 무려 '엄복동'을 이깁니다. 심지어 위대한 『리얼』의 아성에까지 도전해 볼 법합니다. '김태윤' 감독, 『미스터 주 _ 사라진 VIP :: MR. ZOO 』입니다. 환상적 스타트 오프닝을 주목해 보는 건 이어 보게 될 영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명작들은 시작부터 자신이 얼마나 잘 다듬어진 대단한 영화인지를 가감 없이 자랑합니다. '봉준호' 감독 작 『마더』의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좋은 예라 할법하죠. 반면, 폭망작들 역시 오프닝에서 자신이 얼마나 망작인지를 가감 ..

Film/Comedy 2020.04.09

국민 여동생의 위엄 _ 어린 신부, 김호준 감독

# 0. '송강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티켓파워와 팬덤을 가진 배우 중 한 명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작품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며 함께하는 크루들과의 호흡을 중요시하는 연기 스타일의 배우입니다만 『변호인』의 클라이맥스 법정 씬이나 『사도』에서 아들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 『마약왕』의 파멸직전 저택에서의 최후와 같이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할 때엔 주저 없이 파괴력을 보여주는 배우죠. '이병헌' 역시 영화팬들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입니다. 『남한산성』과 『밀정』, 『내부자들』, 『광해』,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 등과 같이 선명하고 스타일리쉬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지배해 나갈 때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되는 훌륭한 배우죠. 명실..

Film/Romance 2020.03.26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

Film/Animation 2020.03.14

라기보다는 _ 이웃집 야마다군,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 0.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만화. 만화라기보다는 낙서. 음악이라기보다는 노래. 노래라기보다는 흥얼거림. 대사라기보다는 수다. 수다라기보다는 온기. 영화라기보다는 이야기.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이웃집 야마다군 ::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입니다. # 1. 귀엽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소박하고 소탈하고 소담하고 앙증맞습니다. 무난하고 삼삼한 우리 사는 이야기와, 평범한 사람들 나름의 진지함과, 그럼에도 잃지 않는 본질적인 귀여움입니다. 일전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정신적 후계자라는 '포녹 스튜디오'의 단편선의 리뷰에서, 일본의 드라마 영화의 매력을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 역시 좋은..

Film/Animation 2020.03.12

줄리아 폭스 ⅱ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줄리아 폭스 -1-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morgosound.tistory.com # 10. 복잡 미묘한 감각적 연출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명쾌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라. 남의 가능성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간 패가망신한다. 가 그것이죠. '하워드'가 베팅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의 가능성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돌려 막기 식 부채의 불안정성으로 대처합니다. 세공조차 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위기 극복을 전적으로 기대고 있구요. 전문 평가사가 매긴 십만여 달러보다는 정체모를 감정사의 백만 불 ..

Film/Thriller 2020.03.10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Film/Thriller 2020.03.06

구찌 장바구니 _ 거짓말의 발명, 리키 제바이스 감독

# 0. 명품 가방을 장바구니로 쓰는 듯한 영화입니다. 포르셰 사서 동네 마실만 도는 영화입니다. 다금바리를 잡아 어묵을 만들고 해외여행 가서 한식당만 다니는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부잣집 지하실에 사람이 산다는 가벼운 설정만으로 오스카와 칸을 동시에 연성해내지만, 누군가는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라는 거창한 아이디어로 이런 한심한 결과물을 내기도 합니다. 감독의 손에 우연찮게 진주 목걸이가 쥐어졌지만 걸고 보니 안타깝게도 돼지 목이었습니다. '리키 제바이스', '메튜 로빈슨' 감독, 『거짓말의 발명 :: The lnvention Of Lying』 입니다. # 1. 재미없기가 어려운 소재입니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그 거짓말은 모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의심받지 않는다라..

Film/Comedy 2020.02.21

기막힌 영화 _ 브라 이야기, 바이트 헬머 감독

# 0. 부정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에서도 괴기합니다. 인상적인 화면과 음향, 대사 없이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동화적 이야기, 관능적인 아이템들과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독특한 코미디. 이 모든 걸 품어내는 아제르바이잔의 황홀한 전경이 독보적인 매력을 확보하게 합니다. 동시에 대단히 불친절한 은유들과, 통념을 벗어난 행동들로 인한 핍진성의 부재,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뛰는 플롯과 이 모든 걸 한층 심화시키는 '대사가 없음으로 인한 불편함'이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죠. 어떤 분들에겐 영화제에서 상 탈만하다 싶은 인상적인 영화가 될 테지만,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도 단점들을 부정하지는 못하시리..

Film/Comedy 2020.02.19

It's Different _ 넷플릭스 드라마 EASY

# 0. 늘씬한 다리에 팬티가 반쯤 걸쳐진 썸네일처럼. 진하게 새겨진 새빨간 미성년자 관람불가 마크처럼. 드라마는 섹슈얼한 아이템들을 가감 없이 다룹니다. 만, 짜잔! 흔한 성인 드라마들이 추구하는 관능적 이미지를 예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19금은 어디까지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과감함은 이야기의 지평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두는 느낌이랄까요. “우린 주제에만 부합한다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달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이지 :: EASY』 입니다. # 1.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에피소드들은 독립적입니다. 최소한의 연결을 위한 등장인물이나 배경, 설정조차 없습니다. 30분여의 ..

Series/Drama 2020.01.02

신발 튀김 _ 콩나물, 윤가은 감독

# 0. 화면은 정갈하니 좋습니다만 이야기의 완성도는 글쎄요. 솔직히 별로입니다. 아이의 모험에 자연스러움이라곤 없습니다. 발로 뛰어 아이들의 하루를 취재하고 관찰한 것을 엮었다기보다는, 어른인 감독이 테이블에 앉아 상상한 후 무신경하게 이어 놓은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인과는 완전히 박살 나있고 모든 상황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가며 감독의 의도에 편리하게 복무하고 있죠. 앞뒤가 맞는 대목이 없다 보니 인물의 설득력 역시 망가집니다. 관객은 아이를 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아이의 하루를 상상한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요. '윤가은' 감독, 『콩나물 :: Sprout』 입니다. # 1. 영화가 시작되기 위해 아이는 심부름을 나섭니다. 모험 같아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가 한대 지나갑..

Film/Drama 2019.12.08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1970~80년대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소몰이 창법 때의 음악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보다 살짝 윗 세대분들은 야다나 얀 같..

Film/Romance 2019.09.27

영상물 _ 걸프렌드 데이,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 0. 『Daum Movie』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운한 기념일 카드 작가가 불행을 당하는 영상물. 정확합니다. 저 문장이 전부입니다. 주인공은 불운하게 실직한 이혼남이구요. 기념일용 카드 문구를 만드는 작가였구요. 이야기 내내 불행하구요. 결과물은 영화가 아닌 '영상물'이죠.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걸프렌드 데이 :: Girlfriend's Day』 입니다. # 1. 고전적 화면비의 기념품 카드 광고. 시도 때도 없이 대문짝만 하게 들이미는 주인공의 얼굴. 과감하다면 과감하고 과격하다면 과격한 설정들. 정적인 구도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핸드헬드 카메라. 미친놈인가 싶은 부엉인지 올빼민지 모를 닭둘기와 섹스하는 전 마누라에, 월세 대신 맡겨진 짐덩어리 꼬맹이가 제각각 따로 놉니다..

Film/Comedy 2019.09.23

야한 척 _ 오, 라모나!,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 0. 『몽정기』 같은 영화입니다. 사춘기 언저리의 사랑... 이라는 말로 순화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춘들의 영화죠. 이런 류는 기본적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찌질할 수밖에 없고 민망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귀여워야 합니다. 아무리 찌질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순수해야 하고 아무리 민망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솔직해야 합니다.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오, 라모나! :: Oh, Ramona!』 입니다. # 1. 누가 봐도 잘생기고 비율 좋은 남자 주인공이 찐따라 우기며 등장합니다. 수다스러운 동성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 맞은편에는 첫눈에 반한 퀸카가 자리하고 있죠. 결국 영화는 저 퀸카 '라모나'와 어떻게든 한번 자보려는 발버둥... 인가 싶었는데 어라? ..

Film/Comedy 2019.09.21

100년전 코미디 _ 황금광 시대, 찰리 채플린 감독

# 0. 좋은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표할수록 인지도는 높아집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면 명작 혹은 걸작이라 불리게 되죠. 작품들이 명작이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감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가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건데요. 사람들이 좋아해서 좋은 작품인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좋아해야만 하는 작품이 되는 것이죠. 그때부턴 작품에 대한 감상과 작품의 가치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감상평은 일종의 사상검증으로 전락하죠. '찰리 채플린' 감독, 『황금광 시대 :: the Gold Rush』입니다. ..

Film/Comedy 2019.09.13

나디아 여행기 _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들랜드 제작

# 0. 제목 속 러시아 인형은 아마도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말하는 거겠죠. 꺼무위키에서는 '어머니를 뜻하는 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ешка의 결합을 어원으로 하는 전통인형으로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기원하는 러시아의 상징물'이라고 기술합니다만... 대부분 "그 왜, 오뚝이 같이 생겨 가지고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는 거"라고 하면 알아먹는 목각인형 말하는 게 맞습니다.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 :: Russian Doll』 입니다. # 1. 다복과 다산의 상징답게 인형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론 각각의 인형이 다음 인형을 낳는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만, 보기에 따라선 모母인형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이 안으..

Series/SF & Fantasy 2019.09.04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 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 『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

Film/Comedy 2019.09.02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Film/Romance 2019.08.23

꿀잼 ⅵ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ⅴ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morgosound.tistory.com # 28. 아이스 에이지, 팀 밀러 감독 팀 밀러는 치사하게 실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라 땡깡이라도 부린 걸까요. 남들은 뼈 빠지게 그래픽 만들고 디테일을 다듬고 작화를 하는 동안 제작자 팀 밀러는 배우 '토퍼 그레이스'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작은 집 한 채를 섭외하는 것으로 영화 한 편을 날로 먹는 데 성공합니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질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성에가 두껍게 낀 ..

Series/Animation 2019.05.06

독일의 용기, 독일의 자신감 _ 그가 돌아왔다, 데이비드 우넨트 감독

# 0.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시종일관 진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언변에 감화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한다 소리치기도 합니다. 독일 영화에서, 그것도 군복을 입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의 히틀러에게 말이죠. 아시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다수의 유럽 국가에선 나치식 경례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만, 히틀러에겐 알 바가 아닙니다. 경례를 하지 않는 2014년의 요즘 사람들을 예의 없다고 불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담은 간결한 오프닝으로 감독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금기에 거침없이 도전하겠노라 선언합니다. 영화 속 히틀러는 원래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서 최대한 선의로 해석합니다. 과격한 표현은 메서드 연기로 시대착오적 언동은 풍자로 받아들여집니다. 정신..

Film/Comedy 2019.04.10

선함을 충전하고 싶을 때 _ 브루스 올마이티, 톰 새디악 감독

# 0. 최종 집계 17만 57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희대의 망작 의 광풍에 휩쓸린 관객의 수죠. 이렇게 빨리 VOD로 넘어갈 줄 알았더라면 영화관에 가서 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드는군요.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상이 심각합니다. 영화를 보며 얻은 내상, 리뷰하며 곱씹어 보느라 다시 얻은 내상, 그렇게 쓴 엄복동 리뷰가 제 모든 포스팅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거뒀다는 사실이 준 내상이라는 개노답 3형제의 크리티컬 한 다단 히트의 여파는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 저는 지금껏 무엇 때문에 영화들을 리뷰를 했던 걸까요. 엄복동의 억지 눈웃음과 정석원의 탄탄한 엉덩이에 가위가 눌리는 나날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멍청이들의 다큐멘터리와, 이세계 로맨스물 팝콘무비,..

Film/Drama 201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