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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낙선 ⅰ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그냥_ 2020. 6.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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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정치인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풍자극이라는 거죠.

 

자고로 풍자극이라 함은 1.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2. 비꼼에 위트와 내용이 있어야 하며 3. 매 순간마다 능청스러운 탈룰라각을 잡아놔야 합니다. 4.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디테일의 참신함과 5. 희극적 결말에 도달하는 동안의 페이소스까지 지켜진다면 더욱 훌륭하겠죠.

 

놀림감이 된 정치인들이 성질이 뻗혀 톰처럼 쫓아오는 동안 제리처럼 유유히 도망 다니는 감독의 재치로부터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치 풍자해 보겠답시고 관객 호응 유도나 하다 사라진 개콘 꼴이 되고 말겠죠.

 

 

 

 

 

 

 

 

'장유정' 감독,

『정직한 후보 :: HONEST CANDIDATE』입니다.

 

 

 

 

 

# 1.

 

성공적인 풍자극을 위한 위의 조건들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의 완성도

즉, 감독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엄연히 송강호가 주인공이었던 <살인의 추억>과 달리, 누가 뭐래도 김혜자의 영화였던 <마더>와 달리. 가족 희비극을 표방했던 <기생충>만큼은 유독 봉준호의 영화로 기억되는 건 사회 풍자극으로서의 퀄리티가 오롯이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나 휴머니즘 코미디가 아닌 정치 풍자 코미디에서 원톱 배우를 주요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다? 감독의 존재감 대신 주연 배우의 캐릭터가 도드라진다? 라면 적어도 풍자극으로서는 철저히 실패할 것이라는 노골적인 복선이라 이해하셔도 큰 지장은 없으실 테죠.

 

어떤 영화들은 부족한 시나리오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풍자와 전혀 상관없는 파편적 콩트로 볼륨을 메우거나 그것도 답이 없다 싶으면 배우의 개인기에 분량을 구걸합니다. 썩 유능한 코미디 소화능력을 가진 차승원, 공형진, 임창정, 임원희, 정상훈과 같은 배우들이 경력과 별개로 영화팬으로부터 그리 선택받지 못하는 건 (배우들 책임도 일부는 있겠습니다만) 인지도 높은 배우의 개인기로 적당히 뭉개면 코미디가 절로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 감독들의 무신경함과 무례함의 탓이 더욱 크죠.

 

아모르파티를 열창하는 라미란과, 야구코치 빙의해 과장된 수신호를 보내는 김무열, 아내의 발 냄새를 맡는 윤경호와, 버거킹 타령하는 나문희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 2.

 

굳이 가사 도우미를 외국인으로 설정한 건 정치인 '주상숙'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있을 만큼 위선적이고 조심스러우며 철두철미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인격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몰인간성을 표현하는 다소 진부하지만 평범하고 무난한 설정이죠.

 

문제는 이 설정을 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등장한 직후 굳이 남편에게 "월급 50만 원 올려줘!"라는 대사를 치는데요. 이건 사실상 남편이 아니라 관객에게 하는 말이죠. 특수한 목적으로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작품도 아니고 대체 이 무슨 유치하고 초보적인 연출인가요. 근래 본 그 어떤 영화를 떠올린다 해도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트리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 3.

 

냉정히 말해서 이런 류의 영화에서 연출을 눈여겨볼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해당 작품에 국한해 시니컬한 평을 하자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장르 특성인 거죠. 철저히 인물의 캐릭터와 서사로 승부를 보는 영화니까요. 공간은 매 씬 인물의 상황을 잘 묘사하도록 적당히 구색만 갖춰도 나쁘지 않습니다. 음향은 각 씬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친절한 이정표로서의 역할만 수행해도 괜찮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음악이 좀 과하게 쓰인 감은 있지만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 4.

 

버거킹 좋아하는 나문희 할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져

손주 라미란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는 게 사건의 시작입니다. 번개를 맞고 사람이 바뀌었다는 둥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둥 갑자기 어려졌다는 둥의 우연에 기댄 초현실적 아이템을 작품에 밀어 넣는 데 있어선 무난한 접근법입니다. 이것 역시 문제 될 것은 없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의 존재가 개연성이 충만해서 매력적인 건 아니니까요.

 

좋아요. 여기까지 영화 시작 20분. 몇몇 콩트와 가사 도우미와의 씬에서 크리티컬 한 데미지를 받기는 했지만 썩 흥미롭고 시의적인 아이템과 캐릭터들이 관객의 관심을 환기하는데 성공합니다. 딱 여기까지는요.

 

 

 

 

 

 

# 5.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정치인의 거짓말이 알파이자 오메가인 영화인데요. 문제는 감독이 자신이 풍자하고자 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거짓말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불분명하거든요.

 

'거짓말을 할 수 없다'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엄연히 다릅니다. '무례한 것'과 '솔직한 것' 역시 전혀 다르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정치인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하는 거구요. 화장실을 못 참는다느니 방귀를 뀐다느니 하는 생리 현상은 솔직하거나 정직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감독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견해 또한 전혀 구분되지 않습니다. 일례로 "내가 이 지역구를 좋게 만들 거다!" 라는 정치인의 주장은 객관적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자의식 높은 정치인의 진심 어린 주관적 견해 일 수는 있죠. 되려 부패한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부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견해를 내면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캐치하는 게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유리합니다.

 

 

 

 

 

 

# 6.

 

라미란은 선거 캠페인에 문제가 생기자 비서에게 "아랫사람들에게 죄다 떠넘기고 남의 일인 양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면 되는 거 아냐?"라 말하는데요. 대체 정치인의 권력욕을 뭘로 보는 건가요. 감독이 스스로 설정한 라미란은 득표를 위해 치밀히 계산된 행동을 하고 머릿속에 대선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영악하면서 동시에 집요한 정치인일 텐데요.

 

위의 대사는 무능하고 의욕도 없지만 핏줄 하나로 회장 자리에 오른 망나니 재벌 3세, 뭐 이런 캐릭터들의 대사입니다. 이 정도면 '기득권'과 '정치인'이라는 사회적 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고찰조차 없었다는 자백이라 봐야겠죠. 그냥 대충 뭉뚱그려서 권력자 = 악당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유아적 시나리오입니다.

 

자서전을 대필 작가와 함께 쓰는 건 흔한 일일뿐더러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출판 기념회 씬에서 콩트식 마무리로서 소리를 냅다 지르는 게 '정직'한 것은 아니죠. 가발을 쓰는 게 위선이나 거짓말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걸 냅다 벗어던지는 게 '솔직'한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 나문희가 올린 수년에 걸친 기도가 정녕 이걸 원한 거라구요? 우리 손주 가발을 좀 안 쓰면 좋겠다?!?!

 

감독은 대체 정치인의 가족에게 놈팽이 백수라 부르는 데서 어떤 풍자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반찬 가져다주시는 시어머니에게 패드립을 박는 며느리에게서 대체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 전에 풍자나 관객의 경험에 대해 1초라도 고민해보긴 한걸까요.

 

 

 

 

 

 

# 7.

 

초중반 저주에 걸린 라미란이 소화하는 거의 모든 대사들은 모든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고 몰인간적이다라는 전제 위에 수립됩니다. 이건 정치 풍자가 아니죠. 정치 혐오입니다. 세상에. 지금 2020년 맞나요?

 

영화 내내 '선하다'와 '정직하다'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와 '무례하다'와 '과격하다'가 전혀 구분되지 않은 채 무지막지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보다 보면 주상숙은 악인 보다 정확히는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죠. 상식적으로 영화의 테마는 가식이어야 했을 텐데요.

 

영화가 마무리에서 힘없이 털썩 주저앉게 되는 데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은 초반부의 이 설정 붕괴에 있습니다. 본질은 선량하지만 그 선량함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치를 대하던 주인공이 초심을 잃고 주객이 전도됨에 따라 문제가 생기고.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 끝에 영화의 마지막 이 '가식'을 벗어던지고 초심으로 돌아온다정도로 흘러갔어야 할 영화가,

 

 

본질부터가 썩어 문드러진 악당 주상숙이 막판에 유야무야 개과천선하더니

애먼 사람들에게 지적질을 한다

 

 

가 되어버리면 관객이 몰입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연기나 편집, 연출과 디테일 따위들을 논하기 이전에 시나리오 출발 단계에서부터 졸작은 기정사실이었던 거죠.

 

 

낙선 ⅱ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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