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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그냥_ 2020. 3.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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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피곤하고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으실 수는 있습니다. 그건 잘못이 아니죠.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영화가 나쁘다 말하는 건 좀 어폐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원래부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작정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베니 샤프디', '조쉬 샤프디' 감독,

『언컷 젬스 :: Uncut Gems』입니다.

 

 

 

 

 

# 1.

 

모처럼 힘든 영화네요. 안 그래도 어려운 영화에 조악한 글재주가 무슨 부정적 시너지를 일으킬지 걱정이군요. 벌써부터 막막합니다만 그래도 별수 없죠. 되는 데까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스트레스와 불안을 목적으로 한 영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더 불편해할까. 어떻게 하면 불안함이라는 고개를 쉴 새 없이 넘나드는 롤러코스터로 관객을 유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롤러코스터의 마지막에 가져다 둔 메시지가 가장 극적인 효과로 전달될까. 라는 고민에 모든 연출이 예리하게 조준되어 있습니다. 대사도 음악도 음향도 공간도 색감도 화면도 모두 말이죠. 이 영화를 보고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피곤하고 짜증 나고 어지러우셨다면 그건 되려 영화를 몰입해서 잘 보신 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불편하지 않으셨다면 그야말로 컴플레인할만한 일이죠.

 

 

 

 

 

 

# 2.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는 물 위에 왼발을 올리고 그 왼발이 가라앉기 전에 오른발을 디디면 태평양도 건널 수 있을 거라 믿는, 그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기는 인물입니다.

 

성공을 갈망하는 보석상이자, 지긋지긋한 도주를 끝내고 싶은 빚쟁이이자, 이혼을 애써 미루는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이들의 좋은 아빠이자, 장인의 유능한 사위이자, 유명 농구선수의 팬이자, 한방 역전을 꿈꾸는 도박중독자이자, 끝내주게 이쁜 여자 친구를 둔 바람난 남자 친구이자, 신실한 유대인으로서. 각각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저당을 잡히다 못해 형식 논리적인 면에서 양립할 수 없는 역할까지 모조리 가지려 발악하는 자기모순적 인물이죠.

 

최선에 최선만이 거듭 일어날 것을 상정한 무리수를 미친듯이 흩뿌립니다. 무리수들이 쌓여갈 때마다 모래로 지은 누각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 듯 주인공 '하워드'와 그에게 이입된 관객의 감정 모두 깊은 불안의 수렁에 빠져듭니다. 극악의 확률인 최선의 상황을 상정하는 만큼, 불안감은 부풀어 오릅니다. 일등 상금이 백 억인 로또 한 장을 손에 쥐고, 백억을 빚져 요트를 질러버리면 '로또가 당첨될 확률'에 반비례한 만큼 불안한 것과 같죠. 손에 쥐어진 '언컷 젬스'는 영화가 끝나도록 세공되지 못하지만, 망상 속에서 그는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있습니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 미친 듯이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동안의 위태로움과 불안함이란 거군요. 좋습니다.

 

 

 

 

 

 

# 3.

 

하지만 주인공 '하워드'의 개성이 두드러질수록 문제가 생깁니다. 자칫 관객이 영화의 메시지를 '불안함'이라는 정서가 아니라 '하워드'라는 개성적 인물로 착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선 곤란하죠.

 

감독은 이 문제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하워드와 같이 남의 말이라곤 한마디도 듣지 않는 정신병자들로 설정해 극복합니다. 빚쟁이는 하워드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그저 자기 돈만 찾으면 그만이고, 깡패는 그런 빚쟁이가 시키는 대로 하워드를 쫓을 뿐입니다. 농구선수는 오팔을 가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하워드의 아내는 진심을 말하는 남편의 눈을 보고 역겹다 말하죠. 물론 주인공 '하워드' 역시 이 모두를 개무시하지만요.

 

이들은 대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관객이 필요할 뿐이죠. 모든 인물들은 자기 욕구만을 주시한 채 독백을 하면서, 자신의 독백을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들어주길 바랍니다. 모두는 영화 내내 다른 모두의 절박한 이야기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동시에 하나같이 자신의 절박한 이야기를 철저히 무시당합니다. 하워드가 가고자 하는 모든 곳곳마다 매번 가드들에게 가로막히는 건 이런 단절을 시각화한 것이라 볼 수 있겠죠.

 

# 4.

 

멀미날 정도로 대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느끼시는 건 당연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대화를 구조화해 상황을 파악합니다만, 이 영화 속 각자의 독백은 전혀 소통되지 않기에 구조화되지 않거든요. 물기가 전혀 없는 밀가루를 아무리 치대도 뭉쳐지지 않는 것처럼 인과가 상실된 대화 역시 뭉쳐지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튼 감독의 캐릭터 설정 덕에 이 영화는 주인공 '하워드'라는 이상한 사람의 하루가 아니라, 소통이 상실되고 허구의 가치에 매몰된 사람들의 불확실성과, 그 불확실성이 주는 본능적 불쾌함이라는 정서적이고 사회학적인 메시지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됩니다.

 

 

 

 

 

 

# 5.

 

독백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곁가지 하나를 짚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대사를 따라가려는 동안의 짜증 섞인 관객의 멘탈리티죠.

 

카페에서 앉아 있다 보면 온갖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만 딱히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화이트 노이즈랍시고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있죠. 이 영화에 나오는 독백들과 카페에서 들리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모두 비슷한 강도의 비슷한 소음입니다만, 한 가지는 불편하게 한 가지는 편안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관심의 차이입니다. 카페 맞은편에 앉은 커플의 대화나 수다스러운 보험 아줌마의 꼬드김, 직장인들의 투덜거림은 관심이 없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쏟아내는 대화는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말인즉, 영화를 보는 동안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몰라 '불편'하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모든 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 노력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 모든 인물들의 모든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은 하워드의 모든 것들을 붙잡으려는 집착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죠. 대사를 따라가는 동안 관객이 느낀 불안의 일부분은 '하워드'로부터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함이 발현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답답한 거야! 라는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관객 역시 '언컷 젬스' 안에 빨려 들어가 있었던 셈이랄까요.

 

 

 

 

 

 

# 6.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볼까요. 앞서서 작품은 '헛된 기대와 현실의 간극으로 인한 불안함'을 예리하게 조준하고 있다 말씀드렸는데요. 서사 역시 철저히 복무합니다. 저는 특히 '하워드'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들어 세상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불행한 사람이라 절규하지만 되짚어보면 영화 내내 특별한 불운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여정은 썩 나쁘지 않은 행운들로 점철되어 있죠.

 

바라던 블랙 오팔도 원하는 대로 저렴하게 손에 넣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호화로운 저택과 단란한 가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여자 친구와 바람피울 만한 경제력도 가지고 있죠. 원하는 경매도 결국 예상만큼의 가격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리스크를 통제해줄 부유한 장인도 있었습니다. 걱정하던 질병도 운 좋게 피해 갔고, 바람피운 줄만 알았던 여자 친구 역시 그를 지고지순으로 사랑하는 순정파였으며, 도박을 거는 족족 성공하는 소위 '쌔뽁'도 있죠. 하워드는 영화 내내 불행하지만 이는 특별한 불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 설정한 허황된, 어떤 면에선 광기에 가까운 집착 때문일 뿐입니다.

 

# 7.

 

'불안의 크기'만을 그린 영화였다면 이렇게 힘들게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감정의 낙폭을 과장하기 위해 행운이 차곡차곡 쌓이는 전반부와 몰락하는 후반부의 구성으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나 '우민호'감독의 『마약왕』과 같은 격정적인 삶을 산 인물의 전기 영화들처럼 말이죠.

 

명확한 방향과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런 장르적이고 상업적인 성공작들의 방식에 유혹되기가 쉽습니다만 다행히도 '샤프디' 감독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행운과 불운을 균일하게 경험합니다. 이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의 근거는 손에 쥐고자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위해 감행했던 무리수. 즉, '하워드' 안의 문제지, 바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 어떤 정서와 메시지를 주조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 8.

 

인물 설정 외에 연출적 측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나 화면의 독특함일 겁니다. 색온도가 미묘하게 높은 원색 계열. 최대한 파편적으로 분절해 둔 요소. 공간감이 읽히지 않을 정도로 과장된 채도 등. 영화를 보면서 느낀 불편함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아마도 이 어지러운 눈뽕 탓이기도 할테죠.

 

감독은 이같은 독특한 화면을 통해 마치 주인공 '하워드'와 그 주변의 인물이 속해 있는 계系가 블랙 오팔 안에 퇴적된 작은 보석들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 추측은 오프닝과 앤딩이 양 끝에서 열고 닫으며 조응하는 형식을 취함에 따라 확신으로 바뀌게 되는군요.

 

# 9.

 

'하워드' 뿐 아니라 관객 또한 숨 돌릴 공간이 없다는 것 역시 영화의 주제 의식에 복무하는 공간 연출의 예라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마치 자동차의 기어가 올라가면서 몽환적으로 몸을 꽉 옥죄어 오는 듯한 신시사이저 음악과, 그런 사운드들을 다시 한번 꽉 틀어쥐는 듯한 파편적이고 과격한 음향 효과들이 관객의 심리 상태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인상도 듭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롤러코스터는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 섬세함의 목적 그대로 쉴 새 없이 토할 만큼 격렬하고 또 불쾌합니다. 모든 연출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단 하나의 과녁에 정조준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호화 악단을 이끌고 일관된 하모니를 지휘해 냅니다. 좋아요. 이제 무엇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위해 이 격렬한 롤러코스터를 탄 것인가를 찾아봐야겠군요.

 

 

줄리아 폭스 -2-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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