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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그냥_ 2020. 3.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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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롭게 재조립해 모자이크 한 것으로 캐릭터를 구축한 인상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을 나열해 놓고 이리저리 얼기설기 이야기를 짜 맞춘듯한 작품이랄까요.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여타 지브리의 명작 장편 영화들에 비해 확실히 조잡합니다. 신비롭고 괴기하면서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고양이 왕국이나 고양이 사무소는 아무래도 가볍죠.

 

대신, 뭐 어때? 싶은 자유로움이 고유한 매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특유의 무신경함이 묘하게 고양이의 이미지와 잘 융화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냥냥 펀치를 계속 날리는 데, 왜 날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궁리해봐야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그냥 지 기분 내키는 대로 날리는 거라 생각하는 게 속 편해서, 이해하길 포기하고서 '그래 내가 냥냥 펀치를 맞을만한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수긍하게 되는?!' 약간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영화랄까요.

 

 

 

 

 

 

# 2.

 

서사는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관습적인 플롯을 따라갑니다. 백마 탄 왕자님과 쿵짝이 잘 맞는 조수가 왈가닥 공주님을 모시고 환상의 나라로 모험을 떠납니다. 공주님은 언제나처럼 저주에 걸려있고, 그 저주의 해법은 친절하게 공개되어 있으며, 타임 리미트 역시 동이 트기 전까지죠. 악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론적 악당이고, 그의 곁은 똑똑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빠진 모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공주님은 동이 트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저주를 벗어나고, 저주를 벗어나게 되는 계기는 늘 사랑이나 자존으로 연결됩니다.

 

일련의 서사적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해 감독은 짧게 치고 빠지는 런타임과, 미친 듯 널을 뛰는 개성적인 공간들과, 속도감과 고도의 적극적 활용을 동원합니다만, 그런 것들보다는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는 관객들이 스스로 만든 환상과 욕구로 대부분 충족됩니다. 여타의 '지브리' 작품들보다 반발짝쯤 떨어진 평작과 수작 사이의 어딘가 즈음에 위치한 가운데 관객의 충성스러운 애묘심과 ost '바람이 되어'가 하드 캐리 하는 작품인 셈이죠.

 

 

 

 

 

 

# 3.

 

보는 동안의 감동보다 '극장을 나선 후 길고양이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겁 많고 소심한 이쁜 고양이를 보면 문득 '유키'가 떠오르실 겁니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고양이를 만나신다면 '바론'이 떠오르실 겁니다. 뭘 먹고살았기에 저렇게 됐나 싶은 심드렁한 뚱냥이를 보노라면 대도 '무타'가, 우아하고 기품 넘쳐 보이는 고양이를 보면 '룬'이, 지저분하고 심술궂은 표정의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 왕'이 떠오르실 겁니다.

 

그럴 때마다 잠시 동안 매번 맛이 다른 홍채를 내려주는 고양이 사무소와, 동이 트기 전까지 달아나야 하는 고양이 왕국과, 행운과 보은의 마네키네코와 강아지풀과 개박하가 떠오르실 테죠. 그런 식의 삶을 아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상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의의라 할 수 있겠네요.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결'을 기대하면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완성도와 서사성에 민감하시다면 역시나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이 가지는 매력의 상당 부분은 관객이 스스로 가지고 있던 고양이에 대한 호의적 경험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한 영화이기도 합니다만, 대신 관객이 고양이와 함께한 경험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대단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리뷰를 쓰는 오늘, 저는 운이 좋게도 바론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양이씨를 만나 홍차와 담소를 나누셨나요?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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