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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그냥_ 2019. 8. 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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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이 모든 여정과 비바람을 건너 전하는 진심이 관객의 눈앞에서 꿀처럼 달콤하게 술처럼 씁쓸하게 흘러내립니다. 매콤한 훠궈 지옥을 뛰어넘는 로맨틱 엔진과, 키 큰 어른들 사이를 내지르는 헌책 시장의 신이 관객들 역시 지나왔거나 지나갈 삶의 특정 지점을 술꾼의 능청으로 묘사합니다.

 

새삼스레 인생은 덧없지만 풍요롭습니다. 영화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함께 인생의 허망함을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덧없음' 조차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맛이란 걸 포착합니다.

 

 

 

 

 

 

# 2.

 

덧없이 흘러가버릴 짧은 밤을 선명한 눈빛과 힘찬 걸음으로 거니는 '검은 머리 아가씨'를 통해 '풍류'란 이런 것이라 표현합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풍류는 분명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의 섬세하고 차분하고 고즈넉하면서 사려 깊고 유머러스한 그것과는 달리, 일본의 풍류는 조금 더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우며 솔직하고 화려한 맛이 있습니다. 각 정서의 우열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련합니다. 그냥 저런 정서도 있구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이 오래도록 포착한 '어떤 것'이 우리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구나. 이 정서 역시도 우리 것만큼이나 참 좋구나. 그걸로 좋습니다.

 

 

 

 

 

 

# 3.

 

팝콘이랑 콜라보단, 핫도그와 맥주보단, 삼겹살과 소주보단 역시 오꼬노미야끼와 사케가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어떤 영화들은 국가의 문화 특성으로부터 독립된 인류의 보편성을 조명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영화들은 자국 문화에 굉장한 밀착감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 영화는 후자의 전형이라 할 법합니다. 와패니즈 양덕들이 환장하는 일본 문화의 매력을 '유아사 마사아키'는 풍부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개들의 섬>에서 묘사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이런 맛이었겠죠.

 

정서를 시각화하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단순한 선으로 그린 그림체와 적당히 화려하게 배합된 색감으로 대상에 대한 분별과 특유의 정서에 대해 일관성 있게 전달합니다. 과감하고 탄력적인 화각의 구도와 앵글의 역동적인 동세는 영화의 에너지를 확 살려내죠. 이런 류의 그림체로 인물과 관객이 원활하게 소통하도록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 4.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를 보며 위키백과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세상 조잡하고 쓸모없고 사소한 이야기가 그리 튼튼하지 않은 얼개 사이를 이리저리 넘나드는데 멍청히 앉아 들여다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야기. 딱 그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에피소드들을 건너가는 게 작위적이라는 판단이 들지만 정작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 단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소 유치한 건 사실입니다. 술자리에서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내뱉던 헛소리들을 다음날 떠올리면 이불을 수차례 걷어찰 만큼 창피하고 민망한 딱 그만큼. 이 영화 역시 유치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지점이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도 어색한 일본식 말장난, 짱구 극장판에서 본 듯한 민망한 설정들,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춤판과 마구잡이식 게이 코드에는 분명 타협이 필요합니다.

 

 

 

 

 

 

# 5.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만 미묘하게 서글픈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는 불행을 묘사하지 않음에도 가슴이 시릴 정도로 먹먹합니다. 너무도 사랑했지만 이젠 흘러가버린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이랄까요. 질투심이랄까요. 부러움이랄까요. '아가씨'와 '선배'와 '사무국장'과 '빤스 총대장'과 '히구치'와 '하누키'의 밤은 화려하고 멋지고 행복하고 사랑스럽지만 짧고. 그들 역시 언젠간 그 짧은 밤을 회상하겠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밤'과 '짧음'과 '걸음'과 '아가씨'입니다. 좋은 제목이죠. 내게도 다시 한번 그날의 짧은 밤이 돌아올 수만 있다만 이번엔 힘차게 걸을 텐데.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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