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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Drama

It's Different _ 넷플릭스 드라마 EASY

그냥_ 2020. 1.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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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늘씬한 다리에 팬티가 반쯤 걸쳐진 썸네일처럼. 진하게 새겨진 새빨간 미성년자 관람불가 마크처럼. 드라마는 섹슈얼한 아이템들을 가감 없이 다룹니다.

 

만, 짜잔! 흔한 성인 드라마들이 추구하는 관능적 이미지를 예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19금은 어디까지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과감함은 이야기의 지평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두는 느낌이랄까요. “우린 주제에만 부합한다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달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이지 :: EASY』 입니다.

 

 

 

 

 

# 1.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에피소드들은 독립적입니다. 최소한의 연결을 위한 등장인물이나 배경, 설정조차 없습니다. 30분여의 짤막한 단막극입니다. 자투리 시간을 쪼개 보는 인터넷 만화처럼 애매한 저녁시간을 태우는 팝콘 무비처럼. 치고 빠지 듯 보고 나오기 수월합니다. 에피소드에 따라 아니다 싶으면 건너뛰어도 감상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그런 식의 감상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어떻게 작품을 보느냐는 보는 사람 마음이죠. 혹시나 3개의 시즌에 걸친 수많은 에피소드의 분량 때문에 선뜻 보기가 주저되신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명색이 시리즈물인데 연결고리가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가 엮여 있을 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이 작품의 연결고리는 주제입니다. '다름'이라는 주제 말이죠. 우열에 대한 의식 없이 그저 ‘다른’ 생각과 ‘다른’ 상황과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수집한 후 정제해 곱게 전시하는 작품입니다.

 

 

 

 

 

 

# 2.

 

분명한 것은 '틀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코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대단히 개성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Political Correctness가 문화 예술계를 휩쓸고 있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진영논리나 이념 평가에 인물의 삶을 처박아 넣지 않습니다. 동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베드신은 나올지언정 관계에 있어서의 과격한 파열이나 충돌은 없습니다. 불법과 미풍양속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 지언정 인간다움을 의심하게 하는 배덕감은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나름의 방향과 생각과 감정과 그 밑바탕에 깔린 '사려 깊음'을 소개할 뿐입니다. 관념적인 것들에 복무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관념들이 존재한다라는. ‘공존’과 ‘양보’와 ‘이해’와 ‘존중’이라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위한 필수적인 가치들이 결코 트렌디한 어젠다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잊고 사는 진리를 드라마는 한번 환기합니다.

 

 

 

 

 

 

# 3.

 

이채로운 인생관의 인물들이 에피소드 마다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다소 심심합니다. 특히나 도발적인 썸네일과 제목을 활용한 파격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탓에 그 밋밋함이 도드라지는 감도 없잖아 있군요.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셨다면 실망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렬한 스토리텔링이 드라마라는 장르가 강박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필수요소인가에 대해선 재고해 볼만 합니다.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과 기법 사이에서 여타의 장르들은 무서울 만큼 성장해 왔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분장 및 영상 기술의 도움을 받는 공포물과 스릴러, 봉건적 시대에 비해 괄목할 만큼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아이템들을 동원하는 코미디 등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드라마들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폐륜적인 스토리텔링에 중독되어 왔습니다. 물론 말초적 재미는 있죠. 소위 막장드라마라는 것들. 하지만 그 배덕감 뒤에 시들해진 인간성에 대한 아쉬움은 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다행히도 이 시리즈는 드라마라는 장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에 닿아 있습니다.

 

 

 

 

 

 

# 4.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볼까요. 시리즈가 ‘다름’을 대하는 방식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애정’과 ‘노력’이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상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빠짐없이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애정'의 기반 위에서 '선량'한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역전된 성역할을 짊어진 어느 중년 부부는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가족 내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자기 신념이 확고한 애인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또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꿔보려 애쓰는 여자 친구를 그 애인은 고마워하며 너그러이 끌어안습니다. 상이한 상황과 책임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관을 가지게 된 형제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부부가 한데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맥주를 마십니다.

 

 

 

 

 

 

# 5.

 

가볍게 풀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편안합니다. 애초에 런타임이 그리 길지도 않거니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스토리의 변주가 다이나믹한 장르물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야기의 단순함과는 별개로 다 보고 나면 제법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매 에피소드마다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그동안 나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단편적인 선입견에 근거해 손쉽게 규정해 온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점검하게 됩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상황과 판단들 가운데 자신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상황과 판단들 가운데 자신이 배타적으로 대해왔던 무언가를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여운은 깊어갑니다. 요리에 빗대자면 화려한 데코레이션이나 근사한 풍미, 다채로운 식감을 즐기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먹고 나서의 끝 맛과 코를 스치는 향기의 여운을 즐기는 음식과 같은 드라마군요.

 

 

 

 

 

 

# 6.

 

돌이켜보면 시리즈의 제목인 『이지』는 직설적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입니다. 주변의 무수히 많은 고민들과 갈등들이 다름에 대한 약간의 인정과 너그러움만으로도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이지’ 한 것이라는 의미이면서도 동시에 그 간단해 보이는 것조차 쉽게 하지 못할 만큼 우리 사회가 삭막하고 난해하다는 역설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사는 거? 물론 어렵지. 어려운 것 맞는데 생각하는 것보다는 쉬울지도 몰라. 다르다는 것만 알면 그게 나쁜 게 아니라는 것만 알면 서로를 인정하며 사는 것도 함께 웃으며 사는 것도 생각보다 더 쉬운 걸지도 몰라”라는 느낌의 제목 같달까요. 친절하면서 어떤 면에선 도발적이죠?

 

‘극'적인 느낌이 없는 작품의 테마에 대한 배우들의 이해도가 훌륭합니다. 과장된 느낌 없이 자연스러운 표현 또한 돋보입니다. 현실적인 디테일이 군데군데 살아 있다는 것 역시 좋습니다. 인물들의 인생관과 상황만을 덩그러니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시나리오 속에 살아있습니다. 감독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죠. 전반적으로 잘 세공된 작은 소품집 같은 시리즈입니다.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나아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 신선하군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이지』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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