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nimation

46년간의 겨울 ⅱ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그냥_ 2020. 6. 17. 07:00
728x90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

morgosound.tistory.com

 

 

# 10.

 

아빠곰은 사탕을 팝니다. 엄마곰은 이빨을 팔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식에겐 절대 권하지 않을 쾌락을 판매하고 그 비용을 다시 판매하는 비윤리적 짓거리를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창고에 숨어든 '어네스트'가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 아빠곰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아이에겐 절대 먹지 못하게 할 사탕을 다른 어린아이들을 홀려 팔았던 자신 스스로를 정직한 시민이라 칭합니다. 자본가들의 엘리트 의식과 이중성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시 한번 재확인되죠. 이들 역시 인간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 11.

 

'셀레스틴'의 도움으로 간신히 경찰차를 탈출한 '어네스트'. 도와준 은혜를 갚기 위한 '어네스트'의 행동은 역시나 거침이 없습니다. 그는 '필요한' 이빨을 '필요한' 쥐가 가져갈 뿐이라 생각합니다.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순간엔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이번에도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면, '셀레스틴'은 망을 보며 조심스럽게 훔쳐가야 한다는 인식을 이해하고 있죠.

 

셀레스틴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자본주의자,

어네스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자입니다. 

 

(어네스트는 '왼쪽', 셀레스틴은 '오른쪽'으로 가는 모습이 묘하군요)

 

 

 

 

# 12.

 

뛰어난 성과를 거둔 '셀레스틴 동지'는 다른 동지들의 환호를 받으며 행진합니다만, 그런 영웅조차 부르주아로 하여금 공산주의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만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쥐 경찰로부터 도망치는 두 주인공. 흥미로운 지점은 도망치는 와중에 '어네스트'가 다른 쥐를 밀치며 미안하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미안함을 알고 있습니다. 도덕성이 없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거죠. 즉, 염치가 없는 놈이라 사탕가게에서 사탕을 가져오고 이빨 가게에서 이빨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걸 한번 콕 집어 확인하는 대사입니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면 된다 생각하는 '어네스트'에게 있어 두 가게를 턴 건 '미안한 일'이 아닙니다.

 

 

 

 

 

 

# 13.

 

우여곡절 끝에 각자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배척된 둘은 그런 이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자연으로 향합니다. 처음엔 전혀 어울리지 못하던 둘은 점점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매개는 음악과 그림, 예술이죠. 

 

영화에서 그리는 예술은 자아실현 혹은 자기표현 혹은 철학적 사유로서의 구체적 의미의 예술이라기보다는 인간은 모두 동등하며 존재 자체로 고귀하다는 인본주의의 표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겁니다. 화가가 아닌 치과의사, 음악가가 아닌 판사가 돼라 말하는 두 사회는 적어도 인간성을 말살하고 각자의 권위주의적 지배층이 되길 욕망한다는 면에서만큼은 동일합니다.

 

 

 

 

 

 

# 14.

 

'셀레스틴'의 악몽은 구분할 수 없는 군집된 쥐들에 둘러 쌓이는 것. 개인성의 상실입니다. '어네스트'의 악몽은 사탕과 케이크를 잃는 것. 빈곤이죠. 각 사회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어둠이랄까요. 둘은 서로, 상대의 악몽을 위로하며 구원합니다.

 

 

 

 

 

 

# 15.

 

예술을 매개로 둘은 교감합니다. '어네스트'는 기꺼이 '셀레스틴'의 뮤즈가 됩니다. '셀레스틴'은 '어네스트'의 공연을 구걸이 아닌 예술로서 즐기는 최초의 관객이 됩니다. 쥐들의 사회에선 '유용한 이빨'만이 지나다니던 파이프가 '어네스트'로 인해 화가에게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비추는 창구로 재해석됩니다. '셀레스틴'의 그림과 '어네스트'의 음악이 조화하며 푸른 언덕 위의 집을 완성하는 장면은, 이념으로 가릴 수 없는 풍부한 인간성을 예술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표현한 명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16.

 

하지만 냉엄한 시대는 '이탈자'들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이즈가 잔뜩 섞인 라디오를 넘어 경찰들의 브리핑을 듣는 장면은 냉전시대 각 이념의 이단아들이 공포에 숨어 움츠려 들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한 직설적인 묘사라 할 수 있겠네요. 양측의 경찰들은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이라기보다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공권력으로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극단적으로 대칭되는 두 이념이지만, 각자의 이념을 지키는 자들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유사합니다.

 

결국 경찰의 추적 끝에 엇갈린 사회의 포로가 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공산주의 출신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의 감옥에, 자본주의 출신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의 감옥에 갇혀 서로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지만, 굴하지 않고 결국 재판을 받게 됩니다.

 

 

 

 

 

 

# 17.

 

자신이 무섭냐 묻는 '어네스트'에게 그렇지 않다 고개 젓는 어린 쥐들은, 보모의 눈총에 못 이겨 연기된 비명을 지릅니다. 자신이 무섭냐 묻는 '셀레스틴'에게 그렇지 않다 머뭇거리는 엄마 곰 역시, 주변 곰들의 눈총에 못 이겨 연기된 비명을 지릅니다. 서로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과 배타감은, 체제와 이념에 매몰된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생산한 상호 감시와 사상 검증에 의해 작동됩니다.

 

 

 

 

 

 

# 18.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두 재판정에 불이 붙고. 이념의 실현을 깊숙이 내면화 한 엘리트 재판장들은, 자신의 몸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른 채 열변을 토합니다. 이념에 미친 거죠. 그들을 우러르던 대중들은 정작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자 '이념의 투사'들을 내버려 둔 채 달아나버립니다. 아직 인간성이 남아 있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만을 제외하고 말이죠.

 

쥐들의 재판정은 불에 타버리고. 곰들의 재판정 역시 무너져 내립니다. 그렇게 비로소 이념으로부터 독립된 인간성은 긴 겨울을 지나 새가 지저귀는 녹색 낙원의 봄으로 돌아갑니다. 둘이 마주 앉아 행복이 가득한 동화를 쓰는 모습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 19.

 

영화의 원작이 된 어린이 동화 시리즈의 작가는 벨기에의 삽화가 '가브리엘 뱅상'입니다. 1928년 브뤼셀에서 태어나 2000년에 사망한 작가의 연대를 생각할 때, 그녀는 유년기를 제2차 세계 대전과 함께 보내며 성장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냉전 체제 하에서 보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 작가로서 자기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념적 대립과 갈등을 적어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아이들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을 추측하는 건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니겠죠.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그림체 만큼이나 아니 그림체보다 더 따뜻하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사려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뱅상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감독,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었습니다.

 

# +20. 재미있는 영화를 소개해 주신 하노(hano) 님께 감사드립니다.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