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Comedy

기막힌 영화 _ 브라 이야기, 바이트 헬머 감독

그냥_ 2020. 2. 19. 06:30
728x90

 

 

# 0.

 

부정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에서도 괴기합니다. 인상적인 화면과 음향, 대사 없이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동화적 이야기, 관능적인 아이템들과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독특한 코미디. 이 모든 걸 품어내는 아제르바이잔의 황홀한 전경이 독보적인 매력을 확보하게 합니다. 동시에 대단히 불친절한 은유들과, 통념을 벗어난 행동들로 인한 핍진성의 부재,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뛰는 플롯과 이 모든 걸 한층 심화시키는 '대사가 없음으로 인한 불편함'이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죠.

 

어떤 분들에겐 영화제에서 상 탈만하다 싶은 인상적인 영화가 될 테지만,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도 단점들을 부정하지는 못하시리라는 것과, 영화가 탐탁잖은 분들도 작품 고유의 매력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죠.

 

 

 

 

 

 

 

 

'바이트 헬머' 감독,

『브라 이야기 :: The Bra』입니다.

 

 

 

 

 

# 1.

 

기막힌 영화네!

 

우선 화면의 때깔이 기가 막힙니다. 뭐랄까, 한창 유행하던 사진 어플 'B612'로 찍은 갬성 셀카의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특유의 물이 덜 빠진 파스텔 톤 색감에 낡은 필름 질감의 조화가 멋스럽습니다. 수평성이 강조된 안정적 구도의 화면 위로 다채롭고 심미적인 구도가 연출됩니다. 카메라와의 거리에 따라 각기 다른 레이어를 겹쳐놓고 인물이 그 위를 넘나들도록 한다든지, 관객의 집중을 붙잡는 대상을 화면 한편에 밀어놓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코믹한 요소를 반대 방향에 놓아 미묘한 불균형을 연출한다든지, 대칭적이고 평면적인 화면을 전후좌우의 구도로 걸어 들어오고 또 퇴장하도록 만들어 연극적이고 동화적인 효과를 부여한다든지, 인물의 상황에 따라 정적인 배치와 동적인 연출과 관음적 구도를 적절히 배합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죠.

 

어느 순간에 화면을 세워도 작품이 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처럼, 이 영화 역시 모든 순간 모든 장면이 뛰어난 완성도를 보입니다. 하나같이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교과서적인 느낌 또한 읽히는 것이, 바이트 헬머 감독은 학구적인 연구자인 듯 보이기도 하는군요.

 

 

 

 

 

 

# 2.

 

멋들어진 화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는 음향, 그중에서도 대사가 없다는 점일 겁니다. 암실에서 음식의 맛이 선명히 느껴지듯 무성영화를 볼 때처럼 인물들의 동선과 몸짓에 더욱 집중하게 합니다. 이야기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과 힘을 생각할 때 대화가 없다는 것은 상당한 페널티일 텐데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따라감에 있어 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은 전달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겠죠. 상황이 만들어내는 소리들 속에서 리듬감을 발견하고, 그 리듬감을 음악과 버무려 영화에 녹여내는 솜씨 또한 일품이군요.

 

 

 

 

 

 

# 3.

 

왕자님은 유리구두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 나섰지만,

중년의 기관사는 브래지어를 들고 사랑을 찾아 나섭니다.

 

고전적 플롯을 현대적 아이템들로 변주하며 독창성을 확보합니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브래지어에 담긴 규율에 반한 해방감에 주목해 철학적인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구요. 누군가는 분실물에 담긴 불확실성과 브래지어의 주인을 자처하는 다양한 여인들의 멘탈리티에 주목해 흥미진진한 여행기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죠.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의 배타와 폭력에다 공간에 대한 의미를 곁들여 사회학적인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예술성과 심미성에 주목해 감성적인 작품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볼 여지가 열려 있다는 건 밑바탕이 되는 플롯이 그만큼 탄탄하고 그 위로 쌓아 올린 작품의 구성이 다층적이라는 방증입니다.

 

화려한 표현과 관능적인 아이템에 가려 있어 그렇지 숨은 코미디를 쏙쏙 빼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순간순간 스치는 슬랩스틱과 억지로 맞지 않는 속옷을 입으려 애쓰는 모습. 아령 하나 들지 못해 돌아서는 비루함과 속옷 장수를 자처할 때의 비장함. 브래지어가 맞는 지를 검사하는 의료 기기와, 사다리를 넘어서까지 속옷의 주인을 찾는 집요함과, 남편에게 쫓기는 동안의 우스꽝스러움 모두 직관적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 좋은 코미디입니다.

 

 

 

 

 

 

# 4.

 

참... 기가 막힌 영화네.

 

반면, 대단히 불친절합니다. 속옷을 찾는 동안의 집요함이야 이해한다 쳐도 이를 대하는 여자들의 태도는 상식을 벗어나 있죠. 개집에 사는 아이의 모습 역시 별 효과 없이 불쾌하기만 하고, 낚싯대와 낚시터의 이야기는 쓸데없이 겉돌며, 결말에 밝혀진 브래지어 주인의 정체 역시 뉘앙스만 전달될 뿐 명료함은 없습니다. 비현실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란 소리냐? 아니요. 그건 아무런 문제가 없죠. 이 영화의 문제는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관객들이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대사가 없으니 뭘 알 수가 있나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나 볼법한 들판에 드러누운 여자애 발은 왜 간지럽히는 것이며 여자애는 대체 누구지? 처음 청혼을 간 집에서 보이는 아령은 뭐야? 분실물을 개인 시간까지 쪼개가며 돌려주는 데 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매몰찬 거야? 왜 저 여자는 기관사가 들고 온 남이 쓰다 잃어버린 중고 속옷에 저렇게나 집착하는 거지? 애 엄마는 왜 갑자기 춤을 추고 공연을 하는 거야? 미망인이 주는 쿠키는 또 뭐지?

 

저 아줌마는 왜 휠체어를 타? 모녀는 뭐가 좋다고 머리 꽃 꽂은 것마냥 웃어대는 거야? 마을 남자들에게 붙잡힌 기관사가 얻어터지는 동안 여자들은 왜 얼굴을 빼꼼 내미는 거지? 집을 개에게 뺏긴 꼬마는 뭘 의미하는 거야? 브래지어 좀 팔았다고 사람을 철도에 묶는다고? 즉결심판이냐? 저 두꺼운 체인을 꼬마가 실톱으로 잘라? 방금 사람을 칠뻔한 기관사는 좋다고 악기를 불어댄다고? 꼬마랑 양 떼가 있는 산골 마을로 들어간다고 갑자기? 응? 끝이야?! 이렇게?!?!

 

의문이 하나둘 들 때마다 감독의 재기 발랄함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넘어가야만 한다는 걸 강요받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의 주체가 관객인 자신이 아닌 감독이 되는 건 누구에게나 대단히 불쾌한 경험이죠.

 

 

 

 

 

 

# 5.

 

기막히다

 

라는 단어를 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⑴ 어떠한 일이 놀랍거나 언짢아서 어이없다. ⑵ 어떻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좋거나 정도가 높다. 저는 이 영화는 기막힌 영화라 하겠습니다. 관객이 어느 쪽의 기막힘으로 영화를 보든 말이죠. '바이트 헬머' 감독, <브라 이야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