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애니메이션 62

그렇게 말랑하진 않았어 _ 무정, 정민지 / 조서정 / 최선민 / 최효정 감독

# 0. 저도 이별이란 걸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진짠데요. 아, 안 믿네. '정민지', '조서정', '최선민', '최효정' 감독, 『무정 :: Unfeeling 』입니다. # 1.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남자가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그 물건들에 겹쳐진 미련을 담아 버려 내는 순간을 그린 4분짜리 짧은 단편입니다. 만, 글쎄요. 영화를 본 후의 감상을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감흥은 없더군요. 아이템과 그림체만 존재할 뿐 감독이 포착한 세밀한 정서는 사실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별 직후의 감수성이라는 게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랑말랑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 2. 오랜 연애 후 이별을 하게 되면 "온 세상이 너였다"라는 말이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대단히 노골적인 직설이었..

Film/Romance 2020.07.04

허무한 이미지, 건조한 메시지 _ 9 : 나인, 셰인 액커 감독

# 0. 멋들어진 시각적, 철학적 이미지 몇 개만으로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비벼보려 합니다만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입니다. # 1. 감독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심미적 디자인의 봉제인형 몇 개가 고군분투하는 코즈믹 호러 풍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위로, 2. 거대 기계를 상대로 다양한 직업군의 파티가 레이드를 뛰는 액션 어드벤처를 장르적 동력으로 삼아, 3. 각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 본연의 철학적 가치들의 본질과 소중함을 역설하겠다. 는, 뭐 고런 영화죠. # 2. 문제는 이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중심축을 엮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러..

Film/Animation 2020.07.03

크리스마스는 누구였을까 _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헨리 셀릭 감독

# 0. 왜 영화를 이렇게 보는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영화를 해괴망측하게 제멋대로 보는 것만큼은 우주 최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서도,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에서도 그러더니만 이번에도 영 이상하게 보이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 이 영화를 팀 버튼의 인사이드 아웃으로 읽었습니다. '헨리 셀릭' 감독,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 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입니다. # 1. 팀 버튼이 직접 디렉팅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답게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표현이 가득합니다. 고어 표현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순수성, 순수성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흐르는 서정성이 인상적입니다. 편안한 이야기 구..

Film/Animation 2020.06.24

Σ(゚Д゚;) _ (OO), 오서로 감독

# 0. ┌──────┓ │ (OO) ≈≈ │ └──────┛ Σ(゚Д゚;) Σ(゚Д゚;) Σ(゚Д゚;) Σ(゚Д゚;) '오서로' 감독, 『(OO)』입니다. # 1. 말초적 감각 하나조차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언어'에게 보내는 '애니메이션'의 조롱입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콧가를 수차례 매만지게 만드는 온갖 느낌들과 그 순간 마다마다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주마등이 되어 미친 듯한 템포로 관객 머릿속을 내달립니다. 강렬하면서 동시에 치밀히 배합된 색감과, 오브젝트들의 드라마틱한 움직임, 상태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된 표현의 질감과 음향의 활용이 컷마다의 고유한 감각과 대단한 밀착감으로 구현됩니다. 절대적 감각과, 상대적 느낌과, 주관적 기분을 쉴 새 없이 넘나 듭니다. 눈 깜짝..

Film/Animation 2020.06.20

46년간의 겨울 ⅱ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 morgosound.tistory.com # 10. 아빠곰은 사탕을 팝니다. 엄마곰은 이빨을 팔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식에겐 절대 권하지 않을 쾌락을 판매하고 그 비용을 다시 판매하는 비윤리적 짓거리를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창고에 숨어든 '어네스트'가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 아빠곰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아이에겐 절대 먹지 못하게 할 사탕을 다른 어린아이들을 홀려 팔았던 자신 스스로를 정직한 시민이라 칭합니다. 자본가들의 엘리트 의식과 이중성은 저녁 식..

Film/Animation 2020.06.17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를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그림쟁이 쥐와 음악가 곰의 사랑스러운 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글로 풀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정적이기에 생략하구요. 이 글에선 제 나름대로 이해한 코드들에 대한 생각들을 조악하게나마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영화를 공산주의 진영(쥐)과 자본주의 진영(곰) 간의 냉전 시대 갈등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우화로 읽었습니다. '뱅상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감독,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Ernest et Céles..

Film/Animation 2020.06.17

누군가의 한숨 _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장나리 감독

# 0. ... 야, 이 한심한 인간아 '장나리' 감독,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 I'm Sorry I'm Pathetic』입니다. # 1. 굽은 머리보다 더 움츠려 든 연필 소리. 심장을 멈춰 세우 듯 찢어지는 문열림. 등으로 보는 일그러진 표정. 날아와 박히는 경멸의 시선. 죄스러운 배고픔. 숨어드는 걸음. 매몰 찬 빈 그릇과, 공기마저 얼릴 듯 무거운 팔짱. 절벽이 되어버린 밥상머리 끝에서 씹어 삼키는 차고 넘칠듯한 질책들. 지난한 숙제를 마치기라도 한 듯 한심한 한숨과, 비루하게 추락하는 한심한 미래와, 그런 한심한 나에게 다시 한심한 인간이라 질책하는 비겁한 나. 2분. 하루에 720번, 일 년이면 262800번 반복되고 있을 누군가의 2분. 구겨진 듯 움츠려 바들바들 떨고 있을 수많은 누군..

Film/Animation 2020.06.14

Starry starry night _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훈 감독

# 0.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단순하지만 힘 있는 몇 개의 선과 색이 관객의 마음속 밤하늘을 눈부신 별빛으로 가득 수놓습니다. '이종훈' 감독, 『별이 빛나는 밤에 :: The Starry Night』입니다. # 1. 별이 빛나는 밤. 풍성한 수염의 노인은 작은 반려견과 함께 익숙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납니다. 음악을 듣고 바다를 보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내달리고. 바닷바람이 이끄는 쓸쓸한 밤의 해변에서 흩날리는 낙엽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인을 만납니다. 꽃내음과 강아지와 노을 산책과 스쿠터와 밤하늘을 사랑하는 그녀. 그녀는 오래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 노인의 사랑입니다. # 2. 감독은 별이 가득 빛나는 밤을 올려다보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여러 색깔의 감수성들을 효과적으로..

Film/Animation 2020.06.04

회화의 역습 _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 0. 모티브가 되는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이식해 온 듯한 영화입니다. 아니 어쩌면 반격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 상업성으로 무장한 현대 영화라는 막강한 대중예술에 폐퇴한 근대 회화 미술의 역습이랄까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Shirley: Visions of Reality』입니다. # 1.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작품 13점을 가져다 13개의 씬으로 재구성한 후 이어 붙여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모티브가 되는 고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구태여 분리해 다룰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작가의 미술 철학에 대해 논하는 게 가당치 않다는 걸..

Film/Drama 2020.06.02

꽉찬 육각형 _ 해피 피트, 조지 밀러 감독

# 0.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좋은 대중 영화라 평할까요? 아무래도 이야기가 직관적이고 쉬우면 좋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뻔하기만 해서는 곤란할 겁니다. 등장인물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되 그들의 구분과 관계는 선명하면 좋을 테고요. 남녀노소 모두가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 들을 거리가 풍성하면 좋겠죠. 코미디든 스릴러든 뭐가 되었든 지향하고자 하는 장르적 재미가 확실하면 더욱 훌륭할 겁니다. 새로운 영상 기술이나 기법을 경험할 수 있다면 땡큐, 그게 단순한 기술 자랑을 넘어 고유한 정서를 건드려 주기까지 한다면 때댕큐겠죠. 사회적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테구요. 혹 그 이상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까지 한다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일 겁니다. '조지 밀러' 감독, 『해피 피트..

Film/Animation 2020.05.22

배드에스 안티테제 _ 해브 어 굿 트립, 도닉 케리 감독

# 0. 마약은 하면 안 됩니다. 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나쁘고 위험하고 건강에도 안 좋고 뭐 그렇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 나쁘고 위험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역으로 그것을 감수하는 순간의 자신이 멋있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과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도닉 케리' 감독, 『해브 어 굿 트립 :: Have a good trip』입니다. # 1.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 '아론 에크하트' 주연의 『흡연, 감사합니다』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달변가 사기꾼이 담배 팔다가 아들 숙제 몇 번 도와주고 금연 패치로 암살당할 뻔한 후 컨설턴트로 전업한다는 영화인데요. 그 작품을 보다 보면 주인공 '투페이스'가 대중들에게 담배를 팔아먹기 위해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Documentary/Social 2020.05.20

그림 일기 _ 새들의 노래가 들려요, 트리네 발레비크 호비에르그 감독

# 0. 내전을 겪은 후 라이베리아 난민촌에서 지내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출신 아이들과의 대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8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입니다. '트리네 발레비크 호비에르그' 감독, 『새들의 노래가 들려요 :: When i hear the birds sing』입니다. # 1. 감독은 카메라 앞에 앉은 아이들의 목소리만을 온전히 주목합니다.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지금 심정은 어떠한지, 장래의 꿈은 무엇인지 따위를 질문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질문 그 자체 조차 영화 속에 담아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상황을 부연 설명하는 대목에서 조차 간결한 텍스트를 통해 정보만 전달할 뿐, 그 흔한 내레이터 조차 일절 쓰지 않습니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들이 높은 현장감을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현장감을 ..

Documentary/Social 2020.05.11

아이가 쓴 동화 _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단순한 이야기, 동화적인 그림체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제법 난해합니다. 이후의 글에선 이 난해함이 대한 제 개인적인 인상과 해석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만 언제나와 같이 헛다리 짚는 뻘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냥 이렇게 본 놈이 하나쯤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벼랑 위의 포뇨 :: 崖の上の ポニョ』입니다. # 1.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이름값이나 흥행에 비해 왜 그리도 욕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엉성하고 조악하게 접붙여져 있거든요. 벼랑 위에 사는 꼬꼬마가 우연찮게 인면어를 득템하고 제초제 뿌리는 수상한 아저씨를 지나 엄마 차 타고 어린이집을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방생했더니 쓰나미가 몰려와 사람으로 만들어 환..

Film/Animation 2020.04.29

깔-끔 _ 자니 익스프레스, 우경민 감독

# 0.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깔끔한 코미디입니다. 어쩜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을 수 있을까요. '우경민' 감독, 『자니 익스프레스 :: Johnny express』입니다. # 1. 유쾌하고 명쾌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 아래 연상할 수 있는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소집합니다. 관객에게 코미디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줘야 하는 순간을 판단하고 좁은 공간 안에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코미디가 작동하는 순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연출을 동원해 호흡을 조율하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반복된 연출을 통해 리듬감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순간에 대한 판단과 템포 역시 너무도 적절합니다. 재난 영화들의 클리셰를 가져와 볼륨에 걸맞지 않은 안정감을 꾀하면서도, 그것을 변주해야 할 땐 과감히 비틀어 지루..

Film/Animation 2020.04.23

무던히 털고 일어날 수 있었으면 _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슬슬 선풍기를 꺼낼 때가 온건가 싶은 생각과 먼지 낀 선풍기를 닦는 것에 귀찮다는 생각이 겹쳐 드는 늦은 봄과 초여름의 중간 즈음 어느 날. 아직 시원함보단 쌀쌀함에 조금은 더 가깝지만 그렇다고 춥다고 잘라 말하기엔 어딘지 호들갑을 떠는 것만 같은 평일의 오후. 둘이 살기엔 조금 답답하지만 홀로 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호젓한 작은 자취방의 창밖으론 한적한 자동차 소리, 어쩌면 지긋한 기차 소리가 썩 나쁘지 않은 호흡으로 적막을 깨고. 멀찌감치 드문드문 들려오는 이름 모를 누군가들의 재잘거림과, 여백을 메우며 멈춘 듯 흘러가는 구름을 멍청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표정한 뺨 위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순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입니다. 잃어버린 무언가와 잃어버린 무언가들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들. ..

Film/Animation 2020.04.21

무능한 사람의 선량함 _ 시타라,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 0.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팔려가듯 시집 가게 되는 파키스탄의 어린 소녀들. 자기 실현의 기회를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그라들고 마는 소녀들의 가능성과 폭압적 풍습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조적으로 풀어낸 작품. 뭐 그런거라는 건데요.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시타라 - 렛 걸스 드림 :: Sitara - Let Girls Dream』입니다. # 1. 메시지고 나발이고 할말은 해야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무신경합니다. 어린 아이가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이 뻔하고 또 뻔뻔한 영화입니다. 감독이 영화를 찍은 이유는 책이나 기사 등의 여타 매체에 비해 관객이 더 많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이유는 표현하기에 ..

Film/Animation 2020.04.07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

Film/Animation 2020.03.14

라기보다는 _ 이웃집 야마다군,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 0.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만화. 만화라기보다는 낙서. 음악이라기보다는 노래. 노래라기보다는 흥얼거림. 대사라기보다는 수다. 수다라기보다는 온기. 영화라기보다는 이야기.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이웃집 야마다군 ::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입니다. # 1. 귀엽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소박하고 소탈하고 소담하고 앙증맞습니다. 무난하고 삼삼한 우리 사는 이야기와, 평범한 사람들 나름의 진지함과, 그럼에도 잃지 않는 본질적인 귀여움입니다. 일전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정신적 후계자라는 '포녹 스튜디오'의 단편선의 리뷰에서, 일본의 드라마 영화의 매력을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 역시 좋은..

Film/Animation 2020.03.12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

Film/Animation 2019.12.04

코믹스 맛 _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 피터 램지 / 로드니 로스먼 감독

# 0. 영화에 만화나 소설을 그대로 이식하게 되면 괴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재용 감독의 , 오기환 감독의 , 덩컨 존스 감독의 , 이 분야 끝판왕 황예유 감독의 과 같이 남들이 무수히 나자빠지는 걸 보면서도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먹어 보던 이 영화들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이런 류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감독들은 코믹스의 캐릭터나 플롯, 주제의식 따위들만을 선택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가져온 후 영화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나 박찬욱 감독의처럼 말이죠.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감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입니다. # 1. 영화는 앞서 나열할 작품들과는 ..

Film/Animation 2019.11.07

화가가 만든 영화 _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감독

# 0. 그림 그리려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메시지와 서사와 캐릭터와 플롯과 연출과 대사와 그 외의 모든 영화 안팎의 요소들을 '표현'이 압도합니다. 독창성도 독창성이거니와 화가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양식이 절대적인 희소성을 부여합니다. 분명 이 영화가 제공하는 감각을 다른 영화로 비유하는 건 미련한 짓일 겁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 :: Loving Vincent』 입니다. # 1.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선명한 인상은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통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12 프레임의 이물감 역시, 되려 심장의 박동처럼 ..

Film/Animation 2019.10.29

인형극의 매력 _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루이 르테리에 감독

# 0. '짐 헨슨',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의 프리퀄입니다. 만 사실 관심 없으시죠? 1982년에 개봉한 양키 꼬꼬마들을 위한 판타지 인형극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오래된 원작 역시 넷플릭스에서 함께 서비스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를 보실 분들 중 99.9999%는 전작을 보지 않으셨다는 데 500원 걸겠습니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 The Dark Crystal』 입니다. # 1. 어느 것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굳이 프리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감독이라면 '프리퀄'을 만들 바에야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을 텐데요. 40년 가까이 되어가는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을 테니까요. 원작의 주제의식을 계..

Series/SF & Fantasy 2019.09.12

스튜디오 카탈로그 _ 겸손한 영웅, 스튜디오 포녹 단편선

# 0. 동심을 자극하는 상상력.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 동글동글한 작화. 수채화풍의 다채로운 색감. 이 모든 것들 위로 흘러내리듯 어루만지는 음악까지. 아! 이거 '미야자키 하야오'네요. 2000년 전후로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벼랑 위의 포뇨』를 지나오신 분들이라면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도 지브리의 작품들과 풍경과 분위기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단편선을 제작한 '포녹'의 직원들이 '지브리'에서 나온 멤버들이기 때문이죠. 한국 드라마 영화의 특징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긴 진지한 고찰'이라 한다면, 일본 드라마 영화는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

Film/Animation 2019.09.07

안아줘요 _ 안젤라의 크리스마스, 데미안 오코너 감독

# 0. 할아버지가 엄마 '안젤라'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오랜 시간을 건너온 할아버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갔던 '안젤라'의,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넘어서는 근원적 가치에 대한 향수가 포근한 노년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됩니다. '데미안 오코너' 감독, 『안젤라의 크리스마스 :: Angela's Christmas』 입니다. # 1.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로 향하는 '안젤라'의 가족. 엄마도 눈치채지 못한 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입니다. 큰 오빠 품에 안긴 막내는 안젤라의 옷을 받아 입고, 안젤라는 입이 삐쭉 나온 작은 오빠의 옷을 받아 입습니다. 작은 오빠는 다시 큰 오빠 옷을 받아 입고, 동생들에게 코트를 벗어준 듬직한 첫째는 엄마에게 코트를 양보하죠. 가족에게 자신의 것은 없습..

Film/Animation 2019.08.27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Film/Romance 2019.08.23

꿀잼 ⅵ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ⅴ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morgosound.tistory.com # 28. 아이스 에이지, 팀 밀러 감독 팀 밀러는 치사하게 실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라 땡깡이라도 부린 걸까요. 남들은 뼈 빠지게 그래픽 만들고 디테일을 다듬고 작화를 하는 동안 제작자 팀 밀러는 배우 '토퍼 그레이스'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작은 집 한 채를 섭외하는 것으로 영화 한 편을 날로 먹는 데 성공합니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질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성에가 두껍게 낀 ..

Series/Animation 2019.05.06

꿀잼 ⅴ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 morgosound.tistory.com # 23. 행운의 13, 제롬 첸 감독 행운의 13입니다. 등장하는 비행기의 별칭이죠. 그리고 이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앤솔로지의 13번째 작품인 이 단편을 본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행운이 되어줄 테니까요. 이전 단편과 달리 실사에 그래픽을 입혀 놓은 작품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얼굴과 함께 주요 인물들의 모습과 배경의 경계가 묘하게 이질적이죠. 상당한 디테일의 그래픽으로 공중 교전 특..

Series/Animation 2019.05.02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morgosound.tistory.com # 18. 늑대 인간, 가브리엘 펜나치올리 감독 신화적 아이템을 활용해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사회문제를 다룬 에피소드입니다. 감독은 탈레반과 교전 중인 미군에서 용병으로 뛰게 된 늑대 인간을 통해 차별이란 행위와 차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건넵니다. 작품 속 늑대 인간들은 제대로 된 보호구는커녕 군화조차 지급받지 못합니다. 일상화되어버린 종과 관련된 직접적인 모욕을 늘 감내해야 하죠..

Series/Animation 2019.04.29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딱히 리뷰 할 생각이 없었지만 리뷰를 안 하곤 못 morgosound.tistory.com # 12. 독수리 자리 너머, 도미니크 보이든 감독 외 3인 와 정반대 되는,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 실사 지향 애니메이션입니다. 화면의 디테일이 시작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16분여 남짓에만 쓰이고 끝난다는 게 아쉬울 만큼 황홀한 우주 SF 묘사와 압도적인 코즈믹 호러풍 연출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우주 항로 설정 오류로 인해 지구와 한참 떨어진 독수리자리 근처로 표류되어버린 '톰' ..

Series/Animation 2019.04.08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딱히 리뷰 할 생각이 없었지만 리뷰를 안 하곤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몇 편만 골라야지 했 morgosound.tistory.com # 7. 슈트로 무장하고, 프랭크 발슨 감독 테란 멀티에 저글링 짤짤이 오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블러드 수준으로 수천 마리가 몰려오더니 급기야 울트라리스크까지 소환되지만, 적절한 터렛과 적절한 골리앗 몇 기를 적절히 리페어해가며 막는 데 성공함으로써 테사기를 입증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입니다. 굳이 스타크래프트를 그것도 아재 판독기에 가까울 김대기 드립까지 곁들여가며 설명한 이유는 전반적으로 90년대 풍의 블리자드의 단..

Series/Animation 201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