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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아이가 쓴 동화 _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냥_ 2020. 4.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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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단순한 이야기, 동화적인 그림체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제법 난해합니다. 이후의 글에선 이 난해함이 대한 제 개인적인 인상과 해석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만 언제나와 같이 헛다리 짚는 뻘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냥 이렇게 본 놈이 하나쯤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벼랑 위의 포뇨 :: 崖の上の ポニョ』입니다.

 

 

 

 

 

# 1.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이름값이나 흥행에 비해 왜 그리도 욕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엉성하고 조악하게 접붙여져 있거든요. 벼랑 위에 사는 꼬꼬마가 우연찮게 인면어를 득템하고 제초제 뿌리는 수상한 아저씨를 지나 엄마 차 타고 어린이집을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방생했더니 쓰나미가 몰려와 사람으로 만들어 환불합니다. 인스턴트 라면 한 사발 뚝딱 해치우고 엄마 찾아 물놀이 좀 하다가 처음 보는 아기 엄마에게 수프 한잔 선물하고 음습한 터널 지나 양가 상견례 후 헬기 날아다니는 집으로 복귀한다는 이야기(...)라는 게 집중하기 편안한 전개는 분명 아니죠.

 

다만, 이 영화의 엉성함은 다른 실패한 영화들의 그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망작들은 적어도 개연성이 박살 나게 된 이유라는 게 보입니다. "아, 저 부분을 저렇게 엉성하게 처리한 건 저 인물의 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서였구나." 라거나, "아, 저 부분에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건 저기서 이런 효과를 한번 보기 위해서였구나." 라는 식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게 없습니다. 왜 저렇게 뜬금없는 요소들을 뜬금없는 방식으로 다룬 건지 유추가 잘 안됩니다. 대부분의 장치들이 대단히 동화적인 아이템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관습적인 맥락도 목적도 없이 무분별하게 파편화되어 있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어른이 되면 지식이 평탄화 됩니다. 일반적인 상식들을 폭넓게 알고 있는 가운데, 직업이나 취미와 관련된 분야들을 중심으로 마치 정규분포 곡선처럼 완만하고 부드럽게 지식들이 적층 되죠.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상식들은 전혀 모르지만 동시에 아무짝에 연관 없는. 이를테면 '모스 부호'나, '고대 생선'따위에 대한 지식들은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죠... 어라?!

 

 

 

 

 

 

# 2.

 

네. 저는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을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 '소스케'의 시선으로 이해합니다. 영화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등장인물 1인으로서의 소스케가 아니라, 세계를 창작하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화자로서의 소스케 말이죠.

 

파도가 몰아치는 모습을 보며 물고기 떼를 상상하는 동심은 어린아이의 것입니다. 작은 물고기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건 소스케가 이를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소스케가 사람들을 관계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썰을 풀어놓는 순간 화자로서 나름 객관화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몰아치는 스나미가 상당히 과장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롭게 연출되어 있지 않은 건 어린 소스케의 눈에 비친 스나미는 집어삼킬 듯 위압적이지만 동시에 엄마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죠. 포뇨가 햄을 좋아하는 건 그저 소스케가 햄을 좋아하는 편식쟁이 꼬마 아이였기 때문이구요.

 

금붕어가 담긴 물바구니를 든 소스케가 도착한 어린이집은 위에서 강하게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의 공간입니다. 몰래 금붕어를 데려온 소스케가 그런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죠. 반면 포뇨를 대할 때는 소스케를 살짝 아래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려집니다. 이 순간의 소스케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감정으로 충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쿠미코가 등장하는 순간은 눈높이의 수평적 구도로 그려지죠. 이 외에 영화의 구도는 대부분 대상과 상황 그 자체에 대한 함의나 스펙터클과는 별개로, 대상을 대하는 소스케의 심리상태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어른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 소스케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영화가 아니라, 소스케라는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포뇨라 이름 붙인 금붕어와의 상상력을 썰로 풀어놓은 걸, 미야자키 하야오가 잘 소집해 영화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개연성이 없을 수밖에요. 꼬마 아이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개연성 따위가 어디 있던가요. 엄마가 끓여준 인스턴트 라면과 꿀이 듬뿍 든 따뜻한 차를 좋아하는. 작은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우며 친구가 된 세상을 상상하는 어린아이가 어른들과 또래의 친구들을 위해 쓴 동화입니다.

 

 

 

 

 

 

# 3.

 

다만 영화의 2/3 지점 이후 바다의 여신인 그랑 맘마레가 등장하면서부터 관념적이다 못해 제의적인 느낌의 영화로 급선회하게 되는데요. 1. 쓰나미가 몰아친 이후의 바닷속 세상에서, 2. 다리가 불편하던 할머니들이 자유로이 내달리고, 3. 요양원의 할머니들을 찾아 나섰던 엄마는 신과 만나고 있고, 4. 소스케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할머니들이 위로를 보냅니다. 네... 이 정도면 쓰나미로 인해 변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바다의 여신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저세상이라고 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근거들이죠.

 

마치 스틱스 강처럼 큰 강을 스스로 건너 엄마를 찾아가는 소스케와 주인 잃고 버려진 자동차, 멈추라 적혀 있는 일방향의 터널과, 이 길이 싫다 말하는 포뇨는 소스케 역시 엄마가 있는 저승에 다가가고 있음을 은유합니다. 소스케가 엄마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포뇨는 소스케의 따뜻한 상상을 벗어나 금붕어로 되돌아갑니다. 그랑 맘마레와 함께하는 바닷속은 아이의 동화가 아닌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죠. 영화의 마지막 그랑 맘마레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지상으로 올라오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걸어 다니고 포뇨 또한 다시금 사람이 됩니다. 헬기가 떠다니고 아빠가 무탈히 돌아온 이곳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아닙니다.

 

 

 

 

 

 

# 4.

 

정리하자면, 전반부는 어른인 감독이 쓰나미에 휩싸여 엄마와 함께 목숨을 잃은 아이의 영혼을 만나 이 아이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른 채 포뇨라 이름 붙인 금붕어와의 상상 속 이야기를 들려준 것으로 만든 비극적 동화라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감독이 직접 화자로서 개입해 아이에게 무사한 가족과 인간 친구가 된 포뇨를 선물하는 것으로 나름의 헌화를 올렸다. 라고 이해할 수 있겠네요.

 

물론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이 모든 건 제 알량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설령 이 추측이 맞다 하더라도 영화의 난해함이 일부 변호될 수는 있을지언정 정당화될 수 없기도 하구요. 여러모로 관객이 어느 정도 동심에 대한 타협과 밑도 끝도 없는 전개에 대한 아량을 가지고 봐야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따뜻한 동화를 즐기면서 각 요소들의 함의를 곱씹어 나름의 상상력과 추론을 전개하다 보면 여타의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대단히 독특한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벼랑 위의 포뇨』 였습니다.

 

# +5. 

 

위와 같은 시각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면 생각보다 명계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법한 요소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소스케를 엄마에게로 인도하는 신의 딸 포뇨가 등을 들고 다니며 뱃길을 인도한다는 것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군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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