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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화가가 만든 영화 _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감독

그냥_ 2019. 10.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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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림 그리려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메시지와 서사와 캐릭터와 플롯과 연출과 대사와 그 외의 모든 영화 안팎의 요소들을 '표현'이 압도합니다. 독창성도 독창성이거니와 화가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양식이 절대적인 희소성을 부여합니다. 분명 이 영화가 제공하는 감각을 다른 영화로 비유하는 건 미련한 짓일 겁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 :: Loving Vincent』 입니다.

 

 

 

 

 

# 1.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선명한 인상은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통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12 프레임의 이물감 역시, 되려 심장의 박동처럼 몰입감을 높이는 리듬으로 전달됩니다. 높은 프레임수를 통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지향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반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뚝뚝 끊기는 화면이 되려 극적인 느낌을 강화합니다.

 

음영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 힘든 화풍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표현력이 돋보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이라거나, 쏟아져 내리는 비의 질감, 창문을 비집고 얼굴에 떨어지는 빛, 흔들리는 물의 파동과 그 위를 넘실대는 반사된 상 등을 유화로 보는 것만으로 황홀합니다. 영화로서의 서사나 예술로서의 작품성 같은 고매한 것들을 치우고, 평범한 대중의 시선에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이 전해집니다.

 

 

 

 

 

 

# 2.

 

장면 마다마다 차별되는 색감과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빈센트'의 마지막을 회상하는 과거와, 그의 죽음을 쫓는 현재와, 각각의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 모두 뚜렷한 매력을 가집니다. 회상과 현재를 오가는 동안의 장면 전환은 그림이라는 특성이 최대한 활용됩니다. 다른 시간대를 오가는 동안에는 장면이 연기처럼 사그라들고, 같은 시간대의 다른 공간을 오가는 장면에서는 유화를 그리는 마냥 덧대어지는 것이 독특합니다.

 

고정된 배경에서 둘 혹은 셋 정도의 인물들이 대화하는 구도를 통해 움직이는 그림처럼 전개되다가도 필요한 순간엔 구도를 뒤틀며 입체성을 딱! 하고 부여하는데요.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운동성과 역동성에 대한 표현은 화풍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단순히 모티브가 되는 명화를 카피해 이어 붙이거나, 명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과 같은 1차원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시각적 유희를 성공적으로 재현합니다.

 

 

 

 

 

 

# 3.

 

스크린을 가까이 볼 때와 멀리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표현하는 붓질의 단위가 큰 화풍 특성상 가까이서 크게 보면 유화의 질감이나 색감이 크게 두드러져 그림 같은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드는데 반해, 멀리서 보면 픽셀이 자연스럽게 뭉개지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훨씬 수월하게 하는군요. 쉽게 말해 가까이서 보면 '그림'처럼, 멀리서 보면 '영화'처럼 보인 달까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착시처럼 거리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게 재미있니다.

 

'고흐'의 명화들을 발견하게 하는 건 덤이군요. '별이 빛나는 밤', '아를 밤의 카페',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그리고 그 유명한 '자화상' 정도를 전 발견했습니다만,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배경지식이 영화의 감상에 쏠쏠한 조미료가 되어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고흐와 그의 유명 작품들에 대한 소양이 있으신 분들은 훨씬 더 재미있게 영화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 4.

 

다만 표현 이외에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충분한 몰입감을 불러일으키냐라고 물어본다면 애매합니다.

 

결국 '고흐가 죽는 과정에서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대한 의혹이 있다.'라는 정보 외엔 전달되는 바가 희미합니다. 독창적인 표현이 서사와 한데 엉켜 조응하고 있다기보다는 표현과 감각을 위해 영화를 빈약하게나마 지탱할 수 있는 고흐의 죽음이라는 소재를 복무시키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초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표현에서 멈출 것인가, 메시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드는데요. 영화는 이 질문에 충분한 성취를 얻었다 말하기에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고흐에 대한 존경심은 물씬 묻어납니다. 고독감, 번뇌, 현실, 감성, 온기는 전달됩니다. 하지만 그 정서들이 제가 느낀 건지, 순간순간 스쳐 지나는 명화들을 통해 전달받는 건지, 영화가 스스로 창조한 건지는 모호합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사를 변주하거나 북돋우는 데에 실패합니다. '편지 가져다주는 김에 알아봤는데, 사람마다 증언이 미묘하게 달라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대.'라는 한 문장으로 1시간 47분짜리 영화의 서사가 축약됩니다. 이걸로 퉁칠 수 있을 만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만만하지는 않죠.

 

 

 

 

 

 

# 5.

 

미술을 통한 눈뽕은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합니다만, '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고흐의 모방으로서 그의 감성과 감각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어보겠다는 의의에는 충실한 영화입니다만, 거기서 멈춰서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측면에서 밸런스가 무너져 있달까요. 화가가 만든 영화 같달까요.

 

마지막 스탭 롤이 오른 후 감상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만, 그게 이미 죽은 '고흐'의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인지, 갈아 넣은 화가들의 땀이 주는 숭고함인지, 영화의 완성도 덕인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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