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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회화의 역습 _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그냥_ 2020. 6.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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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모티브가 되는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이식해 온 듯한 영화입니다. 아니 어쩌면 반격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 상업성으로 무장한 현대 영화라는 막강한 대중예술에 폐퇴한 근대 회화 미술의 역습이랄까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Shirley: Visions of Reality입니다.

 

 

 

 

 

# 1.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작품 13점을 가져다 13개의 씬으로 재구성한 후 이어 붙여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모티브가 되는 고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구태여 분리해 다룰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작가의 미술 철학에 대해 논하는 게 가당치 않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영화의 매력 대부분은 '호퍼'의 작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죠.

 

씬이 등장하기에 앞서 검은 화면에 쓰인 날짜와 함께 작품이 그려지게 된 배경에 대한 건조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옵니다. 특정한 작가를 테마로 한 미술 전시에서 각각의 그림들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 작품 옆에 쓰인 짧은 설명들을 읽는 것과 유사한 경험입니다. 여러 종류의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소믈리에의 입가심처럼. 각 작품을 구분 지어 고유의 미감을 손상 없이 느끼도록 하는 연출입니다.

 

 

 

 

 

 

# 2.

 

개별 씬 안에서의 사소한 자세나 움직임들 조차 컷 단위로 나뉘어 있습니다. 연기를 하는 배우의 움직이라기보단 화보를 찍는 모델의 움직임에 가깝게 디렉팅 되어 있달까요. 감독은 영화가 아닌 회화의 성격을 최대한 지키고자 합니다. 일련의 구성 위로 말 없는 그림들로부터 인물들의 '사정'을 유도해 내는 방식들이 영화의 볼륨을 확보합니다. 회화를 먼저 선 보인 후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입장과 정서를 높은 집중력의 내레이션으로 풀어냄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부풀려냅니다.

 

 

 

 

 

 

# 3.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액자가 화면을 강하게 움켜쥐는 듯한 화면이 인상적입니다. 미술적으로 재현된 평범한 일상 속 심미적 공간과, 공간을 압도하는 파격적 색감과, 그 색감마저 압도하는 엄격한 기하학적 구도가 펼쳐집니다. 일련의 표현 양식들이 일관되게 복무하는 도시인의 결정론적 고독감이라는 테마는 분명한 전달력을 가집니다.

 

섬세하게 조정된 비켜선 구도와 공백이 주는 허무함. 분절하고 통제하는 선과 가두고 닫는 다층적 프레임의 고압감. 도시의 과장된 화려한 색감과 대조되는 얼굴 위로 깊게 드리운 음영. 인물들의 고독한 정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듯한 빛의 활용 등의 밸런스가 환상적입니다. 네임드 화가의 작품다운 심미적 화면이 스크린 위로 펼쳐집니다.

 

 

 

 

 

 

# 4.

 

속삭이듯 읊조리는 '셜리'의 목소리와 정제된 어휘 역시 극의 성격에 충실히 복무합니다. 작품의 분위기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차분한 호흡의 편집 역시 영화의 목적의식에 부합하죠.

 

대중적으로 이해되는 구체적 장르로서의 애니메이션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회화를 가져와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광의의 측면에선 애니메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영화인지 회화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 작품에 있어 그런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 5.

 

개인적으로 삶을 다루는 회화들을 보노라면 <일상 속 도드라지는 순간의 틈을 찢고 벌려 그 속에 담긴 정서를 낳도록 돕는 산파>와 같다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 작품은 그런 회화 고유의 매력을 친절하게 풀어놓은 설명서이자 미술관으로의 초대장과 같아 보입니다. 앤딩 크레디트와 함께 끝나는 영화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는 발걸음과 함께 끝나는 영화랄까요.

 

다만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의 동기가 관객과 합의된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무덤하게 심미적 미장센이 두드러진 드라마 정도를 기대하고 봤다가는 뒤통수 거하게 맞을 수도 있죠. 드라마는 서사, 즉 내러티브를 즐기는 장르인데, 이 영화에는 서사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6.

 

그렇다고 작품들의 테마만 보고 즐기기엔 영화가 너무 부산스럽습니다. 단편적 회화를 영화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데 있어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었겠습니다만, 그림을 관통하는 <고독감>이라는 테마와 그걸 다루는 영화가 충분히 조응하고 있다는 인상은 희미합니다. 음악이나 음향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배우의 연기력과는 별개로 말이죠. 심미적이기는 한데, 정서적이지는 못하달까요.

 

영화라는 장르와 회화라는 스타일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정작 '호퍼'의 강렬한 색체는 다소 희석된 느낌입니다. 도발적인 실험작이지만 정작 스스로의 의의에 갇혀 있달까요. 희소성과 심미성이 민감한 사람에게는 독특한 경험으로서 호평할 수 있겠으나 정작 영화 스스로는 온전히 감동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달까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회화의 매력과 그걸 풀어내는 스타일은 압도적입니다만, 역설적으로 스크린 밖의 작가가 가져다준 매력을 덜어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그림들에 대한 조예가 깊은 분에겐 존재만으로도 선물 같은 영화일 수 있겠으나, 화풍에 대한 기호가 맞지 않은 분에겐 강제로 맞이하게 된 눈물 나게 지루한 미술관 나들이가 될 수도 있겠네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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