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nimation

허무한 이미지, 건조한 메시지 _ 9 : 나인, 셰인 액커 감독

그냥_ 2020. 7. 3. 06:30
728x90

 

 

# 0.

 

멋들어진 시각적, 철학적 이미지 몇 개만으로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비벼보려 합니다만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입니다.

 

 

 

 

 

# 1.

 

감독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심미적 디자인의 봉제인형 몇 개가 고군분투하는 코즈믹 호러 풍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위로,

2. 거대 기계를 상대로 다양한 직업군의 파티가 레이드를 뛰는 액션 어드벤처를 장르적 동력으로 삼아,

3. 각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 본연의 철학적 가치들의 본질과 소중함을 역설하겠다.

 

는, 뭐 고런 영화죠.

 

# 2.

 

문제는 이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중심축을 엮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러 있고 그림은 그림에 머물러 있고 느낌은 느낌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이야기로부터 조력과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메시지는 건조하게 나열되기만 할 뿐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감각적인 3D 그래픽 아트 앨범을 보는 것만 같달까요.

 

 

 

 

 

 

# 3. 

 

경험, 지성, 직관, 기술, 예술, 용기, 책임, 희망 따위의 각각에 대응되는 관념들을 1대 1로 억지로 짊어지게 된 캐릭터들은 메시지에 철저히 복무하는 '인형'이 되어 생동감을 제한받습니다. 간지 나는 장면 몇 개를 만들기 위해 조작된 위기가 펼쳐지는 동안 캐릭터들은 합리성을 잃고 바보짓을 강요받게 됩니다. 스팀펑크 세계관 위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컬트적 요소들과, 밑도 끝도 없는 호러의 아이템들과,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철학적 은유 따위가 느낌적인 느낌을 위해 파편적으로 동원합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중구난방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천재 과학자가 사람들을 위해 유용한 기계를 만들었지만, 독재자가 마음대로 전쟁에 활용하게 되는데, 갑자기 마개조 된 기계가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한다고 우깁니다. 그냥 그런 걸로 치자고 하죠.

 

 

 

 

 

 

# 4.

 

기계를 만든 과학자는 인류가 사라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분신들을 만드는데 그럴 거면 굳이 또 연약한 봉제 인형으로 분신을 만들었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구요. 회상 장면에 따르면 인류와 기계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1번부터 8번까지는 함께 있었다는데, 그 시점에서 살육 기계를 만든 천재 과학자가 왜 인형 쪼가리나 만들고 있었는 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또한 9번만큼은 왜 굳이 자신이 희생해가며 만들어야 했던 건지도 이해가 가지 않구요. 영화 내내 9번이 다른 인형들과의 어떤 특별한 차별점을 가지지도 않거든요.

 

심지어 인류를 절멸시킨 후 '머신'은 잠들어 있답니다. 왜 갑자기 동력이 다 떨어져 잠들게 된 건지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죠. 심지어 이 '머신'에게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는 원천은 또 과학자가 가지고 있었대요. 아니, 그럼 그냥 폐기하면 되지 왜 9번 손에 쥐어준 거죠? 아니지, 그럼 '머신'이 머잖아 멈출 거라는 걸 알면서 왜 스스로 죽어가면서까지 9번을 만든 거죠?

 

 

 

 

 

 

# 5.

 

배경을 지나 주요 서사로 돌아와도 개판이긴 매한가지입니다. '머신'이 왜 인형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지도 도무지 모르겠구요. 9번이야 그렇다 쳐도 1번에서 8번까지는 박사의 영혼이 들어있지 않은 분신들인데, 얘네로부터 대체 뭘 꺼낼 수 있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과상 2번을 포함한 모든 인형들은 사실상 9번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과 다를 바가 없구요. 마지막 생고생해가며 머신을 고장 낸 후 인형들의 영혼을 꺼낸다 하기에 당연히 부활이라도 시키려나 했더니 그냥 방생하며 마무리됩니다. 이 결말이랑, 1번이 주장한 대로 무방비 상태의 머신을 그냥 터트려서 죽인 결말이랑 뭐가 다르다는 거죠?

 

아, 다르긴 다르네요. 안 죽어도 될 1번이 더 죽었네요.

 

# 6.

 

3D 기술 자랑, 갬성 자랑을 목적으로 액션 시퀀스에 온 힘을 쏟아부은 15분 안쪽의 단편으로나 다룰만한 소재와 테마와 완성도를 가지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냅다 장편 영화로 만들어버린 듯한 인상입니다. 실제로 영화의 재미는 심미적으로 아름답게 구현된 파편적인 그림들을 감상하는 몇 분과 7번의 아크로바틱 한 액션들을 구경하는 몇 분이 전부였듯 말이죠.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