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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코믹스 맛 _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 피터 램지 / 로드니 로스먼 감독

그냥_ 2019. 11.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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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영화에 만화나 소설을 그대로 이식하게 되면 괴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 오기환 감독의 <패션왕>, 덩컨 존스 감독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이 분야 끝판왕 황예유 감독의 <드래곤볼 에볼루션>과 같이 남들이 무수히 나자빠지는 걸 보면서도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먹어 보던 이 영화들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이런 류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감독들은 코믹스의 캐릭터나 플롯, 주제의식 따위들만을 선택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가져온 후 영화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나 박찬욱 감독의<올드보이>처럼 말이죠.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감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입니다.

 

 

 

 

 

# 1.

 

영화는 앞서 나열할 작품들과는 달리 '다른 장르를 대놓고 가져오면 폭망 한다'라는 선입견을 극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스크린에 코믹스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적용함에도 그 매력이 훌륭하게 살아있습니다. 원작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이식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이채로운 시청각적 영상미를 제공합니다. 방식이라는 게 완성도에 복무하지 않는 중립적 개념이라는 걸 영화는 증명합니다.

 

'영화'라는 들판 위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에 올라탄 '코믹스'가 마음껏 뛰노는 느낌입니다.

 

코믹스라는 원작의 속성과,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소 장르 매력을 포착해 극대화시켜 접붙여 놓은 감각입니다. 감독들 모두 코믹스의 장르적 매력을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며 받아내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 2.

 

말풍선이나 Comics 타입 폰트들의 적극적 활용이 단지 스타일을 기계적으로 차용하는 것을 넘어 캐릭터와 화면의 구도, 대사의 구조 등과 상당한 밀착감을 보입니다.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들 위로 개입하는 캐주얼한 효과음과, 충돌 등의 도드라지는 상황에서의 집중선과 같은 지극히 만화적인 표현들이 가감 없이 펼쳐집니다. 분절해 들어가는 프레임이 되려 역설적으로 만화 컷을 읽는 것 마냥 물리적, 서사적 속도감을 제공합니다. 작품의 정체성과 역동성을 부여하는 2D 요소들과 연속성과 운동성을 부여하는 3D가 교차하고 엇갈리고 때론 충돌하는 독특한 표현 역시 매력적입니다.

 

혹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떠올리실 수도 있을 텐데요.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이 작품은 정통 코믹북의 쨍한 색감과 구도 중심의 연출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힙합풍의 펑키한 느낌을 흉내 내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차이가 나긴 합니다만, 그런 것들을 죄다 차치하고서라도 완성도의 차이가 심합니다.

 

 

 

 

 

 

# 3.

 

그럼 좋기만 한 영화냐? 글쎄요. 일단 이야기가 진부하기는 합니다. 물론 IP 자체가 철학적 측면에서 타 히어로에 비해 운신의 폭이 넓은 캐릭터가 아니란 건 감안하긴 해야 합니다. 힘과 책임의 관계,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의 갈등이라는 틀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갈등하다가 결국엔 '힘에 부합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적 본분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결론으로 한결같이 귀결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이 영화는 이 식상한 주제의식에 '우정과 연대'라는 상당히 딱딱하고 차분한 드라마적인 주제를 욱여넣어 뒀습니다. 진부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죠. 때문에 눈뽕과 별개로 이야기 진행은 손바닥 위에 펼쳐놓은 듯 훤합니다.

 

'아, 쟨 멘토겠구나', '그렇지, 저기선 저거 가지러 가겠지', '여기서 좌절 한번 해 주시고', '그래 봐야 마지막에 극복해 문제를 해결하겠지', '장난치지 마! 어차피 너네 전부 자기 세상으로 살아 돌아갈 거 다 알아!' 

 

감독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을 관객이 이해해 줄 수는 있어도 수용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각종 패러디와 오마주, 제4의 벽을 부수는 연출 같은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요소들이 기능적으로 진부함을 희석시키려 노력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거였다면 세상에 진부한 영화는 없었겠죠.

 

 

 

 

 

 

# 4.

 

캐릭터는 매력적입니다. 그라피티 하는 흑인 꼬맹이 스파이더맨, 매너리즘에 빠진 배 나온 피터 파커, 힙하고 췰한 히로인 스파이더 그웬, 중간 보스의 포스와 정체, 메인 빌런의 존재감까지. 하지만 캐릭터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스파이더맨 누아르'와, '페니 파커'와, '스파이더 햄'은 '집단'으로서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캐릭터죠. 작품이 규정한 스테레오 타입의 인간형을 벗어난 캐릭터라 안 그래도 따로 노는데 대접까지 부실하다 보니 영화의 주요 서사에서 아예 동떨어지며 순간순간의 액션을 충당하는 바람잡이가 되어버립니다. 그웬은 그나마의 매력을 가집니다만 그건 서사로부터 충분히 힘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캐릭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매력 덕에 살아남은 것에 가깝죠. 

 

간단히 말해서 모든 인물 관계가 '주인공과 배 나온 피터 파커와 그 외 떨거지들'이 되어버렸달까요. 나머지 캐릭터들이 나름의 자의식과 독자적 캐릭터성을 가지는 가운데 주인공이 이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 반전을 이룬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해 나머지 스파이더맨들이 도구적으로 동원되어 버린 듯한 인상이 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로 가든지 간에 손오공이 이기겠지, 어찌어찌해 봐야 결국엔 나루토가 이기겠지 라는 식의 점프형 소년만화를 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5.

 

전체적으로 『슬램덩크』나 『드래곤볼』과 같은 오래된 만화책을 다시 읽는 느낌입니다. 내용은 훤히 보이고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굴러갈지도 훤히 알고 있지만, 장면 장면의 두근거림이나 연출의 묘가 살아 있는 덕에 알고 봐도 재미있는 작품이랄까요. 초사이언이 되어 '프리저'를 노려보는 '손오공'이나,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이 장면들이 처음 봐서 재미있는 건 아니죠. 그냥 간지 나니까 잘 만들었으니까 재미있는 거지.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감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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