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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겉멋 올인 -2- _ #살아있다, 조일형 감독

그냥_ 2020. 9.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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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기자기한 트랩과 북유럽 감성 자연주의 텐트를 뚝딱 만들어 재끼는

작고 귀엽지만 생존력은 만렙인 똘똘한 여캐

 

 

는 인간적으로 너무 식상한 것 아닐까요. 대체 왜 자기 집 거실 한복판에서, 썩어 나는 조명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켜 놓은 채, 담요를 둘둘 감아 만든 아동용 임시 텐트 안에서, 불편하게 대기를 타는 건지 1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래도 감독님이 영화를 찍을 즈음해서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에 꽂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 한 방울이 아까워 날짜별로 마킹해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마셔야 하지만 화분에는 물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갬성충 유빈의 모습은, 감독이 자신이 지금 뭘 만들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딴에는 갬성에 취해 넣은 설정이겠지만 장르적인 면에선 영화 스스로 자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죠. 좀비 호러 영화가 되었든 고립 생존 영화가 되었든. 어쨌든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다루는 '재난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그 재난을 절박하고 진지하게 여기는 것 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당연하죠. 당사자조차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재난을 관객이 공감해줄 리 만무하니까요.

 

 

 

 

 

 

# 10.

 

컵라면 끓여 먹기와 힙합 음악 들으며 춤추기에 이어 영화를 포기할 뻔한 세 번째 위기는

소방관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 에서였습니다.

 

좀비가 유빈의 집 베란다로 이어진 줄을 보고 줄의 반대쪽 끝에 사람이 있을 거란 상황을 추론하고(!), 줄을 잡고서 클라이밍을 하다 못해(!), 스파이디에 빙의해 난간에 매달려 벽을 훌쩍훌쩍 오르는 장면(!)까지 도달하면, 내가 지금 이딴 걸 봐서 뭐하나 싶은 심각한 현타에 빠지게 됩니다.

 

참고로 감독은, 허공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의자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좀비의 부실한 운동능력과, 문고리 하나 돌려 열지 못해 유리를 때려 부수는 좀비들의 낮은 지능과, 수많은 좀비가 매달려서도 사람 한 명 제압하는 걸 실패하는 부족한 수행능력을 스스로 묘사합니다. 이쯤 되면 슬슬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퇴고 한 번이라도 하긴 한 걸까 라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하죠.

 

 

 

 

 

 

# 11.

 

아무래도 감독은 영화를 찍는 즈음해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뒀던 드론을 사서, 너무너무 즐거웠던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드론이 쓸데없이 자주 등장할 리가 없습니다.

 

 

 

 

 

 

# 12.

 

좀비물에서 스팟을 이동하는 경우는 '더 나은 조건의 안전지역이 존재함을 명확히 확인한 경우'에 한합니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 물자와 안전이 담보된 목표가 있다. 그 조건은 좀비 떼를 뚫고 지나가는 위험을 감수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라는 전재가 필요하다는 건 영화에 대한 상식 이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일반 상식의 범주입니다. 주인공 준우와 유빈이 근거리 파밍을 나서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집을 내던지고 다른 공간으로 내달릴 때는 "8층에 사람 없던데?" 따위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는 근거를 설정했어야 한다는 의미죠.

 

참, 파밍 얘기가 나온 김에,

 

1. 왜! 때 마침 근처에 등산에 환장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던 건지

2. 왜! 이 등산 마니아는 침대 놓는 침실을 등산 장비 창고 겸용으로 쓰고 있었던 건지

3. 왜! 그 침실에는 등산 매니아 아저씨가 아닌 이상한 여자가 곱게 누워 죽어 있었던 건지

4. 왜! 등산 장비 한가운데 밑도 끝도 없이 먹다 남은 누텔라가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제보를 기다립니다. 02-XXX-XXXX

 

추가적으로, 식수가 부족함에도 가스버너에 짜파게티를 쳐 끓여 먹을 정도의 여유로운 멘탈리티와, 오감이 살아생전 인간과 동일하다는 좀비들이 왜 음식을 조리하는 동안의 '소리'와 '냄새'에는 반응하지 않는 건지에 대한 설명과, 소리가 좀비들의 어그로를 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시끄럽게 쏟아질 법한 짐짝을 젠가마냥 쌓아두는 이유와, 빗소리와 혼동될 법한 큰 소리를 내며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간 사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같은 번호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13.

 

유빈에겐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까짓거 건물 아래론 잘만 뛰어내립니다. 뛰어내리자마자 잠시 무방비 상태에 놓이지만 우리의 착한 좀비들은 우물쭈물 대며 기다려 주죠. '손도끼 살인마'에서 '데스 사이드 휘두르는 리퍼'로 전직한 여주는 호쾌한 액션과 함께 『진 삼국무쌍』을 찍습니다. 직전까지 자기 집으로 좀비 몇 마리 몰려온다고 눈물 글썽였던 건 아무래도 전직에 필요한 경험치가 실금이었나 보죠. 우리의 좀비들은 닫힌 문 따위를 덮칠 때는 겹치고 겹쳐가며 무자비하게 달려들지만 유독 주인공을 공격할 때만은 번호표 뽑아가며 순차적으로 덤벼들어 주십니다. 매너 겜 감사요.

 

 

 

 

 

 

# 14.

 

드론에, 인방에, 무전기에, 레이저 포인트에, 짜파구리에,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소환하고 나니 인싸템이 다 떨어졌습니다. 아직 영화 분량이 남았는데요. 어쩔 수 없죠. '경찰 캐릭터' 갈아 넣을 때처럼 새로운 캐릭터를 하나 더 투입하는 수밖에.

 

이상한 아저씨가 한 명 더 등장합니다. 동시에 밑도 끝도 없이 범죄 스릴러로 장르 변주를 시작합니다. 위기에 빠진 '준우'와 '유빈'을 구한 아저씨는 주인공 커플에게 약을 먹여 '준우'를 기절시키지만, 마스크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기에 '유빈'은 공교롭게도 기절하지 않습니다. 굳이 고생해 살려낸 사람들에게 약을 먹인 이유라는 걸 들어보니... 이미 좀비가 된 마누라에게 먹일 인간이 필요하다 말하는군요. 그러니까...

 

 

 

좀비가 배가 고프다

 

 

 

라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이쯤 왔으면 그러려니 합시다. 미친 상황이고 미친 영화니 아저씨도 그냥 미쳤다 칩시다. 근데 사람을 먹이로 먹일 거라면 바둥거리는 유빈보다는 깔끔하게 기절한 준우를 던져주는 게 훨씬 쉽지 않나요? 아니지. 그 이전에 좀비 마누라가 내는 소리에 이끌려 다른 좀비가 진즉 몰려 들었을 텐데 어떻게 조용히 시킨거죠? 아니 그것보다 도심 한복판에서 애기 키우는 신혼부부가 연막탄은 어디서 난거야? 아니, 아니지. 더 이전에 좀비가 된 마누라한테 줄은 어떻게 맨 거예요? 좀비가 되기 전부터 줄을 매고 살았던 건가? 아저씨 그런 취향이었던 거야?

 

 

 

 

 

 

# 15.

 

대단히 억지스럽지만 어찌어찌 아저씨와 좀비 아내를 처치한 두 주인공. 그 개고생을 하고 나더니 갑자기 스스로 죽겠답니다? 저런... "인간으로서 죽겠어!!" 이런 류의 중2병이 그 순간 또 도졌나 보군요. 하지만 영화 말미에 주인공이 스스로 죽을 리는 없으니 어차피 '준우'가 총을 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디서 무전이 들려오든 라디오가 들려오든 할 겁니다. 그리고 역시나 헬리콥터 소리가 윙윙. 최종 탈출미션 떴네요.

 

왜 갑자기 극혐 슬로우와 1인칭 화면이 나오냐구요? 『엄복동』 보니까 클라이맥스에선 그렇게 하던데요? 시종일관 나자빠지고 둘러싸이지만 좀비가 절대 이빨을 들이밀지 않는 이유가 뭐냐구요? 주인공이잖아요!

 

 

 

 

 

 

# 16. 

 

결말 역시 실소를 금하기 힘듭니다. 무려 군인이 구출을 하러 오거든요. 상식적으로 군대가 멀쩡히 유지되고 있었다면 좀비 사태를 20일이나 방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철갑을 두른 장갑 병기를 좀비가 극복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좀비 디스토피아 물들은 처음부터 군대를 붕괴시키고 봅니다. 전쟁 직후라 여력이 없다던가, 군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가 배경이라던가, 애초부터 발원지가 군 내부여서 대응도 하기 전에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다른 감독들이 좀비를 다루면서 구출을 '퇴역 군인 등으로 조직된 자경단'에게 맡기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시외에서 도심으로 간 것도 아니고. 도심 안에서 몇 분 헬리콥터 타고 파닥거렸다고 갑자기 문자랑 카톡이 막 터진다구요?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격리될 정도면 완벽한 디스토피아라고 봐야 하는 데, 뭐? 사망자 추산 5만 명이라구요?

 

'좀비 호러물'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생존 재난 영화'였고. '생존 재난 영화'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꼼냥 꼼냥 장거리 로맨스'였고. '꼼냥 꼼냥 장거리 로맨스'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범죄 스릴러'였고. '범죄 스릴러'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코미디 영화'였다 이건가요? 어쩌면 진짜 장르의 마술사는 '봉준호'가 아니라 '조일형' 감독이었던게 아닐까요? 아카데미 딱 기다려라.

 

 

 

 

 

 

# 17.

 

'서사'가 들어가야 할 자리를 '겉멋'과 '인싸템'으로 채우고, '장르 경험'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중2병'을 채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려 개봉한 지 두어 달만에 IPTV를 초고속 돌파한 후, 넷플릭스에 떠넘기기였네요.

 

수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는 데 성공하셨을 다른 관객 여러분들과, 그 누구보다 끝까지 영화를 본 제 자신에게 칭찬을. 『킹덤』과 『부산행』에 낚여 이걸 사들인 넷플릭스와, 좀비 분장하고 개고생 했을 조-단역 배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조일형'감독, 『#살아있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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