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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전봇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 _ 돌아오는 길엔, 강동완 감독

그냥_ 2021. 1.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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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한낮의 피크닉>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처음엔 세편을 묶어 하나의 글로 써볼까 했습니다만 '일상을 벗어나 관계와 삶을 돌아본다'는 느슨한 테마만 공유할 뿐 각 작품이 추구하는 바와 결이 전혀 다르다 느꼈기에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눠 쓰게 되었네요.

 

 

 

 

 

 

 

 

'강동완' 감독,

『돌아오는 길엔 :: On the Way Back』입니다.

 

 

 

 

 

# 1.

 

앞만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입니다. 네 사람은 영화 시작부터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 하나 원만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가족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외면하는 가운데,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는 또 상처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키워드는 단절입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후 주차된 차의 짐을 내리는 장면은 감독이 영화의 배경을 가장 선명하게 소개하는 씬입니다. 화면 한가운데를 회색의 전봇대가 과감하게 가로지릅니다. 일반적으로 '선'은 분리 혹은 경계를 의미하곤 합니다만, 일정 두께 이상의 메시브 한 선은 그보다 더 거리감이 강조된 간극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텁게 단절된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적 거리 정도로 보는 게 합리적이겠죠.

 

 

 

 

 

 

# 2.

 

단절은 캠핑장에까지 이어집니다. 나름 놀러 나온 곳에서조차 가족은 일관되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엄마는 스테레오 타입의 엄마다운 걱정을, 아빠 역시 스테레오 타입의 아빠다운 조언을 자식들에게 건네지만, 사실 둘 모두 온전히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욕심 혹은 의무감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자식들 또한 부모의 진심을 캐치하기보다는 자기 나름의 부담감과 불쾌감을 통제하기에도 버거워하고 있군요.

 

어렵게 친 작은 텐트 안에 가족이 나란히 누워보지만 영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등을 대기가 무섭게 평상으로 도망쳐 나온 가족. 아빠는 돌아앉아 맥주를 마시고 딸은 건조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원래 캠핑장 오면 이렇게 할 일이 없냐?" 라 묻지만, 사실 할 일이 없는 건 캠핑장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죠.

 

 

 

 

 

 

# 3.

 

아빠 '창수'는 돈문제로 인한 열등감과 무력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 '미경'은 가족 내에서의 소외감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죠. 아들 '동원'은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담감에 주눅 들어 있고, 딸 '향미'는 아들에 대한 실망감의 반동으로 인한 부모의 높은 기대감에 짓눌려 있습니다.

 

각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 안에서 역할을 정의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한다 말하지만, 말과 태도를 듣게 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쉴 새 없이 자식들에게 조심과 안전을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정작 아들이 드러머인지 보컬인지 알지 못하고 아빠는 딸의 목소리조차 구분하지 못하죠.

 

 

 

 

 

 

# 4.

 

한산한 캠핑장에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다른 가족이 등장합니다. 화려한 펑크룩의 신혼부부군요.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문신>, <담배>, <불> 등의 이미지들 역시 나름의 가치를 가집니다만 개인적으론 그런 문학적 메타포들 보단 옆 텐트 여자와 '미경'의 정갈한 대화가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친자식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자연스럽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이들 부부는 이상적인 가족 관계를 상징합니다. 단, 여기서의 '이상적'이란 말은, <부모가 생각하는 완벽한 자녀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무역회사에 다니지만 휴가 때면 펑크룩을 맞춰 입고 다닐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손하고 속 깊은 딸이지만 보기 싫은 문신을 잔뜩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 5.

 

밴드 음악에 대한 애정을 지운 채 회사만 다니는 아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신을 하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딸 역시 허구에 불과합니다. 반면, 600만 원을 융통하지 못하는 아빠의 절망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 받은 엄마의 좌절감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근데 그, 이거 문신 시댁에서 안 뭐라 그래요?"라는 질문에

 

 

반대하셨었죠. 저희 엄마도 저희 신랑 되게 싫어했었어요.

근데 뭐... 저희가 잘 살고 있으니까.

 

 

라는 대답은 감독이 엄마 '미경'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 아니, 누군가의 가족일 관객 모두에게 전하고 싶어 한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 6.

 

<전봇대>의 단절에서 출발한 가족은 <다리>를 건너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딸의 문신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엄마. 아들의 큰 음악소리에 화를 내지 않는 엄마. 비로소 창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아들의 노래를 듣는 엄마. 여러 가지 감상과 함께 돌아오는 길엔 여운이 가득합니다.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 결말엔 덤덤한 드라마적 감동이 가득합니다.

 

... 물론, 아쉬움이 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운드를 조정하는 과정 일체가 누락된 것마냥 몇몇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긴 합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선의 변화 없이 다툼만이 반복되는 구성이라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기도 합니다. 의도나 의미는 알겠으나, 그와 무관하게 몇몇 아이템들은 너무 도드라져 이물감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래 봐야 이들 모두 억지로 찾아낸 흠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단편 독립영화가 이 정도의 메시지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만 준다면, 까짓거 저 정도 쯤이야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죠. '강동완' 감독, <돌아오는 길엔> 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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