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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의식의 흐름 _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그냥_ 2020. 11.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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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타고나길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만 수능은 유난히도 거하게 조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매년 시월 즈음해서 슬럼프에 허덕이는 빌어먹을 바이오리듬의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무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하튼 그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나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나 연중에 휴일을 거의 가지지 않다가 시월에 몰아 쓰는 게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몽땅 집안에서 태웠습니다만 작년엔 제주를 다녀왔었더랬죠.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했었는데 그거 해보겠답시고 여행도 전부터 운동을 미리 하느라 똥줄 탔던 기억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시 한창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이 최근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빵집이 생겼더라구요. 쓱 스쳐 지나가는 길에 소시지 빵이 보이는 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이 소시지라는 게 다 똑같아 보여도 1+1으로 팔려나가는 편의점 물건들하고 제대로 된 독일제 하곤 차이가 심하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독일이 소시지를 잘 만든다 하더라도 축구는 우리가 더 잘합니다. 막판 이긴 놈이 승자인 건 만고의 진리죠. 그러고 보니 축구하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신정원' 감독,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 Night of the Undead』입니다.

 

 

 

 

 

# 1.

 

보통의 영화들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목표란, 작품의 퀄리티나 결말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정서의 방향성을 뜻하죠. 결말이 통째로 눈에 뻔히 보이는 영화는 목적지를 잃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망작일 뿐입니다.

 

가령, <올드보이>의 초반부를 본다고 해서 메인 빌런 이우진의 존재와 오대수가 갇혀 있어야 했던 이유 따위를 포함한 이후의 전개에 대해 유추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어찌 되었든 주인공은 오대수고 이 오대수라는 인물을 15년씩이나 가둬두었던 이유와 그 존재를 쫓는 과정을 담은 철학적 메시지를 과격한 스타일에 담은 액션 스릴러일 것이라는 것만큼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플롯과 장르의 변주가 대단히 화려한 <기생충>조차도 각기 다른 경제 계층을 대변하는 두 가족 간의 충돌과 그 과정에서 파생된 복합적 정서 및 메시지라는 방향성 정도는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 수 있죠. 눈썰미가 나쁜 저 같은 평균 이하의 관객도 알 수 있을 만큼 영화 시작 20여분 안에 작품의 목적지를 파악하는 건 일반적으론 쉬운 일입니다.

 

 

 

 

 

 

# 2.

 

이 영화는 그게 안보입니다. 목적지가 안 보여요. 동네 하천에 떨어진 모자이크 터미네이터에서 출발한 영화가, 대체 왜 혼자만 비겁하게 나이를 먹지 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정현의 손발 오그라드는 멜로를 지나, 이미도의 질펀한 사투리를 곁들인 동창생 간 시기 질투의 드라마를 건너, 브로콜리 양동근의 능청스러움을 끼얹은 불신의 치정극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본 이후론 정색만 해도 오금이 저릴 것만 같은 서영희의 호러에 발을 살짝 담근 후,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스릴러를 향해 나아갑니다.

 

새하얀 운동화를 신은 단아한 여주가 뚝배기를 삽자루로 갈기는 호쾌한 액션과, 구리구리 양동근이 십수 년 만에 소환되어 펼쳐 놓는 혼신의 바보연기와, 산등성이를 내지르는 시트콤 스타일의 좌충우돌 카체이싱과, 어처구니없는 외쿡인 단역 배우들의 영어 대사들과,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익숙한 아저씨의 얼탱이 없는 전기 고문 장면과, [감전 주의] 표지판의 훼이크를 지나, 슈퍼맨 부럽지 않은 초현실적 히어로 액션에 도달하기까지. 런타임이 20분도 채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영화가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아니. 가고 있긴 한 건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실로 엽기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친 듯이 뻗어 나가는 전개 사이사이로 촘촘히 채워 넣은 밑도 끝도 없는 막 개그와, 패턴을 즐기는 반복 개그와, 그 패턴을 다시 한번 비트는 반전 개그가 우르르 쏟아지는 가운데. 그 싼마이 막 개그를 끝내주는 연기력과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겸비한 베테랑 배우들이 그야말로 몸을 던져 접수합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인물들은 과장된 만화적 캐릭터들이라 무지막지하게 강렬하고 선명한데, 그 캐릭터성 역시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이리저리 뜬금없는 개그 한방에 기꺼이 투척됩니다.

 

 

 

 

 

 

# 3.

 

영화감독  '신정원' 입니다.

 

의식의 흐름이 이끄는 대로, 감독의 개그 본능이 이끄는 대로. 무언가 재미있겠는데? 싶은 방향으로 세상 자유롭게 휘두르는 창의성과 호기로움입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캔 까놓고 대여섯 시간 노가리 까는 것만 들어도 세상 즐거운 동네 형의 찰진 입담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막 만든 영화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법 잘 만든 영화인 것 역시 분명합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분명 병신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존나 멋있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지금에야 각종 커뮤니티마다 휘발적으로 등장했다 사라지는 밈들이 많으니 이 병맛 코드가 해석이라도 가능하죠. <시실리 2km>가 나오던 시기에 이 영화를 직관했던 충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잊을만하면 무덤에 그늘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에 올라 톱질을 하던 티티엘 소녀와, 공구리 쳐진 94년생 우현의 앳된 미모에 가위눌리곤 하는 관객이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죠.

 

 

 

 

 

 

# 4.

 

늘 그렇습니다. 필연적으로 정신없는 전개에 대한 인내심은 필요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막무가내에 대한 이해심도 필요합니다. 마우스 휙휙 그려 던지고 치우는 커뮤니티 웹툰을 볼 때의 날아갈 듯 가벼운 멘탈리티가 필요합니다. 뜬금없이 불타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밈을 즐길 때와 같은 무신경한 감성 역시 필요합니다. 보통의 영화들처럼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조직하며 따라가겠다고 덤벼들었다간 미친 듯이 짜증이 셈 솟을 수 있습니다. 일말의 주저 없이 말장난 한방을 위해 시퀀스 전체를 통째로 투척하는 연출을 받아들일 수 없는 관객에게 충분히 불쾌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언제나의 신정원 표 영화들처럼 영화관에서 참패했습니다만. 애초에 영화관의 팝콘보단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먹고 마시는 땅콩, 맥주와 함께할 때 진가를 발휘하는 영화에 훨씬 가깝습니다.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적당히 줄이겠습니다. 흔히 반전 영화나 스릴러, 혹은 호러 영화가 스포일러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생각되곤 합니다만 사실 스포일러에 가장 민감한 장르는 코미디이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리뷰에서 막무가내로 스포일러를 질러왔던 주제에 조심하는 모양새가 민망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만큼은 보게 되실 분들이 제 썰에 방해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무지막지하게 코드를 타는 감독과 그런 감독이 만든 영화임엔 분명합니다. 각 봐서 아니다 싶으시면 얄짤없이 거르세요. 다만, 코드만 맞으시다면 정말 2시간 배 째고 웃을 수 있으실 겁니다. 이 영화의 코미디 경험은 적에도 제가 아는 한 다른 국내 감독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신정원 감독,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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