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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그림자의 성녀 _ 세인트 모드, 로즈 글래스 감독

그냥_ 2021. 8.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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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한 톨도 새지 않게 꼭꼭 눌러 담아 응축된 광기의 에너지

 

 

 

 

 

 

 

 

'로즈 글래스' 감독,

『세인트 모드 :: Saint Maud입니다.

 

 

 

 

 

# 1.

 

피를 뒤집어쓴 얼굴, 내면의 무언가가 망가진 사람의 눈을 한 여인이 고개를 들어보지만 머리 위엔 막힌 천장의 모서리와 혐오스러운 벌레 한 마리뿐입니다. '모드'는 작은 골방에 살고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바깥의 소리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모양의 창이 닫히며 조용해 집니다. 사회와 단절된 공간은 마치 감옥의 독방처럼 보입니다. 무언가 '죄'를 짓고서 홀로 감옥에 갇힌,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인격입니다.

 

그녀는 호스피스입니다. 새롭게 일하게 된 곳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 방 밖을 나섭니다. 빛이 스며드는 좁은 골목이 마치 어둠을 비집는 '틈'과 같은 구도로 그려집니다. 여인은 빛이 스며드는 틈을 지나 걸어갑니다.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저택에 다다릅니다. 네, 이 작품은 죄를 지은 사람이 스스로를 가둔 정신적 감옥에서 나가려는 동안의 비극입니다.

 

 

 

 

 

 

# 2.

 

무용수 출신의 환자 '아만다'는 여러모로 '모드'와 강하게 대칭된 인물입니다. 금욕적이고 수동적이고 정신적인 '모드'와 달리 쾌락적이고 능동적이며 육체적인 인물이죠. 성경에서 성스러운 존재들과의 대칭적 구도를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창녀 등의 코드가 활용되곤 하는 것을, 쾌락주의적 성향의 무용수로 순화한 것이라 이해한다면 적당하겠네요.

 

사무적 관계의 두 사람은 고독감을 매개로 급속히 가까워집니다. 침실을 나서는 '아만다'가 '모드'를 불러 세운 첫마디도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였더랬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있어 '모드'가 대신 전하는 내세에 대한 신앙적 세계관은 달콤합니다.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 '아만다'는 '모드'에게 "나의 구세주"라 말하게 되고. 이는 의료 사고 이후 죄책감과 구원에 대한 집착이라는 신기루 속에 허우적대던 '모드'의 내면에 치명적인 불씨가 되고 말죠. 

 

 

 

 

 

 

# 3.

 

그리고... 여기까지가 유의미한 서사의 전부라 해야 할 겁니다. 이후에 '모드'가 실직하고 섹스하고 복수하고 분신하는 걸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만, 그 동안에 정서적 전개라고는 대단히 느리고 촘촘하게 전개될 뿐이거든요.

 

물론 후반부에서 역시 종교적 광신에 대한 표현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절절하고 섬뜩하게 그려내기에 장르적 재미는 있습니다. 고통의 선명성이 역설적으로 그녀가 신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묘사합니다. 목적 없는 고통과 불순한 희생은 결코 성스러워질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에 집요하게 소집됩니다.

 

만, 구태여 글로 옮길만한 성격이냐 하면 그렇지는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메시지의 발전이 깊이를 만들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구요. 종교에 대한 고유의 해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종교는 그저 구원을 갈구할 수 있는 맹목적인 무언가로 치환되어도 무관합니다.

 

 

 

 

 

 

# 4.

 

정신적 구원을 위한 육체적 파괴라는 모순된 인간의 비극에 몽땅 때려 박은 영화입니다. 연출력 역시 그녀의 심리상태를 암시적으로, 문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철저히 주력합니다.

 

미술적인 맛은 인상적입니다.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과감한 음영, 독특한 화각의 렌즈 선택과 도전적인 클로즈업이 작품의 지배적 분위기를 구현합니다. 호러 풍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동시에 서늘한 종교적 세계관의 육중함을 함께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건 분명 유의미한 성취라 해야 하는 거겠죠.

 

동선과 공간 구성도 썩 흥미롭습니다. 곧은 일직선의 동선을 가로지르는 단호함과, 그 결과가 끊임없이 서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방사형의 공간 중앙에 고립되는 형식의 반복이죠. 거울에 둘러싸인 식당도, 유사 성행위를 하는 화장실도, 섹스를 나누는 침실도 '모스'의 방과 같은 공간으로 연결됩니다. 모든 곳이 감옥이죠.

 

 

 

 

 

 

# 5.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종교는 빛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RPG 게임 성기사들이 괜히 빛 속성 물리뎀을 정수리에 꽂아 넣는 게 아니죠. '로즈 글래스' 감독은 이 빛의 이미지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단순히 빛을 '성스러운 이미지의 차용'을 넘어, 작중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계된 메타포로서 기능케합니다. 플롯 속에서의 빛의 세기와 질감, 특히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영화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림자의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깊게 드리우는 그림자를 그려 낸 영화죠. 앞서 말씀드린 인물과 오브제가 빛에 노출되는 순간들은 메시지에 강한 반동을 주기 위한 기능적 장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인물이 그림자에 숨어드는 순간. 그 순간에야 비로소 가짜 성스러움이 걷어진 '모드'의 진짜 내면이 뾰족한 바늘처럼 노출됩니다.

 

 

 

 

 

 

# 6.

 

작품 특성상 <독백>은 영화와 주인공의 고독감을 표현하는 주요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을 텐데요. 효과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작품을 다소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부정하기 힘들듯 합니다. 상황보다는 대화가, 대화보다는 글이나 독백이 더 큰 피로감과 집중력을 동반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포인트에서 독백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80분이 넘는 영화의 모~~든 전개를 독백에 맡기는 데다가, 독백으로 표현되는 '모드'의 내면이라는 것 역시 특정 순간부터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간증의 되풀이로 귀결되는 탓에 작품 경험까지 함께 늘어지고 맙니다.

 

장르적인 면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끝까지 '모드'가 '아만다'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더 일관성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조심스레 하게 됩니다. 그쪽이 이 인물의 이율배반적인 성격이 보다 선명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부분이라 이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7.

 

호러 영화입니다만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파괴와 폭력의 서사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물인 데다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할 여지가 1도 없는 시나리오로도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도전합니다. 결과물은 기대보다 괜찮습니다. 흔한 점프 스케어나 소름 끼치는 폭력 묘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특히 결말의 1초는 기대 이상의 강한 충격과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느끼는 무섭다는 감정은, '폭력의 방향성'보다 '폭력적 에너지의 크기' 그 자체에 더 가까이 닿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로즈 글래스' 감독, <세인트 모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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