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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유쾌하게 조롱당할 수 밖에 _ 디어스킨, 쿠엔틴 두피유 감독

그냥_ 2021. 3.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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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조르주는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가죽 재킷을 구매한다.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하던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 이 설명을 읽고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어요.

 

 

 

 

 

 

 

 

'쿠엔틴 두피유' 감독,

『디어스킨 :: Le daim』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괴랄한 소개 그대로입니다. '조르주'라는 남자가 순도 100% 사슴 가죽 재킷 하나에 전재산을 꼬라박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털북숭이 호구를 낚은 사기꾼은 등쳐먹은 게 영 찝찝했던지 덤으로 캠코더를 하나 선물하죠. 사슴 재킷을 입고 신난 호구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데 웬 창녀가 직업이 뭐냐 묻자 영화감독이라 구라를 칩니다.

 

의자에 걸쳐둔 사슴 가죽과 복화술 개인기를 뽐낸 주인공은 서점에 들러 우아하게 책을 한 권 훔치고 자신의 결혼반지를 낀 채 머리에 구멍이 뚫린 여관 종업원의 손가락에 입을 맞춥니다. 마누라에게 자본주의 참교육을 당한 '조르주'는 전직 편집자 출신 바텐데 '드니즈'에게 취업사기를 시전해 삥을 뜯습니다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던지 추가 입금을 받아내기 위해 청룡언월도로 사람들을 도륙 낸 후 전리품 또한 낭낭하게 챙기죠.

 

 

 

 

 

 

# 2. 

 

팬타킬은 투명 비옷 살인마가 올렸지만 경험치는 바텐더가 먹었나 봅니다. 만렙 찍은 바텐더가 영화 제작자로 2차 전직을 하거든요. 여주는 경험치 버스 탄 대가로 돈다발과 사슴 풀셋의 마지막 장비를 조공합니다. 사슴 가죽 재킷과 사슴 가죽 바지와 사슴 가죽 모자에 이어 사슴 가죽 장갑까지 착용하려는 찰나. 숨겨진 세트 효과였던 저주가 터지면서 '조르주'의 뚝배기가 날아갑니다. 주인공의 시체가 채 식기도 전에 전 바텐더 - 현 제작자 여주는 도적으로 3차 전직, 시체에서 템파밍 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개소리하지 말라구요? 진짠데요.

 

 

 

 

 

 

# 3.

 

<부조리극>이라 하던가요. '카뮈'가 어쩌구, '고도'가 어쩌구, 세계 대전 이후 '집단 현타' 어쩌구 하는 걸 주워들은 기억은 납니다만 사실 뭔진 잘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겐 적당히 <시니컬한 태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는 것들> 정도로 이해하면 나쁘지 않은 거겠죠.

 

이와 같은 극들의 전개는 '의도적으로' 괴랄하게 흘러갑니다. 따라서 전개에 대해 논리적으로 진단하는 건 썩 합리적이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왜 요딴 괴랄한 전개를 선택했는가. 괴랄한 전개 한복판에 놓인 '인물'과 '상황'에서 어떤 함의를 발견할 것인가. 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4.

 

사실 부조리 코미디치곤 메시지를 발견하는 게 어려운 작품은 아닙니다. 되려 상당히 쉬운 편에 속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코드라 해봐야 '조르주', '드니즈', '사슴', '재킷', '살인' 정도밖에 없는 데다, 사실상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조르주'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조르주>와 <사슴 재킷>의 의미를 추론할 수만 있다면 극의 대부분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감독은 '조르주'를 굳이 '영화감독'으로 만들어 관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 5. 

 

저는 '조르주'는 영화감독을 포함한 <예술가 집단>, '사슴 재킷'은 그들이 지향한다 주장하는 <예술 철학>, 영화는 이들에 대한 통렬한 조롱으로 이해합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예술을 한다 떠벌리는 뜨내기들. '100%'와 '유일한' 재킷에 담긴, 순수성과 희소성에 대한 허세적 집착. 스스로는 한없이 심취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세상 촌스럽기만 한 어설픈 취향. 터무니없이 뒤떨어지는 현실 감각과, 터무니없이 드높은 자존감과, 그 과장된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뱉어내는 허언증과, 일반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자기 합리화와, 고상한 척 떨어대는 유난스러움 이면에 감춰둔 폭력성.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언제고 옷을 훔쳐갈 추종자들의 응원에 취해 인생을 갈아 넣는 어리석음까지.

 

이 모든 것들을 완벽히 내면화 한 3류 예술가 나부랭이들의 뚝배기에 날리는 77분짜리 총알입니다. 풍자극이라는 거죠.

 

 

 

 

 

 

# 6.

 

다만, 저는 그것과 동시에 조금 다른 의미에서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조르주'의 병림픽을 한참 키득대며 구경하는 와중에 '드니즈'가 <모큐멘터리>를 거론하는 순간부터 말이죠.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과장된 음향 연출과, '극중극'이라는 코드와,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조르주'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포스터가 이 서늘함에 확신을 더하는군요.

 

# 7.

 

주인공 '조르주'가 돌아이라면, 바텐더 '드니즈'는 바보입니다. '조르주'는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사이코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속아 자신의 모든 재산을 들어다 바친 멍청이죠. 만약 '조르주'가 어설픈 예술가들에 대한 풍자를, '드니즈'가 그 예술가들을 응원하는 추종자들에 대한 짙은 조롱을 담고 있는 게 맞다면. 이 영화가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위의 전재 하에서라면 관객은 필연적으로 형식논리적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앞서 말씀드린 풍자의 지점들. 이를테면 '재킷'과 '사슴 100%'와 '피'와 '포클레인'과 '결혼반지'와 '시베리아'와 '거짓말'의 의미를 하나하나 쫓는 순간마다 관객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감독의 "그거 아닌데?" 라는 말 한마디에 언제든 바보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것과 같거든요. 영화감독 '쿠엔틴 두피유'의 함의를 쫓는 순간, 관객은 '조르주'의 영화 속에서 <의도한 바 없는 느낌>과 <존재하지 않는 함의>를 쫓던 바보 '드니즈'가 되고 맙니다.

 

 

 

 

 

 

# 8.

 

영화를 시니컬하게 대하면 돌아이 '조르주'가 되는 셈입니다. 열광하면 바보 '드니즈'가 되는 셈입니다. 관객은 감독이 파놓은 조롱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부조리한 전개와 무자비한 풍자가 제 멋대로 날뛰는 상황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는 것 외에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별수 있나요. 시원하게 쳐 맞는 수밖에.

 

따라서 어차피 조롱당할 거라면 유쾌하게 조롱당해야 합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영화에게 패배했음을 선언해야 합니다. 왜냐, 이 영화에서 감독을 이기는 방법은 그것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 '쿠엔틴 두피유' 감독, <디어스킨>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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