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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약속된 유토피아 _ 장난꾸러기 동맹,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그냥_ 2021. 1.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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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원래부터 유서깊은 아이템이였습니다만, 갓세돌이 알파고로부터 1승을 따냇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이후 더더욱 우후죽순 생겨난 AI 시대 절망편을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10년> 중 두 번째 단편입니다.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장난꾸러기 동맹 :: いたずら同盟입니다.

 

 

 

 

 

# 1.

 

오프닝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감시사회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따라다니며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것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고 교정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고성능 AI 시스템이군요. 대체로 이와 같은 아이템을 다루는 작품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구성원으로서 번잡한 도시인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보편적입니다만,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은 그 대상을 학교를 다니는 어린아이들로 설정합니다. 상황을 보다 엄중하게 몰아붙이는 감독의 저돌성이 돋보이는군요.

 

# 2.

 

아이들의 오른쪽 눈가에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한 불명의 기기가 보입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뿐 아니라 통제하기 위한 기계장치로군요. 영화의 아이템은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빅브라더에 대한 감시사회보다는, AI에 의한 통제사회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전자는 전체주의적 사회 제도와 계급투쟁에 관한 아이템이라면 후자는 과학 기술의 오남용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아이템이기 때문이죠.

 

여하튼. 아이들의 행동뿐 아니라, 상호 작용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까지 통제하는 매우 강력한 시스템입니다. 심지어 성인인 선생님들조차 항상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습니다. 회의조차 선생님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관리하고 주도하고 통제합니다. <장난꾸러기 동맹>의 세계관은 이미 AI에 의해 인간이 통제되고 육성되는, 명백한 상하 관계가 정착한 사회입니다.

 

 

 

 

 

 

# 3.

 

시스템의 이름은 '프로미스'입니다. 오퍼레이션 시스템이 스스로의 이름을 지었을 리는 없고. IT 특화 지역에 적용하기 위한 해당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그 이름을 '프로미스'라 지었을 것이라 보는 쪽이 합리적이겠죠.

 

무언가의 이름에는 만든 이의 목적과 소망이 투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규칙을 어기면 제대로 된 어른이 못 돼!"라는 대사는, 역으로 '프로미스'가 결정한 규칙을 성실히 수행하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프로미스'는 '높은 생산성과 낮은 일탈률을 기대할 수 있는 고성능 인간이라는 의미에서의 제대로 된 어른'을 양산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누군가들의 기대가 담긴 '약속'입니다.

 

# 4.

 

'쿠니무라 준'입니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말을 돌보는 등장에서부터 배우 특유의 중량감은 전달됩니다만, 영화에서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조금 반갑다 싶은 정도죠. 오히려 '쿠니무라 준'보다는 말 '록키'가 훨씬 중요합니다. '말'이라는 동물이 가지는 특유의 역동성과 에너지, 자유로움과 본질적인 우아함 등의 이미지와, 통제되고 실험된 개체로서의 서사를 결부시켜 이를 '야마시타 군'을 비롯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선생님에게 붙잡혀 들어오는 '야마시타 군'에게 "힘내라" 응원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정전 사고로 인해 '프로미스'가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편안한 음악이 영화에 깔리는 것 역시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프로미스'를 고치러 가는 '시게타' 상의 앞을 가로막는 아이들의 달음박질과, 그 순간 호쾌하게 웃어 보이는 '쿠니무라 준'의 표정 역시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앞선 말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방식을 포함한 이들 모두는, 감독의 작가적 역량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 5.

 

'프로미스'가 잠시 꺼진 틈을 틈타, 안락사가 예정된 '록키'를 풀어주는 아이들. 자유롭게 달아나는 '록키'를 따라 산길로 들어섭니다. '프로미스'가 금지한 숲, 자유롭게 내달리는 말의 숲입니다.

 

숲은 방향을 알 수 없는 공간입니다. 고압적인 카메라 구도로 연출된 공간입니다. 창백하고 신비로운 색감의 공간입니다. 길 잃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여기서의 공포감이란 여타 작품에서 쓰이는 그저 여러 정서 중 하나가 아니라, 한없이 차분하기만 하던 '프로미스'와의 목소리와는 대조된 인간 본연의 감정을 의미한 것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금기의 숲에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길을 모색합니다. <성장>이란 경제적인 길, 올바른 규범의 길을 최대한 멀리 달려가는 마라톤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길을 모색하는 동안의 유희적 산책이라는 점을 은유합니다. 이들은 AI가 제시한 <제대로 된 어른>이길 거부한 <장난꾸러기>들입니다.

 

# 6.

 

결국 말을 찾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남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던 '록키'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감독이 그동안 의도적으로 '말'과 '아이들'의 이미지를 강하게 연결하고자 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비극적 결말에 대한 암시, 혹은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결말에 대한 힌트 정도라 볼 수 있겠죠. AI의 통제로 벗어난 아이들의 일탈은 그저 사소한 <장난>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이 '록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이, '프로미스'가 다시 켜졌습니다. 그것도 <업그레이드>된 '프로미스'가 말이죠.

 

 

 

 

 

 

# 7.

 

"프로미스가, 조용하네?"

 

'프로미스'가 작동하자 아이들은 갑자기 쓰러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쓰러진 아이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록키'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역시 '록키'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프로미스'가 조용하네. 업그레이드된 '프로미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프로미스'는 <교정>하던 프로미스가 아닌 <수정>하는 프로미스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프로미스가 조용했던 건 말을 할 수 없다거나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록키'의 존재에 대한 기억은 지워버리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엄마 아빠의 아이 찾는 목소리는 '프로미스'가 직접 주입한 환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은 '록키'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밝게 웃으며 뛰어갑니다. 아이들은 환상적이지만 흐릿한 연기 속으로 사라집니다.

 

# 8.

 

'프로미스'가 만들어낸 세상은 이론적으로, 수치적으로, 환상적인 세상일 겁니다. 심미적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며, 실험에 죽어간 말 따위는 누구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이겠죠. 다만 그 환상적인 세상 속에 인간성은 연기에 가려진 것만 같이 흐릿할 겁니다. '프로미스'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프로미스'가 약속한 세상은 유토피아의 모습을 한 디스토피아입니다.

 

... 사실 AI 시대를 다룬 흔한 디스토피아 물입니다. 아이템의 특별함이나, 전개에서의 창의적인 상상력은 썩 찾아보기 힘듭니다. 표현은 조금 더 과감하지만, 서사의 전개는 이야기가 밋밋하다고 말씀드렸던 <플랜 75> 보다도 더 밋밋하죠. 대신, 성큼성큼 내달리는 말의 모습처럼 시나리오에 큰 선을 자신감 있게 긋는 매력은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굳이 파격적인 상상력이 요구되는 이런 프로젝트보다는, 되려 감독이 만든 독특한 미장센이 유감없이 표현된 현실적 드라마는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 아이러니한 작품이군요.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장난꾸러기 동맹>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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