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티타임 ⅲ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그냥_ 2021. 1. 3. 06:30
728x90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

morgosound.tistory.com

 

 

# 30.

 

<낮의 정원>은 교황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작동하는 '논리의 공간'입니다. <밤의 거실>은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공간'이죠. 그리고 드디어 시스티나. 이곳은 이성과 감정이 통할된 '신성의 공간'입니다. 이전까지 대화의 성격과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감독은, 절정부에 이르러 최대한의 공간을 두 배우에게 열어놓습니다. 앞선 두 공간에서의 대화를 통해 논리와 대립 이상의 입체적인 인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 31.

 

따라서 후반부는 그저 두 백발의 노인뿐입니다. 정적인 공간, 두 교황이 주고받는 주장과 논리와 감수성과 진심이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는 박력으로 전달됩니다. 어지간한 전쟁영화나 스릴러물 이상의 에너지가 두 노인의 대화를 통해 구현되고, 그것만으로 1시간에 가까운 런타임이 충만할 수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앞선 두 편의 글에서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며 각 주인공이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피하고자 노력했습니다만, 이 절정부의 논리와 철학에 관한 내용은 구태여 글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영화를 조금 좋아하기만 할 뿐, 종교적 - 철학적 소양은 한없이 빈곤하거니와. 저는 여러분이 이 영화를 직접 보시고 직접 즐기시길 바라거든요. :)

 

 

 

 

 

 

# 32.

 

그럼 내용은 넘어가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영화 <두 교황>은 크게 네 가지의 인상적인 성취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는 단연 장르적 매력을 담당하는 '강렬한 에너지'입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로도 만들어지게 된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 다뤄지는 부분이나, 익히 알려진 군부 독재에 얽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택에 대한 회상 장면이 되려 지루한 것만 같은 착시가 느껴집니다. 회상 장면들의 비극적 폭력성 혹은 몰입감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현 시점을 연기하는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합니다. 두 사람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어색한 포옹을 하고, 피자를 앞에 놓고 코미디를 선보이는 순간과 같이 쉬어가는 장면들조차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세어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본론의 치열한 대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이 영화는 종교적, 사회적 메시지를 모조리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 33.

 

두 번째 인상적인 성취는 '균형'입니다. 글에서는 대조적인 인물로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두 인물 간의 밸런스는 썩 공정하지 않죠. 상대적으로 대중친화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이 다분한 데다 현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니까요. 감독이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무미건조하게 심판 노릇을 하려 했다면 <두 교황>이 아니라 <새 교황>이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그래선 곤란하죠.

 

 

 

 

 

 

# 34.

 

불미스러운 사건과 나치 소년단으로서의 이력을 비겁하게 숨기거나 변호하지 않으면서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자로서의 성취와 진중함까지는 부정되지 않도록 조율합니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혁적 행보가, 그가 과거에 했던 독재정권에 얽힌 선택의 기회비용을 가려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명확히 합니다. 공과 과를 분명히 하면서 특별히 변호하거나 특별히 비난하지 않는 가운데 일련의 삶의 여정이 자연인으로서의 '요제프 알로이지오 라칭거'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시보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는 점은 특별한 성취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35.

 

변화와 타협,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종교와 사회, 개인과 집단, 절대주의와 이상주의, 죄와 용서, 한계와 숙명 따위의. 굳이 종교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한 위계에서의 양보할 수 없고 확정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을 균형감 있게 그려냅니다. 그 속에서 가엽고 나약한 개인이 어디에 자리해야 하는가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십자가를 짊어진 두 사람을 통해 묘사함으로써, 관객 역시 철학 전반에 대한 다층적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돕습니다. 멋진 영화죠.

 

 

 

 

 

 

# 36.

 

이 균형이라는 측면에선 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역할이 대단히 주요했다는 생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 역시 빼닮은 외모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만, 상대적으로 훨씬 입체적이면서 부정적인 인물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에서 관객이 어설픈 도덕적 - 논리적 심판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안소니 홉킨스'의 탁월한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생각입니다.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소리를 질러버리는 식의 과장된 감정 연기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안소니 홉킨스'의 성취는 더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거겠죠.

 

 

 

 

 

 

# 37.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성취는 서사가 메시지를 구축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주저 없이 상대를 논파하려던 상반된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진중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 자신의 과오를 고해하고 용서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까지 두 사람의 논쟁에 결론이 없다는 점입니다. 둘은 두 시간여에 걸친 긴 대화를 건너는 동안 '이해'를 나눴을 뿐, '동의'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틀린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용기. 그것이 중요합니다.

 

 

 

 

 

 

# 38.

 

두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관철하고자 주장하면서도, 그 주장의 결과물이 서로 교황이 되지 않겠다, 당신이 교황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수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피자와 환타를 좋아하고 객석에 녹아들어 가 축구를 즐기지만 여전히 신성합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교황을 상징하는 삼중관을 내려놓지만 역시 여전히 신성합니다. 종교적 마음은 화려한 보석과 복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마지막, 이 어려운 영화에 안착하게 하는 감독의 화려하면서도 조용하고 정갈하면서도 심미적인 '연출의 묘'가 네 번째 인상적인 성취라 생각합니다만, 그 내용은 앞선 글에서부터 반복적으로 이야기했기에 구태여 짚지는 않겠습니다.

 

 

 

 

 

 

# 39.

 

불확실성이 점점 커져만 가는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 특히나 가장 성공적인 대중 종교인 기독교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두 상반된 견해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 간의 철학적 충돌을 다룹니다. 각 교황이 대변하는 보수성과 진보성이 단순한 직업적 가치 철학의 범주가 아니라, 인생의 여정과 그 누적된 경험 속에서 조각된 인생관의 발로라는 것을 깊이 있는 대화와 진중한 움직임, 간결한 회상으로 표현합니다. 그것도 이렇게나 쉽고 친절한 방식으로 말이죠.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두 교황>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