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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에피타이저 _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그냥_ 2021. 1.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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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한낮의 피크닉>을 보고 난 후 뜬금없이 옴니버스 영화에 뽐이 왔네요. 적당한 영화가 어디 없을까 하며 OTT를 뒤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10년>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플랜 75 :: Plan 75』입니다.

 

 

 

 

 

# 1.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에는 [찬성] 다른 하나에는 [반대]라는 글귀가 적혀있군요. 감독은 처음엔 반대의 의자에 앉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 관객을 설득합니다. 그런가 싶어 의자에 앉았더니 다시 찬성의 의자에 앉는 것이 옳지 않겠냐며 설득합니다. 갸우뚱하며 의자를 바꿔 앉았더니 감독은 다시금 반대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관객은 짧은 런타임 안에서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두 입장의 논리와 감수성 사이를 교차적으로 오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결론은 뭐냐. 그건 본인이 스스로 찾으셔야 합니다.

 

# 2.

 

추락하듯 거꾸로 선 노인의 모습과 함께 광고가 시작됩니다. <플랜 75>라는 이름의... 안락사 정책에 대한 홍보물이군요. 해당 광고 씬은 안락사 정책의 표면적 명분을 설명합니다.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온갖 종류의 서비스와 아름다운 미사여구들. 그리고 그 끝에 달라붙는 <후생성 인구 관리국>이라는 국가 기관명이 발목을 덜컥 부여잡는 듯한 위화감을 형성합니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이 아이템이 이렇게 긍정적이고 따뜻한 묘사로 다뤄져도 좋은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의문의 양만큼 안락사 문제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죠.

 

감독은 차원을 한 단계 떨어트립니다. 연출된 가상의 광고에서 그 광고를 보는 현실로 내려옵니다. 디테일을 날려버릴 정도로 빛이 과장된 광고 연출에 비해 현실은 보다 낮은 채도의 차분하고 정적이며 어두운 공간입니다. 한 명의 노인을 정성스럽게 서포트하는 광고의 구성과는 대조적인, 한 명의 홍보직 공무원과 다수의 노인이 만나는 식의 인물 배치는 광고와 현실의 괴리를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공간 연출과는 대조적이게도 죽음을 앞둔 노인의 현실을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부정적 뉘앙스의 공간 연출 덕에 노인들의 현실 인식이 보다 정직하게 전달됩니다.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극심한 고통을 담아냅니다. 마지막을 어떤 식으로 보낼 것이냐에 관한 수치스러움을 담아냅니다.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으로는 전혀 위로되지 않는 경제적 문제를 담아냅니다. 가족도 없이 길바닥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담아냅니다.

 

'선진국' 일본이라는 대사가 강한 위화감을 유발하지만 그럼에도 이와 같은 제도가 고맙다 말하는 노인의 말은 마냥 조롱이나 비아냥이 아녔을 겁니다. 관객은 <플랜 75>를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의심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싹트게 됩니다.

 

 

 

 

 

 

# 3.

 

다시 한 단계 차원이 떨어집니다. 인구 관리국의 회의장입니다. 연출된 광고보다 노인들의 현실은 어둡고 노인들의 현실보다 국가의 회의장은 더욱 어둡고 음습합니다. 노인들이 정책을 안내받던 순간과 유사한 구도로 젊은 공무원들이 배치됩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같은 정책을 같은 구도로 바라보지만 목적과 해석은 정반대입니다.

 

회의장에서 '노인들에게 <플랜 75>는 어떤 의미인가', '노인들은 <플랜 75>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오프닝 광고 장면에서의 화려한 수사는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합니다. 최대한 선의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피차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나이브한 접근일 뿐 안락사 정책은 노인들을 위한 목적 지향적인 국가 서비스가 아님을 분명히 환기합니다. 소비활동에 기여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몸이 불편한 사람 등 '국가가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일종의 경제 정책일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관객은 다시 가치판단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수정하게 됩니다.

 

태아입니다. 소위 '소비활동에 기여하지 못하는 노년층'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가의 시각에 따라 과격하게 말하자면 피해자죠. 뒤이어 부양가족에게 부담이 큰 치매 노인의 모습을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안락사 문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다시 긍정적으로 돌리려 합니다. 간신히 찾은 치매 노인의 앞엔 승차할 수 없는 종점 열차가 들어옵니다. 안락사를 마냥 부정하는 것은 어쩌면 종점에 도착한 열차에 올라타고 싶다 떼를 쓰는 건 아닐까? 라는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 4.

 

이미지 중심으로 흘러가던 영화에 비로소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오프닝의 홍보직 공무원은 태아의 아빠이자, 치매 노인의 사위입니다. 아내는 현실의 무게에 지쳐있고, 아내의 오빠는 제 앞가림하느라 충분한 관심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작 한 발짝 떨어진 사위는 그래도 부모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 말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부모에게는 안락사를 권유하는 모순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갈등하는 사이에도 뱃속 아기는 자라고 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 치매 노인은 스스로 안락사를 신청합니다. 이들은 모두 가족, 같은 공동체, 한 사회의 축약입니다.

 

# 5.

 

씬 별로 구분되며 천천히 흘러가던 영화의 템포가 후반부 접어들며 조금 빨라집니다. 국가 폭력이라거나 패륜이라 단정하기엔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가입하는 노인들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음을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 값일지도 모를 돈을 받아 들고 아이처럼 밝게 웃는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노인'의 모습을 보노라면 당사자가 찬성했다는 것이 정책의 당위성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인가를 의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찬성하는 자녀와 만류하는 사위의 역설과, 자기가 권유하는 상품을 가족에겐 판매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의 역설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잘 죽을 수 있도록 보다 정확히는 확실히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철저한 준비와, 자신이 죽는 날을 길일이라 말하는 아이러니와, 계란을 집어던지는 누군가의 가족과, 계란에 맞고도 아무 말하지 못하는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최대한 공들여 만들어진 광고와, 최대한 공들여 노인들을 설득하는 과정과, 최대한 공들여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와는 대조적이게도 패치는 너무도 손쉽게 투박하게 무심하게 붙여집니다. 시종일관 웃어 보여 왔지만 초단위로 조여 오는 죽음은 그 조차 몸서리치게 합니다. 여느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서늘한 살인 장면이죠.

 

 

 

 

 

 

# 6.

 

아이는 태어나고 성장해 뛰어놀기 시작합니다. 부부는 지낼 곳을 찾습니다. 건물이 아닌 빈 공터를 보여주는 것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건물이 아니라 공간, 일본이라는 사회와 그 너머의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노인들의 안락사 위에 세워진 이곳을 '아이를 키우기엔 최적의 장소'라 말하는 대사는 부양 세대를 위한다는 안락사 정책이 과연 그 아이들이 크기에 정말 최적의 장소인 걸까? 라 관객에게 되묻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패치를 붙이는 장면과 영화의 마지막을 안락사 집행장소로 마무리 짓는 편집에서 감독의 가치 판단이 조심스럽게 노출됩니다.

 

# 7.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영화 <플랜 75>를 통해 안락사의 허용을 넘어, 국가가 안락사를 권장하는 가상의 상황을 상정합니다. 상황은 과장되지만 그럼에도 안락사라는 사망 방식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죠.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주변의 조건을 과장해 사안의 성격을 선명하게 하는 널리 쓰이는 보편적 논리 검증 방식을 영화에 고스란히 이식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역으로 그렇기에 <논리의 전시>에 불과하다는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의 논리를 엇갈린 상황 속에 엮어내고 이를 일본 영화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미장센으로 꾸며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가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충분히 좋은 이야기에까지 닿았는가 라는 질문에 있어선 대답을 주저하게 되는군요.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반 1/3에서 아이템을 소개하고 중반 1/3에서 인물과 관계를 풀어내는 데까진 잘 진행되다가 후반부 빈곤층 할아버지와 치매 할머니가 만나기까지의 본격적인 서사가 막 시작하려는 찰나!! 툭 하고 끊긴 것만 같은 영화였습니다. 손 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플레이팅의 에피타이저를 맛본 후 입맛이 도려는 찰나 식사가 끝나버린 느낌이랄까요. 하긴. 옴니버스의 첫번째 작이이란 걸 생각하면 당연한 걸지도? '하야카와 치에' 감독, <플랜 75>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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