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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먹어서 응원하자? _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후지야마 아키요 감독

그냥_ 2021. 1.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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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한편을 꼽아야 한다면 전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10년> 중 네 번째 단편입니다.

 

 

 

 

 

 

 

 

'후지야마 아키요' 감독,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 その空気は見えない』입니다.

 

 

 

 

 

# 1.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해 대기가 오염된 세상입니다.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지하로 피신합니다. 엄마 '히토미'와 함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벙커에서 살게 된 어린아이 '미즈키'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다른 모든 점을 차치하고. 대놓고 원전과 방사능을 거론한 영화를, 그것도 아직 아베 내각이던 시절에, 그것도 그렇게나 보수적인 일본 영화계에서 만들어냈다는 게 조금 놀랍기는 합니다. 타게팅을 외국 영화제 쪽으로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일 런지는 모르겠군요.

 

# 2.

 

다른 에피소드들보다 훨씬 음습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진 난해한 영화입니다만, 그 난해함 이전에 엉성함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해야겠네요. 상황 설정에서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아예 감성적인 테마의 판타지 작품이라거나, 휘발성이 강한 양판소식 연작물이라면 적당히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래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Science Fiction이라면 지금의 이것보단 더 나은 설득력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무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을 걸고 국제영화제에 출품하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 3.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화는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무슨 핵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보통 원전 사고가 터지면 지하가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지 않나요? 당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만 하더라도 그 여파로 사람들이 멀리 달아나면 달아났지 후쿠시마의 지하벙커로 도망치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일본의 원전 하나 터졌다고 지구 상에 지낼 곳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요. 일본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영화의 제목에서 '공기'를 직접 거론한 것처럼 대기가 입자 형태의 방사성 동위원소로 인해 오염되었다면, 공기를 필터링할 수 있는 여과장치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일 텐데요. 그와 관련된 설정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방호장치 없이 노출된 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 마지막 아이가 탈출하는 경로에 대한 표현이나 지상의 콩벌레가 지하로 내려왔다는 식의 설정을 보노라면 공기를 차단하고 여과하는 시스템은 완전히 부재해 있다 보는 쪽이 합리적이겠죠. 벌레가 손에 닿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떠는 세상치곤 너무 나이브한 상황 묘사입니다.

 

# 4.

 

피난을 내려온 지하 세계라기엔 잡동사니가 너무 많다는 점 또한 어색합니다. 원전이 터져서 한시바삐 지하로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우산'과 '고장 난 워크맨'을 챙겼다는 건 썩 상식적이지 않죠. 식사 또한 어색합니다. 다소 뜬금없긴 합니다만 사과나 옥수수까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식탁에 싱싱한 샐러드가 올라와 있는 걸 보노라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죠. 수시로 건강검사를 받는다는 점 역시 영 어색합니다. 저런 류의 설정은 작금의 코로나 시국처럼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 대한 묘사에 가까운 연출이기 때문이니까요.

 

'크리스토퍼 놀런'이 <인터스텔라>를 찍으며 논문을 몇 편씩이나 쓴 건, 감독이 논문을 쓰고 싶어 안달 난 변태여서가 아니라 (물론 놀란 감독은 변태가 맞습니다) 그만큼 SF 물을 다루는 데 있어 이론적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 장르물로서의 몰입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예산 단편 독립 영화가 SF라는 장르를 시도하려면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뭉개고 넘어가야 하는 설정들이 없잖아 있을 수밖에 없음은 잘 압니다만, 이 영화는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좀 너무하다는 거죠.

 

 

 

 

 

 

# 5.

 

그래요, 여기까지. 위의 설정 공백은 눈 딱 감고 적당히 넘어간다 치고. 감독이 풀어내고자 한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발견되는 테마는 단연 <공포>입니다. '미즈키'가 처음 비밀기지를 향하는 동안 얼어붙은 듯 조심스럽게 건너는 다리나, '이케와키 치즈루'가 연기한 엄마 '히토미'가 콩벌레와 워크맨에 보이는 격앙된 태도, "아빠처럼 되고 싶냐"는 뼈 있는 대사들은 모두 깊은 공포감을 은유합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말하는 '그 공기'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공기와, 언제고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드는 <공포심>을 뜻하기도 하는 중의적 제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엔 서사를 살펴볼까요. 영화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원전 사고로 인해 지하로 피신해 지내던 어린아이가 지상 세계를 동경하다 결국 엄마 몰래 올라 가 자유의 바람을 맞는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건너던 비밀 기지의 다리를 마지막엔 대범하게 건너는 대목이나, '미즈키'가 지나는 마지막 통로를 앞두고 상기하는 "어른이 되면 지날 수 없는, 아이들만 지날 수 있는 통로"라는 대사 등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현실적인 어른들의 공포를 극복하는 아이들의 도전의식, 가능성 뭐 이런 걸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겠죠. 상쾌한 바람을 맞던 아이가 멈춰 선 모습으로 영화의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끝나는 연출 또한 위와 같은 이해에 확신을 더합니다.

 

# 6.

 

문제는, '원전 사고'라는 작품의 아이템과 '공포감'이라는 테마에, '아이의 자유로움'이라는 서사가 결합되면서 괴기한 메시지가 도출된다는 점입니다. 위의 두 문단을 요약하면 결과적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10년 후 혹여 원전이 터진다 해도 안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쫄지 말고 땅 위로 올라가 보자!!

 

 

 

가 되거든요... 아니, 이게 뭐야. <먹어서 응원하자> 메타인 걸까요?

 

'환경오염과 그로 인해 일상을 박탈당한 인간의 공포'를 테마로 한 작품이라면, 지하에 갇혀 공포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해 가능성과 호기심을 엄격히 통제당한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환경오염이 이렇게나 위험하답니다. 그러니 조심해야겠죠?>라는 식으로 방향을 잡는 편이 훨씬 상식적이었을 텐데요.

 

 

 

 

 

 

# 7.

 

영화 중반부 '미즈키'가 보이는 태도 또한 대단히 난해합니다. 처음엔 이 아이가 환각과 환청을 겪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보랏빛 색깔의 비를 맞으며 그림으로 그린 콩벌레나 새들과 즐겁게 내달리는 모습의 시퀀스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몽환적이고 정신적인 묘사에 가깝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정신적 상황이라면 환상이 끝난 후 머리카락만 젖어 있는 연출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만약 원전 사고로 인해 아이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 한다면 <왜 '미즈키'만 문제가 생긴 거야?>라는 의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만약 원전이 아니라 지하에 갇혀 지냄으로 인해 생긴 정신적 문제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영화의 테마인 환경오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평범한 고립 공포에 관한 영화로 전락하고 말게 됩니다.

 

# 8.

 

친구 '카에데'의 정체 역시 끝까지 모호합니다. 영화 내내 '카에데'가 유일하게 대화하는 대상이 '미즈키' 뿐이라는 점이나, 비슷한 또래임에도 숲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점. 함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워크맨을 듣다가 엄마가 나타나자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이나, 먼저 올라간 아이가 있다면 '미즈키'의 여정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는 점 따위를 생각할 때, '카에데'는 지하에 고립된 '미즈키'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격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문제는 그렇다면 엄마 '히토미'가 "'카에데'와 놀지 마라"라는 말을 하는 대목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말부의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 또한 설명되지 않구요.

 

# 9.

 

완성도 이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 그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너무도 모호하고 난해한 단편입니다. 앞서 나름대로 고민해 말씀드린 것들조차 영화를 세 번 연달아 반복해서 보고 난 후, 한참을 곰곰이 정리하고 서야 간신히 얻은 생각들이죠. 말인즉, 영화를 처음 보는 동안에는 이 정도의 생각조차도 전혀 전개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에 대해 말하는 영화입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기에 대한 감독의 목소리 또한 전혀 들리지 않는 영화였네요. 이 영화도 보이지 않았다. '후지야마 아키요' 감독,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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