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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흐린 기억속의 그대 _ 데이터, 츠노 메구미 감독

그냥_ 2021. 1.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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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다른 단편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내달리는 작품들이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배우 '스기사키 하나'와 함께 천천히 산책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말인즉 5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의 세 번째 작품으로서 안성맞춤이라는 뜻이죠.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10년> 중 세 번째 단편입니다.

 

 

 

 

 

 

 

 

'츠노 메구미' 감독,

『데이터 :: DATA』입니다.

 

 

 

 

 

# 1.

 

교복을 입은 딸이 도시락을 싸는 동안 아빠는 출근을 준비합니다. 아빠의 후리가케는 가다랑어 맛, 아니 김계란 맛, 아니 다시 가다랑어 맛입니다. 딸은 '모에'라는 사람과 아빠의 저녁 약속을 묻고, 아빠는 딸에게 셋이서 밥을 먹는 게 어떠냐 제안합니다. 종소리. 작게 보이는 여자의 사진에 가벼운 합장을 올린 후 출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본 딸은, 이내 사진 속 여자를 지긋이 쳐다봅니다.

 

# 2.

 

밀도 높은 오프닝입니다. 출근하는 아빠를 뒤에 두고 도시락을 싸는 교복 입은 딸의 모습은, 엄마가 없는 편부모 가정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아빠가 후리가케 맛을 한 번에 정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 작품이 뭐가 되었든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암시라 할 수 있죠. '모에'씨는 아빠의 새 여자 친구, 합장을 받는 여자는 죽은 아내로 보입니다. 아빠를 먼저 출근시키고 딸을 남겨둠으로써, 이 작품이 딸과 아빠를 주인공으로 하는 <관계 중심>의 작품이 아니라, 딸 한 명 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심리적 드라마>라는 점을 소개합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오프닝을 통해 영화의 배경과 인물과 관계와 주제의식까지 간결히 설명합니다. 런타임을 알뜰히 끌어모아 온전히 주요 서사에 투자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이는군요.

 

소중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상자 안, 그 속에 담긴 우편 봉투에서 다시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냅니다. 엄마의 '디지털 유산 카드'. 물질뿐 아니라 살아생전 생산했던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한데 묶어 유산에 포함시키는 가상의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군요.

 

 

 

 

 

 

# 3.

 

"소유라멘에 미역 추가"

 

사진 속 엄마는 소유라멘에 미역을 듬뿍 추가해 먹었지만, 아빠는 엄마가 차슈를 좋아했다 기억합니다. 그럼 엄마는 미역을 좋아한 걸까요, 차슈를 좋아한 걸까요. 엄마는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남겼지만, 아빠는 엄마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엄마는 바람을 핀 걸까요, 피우지 않은 걸까요.

 

엄마는 메일에 아이를 가진 것이 마냥 기쁘지 않다 기록에 남겼지만, 아빠는 엄마와 함께 한 세 가족의 산책을 따뜻하게 기억합니다. 엄마는 딸을 사랑한 걸까요, 사랑하지 않은 걸까요. 딸 '스즈하라'는 아빠가 훨씬 멋있다 말한 후, 이내 여자는 거짓말을 잘한다 말합니다. 엄마와 사진을 찍은 남자와 아빠 중에 누가 더 멋있는 걸까요. '스즈하라'는 거짓말을 한 걸까요, 하지 않은 걸까요.

 

# 4.

 

글쎄요... 그게 중요한가요?

 

엄마가 라멘 고명으로 뭘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가 되었든 아빠는 엄마가 아침 건강 프로그램을 좋아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고, 그 이야기로 부녀가 엄마를 추억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엄마가 바람을 폈는지는 모르지만, 뭐가 되었든 그걸 의심하지 않는 아빠의 믿음과 사랑이 중요할 뿐이죠.

 

엄마는 딸을 가진 후 혼란스러워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딸이 엄마를 궁금해하고, 비슷한 점을 발견하며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스즈하라'의 말은 혹여 거짓말일 런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단 딸이 '훨씬 멋있는 아빠'의 새로운 사랑과 미래를 응원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할 뿐이죠.

 

 

 

 

 

 

# 5.

 

엄마가 잘 따라 불렀다던 노래는 데이터로 저장된 엄마의 목소리보다 아빠의 흥얼거림으로 전해 듣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아빠가 딸이 꺼내입은 엄마의 드레스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프닝에서 아빠가 고민했던 후리가케는 <아빠는 가다랑어 맛 후리가케를 좋아했다>라는 데이터로 남을 뿐, 아빠가 가다랑어와 김 계란밥으로 고민했다는 것과 그보다 더 소중한 아빠와 딸이 함께 도시락을 싸던 추억을 기록하지는 못하겠죠.

 

엄마는 코스모스를 좋아했지만, 오래전 활짝 피었던 코스모스는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엄마가 좋아했던 코스모스가 사라졌다는 것은 <정확한 정보>일지 모르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보다 정확히는 <모르는 것만 못한 정보>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아빠와 엄마와 뱃속의 딸이 함께 걸었음을 기억하는 아빠의 '흐릿한 기억'과 '따뜻한 감수성'이죠.

 

 

 

 

 

 

# 6.

 

'스즈하라'는 엄마가 입었던 드레스라는 <과거의 데이터>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지고, 엄마처럼 드레스를 좋아하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 나섭니다. 새로운 드레스를 입은 '스즈하라'가 두 번 다시 엄마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일은 없을 겁니다. 혹여 엄마에 대해 궁금한 일이 있다면 아빠의 기억과 이야기를 나누겠죠.

 

# 7.

 

불확실한 기억보다는 확실한 정보가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판단을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하는 작품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다룬 여타의 영화들이 주목하던, 다른 사람이 내 일상을 들여다본다거나 내 일과를 분석한다거나 하는 식의 공포감이 아니라, SNS가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아이디어와 이를 조립하는 솜씨가 대단히 신선합니다. 특별히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깊은 생각과 풍부한 감수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품. 이런 게 좋은 드라마죠. '츠노 메구미' 감독, <데이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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