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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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화 69

12월 26일 _ 유령신부, 팀 버튼 감독

# 0. 박싱 데이(Boxing Day) 또는 성 스테파노의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고 단순하게 부른다. - 위키백과 [박싱데이] 중에서 - '팀 버튼' 감독, 『유령신부 :: Corpse Bride』입니다. # 1. 헨리 셀릭의 을, 팀 버튼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행복(크리스마스)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었던 팀 버튼(잭 스캘링턴)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분노(우기부기)에 휩싸이지만, 결국 분노를 제압하고 내면 깊은 ..

Film/Animation 2022.01.15

But I couldn't help it _ 크라잉 게임, 닐 조던 감독

# 0. 인간은 두 가지야, 퍼거스. 전갈과 개구리처럼. 그 얘기 알아?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수영을 못해서 개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어.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모른다며 거절을 했지. 그러자 전갈이 말하길 '그럼 둘 다 빠져 죽어.' 그랬지. 그래서 안 찌른다고 했어. 생각하던 개구리는 전갈을 건네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태웠어.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 물결이 거칠어지자 겁난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버렸어.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만 거야. 그래서 개구리가 화가 나서 물었는데,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왜 찔렀냐고. 개구리랑 같이 죽어가면서 전갈은 대답했지.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인걸." '닐 조던' 감독, 『크라잉 게임 :: The Crying Game』입니다. # 1. '퍼거스'는 IRA..

당연하지 _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벤 팔머 감독

# 0. 찐따의 로맨스도 달콤할까? '벤 팔머' 감독,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 Man up』입니다. # 1. 한 번쯤 운동을 해보신 분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려다 실패해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가장 무거운 건 기구에 얹힌 50kg짜리 쇳덩이도 트레드밀을 달리는 100kg짜리 몸뚱이도 아닌 집안에 퍼질러 앉아 버티는 엉덩이라는 걸 말이죠. 물론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헬스 마니아들은 답답해 고개를 저을 겁니다. 아니? 운동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엉덩이가 무겁다는 거야? 파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대부분은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살아갑니다. 일반에게 사랑은 설레고 긴장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도조차 못할만큼 두려운 일은 하니죠. ..

Film/Romance 2021.09.15

참 쉽죠? _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 0. 전설의 레전드가 왓챠에 올라왔군요. PBS 예술 교양 프로그램 시리즈,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 The Joy of Painting』입니다. # 1. 문득 반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는 듯한 미묘한 태도로 1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두어 편 보다 말겠지 생각했는데요. 어디 보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서브 모니터에 16화 이 흘러나오고 있군요. 언제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부드럽고 차분한 김세한 성우의 목소리, 뾰족한 산과 침엽수와 호수의 무한복제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멈춘듯한 목가적 이미지, VHS 비디오 대여점이 주름잡던 시절의 그것과 같은 낡은 화질,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고 선량한 메시지입니다만 재미있어요. 이걸 내가 왜 재미있어하고 있는지 모르겠..

Series/Art 2021.08.26

그림자의 성녀 _ 세인트 모드, 로즈 글래스 감독

# 0.  한 톨도 새지 않게 꼭꼭 눌러 담아 응축된 광기의 에너지        '로즈 글래스' 감독,『세인트 모드 :: Saint Maud』입니다.     # 1.  피를 뒤집어쓴 얼굴, 내면의 무언가가 망가진 사람의 눈을 한 여인이 고개를 들어보지만 머리 위엔 막힌 천장의 모서리와 혐오스러운 벌레 한 마리뿐입니다. 모드는 작은 골방에 살고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바깥의 소리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모양의 창이 닫히며 조용해집니다. 사회와 단절된 공간은 마치 감옥의 독방처럼 보입니다. 무언가 '죄'를 짓고서 홀로 감옥에 갇힌,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인격이군요. 그녀의 직업은 호스피스입니다. 새롭게 일하게 된 곳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 방 밖을 나섭니다. 빛이 스며드는 좁은 골목이 마치 어둠을..

Film/Horror 2021.08.24

해피피트 실사판 _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0.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BBC earth 제작,『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Snow Chick - A Penguin's Tale』입니다.     # 1.  황제팽귄의 생태를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흔히 펭귄 하면 떠올리실 법한 애들 중 하나인데요. 뭔가 미친놈 같은 눈매에, 고전게임 주인공 같이 생긴 애들은 아델리 펭귄이구요, 멋들어진 턱시도에 노란색 무늬가 고오급스러운 친구들이 바로 황제펭귄입니다. 조지 밀러의 애니메이션 보셨으려나요? 그 영화 실사판이라 생각하시면 무난합니다. 후반부 남극해 넘어 세계관이 확장되기 전까지 주인공 멈블의 성장 과정과 사실상 동일한 서사거든요. 아빠가 혹한 속에서 알을 놓치는 바람에 노래 대신 탭댄스를 마스터해버린..

통제력의 상실 _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 0. 꽃가루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연인과 꽃구경하는 대신 고고하고 시크한 싱글 라이프를 택한 이유죠. 애인 사귈 능력은 되냐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누가 너랑 사귀겠냐구요? 손님, 싸울래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리틀 조 :: Little Joe』입니다. # 1. 굳이 말하자면 공포 스릴러 영화... 이긴 한데요.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찝찝한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정서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중첩되어 있는데, 그 실체는 구체적 공포보다는 일련의 과정이 낳게 될 미래에 대한 잠재적 공포에 닿아있기 때문이죠. 가장 표면의 테마라 한다면, 역시 유전자 조작 기술과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로 인한 리스크가 될 테구요. 그다음은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요된 판단과 ..

알고 기억해달라 _ 홍콩을 위한 전쟁, 로빈 반웰 감독

# 0. 민주화 시위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비 근무 경찰관들이 탄 차가 주위를 에워싼다. 이 도시는 막 혼란으로 빠지는 중이다. 14살의 어린 시위자가 총탄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어떻게 시위의 도가니에 빠져서 폭력의 현장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 끝이 나려나. 이 영화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다섯 명의 젊은이들의 행적을 좇는다. 시위가 최고조로 치닫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처절히 투쟁한다. 그들의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독재 정권이다. "우린 홍콩의 미래의 결정자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이건 분명 독재 국가와 민주주의와의 대결입니다." 대부분, 체포될 때 신원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서..

Documentary/Social 2021.05.03

마취제 _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0. 차갑고 무심한 데다 자기중심적인 고양이. 훈련할 수 없는 게으른 털 뭉치. 과연 그럴까요? BBC 다큐멘터리,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The Secret Life of the Cat 입니다. # 1. "인간에게 강아지만큼이나 친숙한 고양이의 매력을 파헤친다! 전문가의 협조 아래, 고양이 열 마리의 목에 카메라와 GPS를 설치해 이들의 은밀한 일상을 추적한다!!" 라고는 합니다만 뭐 언제나처럼 딱히 은밀하지도 개인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난~한 고양이 영화예요. 조목조목 살펴보면 하자가 넘쳐나는 대단히 편의적이고 게으른 구성입니다. 세상 귀여운 고양이들이 잔뜩 나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양이는 쥐뿔 관심 없고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너'의 만족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거든요. 나름 ..

수동 숨쉬기 _ 최후의 호흡, 리처드 다 코스타 / 알렉스 파킨슨 감독

# 0.  북해 해저에 고립된 잠수부 크리스 레몬스의 사고와, 그를 구조하기 위한 동료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리처드 다 코스타, 알렉스 파킨슨 감독,『최후의 호흡 :: Last Breath』입니다.     # 1.  잠수 지원선 토파즈가 거친 북해의 격랑에 떠밀립니다. 챔버와 잠수부 사이에 연결된 케이블이 끊어지고 맙니다. 산소 공급은 중단되었고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없고 올라와서도 안 되는 상황. 5분여 밖엔 버티지 못할 산소통 하나에 의지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바닷속에서 크리스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1시간 여 까지는 크리스의 약혼녀와 같은 팀 잠수사 데이브 유아사, 던컨 올콕을 비롯한 동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미스터 삑사리 _ 새벽의 황당한 저주,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혹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삑사리의 미학이라 분석하기도 하는데요. 삑사리가 중요한 순간 매력 포인트로 작동하는 방식을 넘어 아예 삑사리만으로 영화를 만들면 요런 컬트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새벽의 황당한 저주 :: Shaun of the Dead』입니다. # 1. 패러디 영화입니다. 제목부터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에서 따왔듯 말이죠. 고전적 좀비 영화의 소재들을 가져오되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선 클리셰를 역으로 비틂으로 인한 의외성을 즐기는 영화입니다. 그 수준은 패러디와 클리셰의 레퍼런스를 짚는 것보다 차라리 패러디가 아닌 장면을 찾는 편이 더 빠를 정도죠.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좀비 떼의 습격과 이를 멋들어지게 돌파해 나가는 영리한 주인공 파티는 윈체스터..

Film/Horror 2021.04.18

악마인 듯 악마아닌 악마같은 너어어 _ 나인 마일즈 다운, 앤소니 월러 감독

# 0. 악마인 듯 악마 아닌 악마 같은 너어어 바람인 듯 바람 아닌 바람 같은 나아아 '앤소니 월러' 감독, 『나인 마일즈 다운 :: Nine Miles Down』입니다. # 1.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입니다.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반전 한방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 호들갑으로 채워집니다. 작품의 성패는 당연히 반전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반전만 확실하다면..

물과 기름 _ 더 파티, 샐리 포터 감독

# 0.  예전엔 이런 류의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으려나 싶어 골치가 아팠습니다만, 이젠 딱 한마디면 손쉽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타인 같은 영화라고 말이죠.        '샐리 포터' 감독,『더 파티 :: The Party』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비스무리한 작품입니다. 개성 강한 예닐곱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축하받을 만한 경사를 맞는 누군가가 호스트가 되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초반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나눌 테지만 딱히 집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캐릭터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얼추 15분여 동안 인물 소개가 적당히 끝나고 나면 차례차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이 한데 모이게 됩니다. 처음엔 호스트를 축하하는 식의, 적..

Film/Comedy 2021.03.17

탐정놀이의 목적 _ 레베카, 벤 휘틀리 감독

# 0. 히치콕 감독의 리뷰 말미에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레베카가 아닙니다. '벤 휘틀리' 감독, 『레베카 :: Rebecca』입니다. # 1.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 원작으로서 완벽하기에 이후 창작되는 는 모두 1940년 작품 속 설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순혈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레베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레베카라는 인물의 존재를 극의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 영화는 오히려 입니다. 릴리 제임스가 연기한 '나' 말이죠.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부실함이 발견되는데요. 그 대부분은 이야기는 레베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

멀미유발자 _ 더 디그, 시몬 스톤 감독

# 0.  흙의 촉감에 대한 묘사, 들판의 개방감에 대한 표현, 노을 지는 하늘의 색감, 치트키에 가까운 자연광의 질감 모두 훌륭하게 담아냈습니다. 디테일해야 할 땐 디테일하고 웅장해야 할 땐 웅장합니다. 배치는 인상적이고 구도는 심미적이며 표현 역시 능숙합니다. 음악도 무난하긴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구요. 고고학이라는 아이템도 이색적이고 실화라는 것도 썩 흥미롭습니다. 다수의 아이템을 주제의식과 연결하는 데에도 성공했고 캐리 멀리건, 랄프 파인즈, 릴리 제임스 등 배우들 모두 캐스팅도 연기도 좋으며 결말엔 감동도 있습니다. 다 좋아요. 좋은데...  왜 이렇게 영화가 정신이 없는 걸까요.        시몬 스톤 감독,『더 디그 :: The Dig』입니다.     # 1.  도입만 간단히 살펴봅시다. 배..

Film/Drama 2021.02.04

티타임 ⅲ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 morgosound.tistory.com # 30. 은 교황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작동하는 '논리의 공간'입니다. 은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공간'..

Film/Drama 2021.01.03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 17. 차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왔다면 이젠 마실 때입니다. 두 교황의 상반된 자기 철학에 대한 강경한 주장과 역설적인 입장이 충돌하는, '본론'이 이어집니다.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교황은 '베르골료' 추기경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적 대척점에서 자신을 비판한다 생각되는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해, 교황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교황은 권위의 힘을 빌어 쏘아붙이듯 질문하고, 추기경은 ..

Film/Drama 2021.01.02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툼한 머그잔에 우려낸 후, 입이 델라 조심스레 홀짝이며 마시고 또 마시는 것만 한 소확행도 없죠. 이 영화는 마치 한잔의 차와 같은 작품입니다.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며 정갈한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손이 데일 듯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상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향기처럼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찻잔 속에서 논리의 창과 철학의 방패가 번득입니..

Film/Drama 2021.01.01

나의 의미 _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에드 퍼킨스 감독

# 0.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알렉스'.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마커스'. 알렉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마커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덮어두고 싶어 합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숨겨진 유년기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고 보면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전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글을 읽기 앞서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 Tell Me Who I Am』입니다. # 1. 당사자에겐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시합니다. 설마 하니 알렉스 마커스 형제 부모의 비도덕..

회색지대의 남자 _ 그 남자의 집, 레미 위크스 감독

# 0. 바다 건너 영국 땅에 닿은 난민 부부 '볼'과 '리알'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과정 전체를 폭력적으로 압도하는 난민이라는 정체성. 상반된 두 정체성이 과격하게 충돌하는 동안의 심리적 불안을 오컬트 풍의 공포감으로 치환해 감각화한 작품입니다. '레미 위크스' 감독, 『그 남자의 집 :: His House』입니다. # 1. 어느 국가 어느 부족의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국에 도착했는가, 새롭게 정착하게 된 곳에서의 생활을 앞두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들입니다."라는 '볼'의 말은 영국 난민청 직원들에게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진심은..

Film/Horror 2020.11.04

싸가지 _ 에놀라 홈즈,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

# 0.  무례합니다. 영화가 싸가지가 없어요. 메시지, 보다 정확히는 특정한 이념을 위해 서사와 캐릭터와 표현과 연출 심지어 관객 경험까지 복무시키는 영화입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힘들게 영화를 하나요. 그냥 시민운동을 하시지.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에놀라 홈즈 :: Enola Holmes』입니다.     # 1.  현시대의 성갈등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판단 여하와는 별개로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자기실현은 충분히 창작자의 구미를 당길법한 소재임엔 분명합니다.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와 같은 영화들은 다시 봐도 강렬하고 매혹적이죠. 하지만 당위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를 어떻게 쟁취하고 실현하고 설득할 것인가가 본질이죠. 드라마의 감동은 특정 가치와..

히치콕의 고양이 -2-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전글 : 히치콕의 고양이 -1-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10.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전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은 넌센스죠.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조적인 도시 외곽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역동적인 어드벤처에서 적막 속 스릴러로의 이동이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석의 차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농가에서 역시 각 인물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해니'의 머릿속은 자신을 쫓는 경찰들로 가득합니다. 아낙은 매정한 남편과는 달리 잘생기고 신사적인 '해니'에 대한 이성적 호감에 기반한 막연한 선의를 가지고 있죠. 남편은 이들을 불륜에 빠진 남녀라 오해하고 있구요. # 11. '해니'가 경찰의 추격이라는 물리적 압박에 집중하는 ..

히치콕의 고양이 -1-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E. Schrödinger, 1887-1961)가 1935년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 대상이 측정장치(일반적으로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고전 대상)를 함께 고려하면 결국 측정장치도 중첩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설이다. 중첩된 파동 함수가 측정하는 순간 환원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처 [물리학백과 :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 :: The 39 Steps』입니다. # 1. 사실 없는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은 지루합니다. 사건은 개인적 입장에 따른 주관적 관점을 통해 해석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집니다. ..

마리옹 꼬띠아르 _ 라비앙 로즈, 올리비에 다한 감독

# 0.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들어 에디트 피아프보다 더 에디트 피아프 같은 마리옹 코티아르라 평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50줄이 넘은 '이 평론가'가 태어나기도 전인 63년에 사망한 사람이 원래 어떠했는지를 피차 알 턱이 없는 마당에 저 평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 '올리비에 다한' 감독, 『라비앙 로즈 :: La Vie en Rose (La Môme)』입니다. # 1. 영화를 보고 난 후 너무도 적절한 평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아마도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에디트 피아프'였을 것이다를 넘어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분명 '마리옹 꼬띠아르'의 '에디트 피아프' 였어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관객 스스로 부..

Film/Drama 2020.08.13

클래식 테마파크 _ 배트맨 리턴즈, 팀 버튼 감독

# 0. '샘 레이미' 감독 작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가장 큰 의의는 이전까지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역할극 정도로만 취급되던 슈퍼 히어로물이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상업 영화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보단 '피터 파커'의 댄스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팀 버튼' 감독, 『배트맨 리턴즈 :: Batman Returns』입니다. # 1.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대성공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지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 이르는 동안 어느새 슈퍼히어로물이라면 당연히 높은 현실성과 사회철학적 메시지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처럼 인식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현실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가볍게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

Film/SF & Fantasy 2020.07.28

빈센트 반... 셜록?! _ 반 고흐, 앤드류 휴튼 감독

# 0.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나라여서 그런 걸까요. 영국은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어도 이렇게나 '드라마틱하게' 뽑아냅니다. '앤드류 휴튼' 감독, BBC 다큐멘터리, 『반 고흐 :: Van Gogh _ Painted with words』입니다. # 1.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다큐라기보다는 내레이터의 해설을 곁들인 재연물에 훨씬 가까운 작품입니다. 주인공 '반 고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감성적인 표현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을 넘어 심지어 지 마음대로 '제4의 벽'을 넘나들며 관객과 소통까지 하죠. 연대를 나열하는 건조한 편년체 형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 방점을 두는 여타 다큐멘터리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

Documentary/Art 2020.05.12

에스프레소 _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포스터만 봐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독 이름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죠. 도스토예프스키든, 차이코프스키든, 로만 폴란스키든 어쩌고 저쩌고 스키 들어가면 대부분 엄청 대단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이다』의 감독이었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 Cold War』입니다. # 1. 정서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때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턴화 된 오브제들의 감각적인 리듬, 적재적소에 4:3 비 화면을 명확한 의도 하에 과감하게 잘라 들어가는 굵은 선,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여백 등의 이미지가 구현하는 심미성은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적입니다. 흑백의 ..

Film/Romance 2020.05.05

본격! 리듬! 액션! _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리는 비트와, 몸을 떨게 만드는 엔진 소리와, 마초적인 배기음의 성대한 응대와 함께 엑셀레이터를 힘껏 당기는 두 시간 동안의 레이스입니다. 누가 감히 영화는 이야기라 그랬던가요. 그림이라 그랬던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려한 드라이빙 스킬로 관객을 레이싱의 매력에 빠트리는 베이비 '안셀 엘고트'도, 수틀리면 샷건부터 갈기고 보는 힙하고 잘생긴 뱃 '제이미 폭스'도, 각기 다른 큐티애교와 섹도시발을 동시에 선보이는 데보라 '릴리 제임스'와 달링 '에이사 곤살레스'도, 연기 잘하는 두 쓰레기도 아닌 음악 그 자체입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 :: Baby Driver』입니다. # 1. 음악이 플롯과 시퀀스, 공간, 카메라 워크에 대사까지 모조리 장악하는..

Film/Action 2020.05.03

악녀를 보았다 ⅱ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 morgosound.tistory.com # 6. 돌아온 보리스와 함께 코르셋은 다시 채워지지만, 지금의 코르셋은 이전의 코르셋과는 다르고 지금의 캐서린 역시 이전의 캐서린과 다릅니다. 시아버지와 단둘이 나누는 늦은 저녁의 식사. 테이블의 방향으로 조명이 강하게 집중된 공간을 달그닥 소리를 내며 밀고 들어오는 캐서린. 화면의 중앙을 지배한 캐서린은 이전과 다른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합니다. 전에 볼 수 없던 시원한 웃음과 함께 자유롭게 식당을 가로지르는 동..

Film/Drama 2020.04.03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는 남자. 발가벗겨진 소녀를 덩그러니 세워둔 채 돌아 눕는 남편. 이를 담아내는 고전적이고 고정적인 오브제들과, 정제된 채도의 색감과, 이질적인 정도로 옆으로 길게 벌어진 화면. 통상의 긴 화면비는 개방감, 안정감, 수평적 운동성, 평등, 균일감 따위를 의미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수평성의 강조'라기보다는 '수직성의 통제', 즉 위아래로 잘려나간 화면이 인물을 짓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명령'과 '규율'과 '제약'과 이를 둘러싼 '균열'과 '파괴'의 서사임을 유추..

Film/Drama 20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