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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멀미유발자 _ 더 디그, 시몬 스톤 감독

그냥_ 2021. 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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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림은 이쁩니다. 흙의 촉감에 대한 묘사, 들판의 개방감에 대한 표현, 노을 지는 하늘의 색감, 치트키에 가까운 자연광의 질감 모두 훌륭하게 담아냈습니다. 오브제는 디테일해야 할 땐 디테일하고 웅장해야 할 땐 웅장합니다. 배치는 인상적이고 구도는 심미적이며 표현 역시 능숙합니다. 음악도 무난하긴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구요.

 

고고학이라는 아이템도 나름 이색적이고 실화라는 것도 썩 흥미롭습니다. 다수의 아이템을 주제의식과 어찌어찌 연결하는 데에도 성공했고 '캐리 멀리건', '랄프 파인즈', '릴리 제임스' 등 배우들 모두 캐스팅도 연기도 좋으며 결말엔 나름 감동도 있습니다. 다 좋아요. 좋은데...

 

왜 이렇게 영화가 정신이 없는 걸까요.

 

 

 

 

 

 

 

 

'시몬 스톤' 감독,

『더 디그 :: The Dig』입니다.

 

 

 

 

 

# 1.

 

도입만 간단히 살펴봅시다.

 

배를 타고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감독은 부두에 도착한 이 인물을 화면 오른쪽 하단에 강하게 몰아넣어 여백이 강조된 차분하고 육중한 화면을 구성합니다. 이어 피사체를 최대한 멀리서 담아내기까지 하는 걸 보니 정적인 분위기를 더하고자 하는 듯하군요. 그러다 갑자기 인물의 눈높이에서 자전거로 내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이어 보여주더니, 심지어 자전거 바퀴 옆에 카메라를 놓아 뜬금없이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어디 멀리 가기라도 하려나 싶었습니다만 알고 보니 목적지는 또 코앞이죠.

 

 

 

 

 

 

# 2.

 

저택에 도착한 남자. 이번엔 주인공을 화면의 왼쪽 구석에 몰아넣고 오른쪽 문을 통해 집사가 등장하게 만들어 시선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게끔 유도합니다. 왼쪽에 서 있던 주인공을 오른쪽으로 몇 걸음 걷게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화면 오른쪽으로 이동시킵니다. 그러다 갑자기 컷을 전환해 주인공을 다시금 왼쪽에 위치하게끔 하죠. 왼쪽에 멈춰 선 주인공이 더욱 왼쪽의 허공을 바라보게 만들어 관객의 시선 또한 화면 왼쪽 모서리로 강하게 밀어 넣은 후, 비어 있는 오른쪽 공간에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게끔 연출 해 다시금 시선을 급격히 이동하게 만듭니다.

 

남자는 고고학자 '브라운', 여자는 그를 고용하고자 하는 '프리티' 여사라 간략히 소개한 다음 두 사람은 걸어서 이동하게 되는데요. 이번엔 픽스되어 있던 앵글이 대단히 거친 핸드헬드로 전환되죠. 몇 걸음 채 걷기가 무섭게 다시 걸어오는 앞모습을 담는 컷으로 넘어갔다가 또다시 핸드헬드로 뒷모습을 보여주기를 수 차례 반복합니다. 화면은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고 그마저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조감으로 넘어갑니다.

 

 

 

 

 

 

# 3.

 

들판의 둔덕이 가까워지자 또다시 핸드헬드가 시작되는데요. '프리티' 여사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구도의 화면 왼쪽 상단, '브라운'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의 오른쪽 하단에 위치시켜 관객의 시선이 스크린 좌상단 끝과 우하단 끝을 오가게 만듭니다.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컷은 끊임없이 전환되고, 어긋나며, 흔들립니다.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카메라가 둔덕을 오르는 '브라운'의 발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둔덕에 올랐던 '브라운'이 화면 왼쪽 하단으로 빠르게 미끄러지듯 내려오려는 모습을 과장되게 담아낸 화면은, 다시 조감으로 넘어갑니다. 일련의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클라이맥스에서나 터질법한 웅장한 음악이 깔리며, 안 그래도 집중하기 힘든 두 사람의 대사를 뒤덮어 버리죠.

 

 

 

 

 

 

# 4.

 

여기까지 5분입니다.

 

내용은 <고고학자 '브라운'이 '프리티' 여사와 만나, 이후 발굴하게 될 둔덕을 한번 살펴보았다>가 전부입니다. 고작 소개 파트라는 뜻이죠. 이 간단한 서사를 풀어내는 동안, 감독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저렇게나 많은 화면 구성을 동원합니다.

 

 

 

 

 

 

# 5.

 

부산한 컷과 편집이 영화 내내 집중을 방해합니다. <고고학>이라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소재, <시간과 삶의 연속성과,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지루할 수 있는 철학적 주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 심미적이고 화려한 화면 구성을 도모한 것으로 추측은 됩니다만.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구성이죠.

 

고요한 바다 위 멈춰 선 배 위에 올라탄 승객은 일반적으로 폭넓게 둘러보는 풍경의 차분하고 장엄한 시각적 경험을 기대합니다만, 선장이 승객의 재미를 위한답시고 과격하게 배를 좌우로 흔드는 모양새입니다. 안타깝게도 감독의 선택은 의도와 달리, 시동이 꺼진 채 멈춰 선 배 위에서도 멀미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할 뿐이죠.

 

 

 

 

 

 

# 6.

 

음향 역시 퀄리티와 무관하게 활용법과 활용 시점에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음악이 서사의 내러티브와 충분히 조응하며, 감정선의 변화에 천천히 발맞춰간다는 느낌이 희박합니다. 너무 많은 상황에서 맥락 없이 장엄한 음악들이 동원되다가도, 필요할 것만 같은 순간엔 또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사가 들려오는 동안 화자를 담는 컷과 청자를 담는 컷 역시 일관성 없이 너무 자주 교체됩니다. 너무 많은 대사 처리가 맥락과는 무관하게 다른 씬에 오버랩됩니다. 횟수도 횟수거니와, 오버랩의 정도 또한 너무 깊습니다. 화면의 상황과 밑에 깔리는 다른 컷의 대화를 동시에 집중할 것이 강요됩니다.

 

 

 

 

 

 

# 7.

 

작품의 성격과 상황의 맥락을 생각할 때, 전반적으로 화면이 너무 많이 전환되고 너무 많이 움직이며 너무 많이 흔들립니다. 공간감을 드러내는 심도는 너무 자주, 또 너무 자극적인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그에 따른 화각의 왜곡 역시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로 방치되죠. 정적인 상황임에도 인물들은 조금씩 조금씩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고, 그때마다 관객의 집중은 대화의 내용보다 시선의 이동에 너무 많이 소비됩니다.

 

전쟁영화에서도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절정에서나 보일법한 화면 구성이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적용되는 걸 목격하는 기분입니다.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깔리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짧으면 3초, 길어도 5초 내지 6초에 한 번씩 컷이 계~~~ 속 전환된다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영화 내내 말이죠.

 

 

 

 

 

 

# 8.

 

각각의 연출적 포인트들에서 관객 경험을 고려한 목적성이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해당 화면 구성이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앵글, 이해할 수 없는 편집점,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대사와 동선이 지속적으로 감상을 방해합니다. 뭐랄까요, <폭발 대신 심미적인 구도를 퍼붓는 마이클 베이>를 보는 것만 같았달까요?

 

 

 

 

 

 

# 9.

 

분명 그림은 이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심미적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작품입니다. 각각의 컷들은 적어도 파편적으로는 대단히 깔끔하게 잘 뽑았습니다. 아무데서나 멈춰 세워도 제법 훌륭한 그림이 나올 정도로 과감하고 미학적인 구도가 가득합니다. 관객에 따라선 "그림이 너무 이쁘더라. 때깔 죽이더라!" 하고 감탄을 하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번 리뷰에서 쓰인 스틸컷들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30초짜리 광고>가 이런 화면, 이런 편집들로 만들어졌다면 더없이 훌륭했을 겁니다. <5분짜리 뮤직비디오>가 이러했다면 충분히 멋있었을 테죠. <10분짜리 단편>이 이러했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112분짜리 장편영화의 구성이 이래 버리면 관객에 따라선 피로감이 버텨내질 못한다는 게 문제죠.

 

심지어 일련의 '과잉'에 대한 감독의 욕심은 시나리오에서까지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 10.

 

안그래도 정신없는 편집의 작품에, 무려 ⑴ 유적 발굴에 대한 고고학적 의의, ⑵ 영독 전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⑶ 브라운과 로버트가 올려다 본 망원경과 별의 상징성, ⑷ 프리티 부인의 병과 남겨지게 될 아들 로버트의 불안, ⑸ 바이킹이 아닌 앵글로섹슨족의 유물이 출토됨에 의한 민족주의적 메시지, ⑹ 부장품의 소유권과 유적 발굴의 공적에 얽힌 세속적 갈등, ⑺ 페기와 로리의 치정 로맨스와 브라운 부부의 갈등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그 위로 <배>와 <강>과 <자전거>, <무덤>, <비>, <캠핑>, <사진>, <동전>, <추락한 비행사> 등의 셀수 없이 많은 부차적 메타포와, <마치 유물이 출토되는 듯한 '브라운'의 모습>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문학적 미장센 역시 쉴새없이 개입하죠.

 

세상에, 많기도 해라.

 

 

 

 

 

 

# 11.

 

앞서 편집에 대해 이야기하며, 너무 많이 흔들리고, 교차되며, 중첩되어 있다 말씀드렸는데요. 말씀드린 아이템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역시 동일합니다. 감독은 위의 7가지의 아이템과 그 외의 메타포들을, 영화 내내 과장되게 묘사하고, 무수히 교차시키며, 또 중첩시킵니다.

 

 

 

 

 

 

# 12.

 

6세기에 묻힌 앵글로 섹슨 족의 배 무덤을 발굴했다라는 극단적으로 단출한 서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감독은 공격적인 영상 편집 기법과 형이상학적 아이템의 물량을 선택합니다. <죽어서 사라지고 휘발되는 것들의 허망함과, 그럼에도 남겨진 것들의 가치. 그런 남겨진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의 의미와, 후세와 미래를 잇는 연속성을 지키는 것으로서의 고고학적 의의>라는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모든 요소들이 소집되긴 합니다만, 아이템을 너무 많이 오가는 바람에 주제의식 또한 함께 길을 잃고 말죠.

 

 

 

 

 

 

# 13.

 

고고학의 의미에 몰입하려는 순간마다, 전쟁에 관련된 코드가 어설프게 개입해 집중을 방해합니다. 그렇다고 <전쟁>과 <발굴>이라는 두 극단적 아이템 간의 강렬한 대조를 즐기기엔 또 전쟁에 대한 묘사가 너무 빈약하죠. '로버트'와 '브라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릴리 제임스'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등장해 애매하게 로맨스에 불을 붙입니다. 함께 배를 발굴하는 '프리티' 부인과 '브라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와중에, '브라운'의 부인이 등장해 이들 관계를 마치 불륜처럼 보이게 만들죠.

 

 

 

 

 

 

# 14.

 

서사 속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함에도 과도하게 분량을 할당받던 '망원경과 별', 아이 '로버트'에 대한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에서 모자가 서로를 위하는 그림을 하나 뽑아내기 위해서였을 뿐이라는 게 들통납니다. '필립스'는 주제의식과 무관하게 주인공 '브라운'을 띄우기 위해 기능적으로 폄하된 악역에 불과하고. 반복적으로 되뇌는 앵글로섹슨에 대한 이야기 역시 주제의식과 동떨어져있기는 매한가지죠.

 

 

 

 

 

 

# 15.

 

유용한 것들을 더하고 또 더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잘 비워내 중요한 메시지만 선명히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을 몸소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하나하나만 보았을 때는, 충분히 그럴싸한 그림, 그럴싸한 음악, 그럴싸한 편집, 그럴싸한 아이템, 그럴싸한 은유들입니다만.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잠재력을 가로막는 양동이 속에 든 게들 신세가 되고 맙니다. 십분 양보 해 다양한 재미를 즐기는 장르물이었다면 또 모를까. 유물 발굴하는 차분한 드라마가 이렇게나 혼탁하면 아무래도 곤란하죠. '시몬 스톤' 감독, <더 디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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