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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히치콕의 고양이 -2-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냥_ 2020. 9.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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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전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은 넌센스죠.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조적인 도시 외곽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역동적인 어드벤처에서 적막 속 스릴러로의 이동이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석의 차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농가에서 역시 각 인물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해니'의 머릿속은 자신을 쫓는 경찰들로 가득합니다. 아낙은 매정한 남편과는 달리 잘생기고 신사적인 '해니'에 대한 이성적 호감에 기반한 막연한 선의를 가지고 있죠. 남편은 이들을 불륜에 빠진 남녀라 오해하고 있구요.

 

 

 

 

 

 

# 11.

 

'해니'가 경찰의 추격이라는 물리적 압박에 집중하는 사이. 관객은 경찰의 추격과 남편의 오해라는 두 요소에 의해 보다 강한 압박감을 느끼며, 남편의 질투를 알아채지 못하는 '해니'의 모습에 조급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은 '해니'에게 적대적이지만, 그 적대감은 아내를 근거로 한 '간접적인 적대감'이고, 그나마도 돈에 대한 우호에 우선하지는 않죠. 일련의 독특한 캐릭터 배치가 만드는 얽히고설킨 '이해'와 '오해'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주인공 '해니'는 아슬아슬한 위기로부터, 관객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가 됩니다. 유려한 서사네요.

 

 

 

 

 

 

# 12.

 

우여곡절 끝에 '알트 나 셸라'의 '교수'를 찾아온 주인공. '해니'를 쫓아야 한다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곤란으로부터 구원하는 '교수'의 존재는 '해니'에게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한줄기 빛처럼 느껴집니다. 우호적인 '교수'의 태도에 안심하는 찰나. 그가 스파이 집단 '39계단'의 보스라는 게 공개되죠. 감독은, 이 장면에서 그가 보스라는 사실을 스스로 뱉어내는 '말' 한마디 대신 '잘린 손가락'으로 대체합니다.

 

 

 

 

 

 

# 13.

 

대단히 영리하고 또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혼란스러운 정보와 해석으로 서스팬스를 만들어온 영화가 첫 번째 클라이맥스에서 다시 '말'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로 교수의 정체를 증언했다간 곤란했을 테니까요. '교수'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어 거짓말을 하는 것 아냐? 사실은 39계단의 보스가 아닌 것 아냐? 라고 오해할 여지를 줘선 안 되죠.

 

'교수'를 만남으로서 안심하게 될 '해니'와 관객들을 다시 극단적인 긴장감에 빠트리기 위해선 어설픈 정보가 아니라, '잘려나간 손가락'과 같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감독은, 각 캐릭터들이 자기 입장에서 펼쳐놓는 주관적 해석을 사랑하지만. 힘을 실어줘야 할 정보는 명확해야 한다는 포인트는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 14.

 

'교수'가 당긴 총알은 우연히도 아낙이 건넨 남편의 외투 속 찬송가집에 맞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해니'. 교수의 집을 빠져나와 경찰을 찾지만, 총알이 박힌 찬송가집을 보고서도 '해니'의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다만, 보안관이 '해니'를 믿지 않은 이유는 경찰로서의 합리적 의심의 결과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교수'의 절친이며, 런던 사람들에게 미묘한 열등감을 가진 스코틀랜드인이었기 때문이죠. 이 정도면 감독이 강박적으로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판단'으로부터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합니다. 

 

기대했던 교수는 사실 최종 보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댔던 경찰 역시 그의 믿음을 배신합니다. 자, 그럼 처음부터 '해니'를 경찰에 넘겼던 '파멜라'는 어떨까요. 당연히 기대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그녀가 영화의 히로인이었다면 어떨까!? 파! 멜! 라!

 

 

 

 

 

 

# 15.

 

여관에서의 씬은, 그 자체로 극의 클라이맥스이면서 동시에 작품의 매력을 집약해 놓은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진실과,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이를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간의 간극.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순간에서의 연기된 행동과, 그렇지 않은 순간의 솔직한 행동의 격차. 거짓인지 진실인지 유추할 수 없는 자기 고백적인 대사들과, 그 사실 여부 따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눈빛과, 분위기를 환기하는 스파이의 등장과, 구세주가 되어주는 여관 아낙의 등장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잔망스러운 코미디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달콤한 로맨스와,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에서의 카타르시스가 한데 몰아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만들어 내는 솜씨만큼은... 글보다는 직접 보시는 걸 권하고 싶군요.

 

... 결국 '이사벨라'가 지키고자 했던 기밀은 문서가 아닌, 그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던 '미스터 메모리'씨였음이 밝혀집니다. 누명을 벗은 '해니'는 그를 믿어준 '파멜라'와 손을 맞잡으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 16.

 

서스팬스는 온전히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가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구태여 카메라를 이리저리 뒤흔든다거나, 소리로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구도와 캐릭터의 퀄리티로부터, 장르적 재미가 결정된 것이라면. 나머지 대사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해 줄 코미디와 로맨스를 불어넣는 건 자유롭고 편안한 일입니다.

 

 

 

 

 

 

# 17.

 

'이사벨라'가 목숨을 잃던 날 밤 열린 창문을 가리키는 조각상의 손가락. 울려 퍼지는 전화기를 향해 뒷걸음질로 걸어오는 '해니'. 도주하는 중의 기차 안 동승객이 하필 여자 속옷을 판다거나 하는 장면들은 모두 감독의 코미디 감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들입니다. 교수의 오른쪽 주머니 속 총이 있는 것처럼 바람을 잡은 후 왼쪽 주머니에서 총을 꺼낸다거나, '해니'의 무수히 많은 말장난과 아름다운 '파멜라'의 개고생. 우왕좌왕하는 관객의 모습에서 시작해, 마지막 일사불란한 무용수의 캉캉으로 받아내는 구성과, 풀린 수갑을 찬 채 맞잡는 두 주인공의 손은 감독의 작가적 감각과 더불어 숨길 수 없는 장난기가 삐져나온 연출들이라 할 수 있겠네요.

 

 

 

 

 

 

# 18.

 

이 작품을 보노라면 어떻게든 참신하게 '사건'을 꼬아보려 용을 쓰는 현대 작가들에 대한 거장 '히치콕'의 조소가 느껴지는 듯도 합니다. "바보들아! 사건은 평범해도 돼! 경험은 해석의 격차를 만드는 시나리오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되는 거야!" 랄까요.

 

인간 사회의 상식과 인류 보편의 직관을 관통하는 단단한 시나리오의 힘은, 기술의 차이와 시대의 간극 따위를 가볍게 극복합니다. 작품을 조립해 설득하는 솜씨를 보노라면, 왜 감독이 이 작품을 그렇게나 아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이었습니다.

 

 

 

 

 

 

# +19.

 

저작권은 2013년 7월 1일 관련법 개정 전까지는 공표일로부터 50년, 이후는 70년 간 보호됩니다. 개인 저작물의 경우 저작자가 사망한 시점에서부터, 법인 저작물 및 영상 저작물은 공표 시점에서부터 적용되죠. 쉽게 말해서, 2013년 6월 30일의 50년전인 1963년 6월 30일 이전에 공개된 영상 저작물은 저작권이 소멸해 자유 이용 저작물 Public domain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1935년작인 이 영화는 굳이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왓챠'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얘기죠.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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