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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그냥_ 2021. 1.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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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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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차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왔다면 이젠 마실 때입니다. 두 교황의 상반된 자기 철학에 대한 강경한 주장과 역설적인 입장이 충돌하는, '본론'이 이어집니다.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교황은 '베르골료' 추기경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적 대척점에서 자신을 비판한다 생각되는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해, 교황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교황은 권위의 힘을 빌어 쏘아붙이듯 질문하고, 추기경은 방어합니다. 추기경의 정중하지만 단호하고 거침없는 답변이 돌아올 때마다. 교황의 귓가에는 날파리가 날아들고, 교황은 불쾌한 표정으로 쫓아냅니다. 교황에서 있어 '베르골료' 추기경의 주장은 자신을 훈계하는 듯한 불편하고 모욕적인, 귀찮은 '날파리'의 소리와 다르지 않죠.

 

 

 

 

 

 

# 18.

 

마치 샌드위치처럼. 감독은 논쟁의 앞뒤를 통속적 은유로 감싸 놓습니다. 비서와 신발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첫 대화 씬을, 귓가를 어지럽히는 날파리와 함께 정리하는 식이죠. 비서의 비리와 신발끈의 상황은, 추기경이 교황의 시선과 심리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올바름에 대한 자기주장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관적 아이템으로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권위가 존중받지 못한다 생각하는 교황의 불편한 심정 역시 카메라의 가벼운 떨림과 과감한 클로즈 업으로 표현되죠. 귓가를 어지럽히는 날파리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베르골료' 추기경의 존재와 주장을 교황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간접적 묘사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다소 난해한 이성적인 논쟁 안에 담긴 역학관계와 감정선을 관객이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최대한 돕고자 합니다.

 

대화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시점에 절묘하게도 손목시계가 교황의 걸음을 재촉합니다. 만, 사실 이 시계의 알림은 교황의 건강보다는 시퀀스를 분리함으로써 관객에게 일종의 <쉼표>를 제공하기 위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 19.

 

다음 대화는 정원 한가운데 놓인 새하얀 테이블에서 이어집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여태껏 누적해 왔던 '원리주의'와 '현실주의'라는 다소 추상적인 관념을 한 단계 구체화하는 씬이죠. 비단 교회뿐 아니라 무언가의 속성이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변화>로 볼 것인가, <타협>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작품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합니다.

 

 

 

 

 

 

# 20.

 

두 사람을 멀찌감치 떨어트려 담아내는 앵글로 시작한 카메라는 이내 테이블 위로 옮겨가고, 곧 두 사람을 정면에서 타이트하게 클로즈-업 하는 데까지 진행됩니다. 대단히 공격적인 화면이죠. 감독은 두 주인공의 대화가 최대한의 박력으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관객이 함께 숨죽이며 이 대화에 몰입하기를 바랍니다. 관객의 머릿속에 <변화>와 <타협>이라는 키워드를 깊게 새겨놓으려 합니다.

 

 

 

 

 

 

# 21.

 

공격적이고 몰입도 높은 연출이라는 말은, 역으로 '피곤한 연출'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을 투자했다간 관객이 먼저 지쳐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죠. 대화를 통해 딱 두 개의 키워드만을 간결하게 전달한 후, 감독은 다시 카메라를 두 인물로부터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트립니다. 심지어는 인물들과의 일체감을 원전적으로 차단해 객체화할 수 있도록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하이앵글까지 동원하죠. 모두 관객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 22.

 

자리를 먼저 일어난 교황을 '베르골료' 추기경이 뒤따릅니다. 달아나듯 벗어나는 교황을 추기경이 뒤쫓는 듯한 구도를 만듦으로써 이 세 번째 대화의 주도권은 추기경이 가져갈 것이라 암시합니다. 교황이 질문하고 해명을 요구하던 상황에서, 추기경이 먼저 비판하고 질책하는 구도로 전환됩니다. 추기경은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에 얽힌 교회의 위기와 타락에 대해 언급합니다.

 

 

 

 

 

 

# 23.

 

흥미로운 점은 이전까지의 정돈된 정원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길을 제시해야 할 교황조차 어딘지 모르는' 뒷길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직전까지의 논쟁을 이를테면 다듬어진 양지의 논쟁이라 한다면, 뒷길에서의 논쟁은 그런 고상함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치부에 관한 논쟁이 될 것이라는 공간 연출인 셈이죠. 최대한 아름답고 정갈하고 당당하게 두 사람을 담아내던 카메라 역시 이 시퀀스에서만큼은 나무 뒤에 숨어 비굴하게 인물을 담아냅니다. 이들 모두, 앞서서의 '신발끈'과 '날파리'와 '카메라 앵글'과 같이 대화의 성격과 상황에 담긴 감정선을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출들입니다.

 

 

 

 

 

 

# 24.

 

더 이상 신부로 살고 싶긴 한 거냐 묻는 교황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추기경. 지금까지의 주장들을 그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다 말하는 교황. 이전과는 달리 뒤따르지 않고 홀로 사색에 잠긴 추기경의 모습은 최고조로 달한 갈등을 표현합니다.

 

여기까지의 <정원>은, 서론에서 소개된 상반된 두 인물의 주장이 화학적 반응 없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입니다. 장르적 긴장감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영화에서 정의하는 교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이어나갈 대화의 '패'를 관객에게 깔아놓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죠.

 

 

 

 

 

 

# 25.

 

같은 메뉴의 식사를 나누지만, 식사는 따로 합니다. 한 식구지만 함께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 갈등이 격하다는 의미라 볼 수도 있겠구요, 함께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 갈등이 격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음식을 나누는 식구라는 의미라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추기경은 밝은 조명이 달린 열린 공간인 식당에서, 교황은 어두운 방에서 식사합니다. 앞선 논쟁에서의 격렬한 표현의 이면에는, 각기 다른 당당함과 가책이 숨어 있습니다.

 

이처럼 일련의 감정표현을 최대한 메타포를 활용해 은유하는 건, 심리상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현실 속 당사자에 대한 무례가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런 현실의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적극적인 정서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성직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한 것일 수도 있을 테구요. 어느 쪽이 되었든 다소 건조할 수 있는 영화의 감정선을 연출을 통해 적극적으로 북돋우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 26. 

 

저녁식사와 함께 <정원의 대화>가 마무리되고, <늦은 밤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 씬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축구경기와 함께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이전까지 보인 연출의 성향을 볼 때, 이 축구경기 역시 이번 대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메타포라 추측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죠. 

 

감독은 밤의 대화를 <축구 경기와 같은 경쟁>으로 정의합니다. 권위가 오가는 정치적 갈등으로도, 정의로운 '베르골료' 추기경이 부도덕한 '베네딕토 16세'를 단죄하는 영웅 서사로도, 양립할 수 없는 두 인물이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 서사로도 읽혀선 안된다 선을 긋습니다. 이어지는 대화가 정원에서의 논쟁과는 달리 자기 고백적이라거나, 합을 주고받는 '공놀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7.

 

두 인물이 서로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낮의 대화>와는 달리 <밤의 대화>는 관객에게 이들이 가진 자연인으로서의 내면을 보다 깊게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흑백 화면의 회상씬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씬의 목적이었다면 '베르골료' 추기경의 과거 역시 그가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위산 위에 올라 드넓은 구름을 올려다보는 장면 역시, '베르골료' 추기경의 성직자로서의 정서적 변화를 공간으로 시각화해 미술적으로 그려내 관객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죠.

 

감독은 논쟁과 정서가 함께 가야 한다 생각하는 듯합니다. 논쟁은 현시점의 두 교황이 주고받는 표현에 최대한 열어놓고, 감정은 문학적 - 미학적 연출을 최대한 동원해 뒷받침하려 합니다.

 

 

 

 

 

 

# 28.

 

특히나 이 <밤의 대화>에서는, 불균형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교황을 변호하는 것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피아노 연주에서 '실수를 두려워한다' 말하는 대목이나, 사람들이 그를 '주님의 로트와일러'라 부르지만 질책하지 않는다 말하는 대목 등은, 그가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엄격한 원칙주의자로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역할 역시 쉽게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무게가 있으며, 그보다 더 무거운 고독감 역시 함께 가지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 29.

 

이윽고 다음날. 헬기를 타고 바티칸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영화의 중반까지 따라와 준 관객에게 감독이 주는 선물입니다. <낮의 정원>과 <밤의 대화>를 지나온 관객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큰 쉼표를 한번 찍어주는 셈이죠. 헬기에서 내려다본 바티칸의 전경을 짧게나마 비춰주는 이유도, 도입의 '댄싱퀸' 이후로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배경음악이 다시 등장하는 이유도,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어 보이는 피자도 한판 사는 이유도, 모두 관객이 '절정'부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입니다. (...계속...)

 

 

티타임 ⅲ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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