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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본격! 리듬! 액션! _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 감독

그냥_ 2020. 5.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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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리는 비트와, 몸을 떨게 만드는 엔진 소리와, 마초적인 배기음의 성대한 응대와 함께 엑셀레이터를 힘껏 당기는 두 시간 동안의 레이스입니다. 누가 감히 영화는 이야기라 그랬던가요. 그림이라 그랬던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려한 드라이빙 스킬로 관객을 레이싱의 매력에 빠트리는 베이비 '안셀 엘고트'도, 수틀리면 샷건부터 갈기고 보는 힙하고 잘생긴 뱃 '제이미 폭스'도, 각기 다른 큐티애교와 섹도시발을 동시에 선보이는 데보라 '릴리 제임스'와 달링 '에이사 곤살레스'도, 연기 잘하는 두 쓰레기도 아닌 음악 그 자체입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 :: Baby Driver』입니다.

 

 

 

 

 

# 1.

 

음악이 플롯과 시퀀스, 공간, 카메라 워크에 대사까지 모조리 장악하는 걸 보노라면 주인공이라는 말조차 조금은 소박해 보일 지경입니다. 주객전도도 이 정도로 화끈하게 이루어지면 그 자체로 스타일이 되기도 하는 법이죠. 영화라기보다는 무지막지하게 긴 뮤직비디오에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만 동시에 그 어떤 오락영화보다 장르적입니다. 역시 정답은 없습니다. 잘 만들면 장땡이죠.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네요. 스트리밍 트렌드에 최적화된 싱글과 E.P가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고지식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음악을 앨범 단위로 만들고 또 듣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만 같은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한 곡의 음악 안에도 기승전결이 존재하듯 음악의 조합과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서사를 창작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앨범 단위로 밖에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선 굵은 매력을 몸소 보여주는 영화랄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의 ost 앨범을 듣고 소장하는 걸 즐깁니다만 이 영화는 굳이 ost 앨범을 찾아 듣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사나 음향 효과가 모조리 포함된 영화 전체의 사운드를 따다가 '112분짜리 mp3' 파일로 만들어 듣고 싶은 충동이 일었죠. 이 영화의 ost는 그 자체로 충분히 환상적입니다만 영화의 사운드는 그보다 더 환상적입니다.

 

 

 

 

 

 

# 2.

 

흔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짤이란 게 있죠.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아 들어가는 로봇 청소기. 귀를 찢는 굉음에 자욱한 연기를 뿜으며 드리프트 한 후 정확히 파킹 되는 자동차. 일말의 미동도 없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는 젠가 조각과, 완벽한 타이밍에 서로 교차 운동하는 무수히 많은 진자들과, 턱끝까지 차오른 테트리스를 무너트리는 일자 막대기. 서로 다른 것들이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완벽히 조립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동안의 쾌감들. 마치 그런 순간들처럼 강박적 결벽증 환자들의 냉장고 속처럼 영화의 요소들이 정확한 비트 위에서 완벽히 조응하는 것을 볼 때의 쾌감이 휘몰아칩니다.

 

쓸데없이 폼 잡는 진지한 대사 따위들은 믹스 테이프 소스에 불과합니다. 음악느님을 들어야 할 때면, 선글라스 끼고 자동차 핸들을 틀어 쥘 때면 누구든 닥치고 있어야 합니다. 타란티노로부턴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던 장고의 멋들어진 목소리에 에드가 라이트가 돌려줄 건 오스틴 파워가 새겨진 우스꽝스러운 마스크뿐이죠. 겁나 멋진 제이미 폭스의 목소리도 레이싱을 앞둔 킬러 트랙 앞에선 소음에 불과합니다.

 

# 3.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부터 잘 드러나듯 원래부터가 장난질 좋아하는 감독답게 얼핏 보기에도 대단히 많은 은유와 오마주들이 엿보입니다. 박사가 이끄는 엘리베이터와 스스로 걸어 올라가는 계단의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 데보라를 만나는 동안에만 들리지 않던 이명에 담긴 관계와 트라우마에 대한 함의. 미련과 집착으로 읽히는 믹스 테이프들과 그 한가운데 가려지지 않는 샛노란 엄마의 노래가 주는 주제 의식. 타인의 목소리를 담던 녹음기에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담던 장면의 감동. 양아버지의 대사에 담긴 뼈 있는 말들. 박사의 조카와의 위트. 새벽 2시의 도피를 약속하는 순간의 베이비와 데보라의 구도. 깨져나간 선글라스와 자동차 키를 빼는 드라이버. 따위를 쏙쏙 빼먹는 재미들도 놓치기엔 아쉽죠.

 

 

 

 

 

 

# 4.

 

감독이 묘사하고 정의하는 '베이비'라는 캐릭터 또한 제법 흥미롭습니다.

이 캐릭터는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사실 찐따들의 워너비 그 자체거든요.

 

감독은 이불속에서라면 언제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X나 멋진 내가 도심 속에서 벌이는 환상적인 레이싱에 대한 망상 전개! 라는 중2병 꾹꾹 눌러 담은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 하지만, 그렇다고 차마 대놓고 말하기엔 창피한 그 지점을 정확히 자극합니다. 주인공 '베이비'는 인싸가 되고 싶은 아싸의 워너비와 아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싶은 인싸의 워너비를 넘나들며 관객의 감정적 동요를 효과적으로 이끕니다. 

 

주변에서 '베이비'를 구박하는 온갖 갱스터들은 (간지 나는 배우들의 열연과는 별개로) 상당 부분 소년 영화 속 일진 빌런의 속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인기 많은 인싸 일진 '버디'와 폭력적이고 고압적인 일진 '뱃'. 잘 나가는 인싸 일진의 여자 친구이자 자신에게 불쌍하다는 듯 우쭈쭈를 날리는 '달링'과 인간미 없고 고압적인 담임 선생님 '박사'. 인싸들은 알지 못하지만 집에는 나만의 환상적인 비밀기지가 있고, 내가 잘하는 것 하나만큼은 인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다, 오그라들지 않으래야 오그라들지 않을 수 없는 '베이비'라는 다소 유치한 닉네임까지 더해지면 완벽하죠.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난 모든 걸 알고 있고 최고의 퀸카 '데보라'는 결국 조용한 찐따인 나를 좋아하며, 결국 각각의 일진들과 선생님 모두 그렇게나 무시하던 나에게 큰 코 다치게 된다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선 귀엽기까지 합니다.

 

 

 

 

 

 

# 5.

 

물론 음악에 올인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이야기 측면에서는 제법 지루한 영화라는 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고전적인 캐릭터들의 고전적인 조합과 진행을 기계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인물이 어떤 서사를 걷게 될 것인지는 비단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창작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눈에 훤할 겁니다. '박사'의 빚을 다 갚는 순간 정말 범죄에서 손을 떼게 되리라 예상하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죠. 

 

'뱃'은 영화 내내 주인공에서 정리되기 위한 사망 플레그를 너무도 충실히 쌓고 있고, '데보라'는 설득력 없이 너무도 순애적입니다. 마지막 뜬금없는 '박사'의 사랑 타령은 그 동안 쌓은 업보를 청산하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죠. 영화를 가득 메운 클래식 명곡들의 변호를 일부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몇몇의 은유와 연출들은 너무 노골적이거나 촌스럽기도 하구요.

 

만약 관객의 성향에 따라 음악에 대한 감화가 덜하거나, 역으로 이야기의 완성도에 대한 민감도가 높으시다면 이 영화는 사람들의 호평과 달리 끔찍한 경험이 될 수도 있긴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고 개연성이 저떻고를 생각했다는 것에서부터 실패는 예정된 것과 같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관객의 잘못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세간의 호평과 별개로 관객 개인과 작품의 궁합이 나쁠 수는 있죠.

 

 

 

 

 

 

# 6.

 

아! 음악이나 캐릭터 따위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릴리 제임스'의 미모는 언제나 비현실적입니다. 『맘마 미아! 2』 급 땡기네요.

 

유치한 것에 관대한 관객이라면 좋습니다.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운전에 대한 로망 정도는 가지고 있다면 더욱 훌륭하죠. "Bellbottoms" (by Jon Spencer Blues Explosion)나, "Harlem Shuffle"(by Bob & Earl), "Brighton Rock" (by Queen), "Baby Driver" (by Simon & Garfunkel) 등 오래된 명곡들에 대한 조예와 취향까지 있다면 완벽합니다. 뇌의 전원은 잠시 꺼두시고 눈이 아닌 황홀한 귀와 들썩이는 어깨로 보는 미친 영화. '에드가 라이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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