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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그냥_ 2021. 1.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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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툼한 머그잔에 우려낸 후, 입이 델라 조심스레 홀짝이며 마시고 또 마시는 것만 한 소확행도 없죠.

 

이 영화는 마치 한잔의 차와 같은 작품입니다.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며 정갈한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손이 데일 듯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상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향기처럼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찻잔 속에서 논리의 창과 철학의 방패가 번득입니다. 말의 전투가 펼쳐지는 성스러운 시스티나에는, 수백의 전사들이 뿜어내는 것 이상의 박력과, 수천의 신도들이 쏟아내는 것 이상의 경건함과, 수만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것 이상의 사색으로 가득합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두 교황 :: The Two Popes』입니다.

 

 

 

 

 

# 1.

 

오프닝 시퀀스는 교황이라는 직책의 권위와, 현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자연인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자, 바티칸 시국을 주소로 가질 영광을 얻은 선택받은 엘리트이며, 수십억 교인들의 정점에 이른 고귀한 존재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누구나와 같이 와이파이를 연결하기 위해서라면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 평범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 2.

 

그를 대하는 상담사의 태도는 기존의 교황이라는 직책이 가지는 영향력과 상징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교황이 본연의 존재 의의 대로 사람들 속에서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귄위의 존재로 군림하기만 할 뿐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군가가 대신 받들어 모시는 자로서의 교황이라는 역할론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진보적 인물이라는 것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씬이라 할 수 있습니다.

 

 

 

 

 

 

# 3.

 

'무너진 성당을 고치라'는 그리스도의 음성에 '지오반니 베르나르도네'라는 이름의 청년은 수바시오 산의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와 담을 고쳤다고 합니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화두華頭 속에 등장하는 <무너진 성당>은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무너진 시설로서의 성당. 둘은 성당을 무너트리고 방치한 양태로 표출된 마을 사람들의 무너져 내린 신실성이죠.

 

 

 

 

 

 

# 4.

 

이상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교인이라면, 커뮤니티의 신앙심이라는, 보다 원론적 가치의 회복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너진 성당을 고치는 행위>로 생각할 겁니다. 마음을 담아 신의 말씀을 전파하여 신성을 회복하면, 신실한 신도들은 누가 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연스레 성당을 고칠 벽돌을 나르겠죠.

 

 

 

 

 

 

# 5.

 

반면, 현실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교인은, 아직 신앙이 깃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신실함을 전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생각할 겁니다. 그보다는 당장 눈 앞에 허물어진 성당을 발 벗고 고치는 쪽이 현명하죠. 공간을 정돈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성경에 담긴 말씀 이전에 먹을 것과 쉴 곳을 나눔으로써 '커뮤니티의 회복'에 성당이 구심점으로서 기능한다면, 그 후에 사람들이 자연스레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 불리우게 되는 이 청년은 명백히 후자의 인물이죠.

 

 

 

 

 

 

# 6.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어느 노 신부가 길거리의 광장 한 복판에서 연설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축구팀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역시, 성당은 십자가와 성경이 아닌 '커뮤니티'입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소년이 아주 오래전 성당을 고쳤듯, '베르골료'라는 이름의 이 노 신부 역시 광장에서 자신의 성당을 고치고 있습니다.

 

 

 

 

 

 

# 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합니다. 서거 장면에 불어닥치는 거센 바람과 삭막한 색감과 허무하게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와 거친 헨드헬드 뷰 따위는, 교황의 서거와 함께 변화의 기로에 놓인 기독교의 정치적 국면을 연출로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곧이어 열리게 될 콘클라베를 시스티나의 현장이 아닌 광장에 선 기자의 뉴스로 소개하는 방식과, "참여 중인 추기경들은 영적으로 매우 충만하며, 매우 정치적이기도 하다"라는 리포터의 목소리를 힘줘 실은 것 역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두 교황의 모습 또한 매우 정치철학적일 것이라는 선언이라 할 수 있겠죠.

 

 

 

 

 

 

# 8.

 

독은 광장을 배회하던 카메라를 곧장 화장실로 옮깁니다. 통상적으로 <광장>을 '공개된 공간이자 연출된 공간'이라 한다면, <화장실>은 '다소 부끄럽기도 한 숨겨진 솔직한 감정을 배설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라칭거' 추기경 (후 교황 베네딕토 16세)과 '베르골료' 추기경 (후 교황 프란치스코)의 등장과 만남을 굳이 화장실에서 연출한 것은, 처음부터 이 인물들의 솔직한 정서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불필요한 혼란이나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유추할 수 있겠네요.

 

 

 

 

 

 

# 9.

 

'베르골료' 추기경은 '아바'의 명곡 <댄싱 퀸>을 허밍 하며 등장합니다. 대중음악일뿐더러 제목 역시 무려 <댄싱> + <퀸>인 이 음악은 아무래도 종교적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거리에서의 연설에서 보였듯 그는 '음악은 흥겨우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탈권위적인 인물입니다.

 

 

 

 

 

 

# 10.

 

손을 씻던 '라칭거' 추기경은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느냐 묻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아바'의 명곡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이 경박하고 불경스러운 현실의 욕망과는 거리를 둔 채 살아온 인물입니다. 원론적이고 권위적이며 금욕적인고 다소 배타적이기도 한, 소위 학자형 인간이라는 뜻이죠. (물론 노래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이 되려 이 인물의 성격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볼 수도 있겠네요.)

 

 

 

 

 

 

# 11.

 

연이어 '라칭거' 추기경이 보이는 모습들. 이를테면 추기경들의 모임에서 "라틴어를 쓸 때가 좋았다"라 말하는 대목이나, '베르골료' 추기경에게만큼은 애써 인사를 건네지 않는 모습, 콘클라베 중의 식사자리에서 설파하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의 진리>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앞선 '화장실에서의 암시'를 '확신'으로 전환하며 대립각을 강하게 세웁니다.

 

 

 

 

 

 

# 12.

 

우리와 같은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콘클라베의 절차에 대한 묘사는 큰 부담 없이 일종의 종교 문화적 유희로서 즐기셔도 충분합니다. 이윽고 굴뚝에는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익히 알려진 대로 265대 교황으로 '라칭거' 추기경,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됩니다. 개혁을 바랐던 '베르골료' 추기경은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은퇴를 준비하겠노라 말하는군요. 

 

 

 

 

 

 

# 13.

 

상대주의보다는 절대주의, 융통성보다는 원칙, 변화보다는 안정, 합의보다는 엄격의 시대가 몇 년간 이어집니다. 흰 옷을 입고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베네딕토 16세'의 모습은, 경건하고 엄숙하지만 독단적이고 압도적인 시대를 은유합니다. 교회의 성추문에 관한 보도를 배경으로 교황이 거친 기침을 내뱉는 장면은 가톨릭의 위기를 은유합니다. 연주를 마친 교황이 조심스레 촛불을 끄는 모습은 그에게 남겨진 교황으로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암시라 할 수 있겠죠.

 

 

 

 

 

 

# 14.

 

교황께서 피아노를 독주하는 동안, '베르골료' 추기경은 여전히 부산스러운 시장통에서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짐을 대신 들어주겠노라 말하는 수행원의 보조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수행원이 "교황은 직책에 맞는 옷을 입고 만나는 것을 좋아하신다" 말하자, 추기경은 여분의 추기경 모자를 가진 게 있느냐 농을 던집니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추기경은 교황을 기다리다 말고 근처의 정원사와 담소를 나눕니다.

 

네. 그에게 있어 추기경은 그저 조금 더 존중받는 직책일 뿐, 그렇다고 수행원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에게 있어 교황은 그저 조금 더 존중받는 직책일 뿐, 그렇다고 정원사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 15.

 

감독은 일관된 연출적 방법론을 통해 초반부를 진행합니다. <중첩><대조>죠. 앞서 짚어드린 '베르골료' 추기경의 모든 행동과 대사에서 현실주의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철학의 암시가 반복되는 점이나, '라칭거' 추기경의 모든 행동과 대사에서 절대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철학에 대한 암시가 반복되는 대목들은 모두 <중첩>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인물에 대한 묘사를 교차 편집하는 영상 연출과, 지속적으로 두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이 엇갈리게끔 배치함으로 인해 생기는 직관적인 시각 효과들. 혹은, 영화의 시점을 화장실이라는 낮은 공간에서 출발시킴으로써 이후 묘사하게 되는 시스티나의 전경과 콘클라베의 엄숙함을 강조한다거나, 편곡을 곁들인 '댄싱퀸'이라는 가벼운 위트로 분위기를 환기한 후 콘클라베의 문이 잠기는 순간의 적막을 강조하는 연출 등은 모두 <대조>의 예라 할 수 있겠죠.

 

 

 

 

 

 

# 16.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탓에 극단적으로 정적일 수밖에 없는 서사. 교인이 아니라면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을 제한적인 소재. 높은 진입장벽의 전문적이고 난해할 수밖에 없는 철학적 주제. 라는 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관객이 최대한 흥미를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영화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연출자의 의도와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도입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차'에 비유하자면, 티백을 하나 꺼내어 뜨거운 물에 반복적으로 담갔다 꺼내며 충분히 우려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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