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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12월 26일 _ 유령신부, 팀 버튼 감독

그냥_ 2022. 1.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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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박싱 데이(Boxing Day) 또는 성 스테파노의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고 단순하게 부른다.

 

- 위키백과 [박싱데이] 중에서 -

 

 

 

 

 

 

 

 

'팀 버튼' 감독,

『유령신부 :: Corpse Bride』입니다.

 

 

 

 

 

# 1.

 

헨리 셀릭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팀 버튼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행복(크리스마스)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었던 팀 버튼(잭 스캘링턴)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분노(우기부기)에 휩싸이지만, 결국 분노를 제압하고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본질적 슬픔(샐리)과 할로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이죠. 팀 버튼이 창작한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악몽'의 서사 위로, 크리스마스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한 '팀 버튼의 악몽'을 그린 작품이라 설명드렸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05년입니다. 감독은 <에드 우드>, <화성침공>, <슬리피 할로우>, <혹성 탈출>, <빅 피쉬>를 지나 오래전 자전적 이야기를 다룰 때 썼던 1993년 작의 양식을 다시 가져옵니다. 전작이 제목처럼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이었다 한다면. 이 작품은 마음껏 자신의 창작을 펼쳐 놓았던 12년 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난 후, 이튿날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맞는 12월 26일을 이야기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악몽>과 연동되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본 리뷰에 앞서 전작에 대한 글을 먼저 읽어보신다면 소통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실 듯하군요. :)

 

 

크리스마스는 누구였을까 _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헨리 셀릭 감독

# 0. 왜 영화를 이렇게 보는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영화를 해괴망측하게 제멋대로 보는 것만큼은 우주 최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서도,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morgosound.tistory.com

 

 

 



# 2.

 

<크리스마스 악몽>의 세계는 이분법적입니다. 크리스마스 마을과 할로윈 마을이 나뉘어 있구요, 인형들이 사는 판타지 세상과 사람들의 세상이 나뉘어 있었죠. 각각의 경계는 명확하고 존재들 역시 서로의 영역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유령 신부>의 세계는 회색지대입니다. 몰락 귀족과 서민 졸부가 뒤엉킨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구요, 캐릭터들은 살아서 저승에 가기도 하고 죽은 채로 이승에 넘어오기도 합니다. 각자는 별개의 세상을 사는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한 때 아끼고 사랑했던 이웃이고 가족이었죠. 하늘을 나는 잭을 격추시키던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저승의 존재들과 포옹하고 화목합니다.

 

# 3.

 

1993년의 팀 버튼이 인간 세상의 선명한 이방인이었다면,

2005년의 팀 버튼은 주류 사회에 편입된 이후라 할 수 있습니다.

 

할로윈을 사랑하던 소년이 졸부가 되어 결혼을 앞둔 청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잘하는 바와 꿈꾸는 바가 명확하던 빛나는 눈을 가진 '잭 스켈링턴'은, 돈은 많지만 현실적 갈등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약한 '빅터'로 추락합니다. 할로윈 마을을 진두지휘하던 잭과 달리, 팀 버튼과 똑 닮은 빅터는 저승을 어색해하고 낯설어합니다. 샐리의 품에 안겨 키스를 나누던 잭의 모습으로 막을 내리던 전작의 결말과, 에밀리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이번의 결말 역시 대조적이죠.

 

영화는 빅터가 되어버린 잭의 비겁함을 향한 비난입니다. 할로윈 마을을 넘어 크리스마스까지 꿈꾸던 소년 잭이, 할로윈 마을로 조차 돌아갈 수 없는 빅터가 되어버린 절망입니다. 상처받은 에밀리를 둘러싸고 검은 과부 거미들이 '과대평가'라 힐난하는 대목은 특히 자해적이죠.

 

 

 

 

 

 

# 4.

 

지하 세계는 죽음뿐 아니라 과거라는 시간적 개념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빅터가 옛날에 키웠다던 개 '스크립스'는 공간이 가진 시간성을 노골적으로 상징하죠. 다소 무리한 짐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팀 버튼에겐 어릴 적 매우 소중히 키웠던 강아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추측도 하게 되는군요.

 

여하튼 빅터가 스스로 독약을 마셔 저승에 남고자 한다는 것은 본인의 원초적 자아의 회복뿐 아니라, 원초적 자아를 마음껏 뽐내던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끝내 독약을 마시지 못했다는 것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절망과 무력함입니다. 감독은 스스로 삼키려던 독약을 빌런 바커스의 입에 붓는데요. 그 이유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다시 살펴보도록 하죠.

 

 

 

 

 


# 5.

빅터는 감독의 페르소나일 뿐입니다.

진짜 주인공은 에밀리 죠.

 

슈퍼스타 잭이 우유부단한 빅터가 되는 동안, 붉은 드레스의 '리디아'는 보름달 아래 입 맞추던 '샐리'를 지나 순백 드레스의 '에밀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없이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섬세하고 현명하고 감정적이고 사려 깊습니다. 영화 내내 감독이 이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스러워하는지 가감 없이 노출됩니다. 당연합니다. 팀 버튼의 이상향이니까요.

 

영화는 빅터가 나비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 나비가 된 에밀리가 승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에밀리가 곧 나비고, 나비는 곧 빅터의 창작입니다. 즉, 팀 버튼 작품 철학의 의인화라는 거죠.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이었던 리디아와 달리 누더기일지언정 온전했던 샐리와 달리 에밀리의 몸은 부서져 있습니다.

 

에밀리가 부서진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에밀리는 물질적 욕망에 살해당합니다. 결말에서 빅터를 향하던 바키스의 칼이 에밀리의 갈비뼈를 파고드는 장면은, 자본의 칼이 팀 버튼의 내면에 새긴 깊숙한 자상입니다. 자본에 이용당하고 배신당한 자의 상처입니다. 스스로의 입에 부어 넣으려던 독약을 바키스의 입에 처넣는 건, 자신의 내면과 작품 철학을 살해한 '돈'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원망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의 정서를 축약하고 있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죠. 물질 만능주의를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넘어 돈과 관련된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에 신물이 난 듯한 격앙된 뉘앙스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 6.

 

오래전 땅 밑에 묻어뒀던 원래의 감수성에게 가시나무의 숲에 숨어 비겁한 청혼을 보내자,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 에밀리는 그의 손을 끌어내립니다. 노래와 술과 친구와 웃음이 가득한 행복으로 말이죠. 하지만 비틀 주스 때와는 달리 저승은 빅터의 현실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독약을 마시면서까지 남아보려 하지만 거짓된 마음을 알아차린 에밀리에게 거절당하고 말죠.

 

영화의 핵심은 빅토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에밀리의 손가락에 끼워둔 결혼반지가, 빅토리아의 손가락에 끼워진 것과 달리 빅터 스스로 끼운 그 결혼반지가 빠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팀 버튼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샐리와 에밀리에게 이혼'당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빅터와 빅토리아>가 아닌 <유령 신부>. 나비가 되어 날아가버린 유령 신부의 비극이자, 그보다 더 아픈 빅터의 비극입니다.

 

 

 

 

 



# 7.

크리스마스 악몽의 리뷰 말미에 '그렇다면 팀 버튼이 찾은 크리스마스 마을은 누구였을까.'라는 궁금함이 남는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이 영화는 마찬가지 이유에서 '빅토리아는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를 잃은 대신 아내로 맞이하게 된 빅토리아, 추악한 바키스에게서 간신히 되찾은 빅토리아, 빅터를 위해 기꺼이 모험을 자처한 빅토리아, 떠나가는 와중에 에밀리가 남긴 부케를 받아 든 빅토리아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 철학의 표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부케의 모습을 한 바통을 이어받는다는 면에서 더더욱 말이죠.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이후 <스위니 도트>를 시작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크 섀도우>로 이어지고 있는 필모그래피가 언젠가 완성되고 나면, 빅토리아의 정체를 되돌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팀 버튼' 감독, <유령 신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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