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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히치콕의 고양이 -1-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냥_ 2020. 9.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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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E. Schrödinger, 1887-1961)가 1935년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 대상이 측정장치(일반적으로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고전 대상)를 함께 고려하면 결국 측정장치도 중첩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설이다. 중첩된 파동 함수가 측정하는 순간 환원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처 [물리학백과 :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 :: The 39 Steps』입니다.

 

 

 

 

 

# 1.

 

사실 없는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은 지루합니다. 사건은 개인적 입장에 따른 주관적 관점을 통해 해석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집니다. '히치콕' 감독은, 관찰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사건이 해석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무수히 많은 해석의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에 불과하다 여기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히치콕의 고양이』 랄까요.

 

 

 

 

 

 

# 2.

 

'사건'이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온전하다면,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과, 그 외의 무수히 많은 '틀린 해석'만이 존재해야 합니다. 반면, '사건'이 본질적으로 상대적이고 불완전하다면, 단 하나의 상황 하에서도 무수히 많은 해석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겠죠. 감독은, 각기 다른 해석이 만드는 스펙트럼의 진폭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특별한 상황'을 찾아, 그 특별한 상황 속 '특별한 감정'을 서스펜스라 정의한 후. 이를 치밀하게 재조립해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여타 장르와는 차별화된 '영화적 경험의 진수'라 생각합니다.

 

 

 

 

 

 

# 3.

 

『39계단』의 플롯은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박하게 말하면 단편적입니다. 당연합니다. 영화부터가 1935` 작인 데다, 원작인 '존 버컨'의 소설은 무려 1915` 작이니까요. 경찰의 추격을 받는 살인 용의자 '해니'가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 위해 진범 스파이를 쫓는 동안의 추격 스릴러. 라는, 한 줄로 간단히 요약되는 서사입니다.

 

'스파이물'이라는 소장르의 효시라는 평을 듣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긴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100년 전의 이야기구요. 복수의 주인공이 복수의 이해관계자들과 얽히고설키는 게 다반사인 현대의 스릴러 작품들에 비하면 이 작품의 플롯은 마지막 반전 정도를 제외하면 다소 심심하긴 합니다.

 

 

 

 

 

 

# 4.

 

하지만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사건의 특별함이 아니라 해석의 격차니까요. 감독은 매 씬마다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해석을 겹쳐 묘사합니다. 물론, 여기엔 개별 캐릭터뿐 아니라 '관객' 개개인의 시각과 해석 역시 포함되죠.

 

관객은 각 씬마다 나름대로의 '객관적' 해석을 전개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론 '관객'으로서의 제한된 역할과 제한된 정보량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즉 '주관적인 객관적 해석'을 시도하게 됩니다. '해니'가 올곧게 자신의 모험을 달려가는 동안. 관객은 때론 '해니'의 옆에서, 때론 '파멜라'의 옆에서, 때론 수많은 여타 조연들과, 심지어 '히치콕' 감독 옆에서 상황을 다각적으로 해석하게 되죠. 각 상황마다 정답을 추론하기도 하고, 오답을 추론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정답에 도달하기도, 유의미한 오답에 도달하기도 하는 가운데. 일련의 해석들이 충돌하는 동안의 각기 다른 타입의 긴장감을 즐기는 작품입니다.

 

 

 

 

 

 

# 5.

 

오프닝 극장에서 유독 도드라져 언급되는 가금류의 전염병에 대한 질문은, 짐짓 중요한 듯 묘사되지만 '해니' 비롯한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정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39 계단』의 관객에게 있어선 '미스터 메모리'의 존재를 머릿속에 간접적으로 새겨 넣는다는 면에서 대단히 유의미한 정보이기도 하죠. 일련의 오프닝 시퀀스는, 몇 주요 캐릭터들의 소개임과 동시에.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어 가는 동안, 대상에 따라 정보를 어떤 식으로 차등 배분해 나가게 될지를 효과적으로 암시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6.

 

총기 사건으로 인해 극장은 황급히 막을 내리고. '해니'는 매혹적인 여인 '이사벨라'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해니'는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 따라왔다 생각합니다. 반면 미션을 수행 중인 스파이 '이사벨라'는 몸을 숨기기 위해 그를 따라왔을 뿐이죠. 관객은 '해니'와 '이사벨라' 모두를 아직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 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들이 영화를 이끌고 나갈 주요 인물일 것이라고는 기대하게 됩니다.

 

만, 이 모든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독은 '이사벨라'를 비정하게 리타이어 시키며 섣부른 추측을 환기합니다.

 

 

 

 

 

 

# 7.

 

'이사벨라 살인사건'의 누명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목적지였던 스코틀랜드의 '알트 나 셸라'로 향하게 되는 '해니'. 도주를 나서던 중, 빌라 입구에서 우연히 우유 배달부를 만나게 됩니다. '해니'는 우유 배달부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륜과 관련된 거짓말을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군요.

 

관객은 '문밖의 스파이'라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로 인한 조급함과, '쓸모없는 진실'과 '유용한 거짓'이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순간만큼은, <스파이가 문밖에 있다>라는 분명한 사실보다, 거짓으로 지어낸 <불륜 이야기>가 더욱 진실에 가깝습니다. 상황의 키를 쥐고 있는 우유 배달부가 선택한 해석이기 때문이죠.

 

 

 

 

 

 

# 8.

 

'이사벨라'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는 사람들. 기사 속 용의자가 눈앞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심드렁하게 기사를 읊는 동안, '해니'의 눈빛은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전혀 의도치 않은 조연들의 행동들과, 이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해니'의 표정 사이에서 관객은 강한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와 같은 구도는, 효과적으로 긴장감을 누적하게 되고. 이후 '해니'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며 도움을 건네는 '교수'의 존재에서 강한 기대감으로 환원됩니다. 만, 그 역시 다시 '교수'의 실체가 공개되는 순간, '역전된 실망감'이란 형태의 또 다른 긴장감으로 전이되게 됩니다. 기가 막히죠.

 

 

 

 

 

 

# 9.

 

도망갈 길이 보이지 않는 좁은 열차의 통로. 차근차근 한 칸씩 좁혀 들어오는 경찰의 긴장감. 처음 보는 여성 '파멜라'와의 강렬한 키스. 마치 '이사벨라'가 처음 '해니'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던 순간처럼, '해니'는 자신의 상황을 간절히 이야기하지만 '파멜라'는 이를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처음의 시퀀스와 대칭되는 상황으로 인해 관객은 금세 리타이어 했던 '이사벨라'와 마찬가지로 '파멜라' 역시 잠시 스쳐 지나갈 조연일 것이라 추론하지만, 작품 후반부 그녀는 영화의 히로인으로 재등장하게 되며 그 순간 "어! 저 여자는 아까 전 기차에서의!!" 라는 식의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와 같은 '서사적 효과'들 위로, 개 3마리가 맹렬하게 짖는 모습과, 달리는 기차의 밖에 매달려 칸을 옮겨 타는 액션. 높은 다리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찔함과, 미묘하게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전보의 비프음 등의 '물리적 기교'까지 더해지며, 추격 스릴러가 추구하는 장르적 경험을 완벽히 구현합니다.

 

다음글 : 히치콕의 고양이 -2-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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