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Comedy

물과 기름 _ 더 파티, 샐리 포터 감독

그냥_ 2021. 3. 17. 06:30
728x90

 

 

# 0.

 

예전엔 이런 류의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으려나 싶어 골치가 아팠습니다만, 이젠 딱 한마디면 손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타인> 같은 영화라고 말이죠.

 

 

 

 

 

 

 

 

'샐리 포터' 감독,

『더 파티 :: The Party』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완벽한 타인> 비스무리한 작품입니다. 개성 강한 예닐곱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축하받을 만한 경사를 맞는 누군가가 호스트가 되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초반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나눌 테지만 딱히 집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캐릭터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얼추 15분여 동안 인물 소개가 적당히 끝나고 나면 차례차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이 한데 모이게 됩니다. 처음엔 호스트를 축하하는 식의, 적당히 격식을 갖춘 정돈된 언어, 정돈된 행동을 보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이 되었든 자기 고백이 되었든 어떤 식으로든 간에 균열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을 것만 같던 작은 균열은 눈 깜짝할 새 더 큰 균열과 갈등으로 발전합니다. 결국엔 모든 사람이 얽히고설킨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그 이면에 숨겨진 부끄러운 내면을 구경하는 코미디가 완성됩니다.

 

 

 

 

 

 

# 2.

 

본 작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자넷'이 지인들을 부릅니다. 뭔가 큰 문제라도 있는 듯 멍한 표정의 남편 '빌'이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군요. '자넷'의 절친인 '에이프릴'은 냉소주의와 염세주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인물이고. 그녀는 영혼과 명상을 좋아하는 독일인 남자 친구 '고프리드'와 함께 파티에 초대됩니다.

 

스스로를 <미국식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영국 노동계의 성적 차별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라 소개하는 페미니스트 '마사'와, 레즈비언 연인 '지니'가 세명의 깜짝 손님과 함께 등장합니다. 전직 '스케어크로우' 아니랄까 봐 등장부터 마약을 땡기는 은행원 '톰'이 마지막으로 합류합니다.

 

여기까지의 7명이 바로 <더 파티>의 테이블 위에 놓이게 될 주인공 라인업이죠.

 

 

 

 

 

 

# 3.

 

좁은 집 안을 선명한 위계로 나눠 구분하는 방식 역시 <완벽한 타인>과 유사합니다. <완벽한 타인>의 경우 ⑴ 모두가 모이는 식당과, ⑵ 세명 이상의 그룹이 모이는 거실, ⑶ 개인 혹은 단 둘이 만나는 그 외, 라는 세 가지 층위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한다면. 이 작품은 ⑴ 모두가 모이는 거실과, ⑵ 개인 혹은 단 둘이 만나는 그 외의 공간이라는 두 층위로 구분됩니다.

 

영화의 런타임은 크게 네 등분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영화의 1/4 지점까지, '자넷'은 부엌, '에이프릴'은 복도, '톰'은 화장실, '빌'과 '고프리드'는 거실, '마사'와 '지니' 커플은 정원으로 찢어져 (앞선 단락에서 굵은 글씨로 강조해 드린) 개인성을 최대한 관객의 뇌리에 새기려 합니다. 조금씩 수다가 따분해진다 싶을 무렵, 첫 번째 균열을 위해 모두들 거실에 모이게 되고, 혼비백산 해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는 구성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 4.

 

반복적으로 <완벽한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작품 고유의 특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흑백의 화면을 들 수 있겠죠. 인물들의 번잡한 설정과 관계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면서 동시에 몇몇 대화 속 육중한 주제들에 필요한 만큼의 중량감을 더합니다. 제한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활용해 시퀀스 전환을 표현하는 영리한 선택을 하기도 하구요. 때론 샴페인 뚜껑으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의 도발적인 연출 역시 과감하게 전개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통속극이었던 <완벽한 타인>과는 달리 이 작품은 적극적으로 정당 정치의 효용성, 논리학, 의학, 종교학, 페미니즘, 자본주의, 선민의식 따위의 사회 철학적 아이템들의 메시지로 영화의 핵심을 구성합니다. 쫀쫀한 브리티시 악센트가 흑백의 화면과 찰싹 달라붙어 영화의 논쟁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도 하죠.

 

 

 

 

 

 

# 5.

 

여기까지만 들으면 뭔가 막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매운맛 버전의 <완벽한 타인> 같고 막 그렇게 들리실까요.

 

하지만, 훼이크.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바로 정치적 아이템과 이야기가 완벽히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수사적으로 쓰이는 '따로 논다'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뜻으로의 '따로 논다' 말이죠. 영화는 얽히고설킨 치정극이라는 '물'과, 그 위로 섞이지 못해 둥둥 떠다니는 형이상학적 정치 철학이라는 '기름' 두 개의 층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인물들을 각자에게 할당된 형이상학적 관념에 1:1로 대응된 대리인으로 밖에 활용하지 못합니다. 개인을 이루는 다각적-다층적 정체성 중 하나의 주요한 속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하려는 노력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갈등 상황에서 각자의 가치관이 은근슬쩍 묻어나게끔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해당 이념의 투사가 되어 직접적으로 논쟁을 전개해 버리고 만다는 거죠.

 

 

 

 

 

 

# 6.

 

영화의 2/4 동안은 작품을 소위 '기름', 형이상학적 사회 정치 철학 논쟁에 몽땅 때려 박습니다. 파티의 참가자 중 한 명이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자신이 시한부라 고백하는 데 '자넷'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친구가 죽든 말든 아랑곳 않고 말장난 식 개똥철학을 뱉어내기 바쁩니다. 논쟁을 할거라면 제대로 알차게 조직하기라도 하던가. 감독의 준비가 얕아 대화의 대부분을 '고프리드'의 영혼과 믿음 타령에 허망하게 낭비하기까지 하죠. 몇 되지 않는 빈곤한 논쟁들조차 그 결말은 언제나 시니컬 대마왕 '에이프릴'의 모두까기로 귀결되구요.

 

개인적으론 결말에서 모두가 갈등에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안전한 '에이프릴'을 볼 때 이 캐릭터가 감독의 '페르소나'가 아녔을까 싶은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 감독님, 쿨한 시크녀가 되고 싶으셨던건 아닐까요?

 

 

 

 

 

 

# 7.

 

다음 쿼터인 3/4 동안은 역으로 온통 '물', 막장 드라마식 치정극으로 급격히 전환됩니다. 이전까지 냉소주의니 정당 정치니 논리학이니 하던 개소리들은 말끔히 휘발되고 '자넷'의 남편 '빌'과 '톰'의 아내 '메리앤'의 불륜만이 남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폭로가 연쇄적으로 발전하는 식의 장르적 재미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잠시 품었습니다만 그 기대마저 감독은 보기 좋게 배신하죠.

 

그저 '빌'이 레즈비언인 '마사'와 무려 40년 전 두어 번 잤다는 시시한 폭로와, 파편적이라는 말도 거창할 미세한 유머가 억지로 관객의 집중을 붙잡을 뿐입니다. '톰'과 '빌' 사이에서 악의 없이 깐족대는 '고프리드'나, 쓰러진 '빌'을 두고 당황한 '톰'의 음악 선곡 같은 것들 말이죠.

 

부실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어찌어찌 지나 마지막 4/4 클라이맥스에 다다릅니다. 한방에 폭발시킬 폭로전도 없고 써먹을 풍자들은 진즉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별 수 있나요. '마사'와 '지니'의 가슴 절절한 로맨스로 마지막 10분을 때워내는 수밖에. 결말에서 길을 잃은 티가 역력한 감독은 에라 모르겠다. 뜬금포 반전을 하나 냅다 투척하며 영화의 막을 내립니다.

 

 

 

 

 

 

# 8.

 

'샐리 포터' 감독은, 작품의 기획 의도에 대해 “정치를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인간관계나 권력 구조, 사랑과 욕망, 배신과 실망 같은 프리즘을 통해 접근하고 싶었다. ... 비극 뒤에 가려진 희극이다. 급박한 상황과 숨 막히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감춰진 면모를 보이기 마련이고, 바로 그런 점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위태로운 웃음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도덕적 이상향과 정치적 올바름 사이에서 처절하게 방황하는 모습을 관찰해 그리고 싶었다.” 라 말했다고 하는데요.

 

저 기획의도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정치와 관련된 코드 정도만 제거하면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이나 원작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파올로 제노베제' 감독도 똑같은 기획의도를 말할걸요? 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급박한 상황 속 감춰진 면모를 꺼내 관찰해 보겠다.> 라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감독은 이 작품을 설득하기 위해 ⑴ 자신이 만든 '처절한 방황' 속에 각자의 정치 철학이 대사가 아닌 행동과 선택으로 녹아들 수 있게끔 만들거나, 그게 아니라면 ⑵ 관객들조차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처절한 솔직함이라도 그렸어야 합니다. 만, 영화에서 발견되는 정치 철학은 대사로만 소비되고, 대부분의 <처절한 방황>은 그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불륜에 의한 부산물을 그나마도 장르적으로 소비한 것에 불과해 보이는군요. '샐리 포터' 감독, <더 파티>였습니다.

 

# +9. 확실히 베를린은 정치적인 코드가 섞인 영화에 환장하긴 합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